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12. 10:52

 

행사를 마치고 나니 장례 중 아내의 역할에 겹쳐져 이승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몇년간에 대한 그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머니를 모셔드린 수많은 분들에 앞서 그의 역할을 먼저 떠올리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불출이거니와, 어찌 생각하면 어머니와 그의 관계 위에 다른 많은 분들과의 관계를 비쳐볼 수 있는 것이 적지 않기도 하다.

 

9년 전 나랑 결혼할 때는 시어머니 모시는 일이 우리 생활에 어떤 비중을 갖게 될지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나 자신 어머니와 관계를 부정하고 기피하는 마음이었으니까. 뜻밖에 그 일이 크고 중요하게 된 뒤 우리가 나눈 얘기 한 대목을 일기에도 적은 것이 있다.

 

아내의 우스개 하나가 생각난다. 한국 와서 텔레비전 보다 보니까 한국에선 바람직하지 못한 신랑감의 조건 하나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결혼할 당시엔 효자 아닌 척하다가 지금 본색이 드러나고 있으니 자기가 사기당한 것 아니냐고. "여보, 내가 어머니께 충성하고 있는 건 당신한테 충성하기 위한 연습이에요." 하면 "정말 말씀은 참 잘하신다." 하면서 또 사기에 넘어가 준다. (2009년 3월 10일)

 

어머니는 며느리 역할 인정하는 데 참 인색하셨다. 아무리 기억력이 쇠퇴하셨다 해도 그렇게 못 알아보실 수가. 많이 대하면서 친숙한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신 뒤에도 '며느리'로 특정해서 받아들이신 일은 드물었다. 아내는 '제자' 취급으로 시작해서 '딸' 취급에까지 이르렀다. 평생 며느리 재미를 크게 못 보신 결과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당신 자신이 며느리 노릇 못해 보신 때문에 며느리들과 관계에 어려움이 있으셨던 것인지도.

 

무슨 취급을 받든 아랑곳없이 여러 해 며느리 자리를 지킨 자세가 장례식 동안에도 지속되었다. 일하기에 불편하다며 표나는 상복을 마다하고 검은색 평상복으로 일하는 것을 잠깐 다녀간 손님들은 도우미로 알았을 것이다. 가까운 이들은 어머니가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으셨다는 농담도 했다. 1년 반만에 친정 가려고 비행기 예약까지 해놓았던 아내가 붙잡힌 덕분에 행사가 잘 되었다는 덕담이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하루 푹 쉬면서 <아흔 개의 봄>을 한 차례 다시 읽었다. 읽다가 떠오른 생각 하나가 아내의 역할이 적게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돌이켜 생각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내가 한 것이 많다. 그런데 내가 그런 행동들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생각이 미치면 그 사람의 역할이 '절대적'이라 할 만큼 큰 것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자기가 할 수 있는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이 자기 몫을 맡는 방식이다.

 

아내가 어머니께 잘해 드린 데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표하지 못해 왔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데, 마침 한 가지 메꿀 수 있는 길이 보였다. 미국 형님이 출발하기 전에 전화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냐고 묻기에 장례비 분담금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런데 형님이 도착할 때까지는 조의금이 충분히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분담금 필요없다고 했더니, 어디 쓰더라도 쓸 데 있지 않겠냐며 가져온 봉투를 그냥 내게 맡겼다. 장례 끝내고 생각하니 그것을 아내에게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형수가 멀리 있어서 맡지 못한 며느리 역할을 대신 맡아준 데 대한 보답으로 그 봉투를 쓴다면 형수도 역할을 채울 수 있으니 동서간에 윈-윈 아니겠는가.

 

돈으로 때울 사람은 돈으로 때우고 몸으로 때울 사람은 몸으로 때우게 하라. 그것이 '함께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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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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