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월에 출처가 모호한, 얍삽한 만화동영상 하나가 인터넷에 떠다녔다. [1] 두 주일 동안 1천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이 동영상은 여러 나라에서 지도자가 선택되는 서로 다른 방식을 대비시킨 내용이었다.

[1] http://world.time.com/2013/10/17/whats-the-secret-to-chinas-incredible-success/.

먼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혜성 같은 등장이 그려져 있다. 수억 달러 캠페인 비용을 들여 11표 원칙에 따른 전국 선거의 형태로 나타난 승리, 그 과정에 민주주의딱지가 붙어 있었다. 또 한편 시진핑 주석이 중국 최고의 권좌에 오르는 수십 년의 도정이 그려져 있다. 지방 말단 현급의 초라한 자리에서 시작해 시, , 급을 거쳐 중앙위원회, 정치국, 그리고 마침내 정치국상임위원회에 이르는 승진의 모든 단계에서 그 정치적 지도력을 입증할 엄격한 심사를 겪어온 과정, 여기에는 능력주의딱지가 붙어 있었다. 최고 정치지도자를 선발하는 데 중국식 능력주의에 아무런 도덕적 결함이 없다는, 어쩌면 민주주의적 선거보다 더 우월한 원리일 수도 있다는 뜻을 풍기는 동영상이었다.

중국공산당의 어느 부서에서 만든 동영상일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능력주의가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왜 중국공산당은 그 출처를 밝히지 못했을까? 나아가, 왜 중국공산당은 정치적 능력주의를 공식적으로 표방하고 그 제도를 자랑스럽게 내놓지 못하는 것일까?

중국식 능력주의 정치제도가 현실에서 결함을 가졌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능력주의 정치제도를 추구하는 체제에서 정치적 진보(또는 퇴보)를 평가하는 도덕적 기준이 어떤 것일까 하는 문제를 여기서 떠올릴 수 있다. 다른 문제들도 있다. 동영상에는 능력주의 정체제도와 민주주의 선거제도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하지만 능력주의와 민주주의의 장점을 결합한다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동영상에는 반대자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가혹한 탄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제도가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왜 반대자를 애써 찍어 누를 필요가 있단 말인가? 능력주의 정치제도가 정당한 것으로 인민의 눈에 비쳐지고, 따라서 압제적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운영방법은 없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관한 생각을 담은 것이다.

능력주의는 정치이론 중 가장 연구가 많은 주제이면서 또한 가장 적은 주제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든 서양에서든 뛰어난 능력과 덕성을 가진 지도자를 선발해 권력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늘 중요한 것이었다. 이유는 자명한 것이다. 과학계에서도, 법조계에서도, 기업체에서도, 지도적 위치에는 필요한 훈련을 거친 자격자를 필요로 한다. 제도 중 가장 중요한 제도인 정치제도라 해서 예외일 수 있는가?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다니엘 벨(1919-2011)은 말했다. “정무직에는 정치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삶의 질은 지도력의 질에 상당 정도 걸려 있다. 한 사회의 지도부를 가장 뛰어난 인재로 채우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2] 공자와 플라톤부터 주희, 존 스튜어트 밀을 거쳐 손문과 월터 리프먼에 이르기까지 정치사상가들이 현명하고 정당한 판단을 내릴 능력을 제일 잘 갖춘 인물에게 지도력을 맡기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고심한 것이 이 때문이다.

[2] Daniel Bell, "On Meritocracy and Equality." National Affairs 29 (1972 가을): 66-67. 벨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 주요 사상가 중 능력주의 이념을 옹호한 몇 안 되는 사람의 하나다. 그는 경험 많고 이해관계에서 초연한 정치지도자들로 구성되어 공동선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원로원House of Counselors’을 제안하기도 했다.(Bell, "The Old War: After Ideology, Corruption," New Republic, 1993823, 30일자) 벨은 시대정신에 맞추는 데 솜씨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 주제를 놓고는 너무 늦었고, 또한 너무 빨랐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방향의 노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중국에서는 지식인과 교사보다 군인, 노동자, 농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마오쩌둥 사상에 이유가 있었다. 혁명지도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참여적 사회민주주의를 밑바닥에서부터 쌓아올릴 것을 선포했고, 이에 따라 중국 대륙에서는 정치적 엘리티즘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일체 사라졌다.[3] 서방사회에서는 선거민주주의의 패권에 이유가 있었다. 민주주의제도의 역할은 인민의 손으로 지도자를 뽑게 하는 데 있을 뿐이며, 후보자의 자격은 투표자의 심사에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이성을 가진 투표자가 선택을 잘하기만 한다면 좋은 지도자의 자격이 어떤 것인지, 자격자를 잘 선발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이론가들의 관심은 정치 등 사회생활의 여러 부문에서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방법이라든가 국가 안에서, 그리고 전 세계 안에서 적정한 부의 분포를 유도하는 방법 등으로 옮겨갔다.

[3] 능력의 이념이 남용의 위험 때문에 배척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다른 이념의 경우(예컨대 인민의 동의에 근거한 통치라는 이념) 남용이 되는데도 이념 자체는 배척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지프 케트는 (미국 경우를 놓고) 이렇게 말했다. “대다수 미국인은 자기 투표권의 진정한 가치에 회의감을 품고 있다. 투표자들이 아니라 막후의 강력한 이해관계자들이 정책 결정을 좌우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의에 근거한 통치라는 이념을 버리는 사람의 거의 없다. 능력과 동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나란히 내걸었던 두 이념에 지금 사람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인다. 동의에 근거한 통치가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나타나도 이념 자체를 걸고넘어지는 사람이 없는 반면 능력 위주의 정치에 문제가 생기면 비난과 조롱이 이념 위에 쏟아진다.” 능력 이념의 시행이 언제나(또는 대개)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념이 반성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케트는 주장한다. “이 나라의 역사를 통해 능력의 원리가 종래 소외되어 온 집단들의 평등권 주장에 힘을 얹어주어 왔다.” Kett, Merit: The History of a Founding Ideal from the American Revolution to the 21st Century (이사카, 코넬대학 출판부, 2013), 261-262.

능력주의 정치제도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곳은 조그만 도시국가 싱가포르였다. 1960년대 이래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가장 유능한 인재를 지도자로 키워내는 제도를 제창했다. 그 목적을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의 제한까지 감수한다는 것이었다. 정치지도자들은 선거제도에 영합하기보다 장기적 전망을 세워야 할 것이며, 대중추수적 정치가들이 목전의 이해관계에 매몰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정치제도를 만들 수 있고, 또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능력주의 정치제도를 하나의 보편적 이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고, 따라서 싱가포르의 사례가 외부세계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인구와 자원이 적고 적대적인 이웃나라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싱가포르에 능력주의 원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니, 이처럼 특이한 도시국가에나 적합한 제도를 다른 곳에서 참고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근년의 두 가지 변화로 인해 능력주의 정치제도가 전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첫째, 서양식 민주제도의 가버넌스 위기로 인해 선거민주주의에 대한 맹신이 흔들리고, 정치적 대안을 찾는 공간이 열렸다. 서방세계 외부에 민주제도를 이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정도가 아니다. 서방세계 안에서 시행해 온 민주제도가 명확한 긍정적 모델 노릇을 못하게 된 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다. 경제상황의 악화에 따라 유권자들이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나라에도 장기적으로 불리한 정책을 내거는 대중추수적 정치가에게 쏠리는 일이 많아진 것이 한 가지 예다. 서방 민주국가에도 능력주의 원리와 제도를 더 많이 도입함으로써 가버넌스 향상을 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개혁적 정치사상가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그 까닭이다.[4]

[4] Nicolas Berggruen and Nathan Gardels, Intelligent Governance for the 21st Century: A Middle Way between West and East (케임브리지, Polity Press, 2012)

또 하나, 중국의 굴기가 능력주의 정치제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 이래 중국에서 개발된 정교하고도 포괄적인 인재 양성 및 등용 제도가 놀라운 경제 발전의 발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왕조시대의 제도와 비슷하게 하위직에서부터 시험과 실적 고과를 통해 관리를 승진시키는 제도다. 이 능력주의 제도에 숱한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규모나 경제발전 단계가 비슷한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 성과가 좋은 편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능력주의 실험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싱가포르와 달리 중국은 세계를 뒤흔들힘을 가진 나라다. 중국 경제가 이토록 빨리 자라나 세계 2위의 자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 사람이 1990년대 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부터 20년 후에는 중국식 능력주의 정치제도가 서양식 민주제도에 대한 도전 내지 또는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을지 모른다.

더 나아가기 전에 용어 몇 가지를 확실히 해두겠다. 이 책은 능력주의 정치제도를 옹호하는 책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도 행정직과 사법직의 능력 기준으로 선발된 전문가들에게 권한을 주기는 하지만, 이 전문가들은 선거로 뽑힌 지도자들에게 간접적인 방법으로라도 책임을 지는 입장이다.[5] 그들의 권한은 엄격히 규정된 영역 내에서만 작용하고, 최대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공무원은 선거직의 정치인들에게 지시를 받아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거기에 자신의 관점을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6]

[5] Stephen Macedo, "Meritocratic Democracy: Learning from the American Constitution,"Philip Pettit, "Meritocratic Representation," The East Asian Challenge for Democracy: Political Meritocracy in Comparative Perspective, ed. Daniel A Bell and Chenyang Li(뉴욕,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 2013). 사법 평론과 미국 대법원에 관한 논쟁을 보면 정치적영역과 사법적영역 사이의 경계가 분명치 않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원칙에 있어서는 사법관이 정치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6] 선출된 정치가가 결정을 하고 공무원이 실행을 한다는 이론적 원칙이 현실에서 종종 어그러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략]

중국 같은 능력주의 국가에서는 이와 달리 정치 지도자들이 넓은 영역에서 정치적 판단을 행하게 되어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직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공권력을 비롯한 최고의 정치권력을 행사한다. 요컨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능력주의 기준으로 선발된 관리들은 정치적 입장을 내세울 수 없는 반면 능력주의 국가의 관리들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정치적 능력주의와 경제적 능력주의를 구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영어의 'meritocracy'는 경제적 자원 분배의 한 가지 원리를 가리키는 뜻을 갖고 있다.[7] 부의 분배에 있어서 계급이나 성분보다 능력과 노력을 기준으로 하는 원리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함에 있어서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이뤄진다는 선전과 달리 계급 배경에 따라 부가 분배되는 경향을 지적했다. 공산주의의 목적은 계급의 철폐에 있고, 자본주의체제 직후의 초급 공산주의 단계에서는 이런 선전을 현실로 만드는 데 목표를 둔다고 했다. “능력에 따라 거두고 공헌에 따라 나눈다는 원칙에 다라 경제 자원을 분배한다는 것이다.

[7]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The Rise of the Meritocracy(런던, 테임즈 앤 허드슨, 1958)에서 "meritocracy"란 말을 만들어 쓴 것은 비판적인 취지에서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정치적 능력주의와 경제적 능력주의를 혼동했다. 부의 분배를 결정하는 방법으로서 경제적 능력주의와 구분되는, 능력과 덕성을 가진 인물을 정치지도자로 선발한다는 정치적 이념을 중국어로는 현능정치賢能政治가 더 잘 표현할 것이다.

능력주의처럼 보이는 이 원칙은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만 개인 능력의 차이, 즉 자연이 부여한 생산력의 특권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결함을 가진 것이다.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 타고난 능력으로 혜택을 누려서는 안 되고, 자기 잘못 아닌 생산력 부족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 거두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원칙에 따라 자원이 분배되는 고급 공산주의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8]

[8] Karl Marx, The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1875, Part I) (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5/gotha/ch01.htm).

영향력이 큰 20세기 철학자 존 롤스도 겉보기의 공정한 경쟁이 비정한 능력주의 사회를 몰고 올 위험을 비슷하게 저적한 바 있다.[9] 능력을 갖고 태어나느냐 마느냐는 본인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타고난 능력이 부를 누릴 도덕적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산에 대한 공헌을 기준으로 부를 분배하는 대신 가장 불우한 집단에까지 혜택을 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차등을 인정하는 차등의 원칙을 롤스는 옹호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금융가이던 벤 버냉키 미 연준 위원장(당시)2013년 프린스턴대학 졸업식 치사에서 비슷한 식으로 능력주의를 비판한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능력주의 체제 아래서는 물려받은 유산에서 행운을 얻은 사람들, 건강과 유전자, 가족의 지원과 격려와 높은 소득수준, 교육과 취업의 기회 등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행운을 얻은 사람들이 가장 큰 보상을 받습니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체제가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키고 공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이 모든 방법으로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공헌하고 자신의 행운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누리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10]

[10] Jordan Weissman, "Ben Bernanke to Princeton Grads: The World Isn't Fair (and you all got lucky)," The Atlantic, 2013.6.3.

 

경제체제로서의 능력주의에 대한 이런 비판에 나는 공감하지만, 이 책에서 나는 물질적 재산의 분배방법에 관한 하나의 특정한 이론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내 뜻은 능력주의 정치제도, 즉 정치적 권력을 능력과 덕성에 맞춰 부여한다는 원리를 옹호하는 데 있다. 경제적 자원의 분배 문제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하고 정치적으로 실현가능한 능력주의 정치제도의 시행에 관련된 범위 내에서만 다룰 것이다.[11]

[11] 마찬가지로 교육에 관해서도 교육제도 내의 위치 배분 문제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고 정치적으로 실현가능한 능력주의 정치제도의 시행에 관련되는 범위를 제외하고는 능력주의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1. 내용의 개관

 

정치 지도자를 11표의 원칙에 따라 뽑아야 한다는 관념이 많은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능력주의 정치제도를 옹호하는 이야기를 꺼내려면 우선 선거민주주의 비판으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대안이 필요하다는 사실부터 설득해 놓지 않는다면 어떤 대안을 제시하더라도 독자들이 거들떠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유가 인간에게 본질적 가치를 가진 것이기 때문에,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 선거와 피선거의 권리를 옹호하는 철학가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에는 반대도 많다. 중국에서 선거민주주의를 제창하는 데는 투표행위의 본질적 가치 주장이 잘 먹혀들지 않을 것 같다.

동아시아 여러 사회의 정치 연구에서는 민주주의의 절차적 측면보다 결과적 측면이 중시된다는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민주적 절차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보다 그로부터 얻는 좋은 효과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적 선거가 좋은 효과를 일으킬 것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의 흥행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부와 안정, 그리고 자유를 누리는 나라들은 모두 민주국가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도 장래에 심각한 위험을 불러올 염려가 있는 중요한 문제들이 있고, 능력주의를 통해 이런 문제에 더 잘 대치할 가능성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

1장에서는 민주주의(국가 최고 지도부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는 최소한의 의미에서)의 네 가지 중요한 위험을 제시하고 능력주의에 의거해 이를 해결할 이론적-현실적 방안을 각각의 결점에 붙여놓았다.

첫 번째 위험은 다수의 전횡이다. 비이성적이고 이기주의적인 다수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소수파를 억압하고 나쁜 정책을 채택하는 쪽으로 권력을 휘두를 위험이다. 이론적으로는 투표자의 능력 검사가 최선의 해결책이고, 현실적으로는 싱가포르의 능력주의 정치제도가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위험은 소수의 전횡이다. 경제력을 장악한 소수 집단이 지나친 힘으로 정치과정에 개입해서 공공선에 부합하는 변화를 가로막거나 자기네 이익에 맞는 정책을 관철할 위험이다. 이론적으로는 유력계층을 배제한 시민단체의 개입으로 대응할 문제인데, 중국의 정치제도를 효과적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세 번째 위험은 투표 집단의 전횡이다. 미래 세대나 외국인처럼 어떤 정책에 영향을 받지만 투표권을 갖지 못한 집단과 투표권을 가진 집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후자의 입장이 언제나 관철된다는 문제다. 미래 세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부기구의 설치가 이론적 해결책인데, 미래 세대에게 해로운 정책에 대한 거부권을 총통에게 두는 싱가포르 제도가 좋은 참고가 된다.

마지막 위험이 유능한 개인주의자의 전횡이다. 선거민주주의에는 사회 갈등을 완화하기보다 격화하고 갈등의 조화로운 해소책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문제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합의제를 채택하는 것이 이 점에서 바람직하며, 중국의 정치모델에 갈등 해소를 위한 실제적 장점이 있다.

요컨대 선거민주주의의 중요한 문제들의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도덕적으로 바람직하고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안들을 찾을 수 있다. 논의의 목적이 중국의 경우에 능력주의가 가진 장점을 확인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능력주의 정치제도가 어떤 경우에나 선거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강경한 주장까지 할 필요가 없다. 중국의 1당 체제가 쉬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가정 아래 개선할 방향을 찾기만 하면 된다.[12]

[12] 만약 중국에서도 (소련에서처럼) 1당 체제가 무너지고 서양식선거민주주의가 들어선다면? 그런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라도 그 민주주의에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에서처럼) 중국 정치문화의 특색이 가미될 것이다. 그 중요한 특색 하나가 능력주의 정치원리일 것이므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능력주의 원리가 (부분적으로라도) 역시 유효할 것이다.

2장은 네 가지 전제 위에 전개된다. (1) 자질이 뛰어난 지도자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이 좋은 일이다. (2) 중국의 1당 통치체제는 가까운 장래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13] (3) 중국 정치제도의 능력주의 측면에는 좋은 점이 있다. (4) 여기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

[13] 형식적으로는 중국도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다당제 정치체제다. 그러나 등록되어 있는 8개의 작은 정당들이 공산당과 권력을 놓고 경쟁하게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전제 위에서 나는 사회과학, 역사학, 철학의 관점에 입각해 평화 상태에서 근대화 진행 중인 거대한 능력주의 국가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어떤 특성이 중요한 것인지 제시한다. 아울러 그런 특성을 가진 지도자들을 뽑아 올리기 좋은 제도적 방법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런 특성을 기준으로 삼아 중국에서 작동되고 있는 능력주의 제도를 평가한다. 결론은 중국의 현행 제도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요한 지적 능력을 판별하기 위해 더 효과적인 심사방법이 필요하고, 정책 작성에 필요한 교섭 역량을 늘리기 위해 여성 지도자의 역할이 늘어나야 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관리들의 발탁을 위해 상호평가 제도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능력주의 정치제도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그 장점을 자랑하는 것보다 그 단점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3장에서는 능력주의에 흔히 따르는 세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논한다. (1) 우월한 능력을 근거로 선발된 통치자가 권력을 남용하는 경향. (2) 정치적 위계질서가 고착되어 사회유동성을 떨어트릴 위험. (3) 권력구조 외부에 체제의 정당성을 납득시키는 어려움.

최고위층에 대한 선거민주주의 시행 가능성이 중국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나는 선거제도 없이 위의 문제들에 대비할 길이 있을지 살펴본다. 부패(권력 남용) 문제에 대해서는 독립적 감찰기구의 운용, 급여 수준 향상, 도덕 교육 강화 등의 대책이 있다. 체제 경색 문제에 대해서는 겸손한 정치적 자세를 취하고 집권당을 다양한 집단에 개방하며, 새로운 종류의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 선발을 쉽게 하는 노력 등 대책을 검토한다.

다만 체제 정당성 문제는 정치적 참여의 기회를 늘려주는 것 외에 대책이 없다. 국민의 명시적 동의를 어떻게든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제는 능력주의와 민주주의 원리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데로 집약된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한 최고지도자 선출이나 경쟁적 다당제 없이도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4장에서는 민주적 능력주의의 몇 가지 형태를 놓고 득실을 살펴본다. 우수한 지도자를 뽑는 능력주의 원리와 인민이 지도자를 선택하는 민주주의 원리를 결합하는 여러 모델을 검토하는 것이다. 첫째 모델은 두 원리를 투표자 차원에서 결합하는 것인데,(교육수준에 따라 가산점을 주는 등) 아무리 철학적으로 타당성이 있다 해도 현실적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다.

두 번째, 수평적 모델은 중앙 정치기구 차원에서의 결합인데, 설령 중국처럼 능력주의의 인기가 높은 정치 환경에서라도 그런 구조를 세우고 유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세 번째 수직적 모델, 중앙정부 차원의 능력주의와 지방정부 차원의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구조라면 지금 중국의 정치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것도 아니고 정치철학의 관점에서도 충분한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정치구조 모델을 위는 능력, 아래는 민주로 단순화해서 볼 수만은 없다. 최상층과 최하층 사이에 폭넓고 체계적인 실험의 장으로서 중간층이 필요하다. 마지막 장에서는 중국 모델을 구성하는 세 개 층을 그려 보이고 마오쩌둥 이후의 중국 정치개혁이 바닥의 민주주의, 중간의 실험, 꼭대기의 능력주의라는 원칙에 따라 펼쳐져 온 경위를 설명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는데, 이 간극을 줄이는 방법을 나는 제시하는 것이다. 능력주의 체제의 가장 큰 약점이 정당성 문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어느 시점에서 중국 정부는 국민투표 같은 방법을 통해 민주적 능력주의체제에 대한 인민의 동의를 구할 필요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 장 끝에서는 중국 모델의 세계적 확장 가능성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내놓는다. 역사와 문화의 배경이 다른 사회에서 쉽게 이 모델이 채택되지는 않겠지만 모델의 구성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정부가 그런 확장에 노력을 기울일 여지도 있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뛰어난 덕과 능력을 갖춘 정치지도자를 육성하고 선출하는 데 목적을 둔 정치체제의 장점을 최대화하고 그 단점을 최소화하는 방안, 특히 지금의 중국 현실 속에서 시행 가능한 방안을 찾는 것이다. 인민에게 이로운 정책을 수행할 필요를 지적하는 외에는 그런 지도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나는 일부러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중국은 거대하고 복잡한 나라이므로 어떤 과제가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인지 때와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인민의 실제 요구가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고는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약간의 지침이라도 독자에게 제공할 필요를 느끼고 인터넷에 발표했던 내용을(http://press.princeton.edu/titles/10418.html) 두 개의 부록에 담아놓았다. 첫째 부록은 조화 계수Harmony Index’, 평화로운 질서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심을 투영하는 네 가지 사회관계가 각 사회에서 얼마나 잘 펼쳐지는지 보여주는 지표를 담은 것이다. 중국에서든 어디에서든 사회의 진보(또는 퇴보)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다. 특히 중국과 같은 정치 환경에서 이 지표의 또 한 가지 가능한 용도는 관리들의 고과考課에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유일한 기준으로 보던 관행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런 기준의 채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두 번째 부록은 어느 중국공산당 정치관료와의 정치적 대화(대면 접견과 이메일을 통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정치에 관한 내 생각은 주로 유교적 가치에 입각한 것이지만, 능력주의를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유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경험적 측면에서도 규범적 측면에서도 유교의 역할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주의에 대한 생각을 빚어내는 데 유교의 실제 역할이 작지 않을 것이므로 중국의 정치적 능력주의와 유교의 관계에 직접 초점을 맞춘 이 대화를 내놓는 것이다. 학식이 깊은 공산당 간부가 개인적 견해를 허심탄회하게 표명한 흔치않은 자료다. 이 부록의 제목을 유가와 공산당 사이의 대화라고 붙여 놓았는데, 대화의 끝에 이르면 누가 어느 쪽인지 판별이 잘 안 될 것이다.

 

2. 연구방법

 

능력주의는 큰 잠재적 중요성을 가진 주제인데도 오늘날 정치학계에서 이론화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연구를 위해서는 사회과학, 철학, 역사학의 넓은 범위를 참고로 하여, 주제를 직접 다루지 않은 내용까지 끌어 모아야만 했다. 능력주의 정치제도의 이론과 실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문헌조사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내 생각을 키워내기 위해(너무 이기적이었나?) 철학, 역사학, 사회과학 연구자들을 모아 능력주의 정치제도의 흥기(또는 재기) 전망과 그것이 중국 및 세계의 정치발전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토론하는 두 차례 학술회의를 열었다.

영어를 사용한 첫 회의는 20121Li Chenyang과 공동으로 싱가포르의 난양기술대학에서 연 것인데 그 내용이 The East Asian Challenge for Democracy: Political Meritocracy in Comparative Perspective(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이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중국어를 사용한 두 번째 회의는 칭화대 철학과와 상하이 春秋연구소 공동 주최로 201210월 칭화대에서 열렸고 그 내용은 20133<文史哲> 특집호에 실렸다. 이 두 차례 회의에서 이뤄진 지적 교류를 통해 얻은 바가 엄청나게 많았고, 중국과 싱가포르 정치지도자들과의 대담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고 초고 작성 중 시간을 내어 원고를 읽어보며 의견을 준 고마운 동료들이 몇 명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칭화대학, 상하이교통대학, 싱가포르국립대학 학생들에게 능력주의에 관한 글을(내 설익은 생각을 포함해서) 읽게 했고, 그들의 비평과 의견에서 얻은 것이 또한 적지 않다. 특히 싱가포르국립대학 철학과 대학원생들이 이 책 초고를 놓고 윤독회를 열어 많은 의견을 준 데 깊이 감사한다. 이 책 내용은 이 많은 분들 덕분에 많이 향상되었다.

 

3. 동기에 관하여

 

나는 왜 이 주제에 매달려 왔는가? 내가 능력주의 정치체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유교 전통과의 만남 덕분이었고, 따라서 이 주제에 관한 초기의 내 글에서는 현실정치보다 유교사상의 일환으로서 능력주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근년 들어 중국의 정치체제가 능력주의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칭화대의 우수한 내 제자들이 갈수록 많이 중국공산당에 채용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능력주의의 정치철학적 의미를 중국의 현실정치와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정치적 중요성을 가진 문제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중국과 서방의 언론매체에 몇 편 기고문을 보냈다. 그 기고문은 비평가들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중국공산당의 나팔수에서 골드먼삭스(내 아내가 다니는 회사)의 첩자까지, 안 들어본 소리가 없다. [14] 그래서 내 생각을 제대로 담고 학술적 기준을 충족시키되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정한 5개년계획을 최선을 다해 실행한 결과물인 이 책에서 얼마만큼 그 뜻이 이뤄졌는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14] 이런 비판에 내가 일체 대응하지 않은 ([생략]) 까닭은 제대로 된 대응을 위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이 책 내용의 일부를 발표할 때도 똑같은 문제에 마주쳤다. 예를 들어 제2장 내용을 발표하면 그에 대한 질문과 논평이 제3장이나 제4장에서 이야기할 내용까지 번지고, 4장 내용을 발표하면 제1장이나 제3장 내용과 관련된 질문과 논평이 쏟아지는 식이다. 그래서 그런 궁금증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이 책 전체를 다 써서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생략])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로 중국에 관한 책을 왜 미국의 학술출판사에서 내게 되었는지도 해명이 필요하겠다. 내가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것이 이유의 하나다. [15] 머잖아 중국어로도 번역출판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사회에서 반향을 좀 일으키기 바란다. 정치체제의 작동방법은 중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주제인데, 이 책이 정치적 진보(및 퇴보)를 판별하는 기준에 관한 토론이 더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되기 바란다.

[15] 또 하나 이유는 내가 주요 영-미 대학 출판부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일반 출판사에 비해 학문적 자유와 학문적 능력주의를 존중하는 자세를 출판 과정에서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이 책이 영어권 독자들에게는 능력주의 정치체제의 목표인 현능賢能정치의 이념에 대한, 그리고 현실 속의 중국 정치체제에 대한 이해를 늘려주기 바라며, 나아가 서방 민주주의국가에서도 능력주의 개혁의 가능성 탐색을 이끌어내기 바란다. [16] 영어권 독자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 온 사실을 중국의 관점에서 새로 바라보게 되는 효과는 바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 책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베이징에서 십년 넘게 살면서 가르치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고, 그런 경험 없이 이 책과 같은 내용에 접했다면 나 또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7]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내 정치적 입장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로서 중도적인 편이다.

[16] 민주국가에 관해 내가 생각하는 개혁은 N. Berggruen and N. Gardels, Intelligent Governance for the 21st Century: A Middle Way between West and East (케임브리지, 폴리티 프레스, 2012)에 제시된 것처럼 민주주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선거민주주의가 실행되고 있는 국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무너트리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실제적 대안이 군사독재나 포퓰리즘 권위주의 체제로 빠지기 쉽다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이고, 능력주의 정치체제가 (선거민주주의와 달리) 일거에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능력주의가 선거민주주의에 대한 실제적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은 그 원리가 주류 정치문화에서 익숙한 것이고, 지난 30년간 그 원리에 따라 정치체제가 ()구축되어 왔으며, 향후의 개선도 지금 만들어져 있는 모델 위에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 더 상세히 논할 것이다.)

[17] 엄밀히 말해서 중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정치적 견해의 이념스펙트럼 위에서 내 책은 중간쯤 위치일 것이다. 왼쪽에서는 사회주의 신봉자들과 중국적 특색의 민족주의자들이 국민투표나 언론의 자유 확장에 반대할 것이고, 오른쪽에서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지지자들이 최고지도부의 투표 선출에 반대하는 내 주장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서방 독자들 중에는 이 책 내용을 도발적인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 뜻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서방 사회에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서양식 민주주의 이해에 비해 서양인들의 중국식 능력주의 이해가 크게 뒤쳐져 있다. 그 간격을 줄여 대칭성에 접근하자는 것이 내 듯이다. 언제고 중국인과 서양인이 이념적 간극이나 문화적 오해 없이 격조 높은 정치 토론을 벌이게 되는 날이 오기 바라며, 내 노력이 그런 방향으로 조그만 공헌이라도 될 수 없다면 나는 깊은 보람을 느낄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