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3. 00:18

지난 2일부터 보살펴드리고 있는 박 여사를 어머니께서 무척 예뻐하신다. 박 여사도 원래 성실하고 알뜰한 성품에다가 더욱 신이 나서 잘 살펴드린다. 며칠 전부터는 오후에 휠체어에 태워 법당에 모시고 간다는데, 우리가 부탁하지 않은 일을 알아서 찾아낸 것이다. 법당 소풍이 마음 가라앉히시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병원의 간병인 제도에 문제가 있다. 요양병원이야 모든 병실에 간병인을 배치하고, 이천병원에도 몇 개 병실에는 공동간병인을 두는데, 동국대병원에서는 모든 수요자가 '1 대 1' 간병인을 고용해야 한다. 병원에서 추천하는 인력회사가 세 군데 있다.

3월 28일에 중환자실로부터 일반병실로 옮기고 바로 간병인을 고용했는데, 잘못 걸렸다. 눈속임에 익숙하고 염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를 맡겨놓고 있기가 불안했다. 바꿔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인력회사에서 보내는 사람이 다 그런 수준이라면 어쩌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요양병원으로 옮길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주치의도 잘못 걸렸다. 중환자실에 계실 때의 주치의 닥터 강은 성실한 사람은 분명하고 유능도 한 것 같았다. 참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일반병실로 옮긴 후의 닥터 리는 불성실하고 무능한 사람이었다. 어서 옮겨 모시고 싶은 내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지만, 상황과 전망을 보호자에게 알려주려는 노력을 너무 하지 않았다. 다그쳐서 설명을 들으려면 환자 파악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핑계대기에 늘 바쁘다. 어제는 퇴원 전망을 얘기해 줘야 할 날인데, 면담 신청을 해놓고 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전화를 해달라고 번호를 다시 남겨놓고 왔는데, 전화도 없었다. 오늘은 병원 당국에 주치의 변경을 공식적으로 신청할 생각을 하고 갔는데, 퇴원하셔도 된단다. 그래서 변경 신청은 그만두었다.

닥터 강 같은 사람이 주치의였다면 4월 2일 이전에 요양병원으로 옮겨 모실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사후 관리에 필요한 사항 모두 규정상의 책임을 넘어 철저하게 챙겨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치의가 최소한의 협조를 안 해주고 "갈 테면 가라" 배짱으로 나오니, 성질 내키는 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다. 4월로 접어들 무렵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간병인은 불안한 사람인데, 주치의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니, 진퇴양난이었다.

4월 1일에 간병인을 잘랐다.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환자 다루는 방식 시시콜콜 적을 것 없이 돈 문제만 얘기해도 읽는 분들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맡자마자 한 말이, 하루 6만원이지만 거동 못하는 중환자는 7만원이라는 것이었다. 몇 해 어머니 모시면서 간병에 대해서는 나도 전문가가 됐다. 간병인을 필요로 하되 거동하는 환자 보살피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고 거동 못하는 환자는 표준 환자다. 하지만 그것은 용납했다. 자기 생활 못하고 하루종일 환자 돌봐드리는 수고에 대해 7만원도 비싼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주일에 한 번 쉬는 날도 유급휴가라고 우기는 데는 두 손 들었다. 그래서 잘 가시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날짜를 갖고 또 우기는 것이었다. 월요일 시작해서 금요일까지 했으니 양쪽 끝을 다 쳐서 닷새치를 달라고. 우리 집 씀씀이가 넉넉지 않아도 어머니 필요한 일에 아낄 마음 없지만, 그런 인간에게 갖다 버릴 돈은 없다.

그 개인 욕하고 싶어서 적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문제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병원에서 추천받은 인력회사는 그 병원의 환자들을 만족시킬 책임이 있다. 고용할 사람이 적합한 간병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추천하고 추천받을 명분이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인력회사에서는 필요한 시간에 사람 대주는 것만도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배짱을 부린다. 물론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병원이 간병 업무를 제도화하지 않아서 많은 환자들의 부담을 불필요하게 늘려주는 것이다. 환자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쓰면서도 만족할 만한 간병 서비스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아내가 하룻밤 때운 뒤 2일날 나타난 것이 박 여사였다. 환자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내도 기꺼운 마음으로 열심히 도와주고 나도 말마디마다 듣기 좋게 해드렸더니 더욱 기분좋게 일을 열심히 해준다. 어머니도 기운을 더 차리면서 좋아하는 기색을 보이시니까 정말 신이 나서 잘해 드린다. 박 여사가 맡고서는 요양병원으로 옮길 일도 급하게 여겨지지 않아서 여태까지 퇴원을 미뤄 왔다. 우는 것은 내 통장뿐이다.

<아흔 개의 봄> 독자 중 내가 백병원 욕한 대목을 놓고 책에 어울리지 않는 거친 내용이라고 지적한 분이 있다. 너무 마음이 여린 분 같다. 내 글은 내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적는 것이지, 보기 좋으라고 꾸며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백병원 그 년놈들 진짜 너무했다. 물론 제도가 잘못된 결과로도 볼 수 있지만, 잘못된 제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화내지 않는다. 잘못된 제도를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해서 환자들을 더 괴롭히는 년놈들을 욕하는 것이다.

동국대병원이 백병원보다 나았던 이유 중 분명한 하나는 덜 붐빈다는 점이다. 중환자실의 닥터 강은 원래 인품도 훌륭한 분인 것 같거니와,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책임 범위를 넘어 일에 열심이고 환자에게 친절한 데는 너무 붐비지 않는다는 조건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주치의 닥터 리에게 불만스러운 생각을 하지만, 심한 피해의식을 느끼지는 않는다. 정 신뢰가 안 되면 주치의 변경 신청도 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너무 붐비지 않는다는 조건 덕분일 것 같다. 백병원과 비교할 때 동국대병원은 소질이 좋은 사람들은 그 소질을 잘 발휘할 수 있고, 소질이 덜 좋은 사람이라도 문제를 덜 일으킬 수 있는 분위기로 보인다. 환자들까지도 동료 환자들에게 더 친절한 분위기로 보인다.


 

오늘저녁 두 사람이 면회 왔다. 한 사람은 신선이고 또 한 사람은 신선 친구. 둘째 아들 보면 흥이 저절로 오르시는 것은 정말 못 말린다. 병원비 보태줄 생각은 없는 모양인데, 몸빵이라도 시켜야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