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냉전 종료 선언을 들으며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소련이 ‘악의 제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냉전을 빌미로 일어났던 많은 나쁜 일들이 이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꽤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 나라도 이제 좋은 쪽으로 많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었다. 그 나라의 나쁜 측면으로 보이던 것이 대개 냉전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힘겨운 가상적이 없어진 만큼 외부 세계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에 여유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세계경찰’이란 말이 통한 것이다. 한 국가 내에서 경찰이 ‘공익을 위한 폭력’을 맡는 것처럼 미국의 그 막강한 군사력 운용이 조금이라도 더 인류의 공익을 향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담은 말이었다.

 

1990년대에 많이 쓰이던 이 말이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아마 2001년 9-11테러가 이 말이 사라진 계기가 아니었던가? 미국이 지나치게 호전적인 태도를 보일 때 “세계경찰이 저래도 되는가?” 하던 비판의 기준이 이제는 없어졌다. 미국에게 남들 입장 생각해 줄 여유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다.

 

냉전 종식을 계기로 미국인의 생활이 좋아진 것 같지도 않다. 냉전 종식 후 미국에 가본 일이 없어 실정을 잘 모르겠지만, 뉴스나 책을 통해 접하는 미국의 풍경은 그때보다도 살기 힘든 쪽으로 많이 변한 것 같다.

 

냉전 종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냉전 시대에는 나쁜 일의 원인이 모두 냉전 상태에 있고, 상대방을 쓰러트려 냉전을 끝내기만 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선전에 파묻혀 살았다. 그런데 막상 냉전은 종식되었는데 더 좋은 세상은 온 것 같지 않다. 미국인에게조차도.

 

그래서 냉전 종식이 미국이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 부득이해서 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볼 필요를 느낀다. 이런 설명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현재 ‘중국의 부상’이나 ‘인도의 부상’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한 번 더 글로벌 축적을 시도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전략적 보루(중국, 인도 같이 자원이나 노동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를 동원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전장에서 어떤 군대가 마지막 남겨놓은 전략적 보루를 사용한다는 것은 패배 직전까지 몰렸음을 의미한다. 현재 세계경제의 발전은 현존하는 세계체제에 내재한 몇 가지 주기적인 운동이 이제 역사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은연중 암시한다. (리민치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종말> (류현 옮김, 돌베개 펴냄 46쪽)

 

리민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발판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한다. 이 정도 설명은 세계체제론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만 갖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가 정치권력의 작용 없이 시장의 동력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불평등’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자원과 노동력의 분포가 고르지 않아야만 그 격차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이윤이 자본의 움직임을 위한 동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댐의 낙차가 있어야만 발전용량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발되지 않은 자원의 존재가 자본주의체제의 동력원이 되는 것처럼, 미개발 노동력의 존재도 자본주의체제의 활력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자본주의체제의 패권을 쥘 무렵의 광대한 저개발 지역이 그 후 반세기 동안 상당 수준의 산업화를 이뤘다.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노동력의 조직과 임금의 상승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 과제는 아직 개발이 덜 된, 따라서 아직 임금이 낮은 지역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전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냉전 종식은 아직까지 자본주의식으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력이 존재하는 광대한 지역, 즉 옛 공산권을 자본주의체제에 편입시킬 필요에 몰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리민치의 견해다. 그는 냉전 종식을 앞둔 시기에 미국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본다.

 

세계시장에서 서유럽과 일본의 맹추격을 받고 베트남전 패배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전후 ‘글로벌 뉴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미국 헤게모니는 역사적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1970년에서 1990년까지 미국 행정부는 미국 헤게모니의 쇠락을 늦추고, 나아가 이를 재건하기 위해 세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첫째, 서유럽과 일본을 ‘정치적 동반자’로 인정함으로써 그들의 경제적 영향력을 무력화하고자 했다. 둘째, 주변부 및 반주변부 국가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셋째, 자국 기업의 이윤율을 회복하고 글로벌 경제에서 실추된 위상을 되찾기 위해 신자유주의 의제를 강요했다. (위 책 200쪽)

 

이 책은 2009년 중국에서 나오고 이듬해 한국에 소개된 책이다. 미국의 냉전 종식이 넉넉한 힘으로 여유 있게 이뤄낸 것이 아니라 위기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했던 일이라는 생각은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전에는 떠올리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미국 대외정책의 난맥상과 2008년 금융공황 앞에서 미국의 입장이 불안하게 보이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소련에 대한 군사적 압박정책의 반동성을 나도 2008년에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펴냄) 181-182쪽에서 지적한 바 있다.

 

1970년대의 경제 위기는 두 진영 모두에 타격을 가했다. 그런데 공산주의 진영이 효과적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무기력한 침체에 빠진 반면, 자본주의 진영 일부가 미국의 주도하에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나왔다. 신자유주의 노선은 상황의 문제점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격화시켜 파국을 앞당김으로써 추진 주체가 상대적 이익을 얻자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 레이건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함께 추진한 군사정책이 어떤 것이었던가. 그야말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드는 ‘별들의 전쟁’이었다. 경제 여건에 역행하는 군비 확장은 상대방이 먼저 손들도록 압박하는 치킨 게임이었다. 냉전의 대결 상황이 이 소모적이고 반동적인 정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1973년의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를 계기로 자원과 환경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고 때맞춘 석유위기로 현실적 위기감까지 일어났다.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란 이름을 얻은 당시의 악성 경기침체의 원인으로 자원 측면이 중시되었지만, 착취의 여지가 줄어든 노동시장의 상황도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패권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려온 자본주의체제가 1970년대 들어 여러 거시적 지표에서 한계에 부딪친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1980년대 미국의 위치가 위기 상황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대책을 강구할 압력은 존재했던 것이다. 냉전 종식은 냉전시대의 모든 문제가 해소되는 계기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기본 문제들이 새로운 형태로 모습을 바꿔 나타나는 계기로 봐야겠다.

 

독일은 냉전 해소와 함께 통일을 이뤘는데 한국은 이루지 못한 사실을 한국 민족주의자들은 통탄한다. ‘냉전의 내면화’를 흔히 그 이유로 지적한다. 물론 상당히 중요한 이유라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1990년을 전후한 이른바 냉전 종식이 당시의 인식에 비해 한계를 가진 현상이라고 본다면, 독일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 사이의 차이점도 생각할 수 있다. 동유럽의 전선(前線)이 사라진 것과 달리 동아시아의 전선은 새로 형성되고 있지 않은가.

 

21세기 들어와 미국의 모습이 초라해져 온 데는 중국의 흥기와 대비되는 까닭이 있었다. 1990년대 말까지도 중국은 냉전 이후의 세계 상황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존재였다. 그런데 불과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향후 세계의 진로에 미국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주체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또한 지금까지 크게 자라나 왔고, 앞으로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적 상황 변화, 특히 한반도가 처한 상황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패권 성격의 변화와 중국 흥기의 의미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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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07 13:34

    만약 80년대 초, 지미 카터가 재집권을 했으면 그 이후 냉전상황과 세계경제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군비경쟁는 레이건 시대만큼 극단적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 신자유주같은 경제적 반동도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냉전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해체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 독일대신 한반도의 통일이 먼저 이루지는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까요? 뭐 부질없는 상상을 좀 해봅니다. ^|^

    제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미국을 거의 선과 악의 구도로 보는 사람이라서요, 냉전이후 미국이 본색을 드러냈다면 아마도 공화당의 너무 오르쪽으로 치우친 패권주의자들의 본색이라고 불러줘야 미국내 외교적 해결을 중시하는 민주당내 평화주의 세력이 그래도 좀 덜 섭섭하게 들릴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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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07 20:01

      예전에 "이과인"님도 이 비슷한 취지의 댓글을 달아서 제가 주제넘게 장황하게 글 쓴 적 있습니다만..^^..A. Bacevich의 <워싱턴 룰>을 한번 읽어보시면, 이른바 평화주의 세력으로 알려진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그닥 미국의 외교정책이 달라지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이 물질적인 부의 축적과 소비할 '자유'를 미국적 가치/ 생활방식의 정석으로 생각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 뿐만 아니라 세계 사람도 모두 이러한 가치/ 생활방식을 따르고, 전파해야 한다는 '미국인의 사명의식/ 신념(American Credo)'를 버리지 않는 한 미국은 그러한 현대 물질사회의 기반이 되고 있는 석유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중동에 개입한다는 취지로 글을 쓰지요

      Bacevich가 2008년에 오바마 당선을 즈음하여 쓴 <The limits of power : the end of American Exceptionalism>에서는 70년대 오일쇼크로 미국 물질문명의 일대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터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석유에 기반한 소비사회에서 '삶의 질'적인 측면으로 전환, 그에 따른 세계적인 군비조정을 제안하였지만, 미국인들은 "미국적인 물질소비사회는 전혀 바꿀 것이 없고 앞으로도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는 레이건의 허세에 기꺼이 표를 던지면서 그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렸고, 그 뒤에 대통령이 된 민주당 출신 클린턴도 카터의 낙선을 거울삼아 절대로 미국적인 가치/생활관의 전환을 모색하지도 않았고, 2008년 금융위기가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모았던 오바마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러한 변화의 모색은 없는 형편이지요..

      같은 저자가 그 전에 쓴 <The new American militarism : how Americans are seduced by war>을 보면, 거의 비슷한 내용인데, 상대적으로 평화주의로 알려진 민주당 특히 윌슨식의 '선한 목적의 개입주의'가 이후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이라는 비판을 받는 무수한 군사개입의 포장지로 얼마나 자주 활용되는지? 너무나 희극적으로 아들 부쉬시절의 상대당인 공화당의 네오콘들이 윌슨의 논법을 얼마나 악랄하게 활용하는지 보여주고 있지요..

      결론은 10여년전에 <혼자만 잘 사면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썼던 전우익 선생이 당시 벌어지고 있던 이라크 공습을 보면서 "집집마다 굴리는 자동차들이 이라크를 공습하는 전투기다"라고 일갈한 바와 같이, 물질적인 부의 무한축적과 소비할 "자유"를 최고로 치는 미국적인 가치/ 생활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미국에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대외정책의 차별성이 그닥 크지 않다는 점이지요...이 점은 미국적인 가치/ 생활방식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개혁/진보 분파로 자임하였던 노무현 정부 시기에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지요..국민들 스스로가 집집마다 자동차를 굴리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석유확보를 군사적 개입에 정권의 성격에 상관없이 명백한 반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미국의 에너지자원 문제가 미국 외교정책의 중핵이라는 사실은 여러 논자에 의해서 제시되고 있는데, 보수적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리드만 같은 사람은 미국 내 적극적인 (대체)에너지 자원 개발을 통해서 러시아 등 독재국가 또는 사우디 등 왕정국가가 주요 석유수출국들인 나라들에게 미국 외교정책이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리프킨은 <유러피안 드림>, <공감의 시대>, <수소혁명>, <3차 산업혁명>등에서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미국적 가치관/ 생활방식- 한정적이고 소진되어가는 석유 기반 물질 문명- 이기적이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는 시장주의적인 세계화/ 외교정책에서 "삶의 질", 공동체-관계 중심 문화- 다원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체에너지 - 협력과 조화, 공감하는 세계시민 문화로의 전환을 제시하고 있지요..

      최근에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칼럼을 보면, 오바마 정부가 주요 석유수출국인 사우디 등 반 이란 중동 왕정국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30년 숙적이던 이란과 핵협상하는 배경으로 미국내 다량 매장되어 있는 셰일가스 추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는데...이는 오바마 정부가 근본적인 미국적 물질문명/ 신념/ 생활방식의 문제에 접근하기 보다는 기술개발을 통하여 미국의 얼마간의 (화석)에너지 자립을 올림으로써 잠시 중동문제의 확대를 지연시키는 전략, 프리드먼의 길을 택한 것 같은데, 이는 "언발에 오줌누기"식의 잠시 잠깐의 시간벌기용에 불과할 따름으로 보입니다...

      박노자 교수식으로 말하자면, 미국이라는 중심 제국의 부용국/ 제후국인 우리나라도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세우고 싶다면, 미국중심의 석유물질문명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대체에너지 자원 체제를 구축해야 하겠지만, 전임 '멘붕(MB)정부"에서부터 원자력 입국에 "필"이 꽂혀서 아랍에미리트에 저가 원전 덤핑하면서 부가조건으로 경비인력으로 우리 국군을 파견하는 "아류 제국주의" 양태를 보이고, 현재의 "유신혈통" 정부에서도 원전에 대한 반성을 전혀 안하고 있으니 통탄스러울 따름입니다...어제 "유신혈통"께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무뜬금한 말씀을 하신게 혹시 북한에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다는 우라늄을 노리고, 향후 통일을 통해서 이것으로 독자적인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여 민족자주노선을 견지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현재로서는 답답한 에너지 노선이고, 외교노선의 활로가 그닥 시원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 2014.01.08 01:30

      흐~ 제가 틈 날 때 썰 한 차례 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하고 싶은 얘기를 지나가다가님이 다~ 해주시고 조금 더 해주셨네요.
      연말에 평화네트워크 정욱식님과 인사 땡겼는데, 서로 글을 통해 익혀놓은 사이인지라 일면여구였죠. 얘기 나누다가 정욱식님이 "선생님은 무슨 목적을 위해 공부하고 글 쓰시는가?" 묻기에 사람들이 쓸 데 없이 서로 괴롭히는 일이 적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대답이 얼른 나왔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세상의 어리석음을 줄이고 싶다고 하면 더 간단했겠다 싶었습니다. 사람이란 게 원래 욕심 때문에도 고통을 겪고 두려움 때문에도 고통을 겪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냥 자기 몫의 고통만 겪으며 살면 저는 뭐라고 할 말 없겠어요. 근데 욕심과 두려움이 뒤얽히면 고통이 엄청나게 커지거든요. 어리석음 때문에 생기는 쓸 데 없는 고통이죠.
      '인간답게 살 권리' 중 물질적 측면(의료 포함)에 그런 어리석음이 많이 끼어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법체계에서 인간 보호가 "생명과 재산"의 보호로 표현되는 유행이 어떤 멘털리티에 근거를 둔 것인가 생각해 보곤 하죠. 다른 인간적 가치를 제쳐놓고 '재산'을 특정해서 보호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
      이런 멘털리티에서 벗어난 사람이 극히 적은 사회가 미국이죠. 우리도 열심히 따라가려 해왔지만, 아직은...

  2. 2014.01.08 14:44

    지나가다님 문천님, 제가 옛날에 '지식 충동구매' 버릇이 너무 심해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근래엔 위에 쓰신 논리적으로 전혀 하자없는 글도 앞뒤로 재고 또 재요. 써 주신 글들 시간 날 때마다 곱씹어 볼께요.

    그런데 댓글검색은 안되는 건가요?

  3. 2014.01.13 15:09

    지나가다님, 제가 알기로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원칙이 훨씬 확고하고요, 굉장히 똑똑한데다가 야심도 있는 정치인이어서 부시시절의 미국으로는 아마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않으리라 생각되요. 염려는 좀 놓으셔도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ㅎ.

    평화주의자가 "우린 석유같은 거 다 필요없어!"라는 인식에서 전쟁을 자제하는 게 아니겠지요. 그 지역의 에너지 자원과 패권유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란 수단을 자제하니까 더욱 존경스러운 것 아니겠어요? 저는 최소한 베트남전 이후의 미국 민주당이 그런 정치세력이라고 봐요.


    • 지나가다가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4.01.13 17:52

      바세비치의 <워싱턴 룰>에 보면 "사람들은 케네디가 죽고 난 뒤에 그와 많은 여자들과 관련되어 밝혀진 추문에 대해서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그가 비밀리 추진했던 여러가지 비밀작전과 전쟁계획에 대해서 알게 되면 더욱 깜짝 놀랍고 당황스러울 것이다"는 취지의 글이 있습니다..과연 오바마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케네디와 비교하여 얼마나 다를지 저는 의문스럽군요...

      나중까지 갈 것도 없고 이미 익히 알려진 바대로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는 예전에 유야무야되었고,(심지어 아들 부쉬시절에 이라크 정책을 비판한 오바마의 책을 관타나모 수용자가 보고싶다하니 수용소측에서 "위험하다"며 거절했다 하더군요), 공식적으로 이라크 철군했다지만 엄청난 규모의 무기지원이 계속되고 있고, 무인폭격기 드론을 이용해서 중동지역 여기저기를 쑤셔서 엄청난 민간인 살상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오바마의 전쟁"으로 불려지듯이 오바마 시절에 확전이 되었지요.. 뭘 "전쟁을 자제"하고 말고 합니까? 이미 이것만으로도 오바마가 전쟁 다 해서 아들 부쉬랑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스러운데, 새삼스럽게 오바마가 잘못될까봐 염려하는 것으로 비쳤나요..다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 지구에 자기 지분 이상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피해를 우리같은 주변국이 덤터기 쓴다는 것이 걱정스러워서지요.. (여담입니다만, 앞의 케네디랑 비교해서, 사람이란 겉보기와 달라서 오바마도 마틴 루터 킹이나 말콤 액스처럼 퇴임하고 나서 나중에 "비밀애인" 폭로 또 나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베트남 이후의 민주당"을 무슨 근거로 대단한 평화주의 세력으로 이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미국의 외교정책은 그 이전이나 이후에나 크게 변화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만..미국의 국내정책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30년대 뉴딜연합으로 약간 왼쪽으로 갔다가 70년대 후반부터 카터-레이건 보수혁명으로 확실히 우향우 했다는 것이 정설인데.

      IMF를 통해서 외환위기 당시 울나라를 압박하며 파이어 세일로 월가 금융자본을 재미보게 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클린턴 아닙니까?? 또, DJ구명운동을 펼치면서 DJ랑 넥타이랑 교환할 정도로 친한파로 알려진 바이든이 민주당 소속이지만, 최근에 방한하여 "미국에 베팅해라"며 협박 공갈하는데는 한치도 어긋남이 없지 않았나요?? 미국 민주당에 무슨 선험적인 근거에 의해서 "천사의 하얀 날개'가 있다고 주장하시는지 모르겠네요...^^

  4. 2014.01.14 14:20

    제가 하지않아도 될 얘기를 한것 같네요. 지나가다님 인용하시는 저자들이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제가 모르는 바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터나 오바마가 '착한놈 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요. 이 이야기는 기회대면 주인장님 눈치봐가면서 기회있을 때에 한번 해볼께요.

    그런데 원래 잘난 사람들 사생활은 화려해요. 이불 속에서 벌어진 이야기로 인물을 평가하면 우리나라 세종대왕 같은 성군도 그런 비판에서 남아나질 못해요. ^|^

  5. 2014.01.15 07:02

    지나가다님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제국주의적 분석은 맑스주의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질 때만 유효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제국주의를 욕하다가도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이 아류제국이 되었으면 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현실인 듯합니다. 분석은 맑스주의의 몇 가지 도구들을 이용하나 자본에 대한 태도 등, 가장 핵심적인 맑스의 사상은 거부하는 것이 그 주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6. 2014.01.15 13:22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가 바세비치 책을 직접 번역하는 등 '미국의 특성'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더군요. 제가 <미국인의 짐>을 낸 게 프레시안 창간하고 그 친구랑 안면 트던 무렵이었죠. 요 전날 만나서 이야기 나누다가 그 책 얘기를 하며 "선배님은 역시 선각자"라고 치켜올려 주더군요.
    90년대 후반에 미국사회의 문제점에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그 무렵 쓴 칼럼을 모아 책 낼 때 자연스럽게 그런 제목을 붙이게 되었죠. 근데 제가 원래 이론에 약해서리...(실전은 더 약하지만) 제국주의 이론 같은 건 생각 못하고 그저 제가 키워온 문명사론의 관점을 상식 차원에서 적용시켜 보는 정도죠. 바세비치 책 등 요즘의 '미국 비평'을 보면 접근 방향이 달라도 통하는 점들이 있게 마련이란 생각으로 무심결에 고개가 끄덕여지곤 합니다.
    2003년 초 <미국인의 짐> 머리말을 이런 말로 끝맺었었죠.

    "'미국인의 짐'은 미국인이 앞장서서 지고 있는 것일 뿐, 지금의 문명세계 전체에 얹혀 있는 짐이다. 미국을 지지한다고 해서 이 짐이 행복의 보따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을 반대한다고 해서 이 짐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짐이 왜 생긴 것인지 철저하게 따져보아, 피할 수 없는 짐이 확실하다면 가능한 한 나도 괴로움을 덜 겪고 남에게도 덜 끼치면서 함께 지고 갈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문명의 진행 방향을 바꿔 이 짐을 아주 없앨 수는 없을까? 다른 방향을 잡더라도 그에 따른 짐이 어떤 것이든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1백여 년 전에 비해서는 대안을 생각할 수 있는 폭이 크게 넓어졌다. '문명의 짐'으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더 나은 세상'을 찾는 길에서 핵심이 되는 질문일 것이다."

    대안의 희미한 가능성을 느끼고 연변으로 막 건너갔을 때였죠. 11년이 지나는 동안 세계체제 변화의 필연성과 대안의 가능성이 모두 훨씬 뚜렷해졌고요. 그 길 밝히는 일에 아직까지 계속해서 힘을 쏟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7. 2014.01.18 10:21

    '미국의 짐'이란 제목을 그런 의미에서 쓰신 말이었군요. 격하게 동감합니다. 이참에 '미국'으로 검색해서 선생님 지난글들을 좀 읽어봤네요.

    20대 시절, 당시 우리나라 사회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님 제 천성이 원래 비주류라서 그런지, 미국이라는 나라보다는 소위 '반미'의 나라들에 관심을 갖고 지켜본것 같아요. 소련부터 시작해서 북한, 쿠바, 이란 등등의 나라들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혹시 사람살만한 사회가 아닐까라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들여다 본것같아요. 그리고 최근에는 '반미의 중심지'라고 여겨지는 중동에서의 '아랍의 봄'에 굉장히 기대를 걸고 지켜봤죠. 제가 문천님처럼 문명의 근저에 흐르는 변화를 볼 줄아는 재주가 없으니, 아마 대단히 피상적인 관찰이었겠죠. 하여튼 결론은 실망이었죠. 역시 그냥 후진국이었구나!라는 결론만 얻은 것 같아요.

    미국은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아주 깡패나라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국발 뉴스자체를 끊고 살았죠. 그러다가 조그씩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가 2008년 미대선을 지켜보면서부터일겁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와 저널리스트들의 질이 후진 국민성에 비해 생각보다 꽨 괜찮더군요. 그래서 민주당의 미국은 지지할 만한 나라다라는 '부분적 친미'로 전향을 했죠. 그래도 미국발 사건사고 뉴스를 볼때마다 살고싶은 나라라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더라구요.

    바세비치의 책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작년 10월쯤 이양반의 대담프로를 본 기억이 납니다. Phil Donahue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반 이라크전 방송인이 인터뷰를 할 프로그램인데요. 꽤 근본적인 논지에 호감이 갔었죠.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너무 일반론적인 것같아서 논지 자체는 동의할 수 없었죠. 이참에 책을 읽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여기 들르면서 읽어야만 할 것같은 책은 참 많고, 시간은 없고 참 그렇습니다. 어찌해야할지... ㅎㅎㅎ.

    • 2014.01.18 11:10 신고

      어렸을 때(1950년대 중반) 미군 찦차에서 던져주는 사탕 주워 먹은 생각이 납니다. 그 몇 해 후에는(초등학교 졸업 무렵) 어쩌다 미국의 우편판매 캐털로그(X마스 특집) 한 권이 손에 들어와 그 물질문명에 황홀해 하던 일...(제 영어 습득의 기초가 이 캐털로그로 이뤄졌다눈!)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우리 세대에겐 학술연구나 반체제운동 등 강력한 지침 없이는 미국에 비판적인 관점을 키우기가 힘들었죠. 그래서 비판적 관점을 갖게 되면 반동력 때문에 더 극렬하게 되기 쉽고요. 아래 세대에서 보다 덤덤한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8. 2019.12.08 10:31

    역사는 감상이 아닐터...중국흥기 미국쇠퇴? 2글 쓴 시점이 2014면 그래도 많이 이른감이 있다. 감상으로 평가하다보니 자꾸 헛다리를 짚는다. 중국의 딜레마 미국의 적체되는 무기력 정도라면 이해 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