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한 시인이 일제 말기에 열성적으로 ‘협력’했던 사실을 아주 간단한 말로 변명한 일이 있다. 일본이 망할 줄 몰랐었다고.


망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렇게 협력해야만 하는 것이냐고, 지성인의 자세로서 너무 비루한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부질없게만 생각된다. 지금의 지성인들 중에 망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권력을 상대로 시비를 따지려 드는 사람이 몇이나 되기에.


오히려 “망할 줄 몰랐다”는 진술이 마음에 더 걸린다.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나?


1937년 중일전쟁을 터뜨리고부터 1941년 말 진주만을 공격할 때까지야 일본의 승리 전망을 믿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태평양전쟁의 분수령이라 일컫는 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 뒤에도 제국 정부의 집요한 선전에 보통사람들이 의문을 품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러나 일본 해군이 궤멸한 1944년 6월의 사이판 전투와 10월의 레이테 전투 이후로는 “유리한 전황”을 선전하고 싶어도 일관성 있게 선전할 밑천이 없어졌다. 이 무렵에는 유럽의 동맹국들도 곤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웬만한 정보와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본의 패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더구나 1945년 2월부터 B-29기의 일본 본토 폭격이 시작되고도 일본이 망할 줄 생각도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 335대가 출격해 1,700톤의 폭탄을 떨어뜨려 10만 명의 목숨을 일거에 앗아간 3월 9일 밤의 ‘도쿄 대공습’을 겪고도? 5월 초 독일마저 항복한 뒤로는 일본에게 아무런 역전의 길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항복 조건을 얻을 기회를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장렬한 산화’를 향해 ‘야마도 정신’을 불사른 자들도 물론 있었겠지만, 냉정한 계산으로 그들의 희생을 이용한 사람들이 있었다.


시인은 종전의 그 날까지 야마도 정신에 눈이 멀어 아름다운 정신력의 궁극적 승리를 믿고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이 시인의 작품을 일관하는 관조의 시선을 놓고는 그런 맹신을 상상할 수 없다.


서정주를 비롯해 1937년 이후 일제의 전쟁노력에 협력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한 동안 승리의 환상을 제국주의자들과 공유했을 것이다. 1942년 중엽 그 꿈이 사그러지기 시작한 이후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입 다물고 물러나 앉았든, 내친 김에 계속 설쳐대든, 눈치 보는 일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돌아설 길이 없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의 하나가 “일본이 망할 줄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을 했다. 그런 변명이 꽤 통할 만하다고 생각한 모양이고, 실제로 꽤 통하는 것 같다. 오늘의 한국에서 그런 변명이 꽤 통하는 상황에는 두 가지 병리적인 문제가 작용하고 있다.


한 가지 문제는 승리지상주의다. 이길 것 같은 쪽에 베팅해서 이득을 노리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득을 위해 인간적 가치를 희생시키는 ‘지상주의’가 문제다. 시인의 변명에는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겠어?” 하는 질문이 함축되어 있고, 우리 사회에는 “맞아! 인간적으로 이해가 돼.” 대답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베트남 참전도 이라크 파병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다 이해해 주는 이 사회가 아닌가.


또 한 가지 문제는 역사 인식의 허점이다. 65년 전의 오늘에 대한 우리의 회상이 감격과 흥분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 감격을 강조하기 위해 해방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주어졌다는 ‘신화’가 이 사회를 지금까지도 지배하고 있다. 역사학의 훈련을 웬만큼 받은 사람이 아니면 “일본이 망할 줄 몰랐다.”는 노 시인의 변명에 “무슨 그런 황당한 말씀을!” 반박할 생각이 떠오르지 못한다. “맞아! 생각지도 못하던 놀라운 사태 앞에서 시인의 저 순결한 영혼이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 하는 것이 우리 사회 일반인의 일반적 반응이다.


승리지상주의의 척결이 우리 사회를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매우 요긴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각자 열심히들 노력하되, 민족 정체성과 평화를 훼손하는 천안함 사기극에까지는 말려들지 않고, 하나밖에 없는 국토를 극단적으로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의 획책 기반을 없애고, 사회의 구조적 안정성을 해칠 정도로 무리한 경제성장 정책을 억제하는 열쇠가 모두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승리지상주의 척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나 자신이 승리에만 매몰되지 않는 생활 자세를 지키고, 비슷한 식으로 사는 주변사람들과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살아도 인생이 살 만하다는 사실을 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 종이 위에서 아무리 설교를 해도 별 소용이 없는 줄 잘 안다.


다만 역사 인식의 허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힘껏 애쓸 필요를 느낀다. 불과 수십 년 전의 상황조차 이런저런 이념에 입각한 신화화로 역사적 고찰의 시선으로부터 가려져 있는 현실이 어쩌면 승리지상주의를 비롯한 이 사회의 온갖 집단적 정신질환의 온상일지도 모른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의 항복 유시가 방송되던 시점에서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꽤 오랫동안 이 상황을 예견, 여러 가지 입장에서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부터 밝혀놓는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