"신선 같은 형님"께는 전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 몇 달씩 전화 안 받는 일이 예사다. 그런데 어머니 떠나시기 직전 용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뵙고 아내가 전화를 돌렸더니 용케 받더라고 한다. 운명하신 후 다시 통화가 되었을 때 바로 올까 묻기에 내일 와도 좋다고 했다. 어차피 5일장으로 갈 텐데, 당장은 가까이 있는 내가 버티고 있는 동안 체력을 아꼈다가 와줘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밤에 쫓아왔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흘 밤 계속 빈소를 지켜드렸다. 어머니도 참 흐뭇하셨을 것이고, 나도 덕분에 엄청 편했다. 이틀 정도 각오하고 있던 숙직을 형 덕분에 면제받지 않았다면 몸도 많이 곯았을 것이고 내 역할 제대로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조용히 얘기 나눌 시간을 얼마간 가진 것도 고마운 일이다. 나는 그를 나랑은 딴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여기고 서로 침해하지 않는 원칙 아래 대해 왔다. 그런데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에 대한 어머니의 집착이 어떤 바탕 위에 이뤄진 것인지를 비롯해 그의 살아가는 자세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에게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이 떠올랐다. 그는 무엇에 대해서도 집착이 없는 사람인지라 마음에 있는 생각도 다 털어놓으려 들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모처럼 조용히 마주쳐 떠오르는 대로 흘려내는 얘기를 얼마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틈 나면 그를 찾아가는 일도 앞으로는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근년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중시하고 있다. 이제 보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그가 나보다 윗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평전>을 번역하다가 떠오른 생각을 <프레시안>에 적은 한 대목이 생각난다.
'보수'의 의미가 무엇인가?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지나친 욕심을 삼가는 것이다. 안회를 '정통 보수'라 하는 것은 '주어진 현실'의 의미를 넓게 생각해서,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문제를 자기 자신에게서 해결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한편, 자공을 '중도 보수'라 하는 것은 '주어진 현실'을 한층 더 분석해서 '가능한 한 더 바람직한 현실'에 접근시키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 점에서 자공과 같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불교 관점에서 본다면 '상구보리'에 투철한 것이 안회였고, 자공과 공자는 '하화중생'에 비중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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