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에 가 지내면서, 그리고 연변 출신 아내와 지내면서 연변 말 중에 재미있게 생각되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좀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일삼아 매달릴 엄두가 나지 않았죠. 그런데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있다 보니 생각나는 것을 수시로 적어놓으면 읽는 분들과 의견도 주고받을 수 있고, 모아서 전체적으로 바라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고 수시로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연변에서 지내기 시작할 때 매우 당혹스럽게 느껴진 말이 "괜찮다"는 뜻을 "일없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날 저녁에 만났던 사람에게 아침에 전화해 전날 내 태도에 스스로 아쉽게 느껴진 점을 인사치레로 사과할 때 "일없수다." 하는 반응에 순간적으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죠. 나랑의 관계에 대해 아무 의미도 두지 않는다는 분노의 표시처럼 얼핏 들려서.
중국어의 "메이스 沒事"를 직역해서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없다"는 말이 원래 북부 지역의 방언으로 쓰여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석연하게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경우라도 북부 지역의 그런 방언이 중국과의 접촉을 통해 형성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연변주 2백만 인구 중 조선족이 절반 조금 못 된다고 합니다. 서쪽의 돈화-안도 지역에는 한족이 압도적으로 많고 두만강, 해란강 유역에는 조선족이 많지요. 십년 전까지만 해도 한어를 모르고 조선어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의 비율이 꽤 됐는데, 한어 습득률과 수준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답니다.
아무튼 조선어와 한어를 아울러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한어가 조선어에 포용되는 일도 꽤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명사에는 수없이 많죠. 우리가 서양말 출신 외래어를 쓰는 것처럼 써야 하니까. 그런 말은 대개 한어 발음을 씁니다. 텔레비전을 "전시 電視"보다는 "덴스"로, 컴퓨터를 "전뇌 電腦"보다는 "덴나오"로 부르는 것이 제가 듣기에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형용사나 동사는 현대문명 때문에 새로 늘어나는 것이 명사처럼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외래어 형용사나 동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인데, 오랫동안 한어와 밀착된 생활을 해 온 사회에서 형용사나 동사에 영향받은 것이 있다면 명사와 다른 차원에서살펴볼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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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