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이 책 검토를 부탁할 때까지 나는 조너선 스펜스의 부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저자가 그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계약을 추진해 보라고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의견을 말해줬다. 천하의 스펜스 교수가 읽을 만한 책 쓸 줄 모르는 사람과 같이 살겠는가? 읽을 만하지 못한 책을 아내가 내도록 놓아두겠는가?

나는 스펜스를 현존하는 중국사 연구자 가운데 단연 가장 중요한 인물로 본다. 게다가 문필가로서도 뛰어난 사람이다. 20여 년 전부터 그는 내 마음속의 스승이었다.

안핑 친(출생명 金安平)의 책은 처음 읽은 것인데, 이 책에서도 나는 스펜스의 스타일을 느꼈다. 청대 고증학 연구자인 안핑 친이 이런 거시적 관점의 연구를 구상하는 데는 스펜스의 영향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나와 동갑에다가 성도 같은 안핑 친에게 같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학우(學友)로서의 유대감을 느낀다.


공자를 모르는 한국사람은 없다. 그런데 공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구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관념이 아닌 한 인간으로 파악한다는 뜻이다. "공자", 하면 봉건, 충효, 전통 등 강렬하게 떠오르는 관념들이 있고, 그 관념들에 파묻혀 인간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만이 아니라 유교를 숭상하던 전통시대에도 그에 대한 구체적 이해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추종자들에게 너무 거룩한 존재여서 비판적 고찰의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공자의 가르침이 제 몫을 못한 것은 가르침의 내용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가르침을 받드는 후세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이 책은 “인간 공자”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역자 같은 동양학 다른 분야 전공자의 초보적 이해 수준으로도 저자의 정확성에 의문을 품을 대목이 더러 있다. 완벽한 권위를 가진 책이 아니다. 그러나 나무 대신 숲을 바라보는 그 넓은 시각에서는 유가사상 전공자들도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저자는 공자에게서 권위의 옷을 홀랑 벗겼다. 전통시대의 모든 학인들이 공자 사상 연구에 거의 모든 노력을 쏟으면서 그려내던 공자의 모습보다 더 명쾌한 모습을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전통시대에 공자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공자의 절대적 권위는 문법의 기본이었다. 현대인은 그 문법에 익숙하지 않다. 저자는 현대인이 익숙한 문법으로 공자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공자가 앞으로도 이 세상에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절감했다. 20세기 들어 공자는 ‘아시아의 후진성’의 가장 큰 책임자로 낙인 찍혔다. 공자의 가르침을 박살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동아시아 여러 사회를 휩쓸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한 시대의 풍조일 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자의 가르침은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라는 시대가 ‘무한 성장’을 꿈꾸는, 균형과 조화를 생각하지 않는 시대였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런 시대에 공자의 가르침이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적대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 근대인은 무한 성장의 꿈속에 살아올 수 있었던가? 급격한 기술 발달에 따라 자원 공급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는 ‘근대의 꿈’에서 깨어나고 있다. 꿈속에서 인간으로부터 떼어놓았던 자연이 결국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소홀히 했던 균형과 조화를 열심히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고, 그 생각을 위한 교재를 유가사상에서 찾을 때가 되었다.

번역 작업을 하던 중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며 책의 내용이 절실하게 겹쳐져 생각나는 대목들이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하는 <페리스코프>에 그런 대목을 내놓고 관련된 생각을 붙여 적은 글을 몇 차례 올렸다. 독자들 반응이 예상보다도 좋았다. 공자의 가르침을 현대인이 적절하게 받아들이게 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번역서의 성격이 원서의 성격과 똑같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영어권에서 이 책은 학술서에 가까운 고급 교양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보다 넓은 범위 독자들을 위한 대중 교양서에 접근시킬 수 있었다. 공자와 유가사상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지식과 이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획-편집을 맡은 조성웅 선생의 판단에 많이 의지했다. 번역서로서는 특이한 경우다.

원전의 인용 내용 표시방법이 조 선생과 함께 제일 고심한 문제다. 원서에는 인용 범위가 미주에 표시되어 있을 뿐, 인용 내용은 번역문만 주어져 있다. 그런데 저자의 원전 번역, 특히 미묘한 표현이 많은 <논어> 번역에는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 꽤 있었다. 한국 독자들 중에는 원문 검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서 <논어>의 인용만은 각주로 원문을 붙여놓기로 했다. 다른 원전의 인용문도 처음에는 모두 준비했지만, 미묘한 차이가 <논어>처럼 크게 문제되는 것이 별로 없었다.

원전 해석의 정확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연세대 철학과 이광호 교수의 감수를 받았다. 이 교수의 해박한 학식만이 아니라 40년간의 교분을 통해 닦아놓은 ‘소통의 길’ 덕분에 미묘한 문제들에 관한 효과적인 판단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감수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정확성 문제는 근본적으로 내 책임이다. 이 교수가 제기해 준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책에 분명히 드러낼 범위는 내가 정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을 내게 맡기면서도 아낌없는 도움을 준 이 교수의 너그러움에 각별히 감사한다.

원전 해석에서 저자와 역자의 의견이 다를 때 세 가지 처리방법을 썼다. 대부분의 경우, 저자의 해석이 나와 다르더라도 말이 아주 안 되는 것이 아니면 그대로 따랐다. 몇 군데 분명한 착오로 보이는 것은 이 교수의 확인을 받아 내 해석으로 바꿨다. 한두 군데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내용이라도 본문의 맥락에 꼼짝없이 걸려 있는 부분에 저자의 해석을 그대로 두면서 표시를 해놓았다. 역자로서 대단히 건방진 짓이지만 이 교수를 믿고 저질렀다.

십여 권 번역서를 내 본 중에 이 책처럼 오래 붙잡고 있었던 적이 없다. 원래 번역이란 자기 글쓰기보다는 책임감도 만족감도 덜 느끼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전혀 덜하지 않았다. 조성웅 선생과 그 등 뒤에 있는 돌베개 여러 분의 참을성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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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