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 조회수가 안 올라가니 낚시질이라도 할까요?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걸로 이해해 주세요. 중딩 시절까지는 연대기 식으로 더듬어 왔는데, 고딩 이후로는 계속 그렇게 하기가 어렵네요. 기억나는 것이 너무 많으니 어차피 뽑아서 적어야 되고... 또 마주쳤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는 게 기억을 특정한 방향으로 굳혀버리는 문제가 있겠어요. 아직 모든 걸 생각대로 털어놓을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 삶을 빚어오는 데 큰 작용을 한 사건이나 주제들을 정리할 수 있는 대로 올려볼까 합니다. 이 글쓰기의 목적은 벗는 데 있는 겁니다. 그런데 백주 대낮에 곱지도 않은 몸매로 홀랑 벗고 한길에 뛰어나가서야 좋은 꼴이 아니겠죠.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더 적합한 장소를 찾아야죠. 우선은 옷자락이 바람에 날려 속살이 살짝살짝 드러나는 정도로 노출 욕구를 달래겠습니다.

어느 첫 번째나 마찬가지로 첫 키스가 주는 자극과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저는 상당히 큰 자극을 당시에 받았고, 그 의미를 되새김할 기회도 많이 가졌습니다. 이제 그 얘기를 풀겠습니다.

 

-----------------------------------------

 

대학 3학년 때니까 나는 21살, 연이는 19살이었다. 연이는 우리 집 '식모방'에 머물며 식모 노릇도 조금 해주고 있었지만 식모는 아니었다. 어쩌다 그리 된 것이었고, 얼마나 오래 그렇게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는 형편이었다.

원래 연이는 마당 끝의 안채에 살았었다. 신안군의 어느 섬에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와서 안채에 세들어 있던 자기 이모님에게 얹혀 지내며 요리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집이 갑자기 지방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형들이 유학을 떠나고, 오랫동안 살림을 살아주던 나영이 누나도 결혼해서 나가는 바람에 집안이 썰렁하던 참이었다. 연이는 방을 쓰는 대신 아침저녁 밥상을 차려주며 지내기로 했다.

1년 남짓 안채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당연히 연이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가냘픈 몸매에 얼굴도 곱상하고 행동도 얌전한 연이에게 여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남녀관계에 우리 또래치고도 영 자신이 없는 머스마였다. 그리고 지난 여름 J와의 괴로웠던 하룻밤을 잊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J는 초딩 때부터 선망해 온 내 마음속의 선녀였다. 대학 선배로 만난 그 오빠 M과 친하게 되어 그 집에 열심히 놀러다닌 데도 J에 대한 흑심이 작용한 것이다. M이 J의 친구들과 함께 해수욕장에 가자고 할 때 나는 뛸듯이 기뻤다. 그날 밤 텐트에서... M은 안전을 위해 남자 둘이 양쪽 바깥에 눕고 여자들이 가운데 눕자고 했다. 그리고 J가 내 곁에 누웠다.

1초도 눈을 붙이지 못한 하룻밤이었다. M과 J의 뜻을 알고 고마워하면서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원래부터 자신 없던 남녀관계에 더욱 자신감을 잃었다. 그 후 어두움 속에 누워 있으려면 시도 때도 없이 텐트 안의 그 밤이 떠올라 욕망과 부끄러움을 되살리며 진저리를 치곤 했다.

만리포의 그 밤이 지난 몇 달 후 초겨울부터 연이가 한 지붕 밑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M은 유학을 떠나고 나는 두 번 J를 찾아가 바보같은 소리만 하다가 돌아오고는 발을 끊고 있었다. 그런 차에 연이를 아침저녁으로 마주치게 되면서 처음에는 '여자'로만 보이던 것이 차츰 '연이'로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려웠다. 여자로 의식하든 연이로 의식하든 내 눈빛에 어떤 '바램'이라도 나타날까봐 조심스러웠다.

국사 연구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때였다.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가 막 갈라졌지만 나는 사학과 마지막 학번이어서 연구실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사상사로 졸업논문을 썼으면 하는 생각으로 국사 연구실에 자리를 잡고 열쇠도 하나 얻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15분 거리였기 때문에 별 일 없는 날은 저녁 후에도 연구실에 가서 지냈다.

어느 날 저녁 후, 초겨울이라 벌써 캄캄해진 시간에 대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은행나무 곁에서 나직이 "오빠!"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연이가 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 "응, 연이냐?" 하는데 아무 대꾸가 없었다. 뜻밖의 상황에서 말을 걸어오는 데 나는 벌써 긴장하고 있었다. 말없이 내 눈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연이에게 다가설 때 내 머리속은 바쁘게 돌아가면서 한편으로는 멍~해지고 있었다.

그 후 몇 주일 동안 저녁 후의 키스는 우리 둘의 일과가 되었다. 말은 별로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몸짓을 통해 연이를 아끼고 좋아하는 내 마음을 제법 잘 표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몇 번은 욕정에 강하게 휩쓸리기도 했다. 한 번은 낮에 둘이서만 집에 있을 때. 또 한 번은 대문간의 키스만으로 아쉬워 광에 들어가 서로의 몸을 더듬었을 때...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었다면 뭔가 저질렀을 것이다.

떠나기 전날에야 떠난다는 사실을 연이는 내게 말했다. 요리 공부는 할 만큼 했고, 고향에 맞춤한 일자리가 생겼다고. 그리고는 23년 동안 연이와 나는 소식 없이 지냈다.

 

제주도에서 혼자 지내고 있을 때 연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피차 헤어질 때보다 나이가 곱절이 되어 있을 때였다.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서울 가는 길에 연락하니 하룻밤을 자기한테 맡겨달라고 했다. 그러마고 했다.

오후에 도착해 공항으로 마중나온 연이와 바로 호텔에 들었다. 처음으로 침대를 함께 했지만 큰 흥분은 없었다.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였다. 내가 할 얘기보다 연이에게 들을 얘기가 훨씬 많았다.

연이는 옛날 일에 대해 위악적인 태도를 취했다. 자기는 서울 오기 전부터 남자를 알았다고. 오빠가 좋기도 했지만 자기가 오빠를 꼬신 것은 오빠를 내것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고. 그런데 마주쳐 보니 오빠가 사람 구실 하려면 길이 너무 먼 것 같아서 포기했다고. 고향에 간다고 우리 집을 떠난 후 서울에 있으면서 회사를 다니다가 사장님이 꼬시기 좋은 사람이기에 꼬셔서 결혼했다고. 덕분에 고등학교도 못 나온 촌년이 제법 호강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연이의 얘기에 과장은 있을지언정 사실과 어긋나는 것은 아닐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웃으며 들어줄 수 있었다. 연이는 내 소식을 꾸준히 더듬어 왔는지, 아니면 뒷조사라도 했는지, 그때까지 내가 겪어온 행적을 대충 알고 있었다. 결혼했다가 이혼하면서 겪은 어려움까지도 얼마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얘기를 하다가 내가 말했다. 그 때 연이 꼬심에 넘어갔다면 훨씬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거 같은데, 그 때 내가 너무 못났었어, 하고.

그러자 연이가 음흉한 미소를 날리며 (진짜 음흉해 보였는데, 기분나쁘게 음흉한 건 아니었다.) 하는 말이, 난 계산이 빠른 년이예요, 지금 오빠 찾은 것도 다 속셈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데, 가만 생각하니 존경심도 들지 않고 애틋한 마음도 들지 않는 사람을 이용할 생각만으로 꼬셔서 여태 살았는데, 지금까지 정조차 제대로 쌓이지 못한 바에야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이 든다고. 오빠에게는 존경심도 들고 애틋한 마음도 드는 터인지라 오빠랑 지금부터라도 살아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연이의 제안에 진심으로 감사해 하며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연이를 집에 돌려보내고 호텔방에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음흉하건 어쨌건 연이에게 믿음이 갔다. 의도와 능력이 모두 미더웠다. 연이에게 남은 인생을 맡기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신이 서지 않았다. 연이가 가정을 버리고 취할 만한 행복을 내가 마련해 줄 수 있을지. 자기 가정이 '보호할 가치가 없는' 가정인 것처럼 연이는 얘기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보호할 가치가 없는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었다.

전화로 몇 번 얘기하다가 답답했는지, 연이가 한 번 제주도로 찾아왔다. 그리고 연인보다 남매 같은 사이로 헤어졌다. 얼마 후 전화하니 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연인 아닌 오빠는 이용할 데가 없어서 잘라버린 모양이다.

 

오랫만에 연이와의 첫 키스를 떠올려 보지만, 정말 고마운 키스였다. 계산에 따라 꼬시기 위한 것이었다고 자기는 얘기했지만, 그리고 그 설명을 나도 대충 믿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텐트 안에서 내 옆에 온 밤을 누웠으면서도 내 행동을 기다리기만 하던 J는 나랑 별 차이 없이 못난 아이였다. 연이는 자기 책임 아래 행동을 취했고, 덕분에 나는 전과 다른 자신감을 얼마간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괴롭히고 만 일이 적지 않아 회한으로 남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더 나쁜 짓을 할 여지도 많았다. 그 시점에서 연이에게 받은 자극은 조금이라도 잘못을 줄이는 데 확실한 도움이 되었다. 연이의 '일편흑심'에 감사해 마지 않는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