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과 싸우려는 이유


당선자 확정을 지켜본 뒤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메일을 확인해 보니 파리에서 클레망텡 교수의 쪽지가 와 있다. “좋지(glad)?” 하는 제목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이 말에 조금 전 들은 당선자의 “그냥 참 좋습니다~” 하던 말이 떠올랐다. (...)

미국 우파는 중국을 21세기의 스파링 파트너로 점찍고 있다. 대결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패권주의 세력에게 ‘악의 축’으로 찍힌 조무래기 나라들은 성에 안 찬다. 한두 차례는 몰라도 체급이 너무 틀리는 상대만 계속 데리고 놀아서는 국민에게 흥행이 안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돈 많이 들이는 사업인 미사일 방어망도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경제경쟁의 측면에서는 중국이 과거 소련과 비교도 안 되게 벅찬 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군사 분야로 경쟁의 주 무대를 옮기는 것이 미국 우파의 바라는 바다. 군비 수준을 높여야 인적 자원보다 물적 자원의 중요성이 큰, 미국이 유리한 싸움터로 중국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평화를 위협하는 패권주의 정책이 정상적 상황에서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힘들다. 뭔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줄 꼬투리가 필요하다. 과거 소련은 폐쇄된 체제로 이런 꼬투리를 오랫동안 잘 만들어줬다. 그런데 중국의 개방 추세로 인해 꼬투리 잡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지나면 미국 국민에게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슬람 지역을 둘러싼 테러전쟁에 편승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서둘러 규정하고 북한의 개방을 최대한 방해하며 극한적 대립으로 북한을 몰아가는 부시 정권의 압박정책도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오랜 맹방 북한을 집적거리며 중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는 것이다. 중국이 발끈해서 삿대질하고 나오면 당장 중국을 소련을 잇는 주적(主敵)으로 규정한다. 중국이 참고 있으면 중국 옆구리에 시한폭탄을 계속 키운다.

부시 정권이 바라는 한국의 역할은 북한 압박정책에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는 것은 전혀 부시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쟤 나쁜 애래요, 쟤 좀 혼내 주세요.” 하고 고자질할 것을 바란다. 이런 부시의 소망을 김대중 정부가 속 시원하게 들어주지 않았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

어버이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어린 대한민국에게 우방이 아니라 어버이 노릇을 했다. 낳아주고 지켜주고 먹여주고 입혀줬다. 친구와 애인, 전공과 직업까지 정해줬다. 그리고 말만 잘 들으면 계속해서 슬하에 두고 싶어 한다.

그 무릎을 떠나면 힘들고 괴롭고 불안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만큼 덩치도 크고 생각도 자란 이제 떠나야 한다. 우리 일은 우리가 결정해 나가면서 힘닿는 대로 그 동안의 은공을 갚아야지.


작년 가을 북한의 3대 세습 이야기로 말이 많을 때 나는 정권 세습 자체를 절대악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은 일이 있다.(“권력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최선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체제가 어떤 사회에서나 최선의 체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과 허약한 사람, 바쁜 사람과 한가한 사람에게 적합한 음식이 다른 것처럼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적합한 권력 운용방법도 서로 다를 것이다.


북한의 정권 세습을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정치체제 속에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교류와 소통에 장애가 되는 것이고, 북한이 그런 체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열악한 환경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열악한 환경을 걱정해 주기보다 나타난 현상만을 이유로 상종 못할 존재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민족을 아끼는 마음이 모자라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막상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고 보니 그 사망을 꽤 오래 전부터 예상할 만한 건강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되던 과정에 비해 김정은의 후계자 옹립은 시점에서나 속도에서나 매우 서두른 감이 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권력자라면 후계자 옹립을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다.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북한에 관한 일은 정보가 충분치 않아서 아무리 전문가라도 추측에 얼마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시점의 사망을 최소한 2년 전부터 주변에서 대략 예상하고 있었다는 추측을 발판으로 저간의 사정을 다시 돌아보겠다.


김정일은 1994년, 북한의 총체적 위기 속에 정권을 승계했다. “강성대국”이란 이름으로 국가발전의 포부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발전보다 유지가 늘 더 절박한 과제였고, “선군정치”는 그 필요에서 나온 노선이었다.


북한 위기의 직접 원인은 공산권 붕괴였다. 옛 공산국가 모두가 1990년대 초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대부분은 체제 개방을 통해 서방의 도움을 받았다. 그에 곁들여 서방의 영향력도 받아들인 것은 물론이다.


이 단계에서 중국은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문화혁명기를 벗어난 개혁노선은 이미 10년 이상 진행되고 있었지만 공산당의 주도권을 지키려는 의지는 1989년 천안문사태에서 확인되었고, 공산권 붕괴 앞에서도 개방의 고삐를 그대로 틀어쥐고 있었다.


1990년대에 북한이 적극적 개방정책으로 나서지 않은 큰 이유가 중국과 보조를 맞추는 데 있었다. 위 글을 쓴 2002년까지도 미국은 중국에 대해 압박정책을 펴고 있었다. 1998년 클린턴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는 공화당만이 아니라 민주당까지 반대했다. 인권문제가 있는 나라를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시기에 북한이 떨어져 나갔다면 중국에게 크나큰 전략적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였다.


중국의 위상은 10년 사이에 크게 변했다. 그에 따라 중-미 관계도 변했다. 이 자리까지 중국이 무사히 도달하는 데는 북한이 버텨준 공로가 컸다. 북-중 간의 ‘혈맹(血盟)’ 관계는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이 국제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북한의 진로가 순탄하게 풀려야 한다.


2003년 여름 6자회담이 시작되면서 북한의 보호자로서 중국의 역할이 분명해졌다. 그 후에도 중국의 힘은 계속 자라났고, 반면 미국의 위세는 꺾였다.


그 무렵부터 중국의 탈북자 정책이 바뀐 것도 북한의 안정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 노력이 강화된 징표로 보인다. 2003년까지 중국이 탈북자를 단속하지 않고 방치한 것은 북한 주민의 어려운 형편을 감안한 것이었는데, 북한 지원을 본격화하면서 중국 내 탈북자 단속도 강화한 것이 아닐까. 이 단계에서 북한의 극단적 위기는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공황으로 미국의 위세가 꺾이고 이듬해 초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나는 북-미 관계 개선이 쉽게 이뤄질 것을 예상했다. 미국은 부시 시대의 오만을 반성하고 북한은 중국의 지원에 안심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태 진행은 이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이제 김정일의 사망, 그것도 상당 기간 예상되어 온 것으로 보이는 사망 소식에 접하고 보니, 북한이 예정된 대미 관계 개선과 대외 개방을 ‘김정일 이후’로 늦춰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에게 개혁-개방 조치의 주체로서 역할을 미뤄두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북한의 기존 체제는 ‘영도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영도자의 자격은 혈통과 공적을 모두 필요로 한다. 불가피한 변화를 한두 해 늦추는 것이 후임 영도자의 기반을 단단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택할 수 있는 길이다. 주변국을 만족시키면서 인민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카드를 다음 체제의 안정을 위해 아껴둘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이라도 사실주의 소설이지 판타지 소설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디테일은 사실이 아닐지라도 큰 틀은 사실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식을 사본 일이 없는 사람이지만, 주식을 산다면 향후 2년간 북한의 급속한 개방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쪽으로 살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사니까 주식 살 형편도 못 되는 신세인지 모르지만.


자판 당길 때는 MB 정부 대응하는 꼴에 야단을 쳐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중국 얘기에 빠져서 그럴 틈이 없었다. 그리고 야단치기도 부질없다. 원래 뭐든 거꾸로 하는 것이 그 역할 아닌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제도와 관습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낱낱이 밝혀내는 역할.


조문을 통제한답시고 설치는 것도 그런 역할의 일환으로 여기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다른 건 다 말아먹더라도 남북관계만은 함부로 망치지 말아달라고 당부를 했건만... ("경제는 말아먹어도 좋다. 또 다른 '파국'만은…") 불행 중 다행이라면 망치려고 애를 써도 망칠 능력이 그리 크지 않은 점이랄까.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