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에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성행한 것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민족주의가 맡은 역할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상의 공동체”니 “발명된 전통”이니 하는 말이 유행했다. 1983년에 출간된 책, 베네딕트 앤더슨의 Imagined Communities 와 에릭 홉스봄과 테렌스 레인저가 엮은 책 The Invention of Tradition 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후반의 동유럽이나 20세기 중엽 식민지에서 해방되던 많은 지역에는 이런 말이 합당하다. 영국과 프랑스가 국민국가로 일어서자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뒤이어 동유럽 여러 지역에서 국민국가 수립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또, 20세기 전반까지 유럽 국민국가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도 지배국을 모방하는 방향으로 일어났다. 이런 맥락의 ‘nationalism’에는 ‘민족주의’보다 ‘국민주의’란 번역이 더 맞을 것 같다.
근세 이후 국가의 형태를 갖춘 이런 지역과 달리 동아시아 지역에는 ‘민족국가’라 할 만한 국가들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그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바로 한국이다. 적어도 고려 초기 이래 1천 년간 하나의 언어와 균질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 한반도의 영역에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민족주의의 바탕이 되는 ‘민족의식’은 한민족에게 ‘천성’에 버금갈 정도로 깊이 새겨져 있는 특성이다. 인류 역사의 필연이라고 하는 세계화가 민족주의를 정녕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한민족도 민족의식을 버리거나 억눌러야 한다면 많은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민족은 세계화에 가장 적응하기 힘든 인구집단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식을 버리려 애쓰기 전에 세계화가 지향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에도 기실 민족주의가 바람직한 요소가 될 수 있어서 한국인의 강한 민족의식이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전 세계가 하나의 체제로 편성된다고 할 때 우리는 얼른 근대 국민국가를 그 모델로 떠올리기 쉽다. 국민국가는 독립적 개체인 ‘국민’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하나의 국가가 개인으로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과 관계를 갖는 것이다.
국민국가가 유럽에서 대거 형성되던 19세기는 ‘과학의 시대’였다.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과학으로 옮겨갈 때였다. 그리고 그 시대 과학을 지배한 것이 원자론이었다. 물질이 독립적 원자로 구성되는 것처럼 국가도 독립적 개인으로 구성된다는 ‘국민’ 개념은 원자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9세기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도 원자론에 입각한 개인주의-자유주의 방향으로 발전했다.
원자론은 19세기말에 무너졌다. 자연과 사회가 모두 유기체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는 근대 이전의 유기론이 회복되고 있다. 국가 내의 원자론적 국민관도 재검토를 필요로 한다. 개인의 파편화를 통해 강자의 횡포를 방치하는 무질서 경향이 반성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원자론적 세계관이 정치적 세계화를 어렵게 해왔다. 정치적 세계화가 이뤄진다면 인류의 모든 구성원이 개인으로 참여하는 체제가 아니라 많은 집단과 조직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 민족처럼 뚜렷한 실체를 가진 집단의 구성원들이 더 유리한 조건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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