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13. 14:04

 

홍세화 선생과 만나 당구 한 판 친 다음 우일문 선생의 출판기념회에 함께 참석했다. 그런데 홍 선생이 일찍 일어나 가야 할 데가 있다기에 어딘가 물으니 류초하 선생 추도회라는 것이다. 사람들과 연락 없이 지내다 보니 그가 세상 떠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알고서야 인사 없이 보낼 수 없는 사람. 홍 선생을 따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대학 시절 이래 어울려 노는 일이 별로 없으면서도 가까이, 기분좋게 느껴지던 친구다. 그 친구도 내게 대한 느낌이 비슷했던 것 같다. 여러 사람의 추도사를 듣는 중에 그와 처음 만나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래. 재미있고 기분 좋은 자리에서 만난 사이였기 때문에 좋은 인상을 나눠 갖고 있었던 거야.

 

1967년 여름, 대성학원의 공개모의고사 시상식이었다. 그 해에 일류 입시학원들의 공개모의고사가 유행으로 시작되었다. 두둑한 상금을 걸어놓고 재수생이고 재학생이고 아무나 참가하게 하는 일종의 판촉 행사였다. 대부분 참가자들은 약간의 참가비를 내고 학교 내 시험과는 다른 모의고사를 쳐 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나는 상금 쓸 길부터 생각하며 달려드는 "프로선수"의 하나였다. 이미 종로학원에서 한 껀 올린 뒤였다.

 

일요일에 시험을 치는데 터무니없는 실수를 했다. 이과 시험이 오전, 문과 시험이 오후인데 거꾸로 생각하고 오후에 간 것이다. 학원 운영진에서 나 같은 랭킹 선수를 그냥 돌려세우기가 아까우니까 자리를 마련해 주고 문과 시험을 치게 했다.

 

채점이 끝나 시상식을 할 때가 되었는데 뭔가 어수선한 기색이 있었다. 학원 주인 아들인 친구가 곧 정보를 가져왔다. 내가 1등을 해버리는 바람에 운영진이 난처해 하고 있다고. 이과 학생에게 문과 1등상을 주기도 그렇고 (내가 사학과로 전과할 선수라는 걸 알았다면 고민이 없었을 텐데!) 시험 치게 해놓고 그냥 빼버리기도 그렇고.

 

그래서 무마책으로 만든 게 과목별 시상이었다. 영-수-국 세 과목의 1등에게도 조그만 봉투를 하나씩 앵기는 것이었다. (요거 먹고 떨어져라!) 그래서 영어인지 수학인지로 상을 받았는데, 함께 상을 받은 재수생 하나가 다가와 너털웃음과 함께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내 덕분에 없던 상이 생겨 자기도 하나 챙겼다고. 그게 류초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잊어버릴 일이었는데, 함께 문리대에 들어가 마주쳤을 때 그가 그 얘기를 하는 바람에 그 장면을 떠올리고 함께 웃었다.

 

추도회 현수막에는 "지혜사랑의 영원한 청년, 고 유초하 교수 추모의 밤"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영원한 소년"으로 남아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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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