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2. 15:30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50년대 후반, 전쟁의 여파가 덜 가셔서 그랬는지, 군대가 크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김경언이던가, 만화가가 "칠성이"라는 인기 캐릭터를 만들어 엄청 많은 만화를 냈는데, 그중에 "일병 칠성이", "상병 칠성이"에서 시작해 "대장 칠성이", "원수 칠성이"까지 계급 별로 한 권씩 그려 낸 연작이 생각난다. 이제 와 생각하면, 반공-전쟁 만화를 표방하면서 전쟁 중에 고속승진한 똥별들을 은근히 풍자하는 뜻이 있었는지도?

 

딱지놀이도 있었다. 일등병 밑의 "무등병"부터 시작해 대장인가 원수인가까지 그려진 딱지를 갖고 한 장씩 뽑아 붙이는데, 계급 낮은 쪽이 따먹힌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최고 계급 딱지가 무등병과 마주치면 잡힌다. 무등병 딱지는 모든 딱지에게 지고 한 딱지에게만 이기는 것이고, 최고 계급 딱지는 모든 딱지에게 이기고 한 딱지에게만 지는 것이다.

 

육군 대장이 "새까만 쫄병"들 함부로 다뤘다가 경 치는 꼴을 보니 공관병 중에 무등병이 하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틀에 갇힌 폐쇄사회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밖으로 불거져 나오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40년 전 남의 소원수리 작성 도와줬다가 말년에 고생한 사연을 적은 일이 있다. http://orunkim.tistory.com/1424) 정말 모처럼 용꼬로 걸렸다.

 

문제된 박 대장을 보직해임 후 전역시키지 않고 수사를 진행하니까 본인이 빨리 전역시켜달라고 인사소청을 하고 행정소송을 하고 난리인 모양이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5456) 군인이 군인 신분으로 저지른 일에 대한 심판을 민간인 신분으로 민간 법정에서 받고 싶어 저렇게 안달인 것을 보면, 군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꼭대기까지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고위 장성이 저런 행태를 보이는 군대를 진짜 군대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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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