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선생님,

계절이 바뀌고 인사드립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소식이 뚝 끊어져 상심하셨을까 마음이 쓰입니다.

뜻한 바와 무관하게,

아니 뜻한 바와는 어긋나게도 사정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공부했습니다.

프레시안 연재도 두 달째 작파하고 있으니,

논문에 집중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8월 말에 주신 편지가 사단의 출발입니다.

교조화된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차원에서 유학 공부에 슬쩍 발을 담그었는데,

이것이 헤어날 길 없이, 끝간데 없이 이어지더군요.

그래서 더더욱 섣불리 유학에 대한 글을 쓰기가 주저케 되었고요.

최소한 그 무지의 좌표 감각은 얼추 세워야겠다 싶어,

중국에서, 미국에서, 일본에서 나온 (신)유학 책들도 살피다 보니,

어느새 10월도 훌쩍 지나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륙에서는 장칭이라는 자가 '정치유학'의 깃발을 세우고 있고,

그를 영어권에다 적극 알리고 있는 다니엘 벨도 있더군요.

와타나베 히로시, 쿠로즈미 마코토 등 명성만 익히 들었던,

마루야마 마사오 이후의 정치사상사 전문가들의 저서도 이참에 직접 맛보았습니다.

그간 대만에서 이루어졌던 신유학 논의도,

냉전 이데올로기에 복무했다고만 갈음해서 쉬이 내칠 수 없겠다 싶고요.

모종삼, 여영시 등 눈에 차지 않던 이들이 새로이 다가옵니다.  

 

그렇데 한 달이 흐르던 차에,

문득 유학의 정수(긍/부정을 아울러)가 조선이겠다는데 생각이 미처,

새삼 조선 문명에 대한 때늦은 공부에까지 내쳐 달린 것입니다.

덕에 한형조, 김상준, 오항녕 등,

이미 조선 유학/문명에 천착하고 있는 분들을 뒤늦게나마 접하게 된 것은 큰 기쁨이었고요.

돌아보면 저는 조선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근현대사'라고 불리는 쪽에만 눈길을 두었지,

그 이전은 무심하게, 혹은 눈을 흘기며 방치해 둔 셈이지요.

서구 근대 5년, 동아시아 근대 10년 공부로 빙빙 에두르다가,

마침내 조선의 문턱에 닿고 보니,

그간 '거대한 뿌리', '오래된 미래' 운운하던게 참으로 민망해지던 참입니다.

율곡도, 퇴계도, 연암도, 다산도, 똑바로 읽어본 바가 없으니까요.

 

그렇데 또 한 달,

제가 무엇을 모르고, 또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절절하게 확인하다 보니,

연재도 미루고, 논문도 못쓰고, 글빚만 잔뜩 쌓이고 말았네요.

이번 편지를 시작으로 하나씩 갚아가려고 합니다.

 

 

<밖에서 본 중국사>는 구상만으로도 야심찹니다.

중국의 탈근대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말씀도 흥분을 일게 하고요.

주신 편지를 프린트해서 읽는데, 동그라미에 느낌표 세 개가 찍혀 있습니다.

 

헌데 그 안과 밖의 경계가 참 묘한 것 같습니다.

타이완의 천꽝싱이라고 아시는지요?

동아시아, 나아가 동남아와 남아시아까지,

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분이지요.

이 분이 '화어 문화권'이라는 발상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학술 영역에서 패권적 언어인 영어에 맞서,

화어를 매개로 대항적인 공론장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었죠.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동남아와 구미의 화교/화인 지식인 등등을 아울러서요.

저도 관심이 일어, 그 회의에서 발표된 글들을 모아둔 책도 챙겨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 글을 함께 읽은 (한국인) 동료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중화주의' 운운이었어요.

또 하나의 패권주의라는 뜻이겠죠.

중국의 주변국에서 나오는 이런 반응이 그 자체로 흥미롭다 여기면서도,

저는 영어 중심주의에 균열을 내는 화어문화권의 의의를 일단 인정하고,

그것이 또 다른 지식패권으로 기울지 않기 위해 직접 참여해서 '견인'의 역할을 도맡아야지,

중화주의라고 미리 손사래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음에도,

중국에서 '주변에서 본 중국'이라는 테마로 대규모 학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걸 보면 착잡한 마음도 일어납니다.

주변국들의 연행 기록들을 몽땅 모아 '집대성'하는 작업을 푸단대학에서 하던데,

저들도 '지의 제국'이 되려는 몸풀기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감회가 없지 않거든요.

한국 동료들에게 '변방적 경직성'을 털어내자 하면서도,

정작 그런 언술이 중국이라는 새로운 중심으로 빨려드는 형국이,

예상보다 이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당혹감도 이는 것입니다.

내가 혹 '기특한 오랑캐' 노릇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장구한 문명적 공속감과 압도적인 비대칭성.

그 안과 밖의 아슬한 경계선에서,

비판적 중국학/동아시아학의 좌표를 어디쯤에 세울 것인가,

숙고를 거듭하게 되는 물음인 듯 합니다.

 

11월에는 연재도 재개하고,

선생님과의 교신도 이어가려고 합니다.

서운함보다 반가움이 크셨기를 바라며-

 

-이병한 드림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