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런데 ‘밝았다’는 말을 새해에 붙여서 쓰는 것은 밝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오래된 풍속인데, 금년에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군요.

1년 전 새해를 맞을 때는 해방된 그 해에 바로 건국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마음 한편에 있더라도, 이제 맞는 새해 1946년 중에는 독립건국을 이루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조선인 중에 그런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죠.

그 후 이런저런 일에 쫓기고 시달리며 지내다가 한 해를 지내고 보니 1년 전보다도 독립건국이 더 막막하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1946년 중에 건국이 안 된 이유도 명쾌하게 이해되지가 않고, 그러다 보니 1947년 중에 건국이 될지 안 될지 확실한 자신을 가질 수 없게 된 거죠.

건국 과업에 누구 못지않은 열의를 갖고 임해 온 선생님께 새해 전망을 듣고 싶습니다.


안: 1년 전에 비해 마음이 어두운 것은 사실입니다. 3상회의 결정을 듣고 반탁운동을 일으킬 때, 미소공위가 1년 후까지도 조선 임시정부 수립 방침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공전될 것을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요. 나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위험을 알았다면 반탁운동을 처음부터 반대했을 겁니다.

개인의 일이든 국가의 일이든 상대방의 의도를 나쁜 쪽으로만 짐작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익에서 소련의 ‘적화(赤化)’ 의도를 주장하는 것이나 좌익에서 미국의 ‘남조선 보유’ 의도를 비난하는 것이나 모두 대립을 부추기는 짓입니다. 근거 없이 한 쪽을 욕하고 한 쪽을 편드는 것은 자기 이익을 위해 민족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짓입니다.

그러나 한편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환상에 빠지는 길입니다. 미국도 소련도 조선만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아닙니다. 사람이 이웃을 돕는 것도 자신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일본을 격파함으로써 조선의 해방이 이뤄진 이제 일본의 의지 대신 두 나라의 의지가 조선의 진로를 좌우하게 된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해방을 발판으로 독립을 이루려면 두 나라의 의지를 잘 살펴서 순응할 것은 순응하고 저항할 것은 저항해야 하는 것이죠.

1년 전에는 우리 모두 두 나라의 의지를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수도 했고, 그 결과 1년 전보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 점도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차분히 노력을 쌓아나가야 하겠습니다.


김: ‘실수’라고 말씀하시면 무엇보다 반탁운동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1년 전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반탁운동의 선봉에 섰죠. 그런데 당시 반탁을 함께 하던 이들 중에서 선생님처럼 임정 수립을 먼저 해놓고 나서 반탁을 하자는 측과 임정 수립에 앞서 반탁 원칙부터 확정해야 한다는 측이 갈라졌습니다.

미소공위 참여를 놓고 그 갈림이 뚜렷해졌죠. 선생님은 미소공위 참여와 임정 수립 단계에서는 반탁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데, ‘모스크바 결정 존중’ 서약 때문에 미소공위 참여를 포기한다는 입장, 서약을 하고 참여하더라도 별도로 반탁 의지는 계속 표명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죠. 그런 강경한 입장에서 지금도 입법의원이 반탁노선을 결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 생각은?


안: 모스크바 결정이 조선의 신탁통치를 ‘확정’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5년이라는 기간까지 명시한 것을 보면 실질적으로 확정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조선인이 원치 않는 것입니다. 좌익에서 탁치를 원한다고 우익에서 선전하는 이들이 있지만, 찬성하는 것과 원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원하지 않더라도 부득이한 것으로 인식하면 찬성할 수는 있는 것이죠. 진심으로 탁치를 원하고 조선이 소련의 일부 되기를 바라는 자가 있다면 그는 조선인이 아니라 민족반역자입니다. 조선인은 탁치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길을 연합국이 결정했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원치 않는다는 의사 표시야 물론 해야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유를 이해하는 겁니다. 뭔가를 걱정하기 때문에 즉각 완전독립 대신 탁치를 결정한 것일 텐데, 그 걱정을 살펴봐서 만약 근거 없는 걱정이라면 걱정을 풀도록 설득해야 하고, 근거 있는 걱정이라면 걱정을 없애거나 줄이도록 우리가 노력해야죠.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이 공동의 적이 사라진 이제 상호 관계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종전 후 온 세계의 가장 큰 걱정입니다. 소련은 자기네 국경 바로 바깥에서 미국이 세력을 키우는 것을 걱정합니다. 러일전쟁 등 소련-러시아의 큰 우환이던 일본을 미국이 점령했는데, 그 세력이 조선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죠. 한편 미국은 중국의 국공내전 등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가 종전 후 4개월이 지나서야 열린 것도 이런 각자의 걱정에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린 까닭이겠죠. 그리고도 조선의 진로에 대해서는 양측이 모두 안심할만한 합의가 당장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견제력을 유지하는 유예기간을 두려는 뜻이었다고 나는 이해합니다. 탁치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 표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두 나라의 걱정을 풀어주면서 조선이 독립하는 길을 찾는 겁니다.


김: 지난 5월 미소공위 정회 후 선생님이 좌우합작에 주력해 온 것도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걱정을 함께 풀어주는 길을 찾으려는 뜻이겠군요?


안: 바로 그렇습니다. 소련만을 쳐다보며 미국을 무조건 비난하는 극좌파가 득세하면 미국이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미국에만 의존하며 소련을 배제하려는 극우파가 힘을 쓰면 소련이 안심할 수 없습니다. 두 나라를 함께 존중하는 중도파가 주도권을 가져야 두 나라 모두 조선이 자기네를 적대하는 일이 없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지요.

미소공위에서 문제되는 소련의 주장은 반탁세력을 협의대상 범위에서 배제하자는 겁니다. 소련 관점에서 남조선의 반탁세력을 의심스럽게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식민지 경찰을 되살린 경찰을 앞세워 좌익을 탄압하는 와중에 3상회의 결정을 부정하는 세력이라면 미국을 무조건 받들고 소련을 무조건 적대하는 세력으로 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일전 한민당의 연두 담화를 보세요. 소련이 카이로회담 당사자가 아니고 일본과 전투를 많이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련에게 미국과 대등한 발언권을 준 것이 미-영-중의 ‘착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미국보다 더 큰 희생을 겪고 더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은 모든 연합국이 인정하는 사실인데, 그 전쟁 덕분에 해방된 나라에서 소련의 발언권을 부정하고 나서다니, 두 강대국을 이간하려는 얄팍한 속셈을 누가 알아보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소련이 조선에 대해 마음 놓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김: 입법의원에는 한민당, 독촉 등 반공-반소파가 우세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좌익 요인들이 대거 체포-수배된 상태의 선거에서 우익이 민선의원을 독점했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합작위에서 추천한 좌익과 중도파 관선의원 중 여러 사람이 취임을 거부한 결과죠. 이런 상태에서 입법의원의 첫 정치적 결정으로 반탁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는군요. 탁치를 반기지 않는다는 의사표시야 할 만큼 해왔는데, 이제 새로 만들어진 입법의원에서 그런 결의안을 내놓는다는 것이 건국에 해로운 결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안: 일전의 한민당 연두 담화도 그렇고, 한두 달 전부터 3상회의 결정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합작위 멤버들을 중도파라 할 수 있는데, 중도파가 3상회의 결정을 존중하자고 하는 것은 그 내용이 모두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건국을 향한 순탄한 길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것을 거부한다는 건 연합국 합의에 의한 순탄한 건국의 길을 포기하는 거예요. 연합국 합의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미국과 소련 두 나라를 모두 안심시키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안심하지 못하면 자기 자리를 지키려 들 것이 당연한 일이고요. 소련이 북쪽을 지키고 미국이 남쪽에 매달리면 분단을 극복할 길이 없습니다. 38선을 그은 것은 조선인이 한 일이 아니지만 38선의 강화-고착에는 조선인의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이승만 박사 주변에서 조선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자고 하는데,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와 긴밀하게 관련된 나라들 사이의 합의가 도저히 안 될 때 부득이하게 들고 갈 곳이 유엔이지,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나라 대표들에게 맡기는 것이 우리 현실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유엔은 회의장도 미국에 있고 미국이 돈 많은 나라여서 미국 뜻에 따르는 약소국이 많다고 합니다. 유엔에 상정한다는 건 미국에게 나라를 맡기겠다는 뜻이고 소련이 절대 동의할 리가 없죠. 유엔 상정은 백퍼센트 분단을 향한 길입니다.


깁: 입법의원의 반탁결의안 추진만이 아니라 반탁운동 재개 움직임이 널리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몸담고 있는 한독당에도 그런 움직임이 있지요. 그 동안 좌우합작을 놓고도 열성적인 국민당계와 냉담한 중경계 사이의 갈등이 적지 않았는데, 반탁운동 재개를 놓고는 그 갈등이 더 증폭되지 않을까요? 김구 선생의 영도력이 그 갈등을 다 싸안을 수 있을까요?


안: 건국 과정을 이끌어줄 영도력을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 두 분에게 기대했는데, 그 점에서는 이제 더 이상 실망을 감출 수 없군요. 이 박사에 대해서는 내 주변에서도 민족반역자로 규정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인민의 여망이 무너졌습니다. 김구 선생은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무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봄 국민당을 갖다 바치다시피 한독당에 통합시키며 지금은 중경계라고 하는 원 한독당 인사들에게 최소한의 양심과 아량을 기대했습니다.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김구 선생께 연유를 말씀드리자 그 부하 동지들의 사려 적은 언동을 분개하면서 함께 진력할 의사를 말씀하셨죠. 그러나 그 뒤에 그 뜻에 따른 조치가 없었고, 그래서 중경계와 국민당계, 신한민족당계가 아직까지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습니다. 따라서 합당을 통해 민심을 수렴한다는 애초 합당의 목표도 이뤄지지 못하고 말았죠.

김구 선생께 제일 불안한 점이 반탁운동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분이 ‘임정 추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반탁운동에 집착한다는 말까지 돕니다. 상해-중경 임정은 무너진 지 오래고 요즘 ‘임정’이라 하면 미소공위를 통해 만들어질 임정을 말하고 있는 판인데, 임정의 권위가 약해진 사실에 맞춰서 적절한 노선을 찾지 못하면 민족의 진로에 도움이 아니라 장애가 될까봐 걱정입니다.


김: 선생님은 임정 요원 대다수가 흩어져버린 지금까지 김구 선생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김구 선생의 자세와 역할로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까?


안: 1년 전 임정의 권위가 강할 때 내가 선생께 바란 것은 건국 노선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친일파 처단과 포용 같은 문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선에서 선생께서 정해주셨다면 군말 없이 시행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선생께서 안 해주시니까 지금 입법의원 만드는 데까지 문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토지개혁을 비롯한 사회개혁도 마찬가지예요. 적정한 기준을 당시 선생께서 제시하셨다면 힘 있게 작용했을 겁니다.

임정 환국 당시 좌익은 임정을 작게 보고 우익은 크게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우익 안에서는 임정이 중심에 서되 국내 세력과 합쳐야 한다는 보강론(補强論)을 내가 내놓았고 임정이 그대로 가야 한다는 직진론(直進論)을 한민당이 내놓았죠. 임정을 너무 크게 보는 것도 너무 작게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임정이 스스로의 권위를 살리되 그 권위가 다른 세력을 지나치게 억누르지 않도록 절제하기를 나는 바랐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권위가 약해진 만큼 적극적인 자세보다 소극적인 자세가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손으로 건국을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분단건국만은 안 된다!” 하는, 좁혀진 목표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김구 선생께서 역사적 사명에 충실한 길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