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논문을 심사받을 때 심사위원 5인 중 내 연구스타일을 부정적으로 본 위원이 두 분 있었다. 한 분은 정면으로 내 논문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기술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정도였는데(내가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한 분은 회의 석상에서 감정까지 드러내며 내 논문과 나를 매도했다. 그중 적나라한 표현이 이런 것이었다. "이건 연구논문이 아니라 소설이에요!"

 

내 논문의 가치를 지지하던 한 분의 이 발언에 대한 반응이 재미있었다. "소설이라...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전공분야가 먼 입장이라 심사 맡으면서 논문 읽을 일을 큰 고역으로 예상했는데, 막상 붙잡고서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어요. 참 쉽고 재미있게 썼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떻게 그 논문이 통과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통과에는 심사위원의 전원 찬성이 필요한 건데... 심사위원 사이에 꽤나 심각한 갈등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통과가 결정된 뒤, 은근히 반대해 온 분의 말씀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김 선생, 통과는 시켜주지만 이 논문은 완전한 게 아니니까 그대로 출판하거나 할 생각 하지 마시오." 어떻게 해야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아직까지 출판을 못하고 있다.

 

당시 나는 교수직에서 물러나 연구와 활동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역사소설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떠올리고 있었는데 학위논문을 소설로 보아주는 분이 있었다는 것이 참 고무적이었다. 그래서 가상편지 형식으로 습작 단편을 몇 편 만들어봤는데, 그중에 <역사비평>에 실은 것도 있다.

 

장편소설을 위한 구상도 해봤다. 초기 서학(西學)에 보유론(補儒論)에 입각한 경세(經世)적 경향과 신앙적 경향이 엇갈려 있었다는 사실을 19세기 전반 박해기 상황 속에서 부각시키는 작품이 그럴싸하게 생각되었다. '유방제(劉方濟)'란 이름으로 알려져 온 중국인 신부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산이 유방제 신부에게 선종했다는 대목이 달레 <교회사>에 있는데, 주문모(周文謨) 이후 조선에 온 두 번째 중국인 신부인 유방제는 프랑스(외방전교회) 신부들과의 갈등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조선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다. 유방제는 다산의 경세젹 경향에 통하는 사람이었고 신앙을 절대시하는 프랑스 신부들과 그 점에서 부딪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차례 정리해서 <교회사연구>에 실은 글이 있다. 한중수교 이후 중국 자료에 접근이 쉬워지면서 유방제 신부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내 추측이 합당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에는 장편소설의 시도가 벅차게 느껴졌다. 뼈대는 세울 수 있어도, 살 붙이는 일이 엄두가 안 났다. 숨을 불어넣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구상만 좀 해보다가 덮어놓고 말았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된 것이 지난 여름 제도권 연구프로젝트에 참여를 권유받은 일이다. 무척 반가운 일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제도권 기준을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20년간 공부를 진행해 온 지금에 와서 그런 제안을 받는다는 데 내 공부의 가치를 인정받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차분히 생각해보면서, 반가운 제안이라 해서 무조건 받아들일 일인지 되씹어보게 되었다. 내 방식의 공부를 쌓아온 결과, 제도권 기준에 따른 학술논문 아닌 '에세이'라는 표현방식을 찾아냈다. 인세 수입이 빈약하기는 해도, 공부의 성과를 사회에 전하는 데는 그만하면 성공한 셈이다. 이제 나이도 나이인데, 공부를 더 넓히기보다 지금까지 빚어온 성과를 사회에 더 잘 전하는 길에 노력을 집중할 단계 아닐까? 연구지원비가 크다 해서 넓은 길로 나오던 내가 좁은 길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내 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제를 수행한다 해서 내가 아주 제도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더 넓은 길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소설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연구논문에서 에세이로 길을 넓혀 나왔지만, 에세이라도 나는 학술문헌의 한 형태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도 학술문헌의 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큰 가치를 인정받은 소설 중에는 그런 성격의 작품도 많이 있지 않은가.

 

20년 전 역사소설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던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소설이란 표현방법을 취할 만한 자세가 이제 꽤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예전에 얽매여 있던 많은 집착에서 벗어나 관조하는 자세로 옮겨왔기 때문에 '사람 이야기'를 펼치는 데 거리낌이나 얽매임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전주에 격주로 다니면서 일상적 작업에서 벗어난 며칠간의 '휴가'를 갖게 되면서 이 생각을 집중적으로 굴려보게 되었다.

 

이번 주초에 다녀오는 동안 구체적인 구상이 떠올랐다. 꽤 그럴싸한 틀이 될 것 같다.

 

두 편의 소설로 연작을 이루는 것이다. 한 편은 역사소설 <1945>. 연합국의 승세가 굳어지는 단계에서 독일 항복, 일본 항복을 거쳐 모스크바외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서양인들과 조선인들의 입장과 태도를 대비시켜 펼쳐 보이는 것이다. <해방일기> 작업으로 내용이 확보되어 있고, 재미있는 읽기를 통해 '해방'의 의미를 우리 사회에 깊이있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든다.

 

또 한 편은 공상소설 <2045>. SF(science fiction)보다 PF(political fiction)로 생각한다. 제일 비근한 모델로는 헉슬리가 떠오른다.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생각을 담고 싶다. 원자론적 원리가 퇴조하고 유기론적 원리가 득세하는 상황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 것인가. 종래의(근대세계의) 패권 교체 양상과 달리 인간세계의 복잡성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 때문에 퇴조하는 세력도 존재가 용납되는 상황을 그려보고 싶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계를 놓고는 명쾌한 논설이 잘 나오고 있지만, 그 대안에 관한 담론은 무척 빈약하다. 그 중요한 이유 하나가 '보이는 것'에 얽매이는 근대학문의 성격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안의 주된 내용이 지금까지 통용되는 연구방법으로 잘 포착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소설 같은 표현방법에서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착수할 <서세동점의 끝>은 근현대사의 해석과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생각을 연결해서 정리하는 것이다. 반 년가량 그 작업을 하면서 그 뒤에 소설 집필에 착수할 수 있을지 궁리하고, 판단이 서면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내 작업에 관심 가진 이웃들의 의견도 열심히 듣고자 하는 뜻에서 아직 설익은 생각을 여기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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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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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18 16:27

    선생님께서 <1945>,<2045> 순산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겠습니다. 너무 멋진 생각을 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2. 2015.12.21 13:53

    사람들이 문학작품에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상상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제가 역사를 전공하였으면서도 '역사'를 딱딱하고 재미없어 하다가 좋아하던 영화나 음악과 같은 시각적인 것보다도 교수님의 글을 더 재미있어 하게 된 것은 내용의 폭넓음과 한계를 두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모든 분야에서 스토리텔링식 방식이 각광받고 있고, 역사교육에서도 '스토리텔링식 역사' '역사적 상상력'이 가 중요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만큼 역사학술의 제도권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동시대를 살아온 서양인들과 조선인들의 입장을 대비시키는 것도 조선인의 입장 위주로 설정해왔던 역사 공부에 한 걸음 더 나가는 것이요, '사회 진화론'에 토대를 둔 서세동점의 상황에서 인간세계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퇴조하는 세력의 존재를 용납하는 상황을 소설로 쓰면 우리가 그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을 접해보게 되겠습니다. 기대됩니다!
    이번 주는 크리스마스가 있군요.
    '메리 크리스마스!'
    '하늘에는 천주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이에게 평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기원하고, 교수님께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3. 2015.12.23 12:54

    메데님, 사향님 격려 고맙습니다. 이 일은 확실한 자신이 없는 일이죠. 평생 않던 짓을 경로우대증 받은 뒤에 하겠다고 나서면서 자신감이 있다면 미친넘이겠죠. 이제 공부를 더 넓힐 단계는 아니고 사회에 잘 전하는 데 노력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궁리해 보는 방향인데, 그 길을 꽤 알 만한 주변 분들이 고무적인 반응을 보여주기에 바짝 살펴보려 하고 있습니다. 실행에 이르기까지는 생각을 더 키워야 할 것이 많은데, 여러분 도움을 부탁드리는 뜻에서 지금 단계 생각을 적어놓았습니다.

    • 2015.12.24 13:10

      소설 생각 올려놓고 1주일이 되는군요.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뿐, 과연 실행할 수 있을지 저 자신도 궁금한 일인데, 그 동안 주변에서는 환영해준 분들도 있고 걱정해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여러 분 가르침을 얻으면서 더 생각하게 된 것은, 지나친 자신감을 가져서는 안 될 일이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교양서는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빚어나가는 식으로 작업할 수 있었는데, 주관에 초점을 맞추는 소설작품은 스스로 익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군요. 무엇보다, 서두르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4. 2015.12.25 12:43

    선생님 새 글이 뜨면 형식, 주제 가리지 않고 읽고 봐야 합니다. 새 책을 바로바로 사지 못하는 것이 다만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사는 곳이 중국의 대도시지만 배달 사고를 겪은 뒤로 인터넷 구매할 용기가 나지 않아, 들어가서 구입하거나 들고 올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5. 2015.12.28 21:56

    단도직입적으로.
    주제넘은 참견이 확실합니다만.

    서양식 근대화가 시작되기 전..
    우리의 잊혀진 민족문화속에는..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정치철학이 있었죠.

    동학혁명의 사상철학이 그것을 증명하고..
    우리민족의 양심. 정의를 위한 투쟁성등이..
    근대화에 비례해서 사라지는 현상이 반증하죠.

    인내천은 천주교리에 대한 반박으로써..
    종교색이 전혀없는 유물론적 역사관...
    과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사상철학이죠.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
    새로운 역사관이 생기게 되던데요.

    홍익인간이라는 정치철학을 구현하던 집단이..
    자본의 생태적 특성인 약육강식에 도태당한것..

    즉.. 조선 이라는.
    고도의 문화적인 시스탬으로 운영되던 인간사회가..
    무력.금력을 앞세운 야만적인 침공에 대처 하려면..
    시스탬을 바꾸고 병사와 병장기를 동원해야 하는데..

    홍익인간에 너무도 익숙해있던 조선 조정은..
    짧은 시간 무차별 살생을 도저히 수용할수 없기에..
    결국 망국을 각오한 최후일전 "쇄국"으로 대응한것..

    이후 "척화비"로써 후대에 경각심을 일깨우며 망국..
    당시의 서구열강 영.미.프.러.의 등살에 어쩌지못함.
    이후 고종은 서구열강의 괴뢰 군주로써..
    그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던 허수아비..

    당연히 조선에 국정은 엉망진창이 될수밖에 없었고..
    백성들의 실생홯을 유지해주던 시스탬이 사라지고..
    오히려 서세를 등에업은 탐관오리만 설치게 되니..
    애국애민정신으로 동학혁명이 일어난건 당연지사..

    그러나 서구열강들에 무차별 살육전을..
    당해낼순 없었고 이후 "청우당"으로..
    명맥을 이어가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뜬금없이.. 실례인줄 압니다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정치철학을 더해보시길.....
    서양문명의 종말은 역사발전에 합법칙적 귀결이고..
    그 이후에는 당연히 동양문명이 재림할겁니다.

    그간의 아품을 극복한 댓가로써..
    좀더 온전한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정치철학을 장착한 집단이..
    현재 커가고 있습니다.^^.
    "자주사상"

  6. 2016.01.02 12:38




    <1945>는 김병로-이인-허헌 3총사를 중심으로 그리려 합니다. 해방 시점까지는 민족주의 변호사로 비슷한 평판을 누리던 이들인데, 그후 길이 극적으로 갈라지죠. 허헌은 극좌로 가서 박헌영과 단짝이 되고, 이인은 극우 반공으로, 그리고 김병로만이 중도적 민족주의자로 남지 않았습니까? 8-15까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억제된 상황이었으니 직업상 회동 기회가 많았던 이 세 사람과 그 주변사람들 사이의 대화에 비중을 두고, 8-15 이후는 전면적 상황 변화를 그리는 가운데 세 사람의 행로가 엇갈리는 모습을 넣으면 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행적을 보인 2세 몇 분까지 출연시키면 입체성에 도움이 될 것 같고요.

    <2045>는 60대의 사람 몇이 3-40대의 사람들을 이끌고 80대 사람 몇이 은거해 있는 산골로 찾아가는 여행 중에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서술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80대라면 886세대겠죠. 60대라면 지금의 30대. 청년기에 1987년을 겪은 원로들에게, 청년기에 지금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 당시의 젊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서 함께 지난 날을 회고하며 당시의 상황을 음미하는 장면입니다. 그때는 에너지값이 너무 비싸서 차량이 줄어들고 지금의 자동차전용도로가 대부분 자전거전용도로로 전환되어 있지요. 급히 가려면 전주까지 기차로 가서 자전거로 월성마을까지 두어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중요한 회의의 구성원들인 이 여행자들은 1주일 동안 자전거로 가면서 전자기기를 통해 회의도 진행하고 일상적 업무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두 작품을 잇는 축은 '사회주의'입니다. 1820년대에 처음 표현이 나온 사회주의는 개인주의-원자론에 맞서는 입장이었죠. 그런데 1848년의 <공산당선언>에서 공산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로 포장하면서 원래의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로 폄하, 배제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원자론적 관점을 자본주의와 공유하는 입장이었으니 공산주의가 주체가 된 좌-우 대립은 유기론적 세계관을 손 잡고 배척하는 적대적 공생관계로 냉전시대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유기론적 사회주의의 싹을 지키고 티운 것은 동아시아의 자생적 공산국가인 중국과 베트남이었고요. 1990년경의 냉전 해소로 원자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적대적 공생관계가 무너지면서 유기론적 사회주의의 본격적 발전이 시작되었고, 2045년경까지는 좌익사상 아닌 진정한 '사회주의'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빚어냅니다. 자본주의세력이 아메리카-아프리카 등 몇몇 지역에 거점을 지키고 있지만 유라시아 대륙은 거의 전체가 사회주의체제로 편성됩니다. 이 체제의 관리자인 중국이 굳이 자본주의세력의 박멸에 나서지 않아도 자본주의세력이 주변부로 활용할 영역이 축소되어 그 체제 모순의 극단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체제를 거부하고 사회주의체제를 지향하는 운동이 자본주의 세력권 내에서 확장-강화되는 장면을 그리려고 합니다. 한국은 여러 개 단위가 결합된 연방국가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 단위가 사회주의체제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인 데 반해 영남지역만 자본주의체제를 지키고 있고, 그중 남부지역에서 사회주의체제로 전환하려는 압력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합니다. 사회주의체제의 구체적 내용은 <논어> 등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그리려 합니다.

    (관심 가져주시는 한 분 선생님께 메일 드리면서 연말까지의 구상 내용 설명드린 것을 옮겨놓습니다.)

    • 2016.01.03 13:29

      그동안 선생님 글들을 읽으면서..
      그 지식의 깊이와 냉철하고 논리적인 생각틀에 압도되어서..
      감히 참견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문천님의 소설? 구상은 정말 창조적이란 생각에.. 용기내어 참견하고 있네요.^^.
      제가 살고있는곳이 전주인데.. 소설속에서 전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치신다니..
      반가운마음에 또다시 참견함을 용서하소서.

      해방정국.. 엄밀히 말하면 해방정국이 아니고.. 미국(서양)의 간접 지배체제를 직접 지배체제로 바꾸려는 전환기로 봐야죠.

      19세기말 망국조선이 동양문명에 최후의 보루였고.. 그 동양문명을 지우는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반면에.. 동북지방 항일연군의 기세가 간접 지배체제를 위협하고 있었기에.. 미국 입장에서 1945년은 불가피한 선택이였죠.
      그러므로..
      문천님의 좌파.. 우파.. 중도파.. 지칭은..
      미국의 입장일뿐 민족주의의 입장이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즉.. 현재는 그 표현에 아무런 저항감도 없겠지만..
      미국시대가 저물어가는 딱 그많큼에 불편함으로 남으리라 예상됩니다.
      물론.. 그 시점은 북미대결전의 진행과 맞물릴거기에 정확히 예측할순 없지만..
      앞으로 10년 이내일 가능성이 많아보입니다.
      이렇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그동안 보이지않던 새로운 사실도 보이고..
      역사에 이음세가 보다더 선명하게 들어나고.. 미래예측도 약간씩 달라질것 같습니다.

      저는 지식인도 아니고 글쟁이?도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노동자로써.. 오직 독서와 눈팅.. 사색으로.. 오래동안 역사공부를 해오면서 얻게된.. 동양문명(홍익인간 사회주의)과 서양문명(약육강식 자본주의)간..
      문명전쟁의 역사인식 이라는..
      나름의 성과를 나누어서.. 좀더 좋은 소설의 탄생에 일조 하고푼맘 뿐입니다.^^.

    • 2016.01.04 15:31

      전주로 오신다니.... 하하..
      전주로 오시면 한번쯤 뵙고푼맘 간절하네요. 만나면 겉멋으로 참견질하는 행태도 꾸짖어 주시구요.^^.
      솔직히 지식인들의 꽉막힌 사고방식 때문에.. 먹물이란 비아냥을 일삼곤 했었는데..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지식에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한번더 각성합니다.
      지식을 대하는 그 도덕적 순수함이..
      고정관념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유에 원동력이 아닐까도 싶구요.

      운암저수지가 멀지않은 신덕면이면..
      전주 효자동이나 평화동에서 왕래하시면 좋겠네요. 요즘은 전주시내도 교통체증이 있어서.. 예전 고즈녁한 도시풍경이 많이 사라졌죠.

      저도 본가인 임실 삼계면에 노모가 계신지라.. 주말마다 다니면서 농사일을 거들고있는데.. 송천동에서 삼계까지 승용차로 딱 한시간.. 그곳은 신덕보다 더 외진 산골마을입니다.^^.

    • 2016.01.22 15:31

      역사나무님 반갑습니다. 전주 계시며 역사 공부 하신다니... 저도 금년 가을쯤 전주로 살림을 옮겼으면 하고 있죠. 시내의 오래된 동네에 거처를 정하고 부근의 산수 좋은 곳에 서재를 꾸리는 꿈을 꾸고 있어요. 앞에 말한 '월성마을'은 임실군 신덕면에 있는 산골마을이죠. 임실이지만 전주 시청에서 불과 십여 킬로미터 거리인데, 참 조용한 곳이라서 마음이 갑니다.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사람이 따로 취재하러 다닐 필요 없이 그런 곳을 배경으로 활용할 생각을 합니다.

  7. 2016.01.02 13:21

    어서 빨리 두 작품을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도 선생님과 사모님 두 분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2016.01.03 23:29

      메데님도 객지에서 건강 잘 지키세요. 지내는 곳 사정도 좀 전해 주셨으면. 몇 해째 중국에도 별로 가 보지 못하고 지냅니다.

  8. 2016.01.04 10:10

    허헌에 관해서는 심지연의 <허헌 연구>를 읽어, 해방 직후(건준에서부터) 그의 극좌노선을 알고 있습니다. 이인의 공산주의 알레르기는 그 동생 이철과 제 아버님의 관계를 통해 알게 된 것이고요. <역사 앞에서>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인(仁)씨는 바로 그때 검찰총장으로 있어서 그 아우 철의 행동이 눈의 가시이고, 더욱이 철이 그 조카인 인의 아들딸들을 붉게 물들인다 하여 인은 노발대발, 가정에선 "철이 우리 집안을 망치는 놈이다" 하고 울부짖고 신문기자들을 인견하고선 "철 같은 놈은 잡아 죽일 수밖에 없다"고 성언하였다는 것이다. (...) 나는 부득이 인씨를 직접 만났다. 미리 하[상용]씨에게 부탁해서 내가 철과는 인간적으론 친해도 공산주의자는 아니란 것을 분명히 밝혀서 소개받고 그 말을 꺼내니 "선생 모처럼 오셨으니 우리 이야기나 하고 놉시다. 철 말은 아예 마십시오. 그놈은 인간이 아니랍니다" 하고 나서 공산당은 파괴를 일삼는 강도집단일 뿐 아니라 살부회를 조직하는, 이 하늘 아래 용납할 수 없는 궁흉극악한 도배라는 것을 최근의 형사 사건에 나타난 예를 들어가면서 장광설을 늘어놓으신다. 이렇듯 공산당에 대한 혐오감이 머리끝까지 사무친 이분의 주위에 그 아들과 딸을 비롯하여 동생, 누이동생, 조카, 모두가 철의 편에 동조함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대의 장난이요, 민족의 비극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1950. 7. 20)

    김병로는 한민당 중심인물의 하나였는데(총무) 46년 1월 원세훈과 함께 좌우합작에 나섰다가 한민당 주류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고, 7월에 사법부장에 취임하면서 형식상 당적을 정리하고 있다가, 10월에 좌우합작 7원칙이 나오고 원세훈이 다시 뒤통수를 얻어맞을 때 7원칙을 지지하는 담화를 발표했죠. 실질적 당적까지 정리하는 뜻을 품은 담화였다고 봅니다. 그후 대법원장을 지낼 때까지 제대로 된 사법부를 만드는 데 전념하면서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지향은 중간파와 같았다고 봅니다.

    (역시 관심 가져주신 선생님께 보낸 메일의 한 대목입니다.)

  9. 2016.01.23 10:36

    30년 후의 국제공용어는 手話?
    전주의 설경 속에 며칠 쉬는 동안 공상을 좀 더 펼쳐봤습니다.
    강자의 언어가 국제공용어로 군림하던 풍조도 앞으로 바뀌지 않을지? 언어의 평등을 위해 에스페란토운동이 있었죠. 그 정신이 장래의 국제질서 속에서는 잘 살아날 것을 기대-희망합니다. 단, 그 정신의 실현을 위한 도구로서 에스페란토어보다 수화가 더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동영상의 제작-유통-보존이 쉬워진 기술조건의 변화가 수화의 언어 기능을 확충해 주고 있지요. 국제회의만이 아니라 국내의 공식 담화(국회 토론이나 정부 발표 등)에 수화를 병행하게 하면 좋은 효과가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통을 가장하면서 실제로 소통을 저해하는 거짓말, 억지, 말장난 따위가 수화의 표현에서는 많이 억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시민의 일상생활에도 수화가 병용될 때 사회성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저도 수화를 배워야겠습니다.
    (덧붙임) 수어의 매력 하나는 '아날로그' 특성입니다. 통신-소통 수단이 정확성 하나만을 추구하는 '디지털' 방식으로 쏠려온 것도 원자론적 세계관이 반영된 현상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수어를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정확성에 밀려났던 포괄성을 되살려 全인격적 소통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10. 2016.01.23 23:36

    For the people? Yes! Of the people? Maybe. By the people? No!

    공상정치소설로서 <2047>의 개념이 잡혀갑니다. 민주주의 발전의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그 한계와 문제점을 밝히는 데 목표를 두려 합니다. "인민에 의한" 원리를 하나의 쟁점으로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권리와 의무는 표리관계를 이뤄야 합니다. 그런데 참정권에 상응하는 의무는? '투표의 의무'에는 실질적 의미가 없죠. 투표 의무를 제도화하는 나라들이 좀 생기고 있지만, 강제 수단은 약소한 벌금 정도죠. 인민 중에는 상당한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참정권을 행사하려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부담은커녕 투표 자체도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있죠. 정치에 관심 없고 참정권도 원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정치과정에서 빼고 관심과 성의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참정권을 부여하는 운영방식을 생각해 봅니다. 참정권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분량의 정기적 정치교육(시민의 자질을 함양해 주는 내용)을 부과하고, 참정권을 거부하던 사람이 입장을 바꿔 참정권 회복을 원할 때는 집중적 정치교육과 함께 봉사활동을 부과하도록.

    • 2016.01.24 10:17

      <민주주의의 발전>..........
      민주주의를 논할때 본편적의로....
      그 문제점과 문제해결 방안을 제도에서 찾게되죠. 그래서 제도를 수정. 보완하는 것으로.. 문제해결을 시도 하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할수 없는 문제들이 남게되죠.

      이제는.... 민주주의의 근본 토대.....
      민(백성)의 의식성을 살펴봐야 합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선.악설을 떠나서....
      사람은 본시 자연환경을 개척하면서 진화했고..
      그 자연환경을 사람들에게 복무할수 있도록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주성과 창조성이 발현되고.. 또 단결과 협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이타심을 바탕으로한 의식성(양심)을 가진 존재로 진화된거죠.
      즉..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졌다고 볼수있는데..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선 반듯이.. 이 의식성(양심)을 높일수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 제도를 개선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인데....
      서세 근대화 과정에서.... 제도를 앞세우며....
      의식성(양심)을 말살하는 수많은 방법들을 들여와서.... 백성들을 우중화 시켜놓고.. 자본(돈)에 복무하는 노예화.. 했던 과정이 바로.. 근.현대사의 근대화 과정 이였죠.

      이제라도.. 그 우중화된 의식성(양심)을 되찾을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면.. 민주주의의 발전은 그 민들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질거라 사료됩니다.^^.

    • 2016.01.24 21:20

      의식성이라... 저는 시민의 의식성을 높이는 게 좋은 정치일까, 의문을 가집니다. 중국에서는 임금이 존재하는 줄도 백성이 모르게 하는 게 가장 훌륭한 정치라는 이야기가 있었죠.

      우중(愚衆)정치가 나쁜 것이라고 하는 관념을 저는 좀 뒤집어보고 싶습니다. 백성 하나하나가 자기 권리와 의무에 대해 엄격한 생각을 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요? 미국에서 변호사 비용이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전혀 부러운 일이 아닙니다. 대다수 인민은 권리와 의무를 빡빡하게 따질 필요가 없도록 사회를 운영해 주는 것이 좋은 정치라는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관념은 대중의 생각에 영향력을 많이 끼칠 힘을 가진 세력에게 유리한 건데, 그런 세력이 공익에 대한 헌신도가 높을 것을 꼭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죠. 공산당 일당독재가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는 비판의 대상이지만, 중국의 공산당이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권에 비해서는 공익 지향성이 큽니다. 그래서 대다수 인민은 정치 문제에 정신을 소모하지 않아도 큰 불만 없는 제도적 조건을 누릴 수 있고, 사회는 꽤 효과적으로 운영이 되는 거겠죠.

      유기론적 세계관을 사회에 적용하면 사회의 여러 섹터는 생물체의 여러 기관처럼 각자의 역할과 특성을 가진 겁니다. 생산하는 사람은 생산을,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를,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는 거죠. 근대 이전의 전통사회는 어느 문명권에서나 이런 원리에 따라 운영되었습니다. 그것을 '봉건적'이라 매도하고 '평등'의 이름 아래 각자의 적성, 취향과 관계없이 모두 정치적 '의식성'을 가지기 바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속성에 어긋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2016.01.24 23:20

      제가 말씀드린 의식성(양심)에 대한....약간의 오해가 있는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적인 의식성을 말하는게 아니구요.. 인간으로써 가져야할 기본적인 도덕성.. 즉.. 양심을 가진 인간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예절을 알지못하면.. 짐승만도 못할수 있는게 인간이란 생각이고...
      이익을 탐하는데 있어서도..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지 못하고.. 아니 무시해버리고.. 자신에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 인거죠.
      저는 상대방을 나와 같은 동둥한 인격체로 대하는 마음을 <양심>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간에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형평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될거구요.
      이런 사고방식이 사회적인 의식성으로 자리잡으면.. 정치행위를 최소화 시킬수 있을거라 사료됩니다.^^.

    • 2016.01.28 11:37

      "상대방을 나와 같은 동둥한 인격체로 대하는 마음" 나무님 말씀의 이 대목이 간간이 마음에 떠오르네요. 쉽게 공감이 가는 표현이지만, 좀 더 엄밀하게 따져볼 의미가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이가 꽤 들 때까지도 제가 일반 사람들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과 느낌을 갖고 살았습니다. 나이가 푹~ 들면서야 사람마다 존중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관점을 익히게 되었지요. 그 마음의 변화는 내가 중시해 온 가치기준만이 특별히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온갖 가치기준이 온갖 존재를 뒷받침해 준다는 인식의 변화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和而不同'의 이치를 중시하게 되었죠. 타인을 존중하기 위해 그를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저보다 머리가 덜 좋은 사람도 있고, 마음이 덜 착한 사람도 있고, 아는 것이 적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만이 각자의 존재가치를 뒷받침해주는 게 아니죠. 각자 나름의 기준에 따라 존재가치를 가지는 것이고, 그들의 기준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그들과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나무님 말씀하신 '동등한'의 뜻을 제가 너무 좁게 받아들여 까탈 잡는 면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점은 엄격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인간' 만을 바라본다면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 우리랑 함께 존재하는 다른 대상들까지 시야에 넣는다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마음 편할 수가 없지요.

      나와 남의 구분은 인간 문명의 근본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문명과 자연, 문명과 야만 사이의 구분 없이는 문명이 성립할 수 없죠. 그러나 이 단절에 따른 고통과 모순을 극복 내지 완화하기 위해 한편으로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노력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 근대문명의 속성입니다. 인간과 자연, 문명인과 야만인, 내 국가와 외부 사이에 철저한 장벽을 만드는 심성 속에서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말이 통합니다. 자연에 대한 학대와 인간 사이의 학대가 서로 이어진 것이라는 머레이 북친의 말을 제가 간혹 인용하죠. 우리가 문명인인 이상 구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근대인에게 익숙해진 과도한 구분지심에서는 벗어나야 불필요한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아직 헌법재판관의 수준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을 때니까 십년도 넘은 일 같은데,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한 지인과 잡담을 나누던 중 이 분이 재판관 한 명을 거명하며(한나라당 추천) 나쁜 놈, 더러운 놈으로 세상에 다 알려진 사람이 헌재에 자리 차지한 일이 참담하다고 핏대를 너무 올리기에 제가 김을 좀 빼준 일이 있죠. "우리 국민 중에 나쁜 놈, 더러운 놈 비중이 상당한데, 그런 사람들도 헌재에서 대표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작품 구상으로 돌아가서... 저는 30년 후에는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각자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하고자 하는 권리와 책임의 범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원리가 조정되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기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습니다.

    • 2016.01.31 11:22

      우문에 현답으로 대응 하시네요.^^.
      규칙. 규율. 로써 강압적인 동등함 <형평성> 을 추구 하기보다는.. 자율성에 기초할수있는 사회제도가 훨씬더 이상적 이겠죠.^^.
      .........
      <부도지>의.. 마고가 추구하던 이상세계.....
      스스로가 증명이 불필요할 정도의 행함을 유도하는.. 수증복본.. 자제율 조차도 거부하는 인간 본성이 완벽하게 수용되는... 진정한 유도피아 이상세계 였을거라 생각할수 있게죠..^^.......
      그 다음은 율법.. 환웅천제의 <무여율법>..
      세상에 남기지 말아야 할것 4가지를 정해서.. 인간들에 심성을 선한쪽으로 유도하는 율법시대는.. 사회발전에 따라서 약간 복잡해진 이해관계를.. 큰틀의 율법을 정함으로써.. 자제율을 강요한다고 볼수있죠.^^......
      그 다음 인간세상을 치세로서 운영하는..
      공자 맹자 중용. 등등 덕치. 시대를 거쳤고.. 현재는 한비자 이후의 법치. 시대의 연장선인데.. 금권과 무력독재가 판을치는 현대사회는.. <정치>라는 단어를 쓰는게 쪽팔린..
      언어도단 사기행각의 정치쑈 일뿐인듯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참고: 사회주의에 대한 제 생간의 단상.^^.
      유토피아적 이상을 꿈꾸려면....

      기본적으로 지배세력의 정치철학이..
      철저한 애민(홍익)정신에 기초해야 되고..
      홍익정신이 담보되는 구조도 만들어야..

      이런 애민정신으로 무장한 정치집단은..
      피치자와의 갈등보다 존경의 대상이니..
      명예와 권위. 권력을 한껏 지니며 장기집권..
      결코. 절대로. 손해가 아니라는 것..

      단지..
      그런 정치집단을 구성하고 유지하려면..
      엄청난 지혜와 노력들이 있어야 하므로..
      웬만한 사람들은 시켜준대도 못해서 싫어함.

      이와같이..
      홍익인세의 지혜를 구하면서 생성된게..
      그 공자왈 맹자왈 등등의 동양철학 들이고..
      애민을 실천하며 대대손손 노력봉사 한건..
      조선 조정과 그 왕들..^^.

      또한..
      이땅 조선에 백성들은..
      그런 조선조정과 상감마마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애민행보에..

      티끌만한 도움이라도 되어서..
      유토피아(부도) 건설에 이바지 하고자..
      하나같이 근면성실한 삶을 유지하며..
      주경야독으로 단련하고 깨우쳐서..
      그 고된 노역길에 출사하는걸..
      가문에 영광이라 여길정도..

      성군과.. 현민이.. 하나되어..
      동국조선 소도를 이끌어가며..
      만 천하에 그 모범을 보이니..
      천국을 닮고자 하는 중원천하는..
      굳이 위협 하지 않아도..
      태평성세..

      너무나 긴 세월 고인물..
      관료화 권위화가 진행되면서..
      사막 장사치들의 얍삽하고도..
      그 허접한 도전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이모냥 이꼴이 되어버림.

    • 2016.01.31 20:54

      '우문현답'보다는 '大問小答'이었죠. 나무님이 내놓은 큰 뜻을 놓고 저는 작은 틈새를 짚은 거니까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큰 뜻보다 작은 틈새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일종의 노쇠현상은 아닐지...

      근대세계에서 근대 이전의 시대가 나쁘고 더럽고 비참한 암흑시대, 야만시대, 미개시대였던 것처럼 선전하는 풍조에 갈수록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렇게 대다수 사람들이 극악한 불행 속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문명 발생 이래 수천 년간 그럭저럭 세상이 굴러올 수가 있었을까요? 역사에는 물론 참혹한 대목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문명사회 전체가 20세기처럼 총체적 위기에 빠지는 일은 별로 없었죠. 그 위기를 불러온 것이 근대문명의 특성이고 이제 그를 반성하며 다른 단계로 넘어갈 길목에 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음 단계의 구상에 있어서 전통시대를 폄하하던 근대 프로퍼갠더를 벗어나 전통 속에서 지혜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1. 2016.02.01 22:07

    당연히.. 큰뜻보다 작은 틈새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작은 현실적인 틈새들이.. 모여.. 모여.. 모여서.. 큰 뜻이 나타나는것 이기때문에.. 만약 실생활의 작은 틈새가 잘못 그려지면..
    당연히 큰 뜻도 변형 될수밖에 없을듯요.^^......
    그리고 전통에서 교훈을 얻으려 한다는 말씀..
    깊이 공감합니다. 환경이 다르니 그대로 적용하는건 불가능 할태지만.. 좋은 전통을 응용하는건
    얼마든지 가능하단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지만.. 조선시대 대략적인 사회구성을 추론해볼까 합니다.^^... 왕과 조정. 행정부등은 많은 기록들이 있으니 생략하고.... 일단.. 조선의 정치는.. 무여율법을 근간으로 한 <덕치>였을겁니다..
    실록에 기록된 노비관련 상소가 22만건이상 검색된걸 보면.. 왕의 중요업무중 하나가 법관인데.. 대부분 담당관원 또는 정승들에 조언을듯고 재가하는 형식으로 일처리를 하고.. 논란이 있을경우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기도 합니다.
    또한 경제적인 운영은 각 가족. 가문. 문중들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보장 했을것 같습니다.
    각 성씨들이 자율적인 가업을 잃으키고.. 그 흥망도 스스로 책임지는 가족중심 자율경제....
    단.. 상도의나..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들을 엄격하게 제지하는.. 무여율법에 근거한 자율경제 였을듯 싶습니다.^^..... 그래서 충과 효가 인간심성에 기본적인 인륜으로 자리잡고.. 양심적이지 못한것은 공분을 불러서 패가망신 하게되는 사회.. 조선의 시대상 일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정리하지 못한생각 너무 두서없음을 혜량...^^.

  12. 2016.02.11 19:20 신고

    소강(小康)세계 그리는 것을 <2047>의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세대 후의 상황에 대한 희망적 예측을 담을 생각을 해왔는데, 내 능력으로는 희망적 예측을 내놓기에 한계를 느끼는 문제들이 있어요. 그런 문제들을 가만 생각해 보니, 인구, 의술, 자원 등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것들입니다.

    권력, 정치구조 등 사회조직방법을 놓고는 나름대로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한데, 인간의 존재 문제는 생각할 수록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식견이라고 하는 것이 역사 공부에서 얻은 건데, 인간사회 내의 조직방법은 근대세계에서 억눌려 있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되살림으로써 대충 해결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연과의 관계, 즉 문명의 존재 문제는 역사의 경험만으로 제대로 다루기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명 자체가 자연과의 대립이란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 대립의 의미가 근대사회에서 극적으로 심화된 것인데, 근대 이전에도 옅게나마 깔려 있었던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나친 욕심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세대가 지난 30년 후,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해결의 길은 찾아놓고 있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는데, 목표를 더 낮춰서, 피상적인 문제를 벗어나 본질적 문제를 직시하는 상황 정도로. 인간의 존재, 문명의 존재 문제가 본질적인 문제죠. 근대인은 사회조직방법이라는 피상적 문제에 얽매여 본질적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상황에 있었는데. 이제 정신 차리고 본질적 문제를 바라보는 단계에라도 30년 후에 이를 수 있기 바라는 생각입니다. 이 본질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피상적 문제를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겠지요.

    '대동'에는 이르지 못해도 지금의 혼돈에서는 벗어나는 단계를 '소강'이라 한다면, 이렇게 새로 설정하는 30년 후의 상황을 '소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