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5. 23:03
어제 퇴원하셨다. 실밥까지 다 빼고 내과적 문제도 없기 때문에 요양원으로 모셨다. 요양원이 4층이고 7-9층이 요양병원이니까 병원 신세가 필요하시면 쉽게 올라가실 수도 있고 의사와 간호원이 내려와 볼 수도 있다.
아침 일찍 병원에 둘이 함께 갔다가 오후가 되어야 퇴원 준비가 끝날 것 같기에 아내가 어머니를 지키고 나는 집에 돌아와 <해방일기> 원고를 보냈다. 시간이 아쉬워서 써뒀던 원고를 다듬어 보냈다. 병원으로 달려가니 떠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요양원에서 자리 잡으신 뒤 아내 먼저 들어가 쉬게 하고 나는 오늘 <친북> 원고 보낼 커밍스 책을 붙잡고 어머니 응대해 드리다가 책을 보다가 하며 어두울 때까지 곁을 지켰다. 새 자리에 오셨는데, 익숙한 비품이 하나쯤 있으면 마음이 편하실 것 같아서...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모처럼 푹~ 쉬고 있다. 밥 해달란 말 할 염치가 없어서 이웃 부대찌개집에 갔다(돈은 아내가 냈지만). 삼겹살에 쐬주 한 잔 걸치고는 나도 집에 들어오자 마자 기절해 버렸다.
아내는 점심때 가 뵙고 오고, 나는 오후에 <친북> 원고 보낸 다음 조금 게으름을 피우다가 저녁무렵에 뵈러 갔다. 말씀이 적고 좀 비사교적이시더라는 아내 보고를 듣고 갔는데, 어머니는 내 얼굴이 보이자 "저거 내 아들이잖아!" 하고 활달한 반응을 보이신다.
곁에 가자 손을 만지며 "너 이렇게 자주 와도 되는 거냐?" 기분좋은 티를 마음껏 내시고, 잠시 후 "반야심경 외울까요?" 하니까 고개까지 끄덕이며 "그래!" 하시고, 앞부분은 함께 외우셨다.
그런데 뒷부분으로 가면서 슬그머니 입을 다무시고, 그 후로는 모시고 있는 동안 내내 과묵한 모습을 보이셨다. 우울한 기분에 빠지신 것은 아니다. 긴장된 기색으로 주변을 면밀하게 관찰하시는 것 같았다.
하루이틀 더 뵈면 분명해지겠지만, 새로운 환경을 음미하시는 것 같다. 어린아이를 낯선 자리에 데려다놓으면 장난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는 것처럼. 그런데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앞으로 이 동네에서 어떻게 노는 것이 제일 신나고 재미있을지, 마음속으로 전략을 세우고 계신 것이 아닐까?
세종너싱홈의 풍성한 정원과 세련된 건물에 비하면 누추한 환경이다. 그러나 병원 가까운 곳에 이제는 계셔야 하니까... 시내 요양원을 두어 곳 방문해 보았지만 이곳보다 나은 곳이 없다. 1년 넘어 계시던 병원과 붙어 있는 곳이니까 여기가 역시 그중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다. 잘 적응하시리라 믿는다.

'어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1) 2011.04.18
<역사앞에서>를 이대 도서관으로? "그래, 잘했다."  (6) 2011.04.16
퇴원 D-2  (1) 2011.04.13
오랜만에 반야심경을...  (0) 2011.04.09
마음이 놓입니다.  (0) 2011.03.29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