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민정장관 직을 맡으신 지 석 달 됩니다. 적응기를 지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할 일 하실 때가 되었는데, 그만한 태세가 되셨는지요?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산과 인사, 즉 돈과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에 관해 집중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 일 맡으신 후 군정청에 인사이동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좀 뜻밖입니다. 미군정이 20개월 전 들어선 이래 미군 장군들이 인사권을 행사해 왔는데, 그 기준에 대해 일반 조선인들은 상당한 의구심을 품고 있죠.

영어 잘하는 사람과 기독교인들이 요직을 차지해 왔기 때문에 ‘통역정치’란 말까지 생겼습니다. 하지 사령관의 ‘특별비서관’이란 직함으로 실제로 하지의 개인 통역 역할을 하는 이묘묵 씨가 가장 큰 실권자로 알려져 있어요. 모든 부서에서 그와 같은 식으로 미군 장교와 쉽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제일 큰 실권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묘묵 씨는 얼마 전 나온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된 인물입니다. 1937년 사상전향서약서를 제출한 이후 조선 문화계에서 친일 행적이 가장 뚜렷한 사람의 하나더군요. 영어 잘하는 사람 중에도 미군정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이들이 더러 있거니와, 통역정치에 열심인 사람들은 대체로 민족의식이 박약한 편 아닙니까?

선생님이 조선인의 행정 책임을 총괄하는 민정장관 자리에 영입된 것은 행정의 최종 책임은 몰라도 행정의 운영만은 조선인이 주체가 되어 시행한다는 취지로 압니다. 그렇다면 민족의식이 분명한 사람들이 나서서 통역정치의 폐단을 척결하는 것이 급선무의 하나겠죠. 그런 방향으로 아직 아무 변화가 없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안: 통역정치의 폐단은 나도 절감합니다. 이 직을 맡을 때 조선인 관리에 대한 내 추천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은 것도 무엇보다 그 문제 때문입니다. 군정청의 구성과 분위기에 문제가 있는데, 인사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허수아비 노릇을 면할 수 없지요.

그러나 내가 조그만 권력 하나를 쥐었다 해서 이것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군정청 고급 관리들의 업무 자세에 문제가 많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왕의 문제 때문에 사람들을 마구 몰아낼 일은 아니죠. 자세의 문제란 것은 본인의 태도만이 아니라 환경에도 걸려 있는 것입니다. 통역정치의 오명을 벗어나 주체적 업무 자세를 세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급한 일이고, 여건이 마련된 뒤에도 태도를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물러나게 해야죠.

현실적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지금까지 일해 온 이들 대부분이 실제로 능력은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 다 몰아내고 그만한 능력 가진 사람들을 새로 불러 모을 수도 없어요. 이 사람들이 자세를 잘 잡도록 도와주면서 함께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친일파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친일파를 엄하게 따지면 재산 있고 학식 있고 기술 있는 사람들 중에 안 걸릴 사람이 별로 없어요. 해방 전의 자세에 문제가 좀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의 환경 때문에 그랬던 면은 인정하고, 그 사람들이 좋은 쪽으로 자세를 바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그들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습니다.

 

김: 이묘묵 씨에 버금가는 실권자로 정일형 인사행정처장이 거론되고 있지요. 정 씨 회고록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안 보셔도 대충 짐작할 만한 내용이겠죠.

 

민세 안재홍 씨는 민정장관이란 요직에 앉게 되었으나, 여운형 씨 비슷하게 중간노선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 부처장들의 협조와 신임을 얻지 못하였고, 특히 영어를 자유자재하게 구사하지 못해 군정 책임자들과도 잘 연결되지 않아 그 기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고전하였다. (<오직 한 길로>(정일형 지음, 을지서적 펴냄) 163쪽)

 

저는 이 대목을 보고 놀란 것이, ‘중간노선’을 걷는다는 것을 조선인 고급 관리들의 협조와 신임을 얻지 못하는 충분조건처럼 여긴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협조와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한민당과 이승만의 분단건국 노선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 아닙니까? 군정청의 조선인 간부들이 자기네를 특정한 정치노선의 집단으로 자임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영어의 자유자재한 구사 능력을 기능을 발휘할 필요조건으로 여긴다는 데도 음미할 점이 있습니다. 한 국가의 행정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문서화가 완전히 되어야겠죠. 문서화가 제대로 된다면 영어 회화능력이 없더라도 통역과 번역을 통해서 업무를 충분히 진행할 수 있을 테고요. 회화능력을 중시하는 것은 대화 중 눈치 봐가며 자기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끌고 가는 통역정치의 속성인데, 회화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능력을 써먹기 위해서도 통역정치를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정 씨의 회고를 보면 그와 같은 조선인 간부들이 선생님께 협조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알겠습니다. 한편 하지 사령관이나 러치 군정장관 같은 미군정 당국자들과는 어땠는가요? 정말 회화능력 때문에 관계에 어려움을 겪으셨나요?

 

안: 정 씨가 솔직하게 적었으니 나도 솔직하게 말하죠. 지난달에도 그 사람 얘기가 잠깐 나왔을 때(1947년 4월 7일자 일기) 내가 “무척 선량하고 대단히 답답한 사람”이라고 했죠.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일제 말기에 이묘묵 씨처럼 친일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근본은 좋은 사람이라고 보는데... 그런 사람이 ‘친미’로 치우친 것을 보면 지금의 정치 환경이 일제 말보다 더 나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군정 당국자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기는 겪는데, 그것이 영어 회화능력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김성수 씨도 영어 못하기는 나랑 마찬가지인데 그 사람은 별로 어려움을 겪는 것 같지 않아요. 문제는 회화능력이 아니라 정치관의 차이에 있는 거겠죠.

브라운 소장과는 의견이 잘 통합니다. 하지 중장과도 큰 문제 없어요. 제일 어려운 게 러치 군정장관과의 관계인데, 업무가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부딪칠 일이 많기도 하려니와, 그 사람은 내 일을 어떻게든 더 어렵게 만들어주려고 작심한 사람 같아요. 그 사람은 합작위에 반대하는 입장이라서 김규식 박사와 내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미군정 당국자 중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이 하지 사령관의 역할입니다. 그에게는 브라운 소장이나 버치 중위 같은 교양이 없어서 엉뚱한 오해를 할 때도 있지만, 단정 추진세력에게 휘둘려서는 안 되겠다, 좌우합작을 뒷받침해줘야겠다는 인식은 확고합니다. 그러니까 내게도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애를 쓰죠.

 

김: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서 하지 장군을 용공주의자로 몰아붙였다는데, 그것 때문에도 하지 장군이 단정 추진세력에게 더 경계심을 품을 것 같네요.

지난달에도 예산안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세입 전망과 세출 필요의 차이가 두 배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전년도 세출에서 10퍼센트 이상 늘리지 못하게 묶어놓음으로써 세입과 억지로 균형을 맞춰놓았다지만 물가가 몇 배 오른 상황에서 그런 예산의 집행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안: 세입 전망이 155억 원인데 세출은 작년보다 10퍼센트 늘리면 165억 원입니다. 현실적으로 집행이 불가능하죠. 그래도 원칙을 그렇게 세워놓아야 적자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집행해 나가다 보면 부득이하게 늘어날 거고, 늘어나는 부분은 화폐를 더 찍거나 차관을 들여와야죠. 두 가지 다 미군에게 권한과 책임이 있는 방책이니까 우리로서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김: 세출 예산을 현실 수요보다 줄여서 작성한다면 적극적 시책을 편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적극적 시책은커녕 꼭 필요한 경상 사업도 미군 쪽에서 추가예산을 장만해 주지 않으면 추진할 수가 없을 텐데요. 그렇다면 민정장관 이하 부처장들이 행정의 진짜 권한을 가진 것이라고 볼 수도 없겠네요.

 

안: 임시정부도 못 되고 군정이니까 그런 거죠. 정말 조선인들에게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겪어보면서 국가 운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독립에 준비가 되는 일이라 생각해서 괴롭지만 매달려 있습니다.

이북의 인민위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지만, 예산 규모가 이남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토지개혁으로 현물세를 많이 걷어서 세입을 대폭 늘렸다고 해요. 현물세를 많이 걷는 것이 민생에 부담이 되기는 하겠지만,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겨내고 주체적으로 경제를 건설해 가는 길이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농민들도 전에 소작료 바치던 것보다는 현물세가 훨씬 작으니까 불만이 좀 있더라도 견뎌낼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이남에서는 토지개혁이고 세금이고 조선인에게 결정권이 없어요. 그리고 미군정에서 정해주는 사업들을 피할 수도 없어요. 그중에는 위생 사업처럼 돈이 들더라도 꼭 해야 할 것도 있지만, 경찰을 저렇게 크게 만드는 건 이해가 안 가는 일입니다. 일제시대에도 경찰이 너무 많았는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갑절이나 늘어났답니다.

 

김: 미국의 원조 얘기가 더욱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몇 년에 걸쳐 6억 달러 준다는 얘기가 결정된 사실처럼 떠돌고 있고, 최근에는 금년 치로 7천5백만 달러 원조안이 미 의회에 상정되었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7천5백만 달러라면 군정청 예산과 맞먹는 규모 아닙니까? 그런 규모의 원조가 들어온다면 조선의 경제 문제가 풀릴까요?

 

안: 지금 공식 환율은 1달러 대 50원인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높아요. 미국에서는 1달러 대 120원 정도로 거래된다고 하는데, 조선 내에서는 1달러 대 150원이 넘어요.(정병준 <우남 이승만 연구> 610쪽 주68에서 1946년 말 시점의 환율을 설명한 내용에 의거함) 7천5백만 달러를 미국 시장의 환율 120원으로 바꿔도 90억 원이 되는군요. 정말 군정청 예산 규모와 맞먹는 액수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원조가 들어온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은 물론이죠. 군정청 예산으로 할 사업을 원조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도 모든 경제 문제가 풀릴 전망은 세울 수 없습니다. 경제 전반은커녕 군정청 예산 문제조차 해결을 바라볼 수 없어요. 165억 원으로 세출을 잡아놓았는데, 아무리 긴축을 해도 300억 원은 나갈 것으로 각오하고 있으니까요.

원조를 주겠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마음 편할 수 없는 점이 많습니다. 경제적 독립 없이는 진정한 독립이 없는 것인데, 그런 거액의 원조를 몇 년 동안 받으면 원조의 필요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전망을 세울 수가 없어요. 경제 문제를 생각하면 독립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 소련은 이북에 대해 그런 대규모 원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민위원회 체제는 예산을 세우고 행정을 집행하는 데 큰 곤란을 겪지 않는 것 같아요. 해방 당시에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형편이었는데, 지금 와서 경제적 독립의 전망에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긴 것이 누구 책임이라고 해야겠습니까?

미국의 남조선 점령이 자기네 영향력 확보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고 진주 당시부터 주장해 왔는데, 남조선이 경제적으로 미국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영향력 확보의 뜻을 속으로 품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럴 뜻은 없는데 실수로 이런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일까요?

 

안: 결과만 놓고 보면 미군정의 역할에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향력 확보의 의도 또한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죠. 하지만 그런 의도 때문에 모든 일을 나쁘게만 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의심 같습니다.

조선을 점령한 김에 자기네 영향력을 심어놓고 싶어 하는 것은 미국이나 소련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련이 미국보다 현명한 길을 찾은 것 같아요. 자기네 비용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 자기네에게 호의적인 세력을 중심으로 북조선에 안정된 체제를 만들어놓았습니다.

미군정이 이남 지역에 나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의도가 아주 나빠서가 아니라 수단이 졸렬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나쁜 것이 우리 조선인에게만 나쁜 것이 아니라 미국인 자기네들에게도 나쁜 거예요. 어리석음의 문제이지 사악함의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믿습니다.

하지 장군이 단적인 예입니다. 작년 봄 미소공위 결렬 때까지 그는 한민당과 이 박사 쪽 얘기에만 귀를 기울였어요. 그러나 그 후 좌우합작을 지원한 것은 상황을 비로소 옳게 판단한 결과입니다. 이번 미소공위 재개를 위해서도 더 바랄 수 없이 성실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이 악마였고 미국과 소련이 천사인 것이 아닙니다. 일본 지배를 받은 것도, 두 나라의 점령을 당한 것도 다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잘 못해 준다고 해서 쫓아버릴 수 없는 것이 우리 입장입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이해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미국을 이끌어야 합니다. 김구 선생께서 “수고만 많고 보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