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8. 13:46

 

박사학위논문을 심사받을 때 심사위원 5인 중 내 연구스타일을 부정적으로 본 위원이 두 분 있었다. 한 분은 정면으로 내 논문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기술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정도였는데(내가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한 분은 회의 석상에서 감정까지 드러내며 내 논문과 나를 매도했다. 그중 적나라한 표현이 이런 것이었다. "이건 연구논문이 아니라 소설이에요!"

 

내 논문의 가치를 지지하던 한 분의 이 발언에 대한 반응이 재미있었다. "소설이라...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전공분야가 먼 입장이라 심사 맡으면서 논문 읽을 일을 큰 고역으로 예상했는데, 막상 붙잡고서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어요. 참 쉽고 재미있게 썼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떻게 그 논문이 통과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통과에는 심사위원의 전원 찬성이 필요한 건데... 심사위원 사이에 꽤나 심각한 갈등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통과가 결정된 뒤, 은근히 반대해 온 분의 말씀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김 선생, 통과는 시켜주지만 이 논문은 완전한 게 아니니까 그대로 출판하거나 할 생각 하지 마시오." 어떻게 해야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아직까지 출판을 못하고 있다.

 

당시 나는 교수직에서 물러나 연구와 활동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역사소설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떠올리고 있었는데 학위논문을 소설로 보아주는 분이 있었다는 것이 참 고무적이었다. 그래서 가상편지 형식으로 습작 단편을 몇 편 만들어봤는데, 그중에 <역사비평>에 실은 것도 있다.

 

장편소설을 위한 구상도 해봤다. 초기 서학(西學)에 보유론(補儒論)에 입각한 경세(經世)적 경향과 신앙적 경향이 엇갈려 있었다는 사실을 19세기 전반 박해기 상황 속에서 부각시키는 작품이 그럴싸하게 생각되었다. '유방제(劉方濟)'란 이름으로 알려져 온 중국인 신부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산이 유방제 신부에게 선종했다는 대목이 달레 <교회사>에 있는데, 주문모(周文謨) 이후 조선에 온 두 번째 중국인 신부인 유방제는 프랑스(외방전교회) 신부들과의 갈등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조선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다. 유방제는 다산의 경세젹 경향에 통하는 사람이었고 신앙을 절대시하는 프랑스 신부들과 그 점에서 부딪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차례 정리해서 <교회사연구>에 실은 글이 있다. 한중수교 이후 중국 자료에 접근이 쉬워지면서 유방제 신부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내 추측이 합당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에는 장편소설의 시도가 벅차게 느껴졌다. 뼈대는 세울 수 있어도, 살 붙이는 일이 엄두가 안 났다. 숨을 불어넣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구상만 좀 해보다가 덮어놓고 말았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된 것이 지난 여름 제도권 연구프로젝트에 참여를 권유받은 일이다. 무척 반가운 일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제도권 기준을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20년간 공부를 진행해 온 지금에 와서 그런 제안을 받는다는 데 내 공부의 가치를 인정받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차분히 생각해보면서, 반가운 제안이라 해서 무조건 받아들일 일인지 되씹어보게 되었다. 내 방식의 공부를 쌓아온 결과, 제도권 기준에 따른 학술논문 아닌 '에세이'라는 표현방식을 찾아냈다. 인세 수입이 빈약하기는 해도, 공부의 성과를 사회에 전하는 데는 그만하면 성공한 셈이다. 이제 나이도 나이인데, 공부를 더 넓히기보다 지금까지 빚어온 성과를 사회에 더 잘 전하는 길에 노력을 집중할 단계 아닐까? 연구지원비가 크다 해서 넓은 길로 나오던 내가 좁은 길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내 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제를 수행한다 해서 내가 아주 제도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더 넓은 길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소설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연구논문에서 에세이로 길을 넓혀 나왔지만, 에세이라도 나는 학술문헌의 한 형태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도 학술문헌의 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큰 가치를 인정받은 소설 중에는 그런 성격의 작품도 많이 있지 않은가.

 

20년 전 역사소설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던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소설이란 표현방법을 취할 만한 자세가 이제 꽤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예전에 얽매여 있던 많은 집착에서 벗어나 관조하는 자세로 옮겨왔기 때문에 '사람 이야기'를 펼치는 데 거리낌이나 얽매임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전주에 격주로 다니면서 일상적 작업에서 벗어난 며칠간의 '휴가'를 갖게 되면서 이 생각을 집중적으로 굴려보게 되었다.

 

이번 주초에 다녀오는 동안 구체적인 구상이 떠올랐다. 꽤 그럴싸한 틀이 될 것 같다.

 

두 편의 소설로 연작을 이루는 것이다. 한 편은 역사소설 <1945>. 연합국의 승세가 굳어지는 단계에서 독일 항복, 일본 항복을 거쳐 모스크바외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서양인들과 조선인들의 입장과 태도를 대비시켜 펼쳐 보이는 것이다. <해방일기> 작업으로 내용이 확보되어 있고, 재미있는 읽기를 통해 '해방'의 의미를 우리 사회에 깊이있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든다.

 

또 한 편은 공상소설 <2045>. SF(science fiction)보다 PF(political fiction)로 생각한다. 제일 비근한 모델로는 헉슬리가 떠오른다.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생각을 담고 싶다. 원자론적 원리가 퇴조하고 유기론적 원리가 득세하는 상황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 것인가. 종래의(근대세계의) 패권 교체 양상과 달리 인간세계의 복잡성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 때문에 퇴조하는 세력도 존재가 용납되는 상황을 그려보고 싶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계를 놓고는 명쾌한 논설이 잘 나오고 있지만, 그 대안에 관한 담론은 무척 빈약하다. 그 중요한 이유 하나가 '보이는 것'에 얽매이는 근대학문의 성격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안의 주된 내용이 지금까지 통용되는 연구방법으로 잘 포착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소설 같은 표현방법에서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착수할 <서세동점의 끝>은 근현대사의 해석과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생각을 연결해서 정리하는 것이다. 반 년가량 그 작업을 하면서 그 뒤에 소설 집필에 착수할 수 있을지 궁리하고, 판단이 서면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내 작업에 관심 가진 이웃들의 의견도 열심히 듣고자 하는 뜻에서 아직 설익은 생각을 여기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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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