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영 대기자의 VIP 인터뷰(2)] 신영복 선생 글 영어로 번역하는 역사학자 김기협 

 

“말 한마디도 삼가는 분인데 하물며 글로 남긴 저서야” 

사진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경기고·서울대 수석… 출세의 길 대신 ‘사학자’ 선택
변화를 최대한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혁명 피할 수 있어

 

역사학자 김기협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 진짜 중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자 김기협은 우리에게 기인(奇人)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기인은 “성격이나 말·행동 따위가 보통 사람과 다른 별난 사람”이다. 그가 유럽인이나 미국이었다면 기인 소리를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기인 타이틀을 얻기 쉬운 사회다. 사회 성원들이 모두 ‘보통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김기협에겐 경기고 이과 수석 졸업, 서울대 문리대 수석 입학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그는 예컨대 판·검사와 같은 ‘보통’ 출세의 길을 가지 않고 사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정체성은 보수주의자, 민족주의자다. 또 중도파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 사회, 진짜 중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김기협의 역작은 [해방일기]다. 일기체로 서술한 역사책이다. 다음과 같이 구성됐다.

1권(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 1945년 8~10월, 일본의 항복), 2권(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 1945년 11월~1946년 1월, 신탁통치안), 3권(소련군의 해방과 미군의 해방: 1946년 2~4월, 미소공위 개막), 4권(반공의 포로가 된 이남의 해방: 1946년 5월~8월, 좌익 탄압), 5권(길 잃은 해방이 가져온 비극: 1946년 9~12월, ‘대구폭동’), 6권(냉전에 파묻힌 조선 해방: 1947년 1~4월, 이승만의 승리), 7권(깨어진 해방의 약속: 1947년 5~8월, 미소공위 결렬), 8권 (의미를 잃어버린 해방: 1947년 9~12월, 김구의 몰락), 9권(해방된 자, 누구였던가: 1948년 1~4월, 친일파의 득세), 10권(해방을 끝장낸 분단 건국: 1948년 5~8월, 대한민국 탄생).

약 2년 전부터 경제학자 신영복(1941~2016) 선생의 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해왔다. 대략 단행본 분량이 됐다. 그는 왜 신영복의 글에 꽂혔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를 월간중앙 대회의실에서 만났다.

저술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역시 노력을 많이 들인 작업인 [해방일기]다.”

[해방일기]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메시지라기보다 제안이 있다. 우리의 역사 시각을 좀 더 넓히자는 제안이다. 해방 직후의 역사를 대개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해방 후 3년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시야에 넣자는 것이다.”

일반인의 관심은 아무래도 김구 선생, 이승만 박사에 집중됐다. 김일성·박헌영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다. 하지만, [해방일기]는 중도주의자나 여운형·김두봉·김규식·안재홍·홍명희 등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좌우 대립을 전제로 해서 볼 때에는, 중도적인 입장이라고 부를 것이다. 저는 그것을 민족주의 입장이라고 본다. 극좌도 극우도 민족주의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민족주의 기준으로 보면 극좌와 극우는 나라의 진로를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 굳이 ‘중도적인 입장’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그 입장은 ‘극좌나 극우로 쏠리지 말고 민족주의를 기본 지침으로 삼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중도주의자들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국제정치 구조 때문인가, 아니면 중도주의자들의 무능력 때문인가?

“어떤 상황에서건 내인론(內因論)과 외인론(外因論)은 엇갈리게 마련이다. 저는 그 당시 상황에서는, 내적인 원인이 상황을 결정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외적인 압력이 너무 강한 상황이었다고 본다.”

“사익 위해 친일·친미하는 게 지배적 풍조 됐다”

역사학자 김기협의 저서 [해방일기]의 표지.

 

교수님의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수준이 꽤 높다. 교수님 책을 좋아하는 독자는 주로 어떤 스타일인가?

“애독자들은 제 글을 참 많이 좋아한다. 그들은 참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글이 왜 안 팔리나’하는 의문을 품고 있다(웃음). 저도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뭐랄까. 글 읽기 풍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키우겠다’, ‘지혜를 얻겠다’는 입장이 있다. 글 읽기로 ‘힘을 얻겠다’는 입장이 있다. 양쪽 다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그런데 ‘힘을 얻겠다’ 쪽으로 너무 쏠리고 있다. 누군가를 욕하고, 누군가를 편드는 그런 정파적인 글은, 안티(anti-)도 많지만 프로(pro-)도 많아서 책이 잘 풀린다. 저는 지혜를 얻고자 하는 독자를 상대로 쓴다.”

지혜 추구 vs 힘 추구 글읽기는 어떤 차이를 낳는가?

“지혜를 위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여태까지 생각 안 했던 새로운 생각을 구경하기 위해서 또는 여태까지 무게를 안 뒀던 생각을 좀 새로운 측면에서 해보기 위해서 읽는다. 힘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을 아예 안 하려고 한다.”

좌파·우파는 각기 선호하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이 있다. 특히 좌파는 친일파 문제를 중시하는데.

“양면성이 있다고 본다. 일단 친일파 척결 실패는 일회성 문제로 끝난 게 아니고 그 뒤에 연쇄 반응을 일으켜 왔다. 저는 민족 이외에 그 어떤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 그런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어느 단계에서 어느 선까지는 민족을 기준으로 한차례 정리가 되는 게 다른 문제들에 제대로 임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못한 게 문제다. 민족국가에 대해 충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민족국가에 대해서만 불충했을까. 친일파 청산 실패로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그런 입장이 사회를 지배하지 못하게 됐다. 대개 해방공간에서 친일파가 친미파로 변신한다. 친일을 하든 친미를 하든 우리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친일을 하거나 친미를 하는 것은 괜찮다. 일제시대(일제강점기)에서 대한민국 시대까지 사익을 위해 친일·친미하는 게 사회의 지배적인 풍조가 됐다.”

자생적 공산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자생적 친일파가 생긴 듯하다. 일제강점기에 많이 발전했으며 대부분 사람들은 나날이 살아가는 게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일제시대가 완전히 암흑시대라고 할 수는 없다. 사회 발전의 기본적인 동력은 일제시대에도 계속해서 작용을 했다. 그 작용을 일제의 통치가 도와준 면도 없지 않다. 적어도 처음에는 ‘이제는 법치가 된다’는 기대가 있었다. 일본이 들어오면서 근대적인 사법 체계가 도입됐다. 말도 안 되는 그런 상황을 일상적으로 보던 백성들이 보기에 뭔가 좀 엄정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까 반가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질적인 면에서도 철도와 같은 변화들에 대해 ‘과연 대한제국이 계속됐다면 저만큼 원활하게 됐을까’하는, 전문가 입장에서도 의문을 품을 만한 그런 것들이 있었다.”

뉴라이트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잊혀졌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제국주의의 ‘공’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뉴라이트의 내부에서도 동기나 행태의 면에서 상당한 편차가 있다.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이론인 식민지근대화론은 ‘전혀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할 것은 아니지만, ‘과연 식민지 상태의 근대화가 근대화로서 적절한 방향성을 가진 거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즉 근대화라는 것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분화시키는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인데 일제의 근대화가 하부구조를 만들기 위한 근대화였다면, 그런 근대화는 우리 민족사회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했다. 우리 민족사회의 입장에서 도저히 반길 수 없는, 그런 속성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번역은 깊이 읽기의 한 가지 수단”

1951년 봄에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아버지 고 김성칠 전 서울대 교수, 둘째 형 기목, 큰형 기봉.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가 기협. / 사진:김기협

 

번역도 많이 하셨는데.

“제가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사람이기 때문에, 번역이라는 행위가 어떤 문명교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늘 제게 중요한 관심사다.”

인생의 ‘퇴각로’라는 말을 쓰시는데, 어떤 뜻인가? 소위 인생 100세 시대이니 ‘퇴각로’보다는 제2의 인생의 ‘진입로’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퇴각’이라는 말을 보통, ‘진격’보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람들이 보통 받아들인다. 저는 퇴각할 때가 됐으면 퇴각을 해야지, 제대로 퇴각 안 하고 있다가는 패망하는 길이라고 본다. 지금 제 나이가 70세다. 앞으로 활동할 시간이나 근력이 다 제한돼 있는데 지금 뭐 진격하겠다고 나선다면 패망하기 딱 좋은 길이다. 전에 욕심을 가졌던 것도 없애거나 줄이면서 정말 인생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그런 자세를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퇴각을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의 글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느낀 것, 깨달은 것이 있다면?

“제가 여태까지 많은 글을 읽어 왔다. 아까 지혜를 얻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한 글 읽기에 대해 독자의 자세로서 얘기했지만, 저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쓸모 있는 글 읽기를 해야 한다는 집착이 있었다. 제가 신영복 선생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그분의 글이 나오면서부터니까 30여 년 됐다. 그런데 좋아하면서도 일삼아 읽을 생각은 안 했다. 제가 필요로 하는 글 읽기 방향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 벗어났는가?

“신영복 선생의 글은 합리적인 근거를 챙겨주질 않고 직관적인 소견을 보여주는 식의 서술이 많다. 이거는 취미 생활로 읽을 글이지 직업적으로 읽을 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이 안 읽었다. 그런데 어떤 개인적인 계기를 통해서 ‘아! 이분이 정말, 말을 함부로 하는 분이 아니구나’하는 것을 절감한 일이 있었다. ‘말 한마디도 저렇게 삼가는 분이라면, 글로 남긴 것도 허튼 소리가 없을 거다. 제가 바로 읽어내지 못한 글에도 뭔가 뜻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 선생의 글에 대해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뜻까지 찾아내는 적극적인 자세의 글 읽기를 시작하게 됐다. 번역은 글 읽기의 한 가지 수단이다. 그분이 어떤 생각을 글로 자기 식으로 표현했는데, 저는 또 다른 언어인 영어로 똑같은 생각을 표현하려니까… ‘이분이 담으려는 뜻이 뭐지?’를 물으며 더 집중하기 쉬웠다. 번역은 깊이 읽기의 수단이다.”

역사의 전개에 대해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우신지.

“저는 비관과 낙관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 사회라는 게 다 나름대로 결함과 문제점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서 어울려서 빚어내는 건데…. 유토피아가 온다는 생각을 저는 하지 않는다. 문명 초기부터 역사의 진행이 좀 원만하게 펼쳐진 동네도 있었고, 험하게 시끄러웠던 동네도 있었다. 그냥 제가 속한 사회가 너무 험하게 되지 않도록 저도 그냥 노력을 할 뿐이다.”

“중도적 입장은 늘 기회주의라는 지탄 받아”

소위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한다. 창의성이 절실한 시대다. 어쩌면 사물을 좀 삐딱하게 봐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

“각자 성격상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주어진 역할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꼭 이런 쪽으로 모두 행동해야 된다는 그런 기준은 없을 것 같다. 사물을 삐딱하게 봐서 ‘대박’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쓸데 없는 고생만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좋다’고 제3자가 일반론으로 권해줄 성격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보수화된다고 하는데…. 김기협 교수님의 경우는 어떤가?

“아무래도 젊었을 때보다 혈기가 줄어드니까…. 전에 같으면, 못마땅하게 생각되는 것에 대해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던 것이 나이 들면서 바뀐 것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은 더 래디컬(radical)해졌다. 제가 최근에 쓴 글에서 ‘보수주의자의 기본 입장은 혁명을 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변화를 겪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혁명은 좀 거치지 말고 겪었으면 좋겠다. 그게 노력할 만한 방향이다. 그 글에서 ‘수구라는 것은 보수주의자에게 최대의 적이다’라고 했다. 수구는 혁명을 불가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에는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변화를 최대한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혁명을 피할 수 있다. 기득권에 집착해서 수구적인 행태를 보이면, 그게 바로 세상을 혁명으로 몰고 간다.”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김 교수님은 중도인가 중도좌파인가 중도우파인가. 주위 분들 생각은?

“제가 보수주의자를 한 10여 년 전부터 공공연히 자임하고 나섰다. 이론적으로 봐서는 제가 보수주의자가 틀림없다. 그런데 행동하는 걸 보면 보수주의자 같이 보이지 않는 그런 게 있다. 그래서 ‘보수적 종북주의자’와 같은 역설적인 표현도 듣게 됐다. 또 저를 ‘사대적 민족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 각국에서 중도의 입지가 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도적인 입장은 늘 기회주의라는 지탄을 쉽게 받는다. 중도는 원래 기회주의가 될 소질을 원래 지니고 있다. 왼쪽·오른쪽 어느 쪽하고도 심하게 부딪히지 말고 ‘벨 곡선(종형 곡선)’의 뚱뚱한 부분을 내가 차지하겠다는 부정적인 의미의 기회주의적인 중도가 있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가 침해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키려는 긍정적인 의미의 중도도 있다. 저는 해방공간의 중도파는, 민족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좌파·우파 모두를 억제하려고 한 긍정적인 중도였다고 본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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