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1. 09:20

어머니와 함께 하는 활동의 비중이 금강경에서 창가로 많이 옮겨 왔다. 금강경보다 반응도 빠르시고 효과도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심기가 불편해지실 기미가 보일 때 익숙한 노래가락을 흘려드리면 바로 몰입하신다.

전에 있던 여사님들이 <아리랑>과 <푸른하늘 은하수>로 길을 열어놓은 뒤에 내가 <송아지>와 <찌르릉>을 추가했다. <푸른하늘>은 언제나 효과가 좋은 데 비해 <아리랑>은 끌어들이는 힘이 좀 약해졌다. <찌르릉>은 흡인력이 좋은 반면 <송아지>는 응용을 많이 즐기실 수 있다. "얼룩송아지" 외에 "얼룩망아지", "얼룩강아지", "얼룩병아리" 등을 등장시켰더니 재미있어 하신다. 한 차례 끝나면 "또 뭐 있지? 망아지던가?" 하셔서 4절까지 부르면 꽤 뿌듯하다.

레퍼토리가 짧아 조금 즐기다가 지루해지실 때는 "어머니, 어머니 모르시는 노래 하나 할까요?" 해서 감상 시간을 드리기도 한다. 여러 곡을 시도한 중에 제일 반응이 좋으셔서 애창하게 된 곡이 셋이다. 반응을 좌우하는 요소 중에 노랫말의 비중이 크신 것 같아 '역시 직업은 못 속이셔.' 하는 생각이 든다.

맨처음 캐치 언 한 것이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요즘은 후발곡들에게 조금 밀리는 감이 있지만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더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오. 온갖 새들의 노래 듣고싶소.

웃고 울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가사 조합이 어긋난 건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런 대로 좋아하시고, 듣다가 중단시키고 가사 확인까지 하신다.

두어 주일 전부터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건 제목도 자신 없지만 <그리워>로 기억하는 곡.

"그리워 그리워서, 너무나 그리워서, 꿈속에나 만날까, 잠들어 봅니다.

고운 눈매 웃음진, 그님은 찾아와서, 외로움에 지친 나를, 어루만져 줍니다.

반가워, 반가워, 너무나 반가워, 맺힌 사연 말 못하고 몸부림치다,

꿈에서 깨일까봐, 그님이 가실까봐, 옷소매 부여잡고 눈물만 흘립니다."

이 노래는 최루탄 급을 넘어선다. 노래 시작해 한 소절도 지나지 않는 동안에 어머니 표정과 눈길이 애절 모드로 전환된다. 게슴츠레한 눈길을 노래가 나오는 내 입술에서 한 순간도 떼지 못하신다. 눈을 깜박이지도 않으시는 것 같다. 처음 십여 차례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꼼짝도 않고 듣기만 하시다가, 좀 익숙해지신 뒤에 가사 확인으로 끼어들기 시작하셨는데, "고운 눈매 웃음진" 대목에서 여러 차례 걸렸다. 어머니가 기대하시는 내용과 좀 다른 걸까?

한 번 이 노래가 끝난 뒤에 눈을 꿈벅꿈벅하며 "야, 이 노래는 참..." 말을 못 이으시기에 "청승맞죠?" 했더니 "그래, 청승맞고, 또..." 다시 말을 못 이으시기에 "궁상맞아요?" 하니까 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궁상맞다기보다..." 하다가 생각나셨다는 듯 "참 슬프다." 어머니께 이 노래를 불러드리려면 아버지 생각이 마음에 떠오른다. 어머니도 그분 생각이 나시는 걸까? 따져 묻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후로 어머니 모르시는 노래 부를까 여쭐 때는 청승맞은 노래를 할까요, 하고 덧붙여 묻는다. 그러면 "아니, 그거는..." 하실 때도 있고 "그래 그거 해라." 하실 때도 있다.

또 한 곡은 어머니와 함께 부르는 레퍼토리에 추가하려고 작업 중인 노래다. 제목은 모른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스르르 팔을 베고 잠이 듭니다."

만만하게 들리시는지, 가사 확인이 제일 잦은 곡이다. 이제 어느 정도 파악이 되셨는지 입속으로 따라 부르시는 듯, 눈길을 멀리 던지고 입을 오물거리며 들으신다. <푸른하늘>과 비슷한 수준이니까 며칠 안 있어 자신 있게 부르기 시작하실 것 같다. 요런 수준의 노래 중에서 더 골라봐야겠다.

지난 수요일에도 작은형이 왔다. 신선 같은 분이라고 흉도 보지만, 역시 동기간이라서 그럴까, 아무래도 좋은 점에 마음이 더 머무른다. 두어 살 차이지만 노화는 아무래도 나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 같은데, 점심 후 강의 끝내고 한 시간을 달려왔다가 집까지 세 시간을 다시 달려가는 짓을 이제 4주째 거듭하는 걸 보니 역시 신선이 덜 됐군, 하고 대견한 마음이 든다.

어머니가 작은형 보고 좋아하시는 것, 형 일어설 때 서운해하시는 것, 정말 어쩌지 못하시는 일이다. 오는 7월 전세 만료되는 대로 수원이나 용인 쪽으로 옮기는 게 어떨까, 아내와 며칠 전부터 의논하고 있는데, 아내도 대충 동의해 준다. 병원의 닥터 한에게 의논하니, 지난 연말 이후의 용태라면 꼭 요양병원이 아니라 요양원이라도 괜찮으실 것이라는 의견을 준다. 불교계 요양원이라면 문산 부근의 진인선원이 좋아 보이던데, 위치가 너무 외져서 내키지 않는다. 이 달과 다음달 중에 적당한 곳을 알아봐야겠다.

형이 왔던 수요일날, 형이 떠난 직후에 솔향 보살님이 뵈러 들렀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것을 바리바리 챙겨 와서, 한 열흘은 과자 공급이 필요 없게 되었고, 바나나는 여사님들에게까지 인심을 쓸 수 있었다. 모자 간에 노는 걸 처음 보는 보살님이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하시는 걸 보니 어머니랑 노는 데 내가 정말 이골이 났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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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