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통권 302호 글·영주(塋宙) 이남덕/이화여대 명예교수 a

올 가을에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다.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3박 4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심신에 느껴지는 큰 감동은 그렇게 짤막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여행이 단순한 금강산 관광여행이 아니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民和協) 여성위원회' 주최의 '통일로 가는 여성들의 금강산 기행'이라는 기치 아래 참가한 여행이기 때문에 첫날 오후 동해를 떠난 금강호 선상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여성이 일구어 가는 평화 새천년'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갖기도 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국토통일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하선하게 된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

조석으로 내 나라 평화통일을 기원하면서 '죽기 전에 그날을 꼭 보아야지' 다짐하던 노인들이 다 세상을 뜨고, 해방되던 해에 26세이던 내가 80세 노인이 되었으니 참으로 한스러운 분단의 50여 년이었다.

이제 간신히 '민족화합'의 기운이 돌아와 제한된 구역이나마 그것도 '천하명산' 금강산 땅을 밟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이 노인들의 마음일 것이다. 참가자들 중에는 이러한 간절한 소원을 가진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온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여성단체에서는 최고령자였지만 나보다도 더 연상이신 노인들도 있었으니 노인끼리는 동병상련의 마음이라 오가는 눈길로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이번 길에서 우선 이 동포애를 느꼈다는 것이 가장 큰 것이 아니었을까. 비단 노인끼리만 상통하는 애민(哀愍)의 정이 아니라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우리들 길 안내하는 청년과 차를 운전하는 기사님〔그는 조상 때 북간도로 들어가서 중국 연변(延邊)에 정착한 이민의 후손이었다.〕, 그뿐 아니라 길 요소요소를 경비하는 북한측 남녀 경비원들에 이르기까지 '한국말'이라는 한 언어를 쓰는 사이를 '동포(同胞)'라고 하는구나 하는 실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면 금강산 그 자체는 나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였는가. 산천은 말이 없다. 그러나 말 이상의 것이 있다. 우리가 밟은 금강산은 극히 제한된 구역이었다. 금강산은 이름이 '산'이지 우뚝 솟은 주봉이 하나 쉽게 눈에 들어오는 그런 산이 아니다. 시선이 미치는 한 전부가 금강산이다. 일만 이천 봉이라고 일컬어 오지만 최대한수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나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외금강·내금강을 향하는 시야에 펼쳐지는 전부가 기암고봉의 산·산·산의 연속이다.

첫날은 산악미를 만끽하는 만물상 코스였는데 끝부분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서 만물상 귀면암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망양대(望洋台)를 들렀다. 여기 오르니 동해 푸른 바다가 좍 펼쳐져서 등 뒤에서 본 만물상의 산악미와 대조적으로 해금강의 절경이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튿날은 계곡미를 한껏 드러내는 구룡연(九龍淵) 코스였는데 유명한 구룡폭포가 웅장하다.

여기서 길은 다시 내려와 갈라진 상팔담(上八潭) 코스를 올랐다. 깎아지른 두 절벽 계곡에 띠를 두른 듯이 점점이(8개) 동그랗게 파여진 연못(潭) 물이 마치 비취색 장식을 한 것처럼 굽어보이는데 도대체 저 푸른 빛은 아래에 어떤 돌이 물을 담았기에 저리도 아름다운 비취색인가. ― 함께 굽어보던 사람 말이 그냥 돌이 아닌 '옥돌'에 담긴 물이라는 것이었다. ― 그러면 금강산은 그야말로 그냥 돌산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금강(다이아몬드) 옥의 산이란 말인가. 나는 어린애 마음이 되어 감탄할 뿐이었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나의 서투른 말로써는 차라리 표현을 안 하는 것이 금강산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산을 내려오다가 아주 보기 좋은 절벽 바위가 있어서 벽을 보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참으로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하는 찬탄의 말이 아주 큰 글자로 새겨져 있었다. 그도 또한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을 잃었던 모양이다. 아주 말을 잃어서 그 말조차도 바위에 새기지 않았었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도 눈을 감으면 산모퉁이 모퉁이마다 그리고 계곡마다 탄성이 저절로 터지는 경관의 아름다움이 주마등처럼 펼쳐지기도 하지만 산 정상에서 느꼈던 금강산과 나와의 일체감(一體感), 그것은 내 나라 국토 전체와 나와의 일체감이 되어 되살아나는 것이다.

백두산 머리 천지(天池)에서 시작하여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낭림(狼林)산맥·금강산·설악산·태백산·지리산으로 온 몸체의 등줄기 되어 뻗어, 저 제주 한라산의 백록담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살아있는 우리 몸과 같이 일체감을 주는 것일까! 금강산은 바로 우리의 가슴 심장 부위가 아닌가! 이런 아름다운 국토에 우리는 태어난 것을! 금강산이 아름답기에 국토분단의 아픔은 더욱 크다.

금강산은 용과 신선과 선녀 등 고대 신앙과 관계된 이름 외에 이상스러울 만큼 불교와 관계된 산과 계곡 이름이 많다. 금강산에서 가장 높다는 비로봉(毘盧峰 1,638m)도 불교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에서 나온 이름이고 미륵봉·세존봉(世尊峰)·관음봉·향로봉 그리고 그 사이사이 가섭암(迦葉菴)·보광암·반야암·극락현정(極樂峴亭) 등등 시설물들 이름으로 미루어 여기가 바로 극락·불국토라고 고인들은 생각했었던 것이다. 금강산이란 이름부터 불경(佛經) 중의 으뜸인 금강경과 같다.

이 불국토 금강산에 살면서 수도인들은 얼마나 수행정진에 청복을 누리었을까! 절과 암자가 골짜기마다 지키었으니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선도(仙道)와 하나가 되어 극락정토의 신비경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커다란 조국분단의 아픔 속에 서서 금강산을 우리의 심장으로 느끼고 있다. 같은 '애민'이라도 슬프게 불쌍히 여기는 '愛民'에서 더 나아가서 고통을 함께 하는 동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인 '哀愍'으로 승화시키는 고비에 서 있는 것이다.

이제 한 달 후면 21세기를 맞이하는 20세기 막바지에 서 있는 우리다. 20세기 과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두 가지 큰 경험을 주었다. 인간이 지구를 떠나서 다른 천체(달)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과 또 하나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단번에라도 날려보낼 수 있는 핵무기(核武器)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생(共生)의식뿐이다. 이제는 말싸움이든 주먹싸움이든 싸움이라면 아무리 작은 싸움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때가 된 것이다. 오직 사랑만이, 자비심만이 우리를 이 지구 위에 생존케 해 주는 유일한 길이 된 것이다.

2천년 전, 3천년 전부터 성인들은 오늘의 위기를 대비하여 인(仁)과 자(慈)와 애(愛)의 가르침을 몸을 바쳐 역설하신 것이다.

우리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포럼에서 논의되었던 '여성평화운동'의 핵심과제도 근본적으로 이 공생의 원리에서 일치하는 것이며, 정치적·경제적 차원에서의 남북협력도 이 정신에 입각한 것이라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는 것이다.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신뢰감'이다. 말한마디라도 어느 쪽이 우위(優位)에 서면 안 될 것이다. '햇빛정책'이라는 말도 이편에서는 따뜻한 마음, 화해정책이란 뜻으로 써도 그것이 마치 시혜자(施惠者)의 말처럼 들릴까 두렵다.

남북분단이 본래 우리 민족 자신에게 원인이 있었던 것이 아니며, 세계 2차대전의 결말을 강대국들의 전리품 취급으로 우리 민족·국토가 희생양이 된 것이니 이것은 세계가 함께 풀어야 할 세계사의 문제다. 우리가 이 문제를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평화적으로 푼다면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세계의 역사를 풀어서 인간을 승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참선 정진하는 시간에 자세를 바로하고 앉으면, 백두산에서 금강산으로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는 천지기운이 온 전신에 퍼지는 것을 느낀다. 금강산 비로봉처럼 우주에 가득찬 진여불성 비로자나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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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