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 중의 미군 제24군단은 방금 북위 38도 이남 각지에 진주중인데 지난 12日과 15日에 총독과 총독부 각 수뇌부를 전부 해임시켰다.

이에 대하여 미군보도책임자 헤이워드중좌는 15日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今 15日附 미군최고지휘관 하지중장은 지난 12日 前總督 阿部信行과 前警察局長 西廣忠男 해임에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총독부내 각 국장을 해임시켰다. 政務總監 遠藤柳作, 財務局長 永田直昌, 鑛工局長 鹽田正洪, 農商局長 白石光治郞, 法務局長 早田福藏, 學務局長 武永憲樹, 遞信局長 伊藤泰吉, 交通局長 小林泰一”

매일신보 1945년 09월 15일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9일에 항복을 받고 군정을 선포한 뒤 12일에 총독과 경찰국장을 해임하고 15일에 국장급 이상을 해임했다. 해임된 간부들은 미군정의 ‘고문’으로 위촉되었고, 과장급 아래의 일본인 실무자들은 아직도 업무를 보고 있었다. 미군정은 일본인 축출을 서두를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었다.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이니까.


서방 연합국들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진주하면서도 ‘점령’이 아니라 ‘해방’을 표방했다. 소련이 동유럽 국가들에 진주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에 대해서도 그랬다. ‘해방’이라면 진주하는 국가나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 되기 때문에 주민들의 협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한에서 미군은 ‘점령’(occupying force)을 표방했다. 일본 및 독일 진주에서와 같은 자세였다. 주민을 적대시하고 협조를 기대하지 않는 자세였다.


표현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점령의 자세였다. 남한 점령에 1개 군단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가장 가까운 곳에 주둔 중이던 군단을 보냈고, 그 지휘관에게 점령군 사령관을 맡긴 것이다. 군단장 하지 중장은 13일 올린 기자회견 기사에 보이는 것처럼 자신이 외교관 아닌 군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군인과 외교관 사이에 정치가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정치 감각을 별로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하지에게 정치적 목적의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식 민주주의로 한국을 이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순진하다면 순진하고 독선적이라면 독선적인 이 목적을 실현할 효과적인 방법은 별로 보여주지 않았다. 목표를 내거는 데 만족하고 실제로는 점령군의 통제력 유지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의 공산주의 혐오가 군정 노선에 작용했다고 본 연구자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념이 아니라 취향 문제일 뿐이었다. 미국제일주의가 하지에게는 이념이라면 이념이었다. 그가 정말 반공 ‘이념’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공산주의 세력 확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그토록 꾸준히 군정을 이끌 수가 없었을 것이다.


11일의 기자회견에서 하지는 9일자 맥아더 포고문을 군정 기본노선으로 제시했다. 남한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하지의 신분은 ‘최고지휘관(Supreme Commander)’ 맥아더의 대리인이었다. 맥아더의 3개 포고문 중 경제-통화 문제를 다룬 제3호를 뺀 두 개를 옮겨놓는다.


◊ 포고 제1호

조선주민에게 포고함

태평양미국육군 최고지휘관으로서 左記와 如히 포고함.

일본국 천황과 정부와 대본영을 대표하여서 서명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 휘하의 戰捷軍은 本日 북위38도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함.

오랜 동안 조선인의 노예화된 사실과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킬 결정을 고려한 결과 조선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 조항이행과 조선인의 인권 及 종교상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음을 조선인은 인식할 줄로 확신하고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 원조와 협력을 요구함.

본관은 본관에게 부여된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의 권한을 가지고 이로부터 조선 북위 38도 이남의 지역과 동지의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설립함에 따라서 점령에 관한 조건을 左記와 如히 포고함.

第1條 조선북위 38도 이남의 지역과 동 주민에 대한 모든 행정권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서 실행함.

第2條 정부 공공단체 또는 기타의 명예직원과 고용과 또는 공익사업 공중위생을 포함한 공공사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고용인은 有給無給을 불문하고 또 기타 제반 중요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는 別命있을 때까지 종래의 직무에 종사하고 또한 모든 기록과 재산의 보관에 任할사.

第3條 주민은 본관 及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포한 명령에 卽速히 복종할 사. 점령군에 대하여 반항행동을 하거나 또는 질서 보안을 교란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함.

第4條 주민의 소유권은 此를 존중함. 주민은 본관의 別命이 있을 때까지 일상의 업무에 종사할 사.

第5條 군정기간 中 영어를 가지고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公語로 함.

영어와 조선어 또는 일본어간에 해석 및 정의가 불명 또는 不同이 生한 때는 영어를 기본으로 함.

第6條 이후 공포하게 되는 포고 법령 규약 고시 지시 及 조례는 본관 또는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포하여 주민이 이행하여야 될 사항을 明記함.

右포고함

1945年 9月 7日

於 橫濱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

미국육군대장 더글러스 맥아더


◊ 포고 제2호

범죄 또는 법규위반

조선주민에게 포고함.

본관은 本官 지휘 하에 有한 점령군의 보전을 도모하고 점령지역의 공중치안질서의 안전을 기하기 위하여 태평양미국육군 최고지휘관으로서 左記와 如히 포고함.

항복문서의 조항 또는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의 권한 하에 발한 포고 명령 지시를 범한 자 미국인과 기타 연합국인의 인명 또는 소유물 또는 보안을 해한 자 공중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 정당한 행정을 방해하는 자 또는 연합군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행위를 하는 자는 점령군 군율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동회의의 결정하는 대로 사형 또는 他 형벌에 처함.

1945年 9月 7日

於 橫濱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

미국육군대장 더글러스 맥아더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제1호 포고문 첫 줄에서 미군이 조선의 ‘점령군’임을 분명히 했고, 그 밖의 내용도 점령군의 통치에 순응하라는 것이며, 제2호 포고문에서는 ‘사형’까지 들먹이며 복종을 강요했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미군이 조선을 해방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대신해서 통치하러 들어온 것이었다. 9월 9일에 소개한 소련군 사령관의 포고문과는 개념이 다른 것이었다.


남한을 ‘통치’하러 온 것이라면 미군이 한국인보다 일본인을 더 가까이 느끼고 믿은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피터지게 싸우던 것은 지난 일이고, 조선 통치의 후임자로서 인수인계를 받는 입장 아닌가. 통치의 노하우를 넘겨주는 것이 일본인이었고, 조선인의 일본 통치에 대한 반항적 자세는 자기네 통치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는 것이었다.


‘통치’라도 수준 높은 통치라면 피통치자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따른다. 일본의 통치도 무단통치보다는 ‘문화정책’이 수준 높은 것이었다. 그런데 맥아더의 조선 통치 개념은 일본의 무단통치 수준이었고, 하지 사령부에는 이 개념의 현실 적용 방법을 향상시킬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북한에서 소련군은 조선인들에게 행정권과 경찰권을 열심히 넘겨주고 있었다. 설령 속으로는 통제와 조종을 하더라도 겉으로는 주민들의 역할을 키워주고 있었다. 그런데 남한에서 미군은 주민들에게 권리를 주지 않고 일본인에게서 통치자의 역할만 넘겨받고 있었다.


그러니 일본인의 도움이 요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치자의 입장에 도전할 염려가 없는 일본인에게 최대한 도움을 받고, 일본인들이 오랜 노력으로 만들어놓은 통치기구를 소중하게 물려받아야 했다. 일본인들이 부득이 귀국한 뒤에는 일본 통치를 돕던 한국인들의 도움을 물려받았다. 일본 통치체제를 온존하는 것은 ‘점령군’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었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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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4 13:37

    일본을 점령하면서는 그래도, 그래도 이와 같지는 않턴데 말입니다.
    뭐, 속내야 거기서 거기라지만...아니, 속내도 실은 꼭 같지는 않았겠죠..
    언제고 총알받이로 내다버릴 수 있는 장기 말과 그래도 끝까지 보루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장기말은
    전략상 다루는 방법이 달라질 터이니까요.

    필요에 의해서 죤 다워의 '패배를 껴안고', 오구마 에이지'<민주>와 <애국>'을 근래 다시 읽고 있었습니다.
    전자는 한국어로 번역이 나왔고, 후자는 번역은 다 된 모양인데 아직 출간이 안되어 있습니다.
    혹 참고 하실 일이 있을 지 모르겠네요..

    특히나 오구마씨의 저서를 읽으면서 같은 시기 양국의 지식인층의 고뇌에 있어 양, 질 모두 너무 차이가 나지 않나...싶은 자괴감이 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긴, 피식민국과 식민국의 지식인의 여건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가혹하긴 합니다만..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점점더 슬퍼집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사안을 맞닥뜨릴 때 마다 일본강점 36년의 세월이 너무도 뼈아프다는 생각에 말입니다.

    • 2010.09.14 17:46

      <패배를 껴안고> 바로 주문 넣었습니다. 좋은 책 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작업을 끌고 갈 최소한의 함량 확보는 마음을 놓게 되었는데, 얼마나 좋은 내용을 더 담을 수 있을지는 한도가 없어 보입니다. 의견 주시는 것도, 자료를 권해주시는 것도, 모두 더 좋은 내용을 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지식인층의 고뇌 수준을 놓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피지배국 지식인으로서 민족 문제에 의식이 어떤 식으로든 얽매이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을 감안하고 살피면 폭과 깊이에 차이가 있더라도 음미할 가치가 충분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번 작업에서 노력을 기울일 주제의 하나입니다.

  2. 2010.09.14 18:36

    <패배를 껴안고>는 8.9년 전 일본에서 출간되자 마자 읽었던 책입니다. 미 점령기의 일본을 파악하는데 무척 많은 도움을 받았더랬습니다. 애초에 선생님의 계획을 읽고 떠올랐던 것도 이 책이었어요. 어쩌다 권해드리는 것이 조금 늦었네요.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하긴, 한국어 번역이 있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된 것도 소개가 늦어진 이유구요. 오구마 에이지 씨의 저서는 패전 직전부터 60년대에 이르기 까지, 지식인들의 <내셔널리즘>을 둘러싼 언설의 변천을 연구한 서적입니다. 한국어역서가 출간되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자료정리의 성격이 강합니다만 자료에 대한 장악력이 뛰어납니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패전 직전부터 미 점령기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번역서가 어떻게 나올지..

    자괴감..^^ 네.^^
    저의 공부 부족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이리저리 많이 읽었지만 그에 비해 한국 내의 사정에 대해서는 너무 공부를 못했어요.
    논문 마무리되는 대로, 선생님의 글을 출발점 삼아 공부를 새로 해야겠습니다.^^

    • 2010.09.14 20:18

      권해 주시는 것, 전혀 늦지 않았습니다. 작업의 뼈대에 필요한 자료 섭렵에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내년 초 찬탁-반탁 충돌 때까지는 그릇을 제대로 만드는 데 노력을 치중하고, 그 뒤로는 그릇에 담을 것을 능동적으로 꾸려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자괴감에 대해서는... 필자로서 저는 꼭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괴감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름대로 새기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보여드리는 것이 제 할일이죠.

  3. 2010.09.15 10:41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 1호 아닌가요? 아직까지 말입니다. 필리핀 극민들이 화를 낼까요?

  4. 2021.07.05 10:14

    뉴스 보다가 생각나서 들렀습니다
    복습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