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메일 요긴하게 잘 읽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며 이리저리 생각을 궁글려 봤습니다.

'국물과 건더기', 라는 비유가 탁월하네요.

저는 국물 맛에 매료되었다가, 건더기까지 삼킬까 망설이는 시점인가 봅니다.

 

'복고'에 대한 거부감 보다는,

내가 어느새 이런 지점에 와 있구나 하는 자각에 흠칫, 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키 어려운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니까요.

왕년에는 '진보'를 자임하며 매달 당비도 꼬박꼬박 내던 대학생 진성당원이었거든요.

제가 두어 달 어학연수 하러 베이징에 처음 간 것이 2004년 여름인데,

당시만 해도 여전히 사회주의 중국 혁명에 대한 관심이 주였습니다. 

단단히 실망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나네요.

2006년 상하이에 머물며 통신원 노릇 할 때도,

좌/우의 잣대로 중국의 변화를 매몰차게 비판했었지요.

제 풀에 공연히 배신감 같은 걸 느꼈다고 할까요.

그때 쓰던 잡글과 지금 하고 있는 연재를 견주노라면, 그 사이의 변화에 저 스스로 놀랄 지경입니다. 

 

돌아보면 사회과학 전공하던 배경과도 무관치 않아 뵙니다.

작금의 사회과학 자체가 근대를 몹시 특권화하는 지식 체제라 할 수 있겠지요.

근대가 매우 다른 시대라는 도저한 착각에 기반해 있고,

그래서 과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제도적으로 양성하는 것 같습니다.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일 수록,

그 편견과 편향이 더욱 심한 것 같기도 하고요.

역사에 대한 시간 감각이 부박해졌고, 그로 말미암은 가치의 척도가 매우 협소해졌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사회과학 뿐 아니라,

근현대사/근현대 문학과 그 이전의 역사/문학 사이에도 큰 장벽이 쌓여져 있지요.

선생님 세대만 해도 덜했지 싶은데, 지금은 가히 '분단' 상태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이런 병폐가 심해진 것은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한문과 멀어진 언어 환경의 변화도 한 몫 했지 싶은데,

북조선은 어떠할런지, 

또 가장 급진적인 문자개혁을 단행한 베트남의 지적/문화적 상황도 몹시 궁금한 대목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매우 발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계시는군요.

선생님 견해를 제 식으로 풀면,

산업혁명이 수반하는 고도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이 이전과는 다른 제도를 요청했고,

그 항상적인 카오스에 한층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사회적 유동성이 덜한 저성장, 혹은 탈성장 시대가 (필히) 도래할 때,

얼마나 아귀가 맞을지는 미지수일 것이고요.

근대를 상대화하는 동시에, 민주주의 또한 '역사화'하고 계신 듯 합니다.

민주주의의 탈주술화, 탈신화화, 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소위 '선진국'에서 민주주의가 유명무실 형해화되고 있는 현상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그러하다면 그간 '민주주의'에 대한 맹신 또한,

공산주의에 대한 백일몽 만큼이나 냉전적 사고의 지속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요.

다른 민주, 혹은 다른 정치에 대한 상상력을 원천 봉쇄하고 있던 셈이니까요.

20세기의 체제 경쟁도 민주-독재라는 구도는 자유진영 쪽의 '프레임'이고,

그 내실은 결국 경제성장과 그 성장의 속도에서 판가름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온당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 수준은 별개로, 시대를 읽는 촉수는 기민해 보입니다.

'역사의 종언'을 철회하고, 최근 '유능한 정부'의 역할에 관심을 쏟고 있더군요.

작년 미국에서 호평을 받았고, 지금 확인해 보니 한국에서도 막 번역서로 나왔습니다

<정치 질서의 기원>이라는 제목입니다.

20세기 근대성을 다툰 좌-우의 대결이 아니라,

한층 깊고 복잡한 전통에 바탕을 둔 비서구 정치제도의 도전이라는 추세를 예리하게 짚었지 싶습니다. 

 

유교에 바탕을 둔 중국의 제국적 통치를,

'동양적 전제'나 '독재'로 쉬이 재단하기 힘든 까닭이기도 하겠지요.

단지 독재와 전제에 그치는 것이라면,

그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 노정되는 놀라운 복원력을 설명하기 어렵지 싶습니다.

두 번의 밀레니엄을 거치고도 결국 유사한 정치 제도를 재건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일치일란의 반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니,

'처음처럼'을 외치는 복고가 역성혁명의 다른 이름일 법도 합니다.

 

나아가 유교는 안정과 질서를 최상의 가치로 삼는 이데올로기라는 측면 못지않게,

'유능한 정부'의 관점에서 보아도 정치와 행정의 '장인'을 양성하는 체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대선을 가까이서, 한국의 대선을 멀리서 지켜보며,

이 제도가 치루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에 견주건데, 얼마나 합리적인 결과를 산출하는지 물음표가 생기던 차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권력 교체 방식이 그 적지 않은 병폐에도 불구하고,

결코 만만치 않은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미 일란 이후의 일치 단계로 들어선 것은 아닌가,

여러 곳에서 유가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징후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헌데 여기서 '복고'라는 말에 멈칫, 했던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자칫 지금의 중국을 편들고 거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저는 동아시아 연대라고 할까, 그런 실천적 관심이 승한 편인데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중국 (지식계) 에서는 누구와 손잡고 갈 것인가를 판단하기가 갈수록 간단치 않아 보입니다.

가장 앞서 유가를 말했던 이들은 '문화 보수주의'로 분류되었고,

유가 사회주의 공화국을 말하는 이들은 한때 '신좌파'로 말해지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양쪽 모두 '국가주의'에 투항해 비판력을 상실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요.

역설적으로 현재의 중국 체제에 가장 비판적인 사람들은 소위 '자유주의'자들인데,

이들은 또 중국/동아시아의 전통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서구 지향의 사람들이고요.

그래서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관하여 어느 쪽이 더 옳은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쉬이 가늠하기 힘듭니다.

긴 안목으로 역사를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 전망과,

지금 당장의 구체적인 현실과 단기적 대응 속에서 깊은 곤혹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순전히 배움만을 일로 삼는다면 당장 건더기까지 삼킬 법도 한데,

현실의 개입을 염두에 두자면 못내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 긴장을 쉬이 해소해 버리지 않고 끌어 안고 가야겠지요.

마침 응답해 주시는 분이 있어 복 받았다 여기고 있습니다.

 

태풍에 무사하셨길 바라며- 

 

-이병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