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3. 17:32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사탕을 먹지 말거라"
기사입력 오전 8:43:19
"사탕을 먹지 말거라" "이 아이의 사탕 먹는 버릇을 아무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아이가 들을 겁니다. 사탕 먹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이를 데리고 중년의 간디를 찾아온 어머니가 간절히 부탁했다. 아이의 눈을 그윽이 들여다보며 입을 뗄듯하던 간디가 눈길을 어머니에게 돌리고 말했다. "보름 후에 아이를 다시 데려오세요. 그때 말해 주겠습니다." "저희는 먼 곳에 살기 때문에 보름씩 여기 머물기도 어렵고 보름 후에 다시 오기도 어렵습니다.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간디는 다시 한 번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는 또 말했다. "아무래도 보름 후라야 말해줄 수 있겠습니다." 할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갔던 어머니가 보름 후 다시 찾아왔다. 간디는 아이의 눈을 한동안 그윽이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얘야, 사탕을 먹지 말거라."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뻐하고 고마워하며 어머니가 물었다. 왜 그 말씀을 보름 전에는 해주실 수 없었느냐고. 간디가 대답했다. "그때는 저도 사탕을 먹고 있었어요." 간디는 인도의 예속상태가 영국의 욕심보다 인도의 도덕적 무기력에 근본원인을 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제창한 사티야그라하(비협조-불복종)운동은 압제자에 대한 저항에 앞서 인도인의 도덕성 함양 과업에 치중했다. 1931년 영국과의 협상에서도 간디는 인도인의 자치 권한 확대보다 소외계층 대책에만 주력해 민족주의 진영에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천민층의 참정권 제한 방침에 항의해 옥중단식을 하는 등 인도 내부의 문제를 영국과의 관계보다 늘 앞세웠다. 성실한 도덕적 실천만이 진정한 인도 독립의 길임을 간디는 몸으로 보여주었다. 배타적 권리의 주장보다 인류에게 책임질 줄 아는 능력이 인도 독립의 열쇠라고 한 그의 가르침은 수미일관(首尾一貫)한 그의 실천으로 인해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청문회 증인들에게 호통치고 설교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간디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마치 완전무결한 인간인 듯 증인들을 질타하는 그들이 증인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도덕성을 가졌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사탕 먹지 말라는 한 마디를 위해 스스로 가다듬기를 마지않는, 그런 지도자가 아쉽다. (1997년 4월 11일) |
▲ 물레가 간디의 상징처럼 온 세상에 통하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 왜곡된 산업화로 식민지를 착취하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한 통찰력, 그리고 검소하고 근면한 기풍을 통해 인도인 내부의 억압 체제를 극복하려는 도덕적 의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차원 높은 간디의 독립 사상을 방직공업 발전의 걸림돌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인 모양이다. 코끼리의 큰 뜻을 쥐새끼가 어찌 알랴. ⓒ프레시안 |
영국의 인도 정복은 1761년 프랑스의 경쟁을 따돌리고서부터 1858년 이른바 세포이 반란 진압까지 한 세기에 걸쳐 이뤄졌다. 이 정복은 근세 이전의 정복과 다른, 새로운 성격의 정복이었다. 대규모 이주를 위해 땅을 빼앗기 위한 정복도 아니고, 재물을 약탈하기 위한 정복도 아니었다.
이 정복의 기본 성격은 산업혁명에 발맞춰 진행된 경제체제의 확장에 있었으며, 이것이 이후 근대 제국주의의 일반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피정복 사회를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군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맹목적으로 파괴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본국 경제에 유리한 형태로 피정복 사회를 개편하는 것이 정복의 목적이었다.
피정복 사회의 개편은 새로 형성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하부구조에 맞추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어떤 정복에나 피정복 사회 출신의 협조자(피정복 사회 관점에서는 배반자)가 맡는 역할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종류 정복에서는 특히 그 역할이 컸다. 종속적인 산업화라도 산업화가 일어나면서 식민지 사회의 경제 규모는 성장했고, 그 안에서 정복자에게 협조하는 엘리트 계층이 사회의 상층부를 형성했다. 이 상층부와 기층민 사이의 불평등 관계가 식민지와 본국 사이의 불평등 관계와 맞물려 서로 지탱해주는 구조를 이뤘다.
한국의 식민지 시대를 놓고도 이 상층부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계속된다. 그 역할이 일본의 식민 통치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몽땅 친일로 몰아붙이는 것은 비현실적 순결주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식민 통치건 민주 정치건 어떤 정치라도 효과적 시행을 위해서는 대다수 인민의 반응 양식을 감안하여 정책 노선을 결정한다. 당연히 예상될 만한 범위의 행동을 놓고 친일이건 항일이건 딱지를 붙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이 범위를 벗어나는 소수의 행동 중에 밑으로는 저열한 친일 행위가 있었고 위쪽으로는 자기 희생적인 항일 활동이 있었던 것이다.
인도에도 한국에도 적지 않은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힘으로 싸우러 나선 무장 투쟁가들도 있고 독립의 사상을 키워낸 사상가들도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당연히 예상되는 범위를 뛰어넘는 운동을 많은 보통사람들로부터 이끌어냄으로써 독립 사상가들 중 최고의 명망을 세운 인물이다.
독립 사상가로서 간디의 탁월성은 두 가지 방향의 통찰력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데 있었다. 한 가지는 식민 통치의 구조적 문제를 꿰뚫어본 사회과학적 통찰력이고, 또 한 가지는 인도인이 독립의 자격을 얻기 위해 추구할 실천의 길을 제시한 도덕적 통찰력이다.
이 결합이 빚어낸 가장 두드러진 강령이 '비폭력'이었다. 식민 지배자들은 물질적 이익을 당근으로 활용했고 폭력을 채찍으로 휘둘렀다. 이에 대항하는 독립 운동가들은 채찍에 맞서면서 당근은 챙기려 했다. 그런데 간디는 채찍을 거부하는 것보다 당근을 거부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저항임을 꿰뚫어보았다. 그래서 산업화의 물질적 혜택을 거부하며 금욕적 자세를 추구하는 그의 노선이 인도 독립 운동의 뼈대가 된 것이다.
간디가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인 1918년 간디에 대해 이렇게 쓴 영국인 교수가 있었다. "쾌락도, 재물도, 안락도, 명예도, 출세도, 어느 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 그저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데만 마음을 쏟는 사람을 다루는 것이 권력자에게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런 사람이 위험하고도 불편한 적이 될 수 있는 것은 권력자가 쉽게 정복할 수 있는 그의 육체가 그의 정신을 옭아매는 미끼 노릇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관 이상목이란 자가 지난 주 독립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자 청와대가 그를 '질책'하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그 발언 중 간디가 방직공업 확장에 반대한 일을 들먹이며 "(일제 때) 일부 독립운동 지도자가 이런 유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근대화가 늦어졌다"는 대목도 있었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의 인도에서나 한국에서나 중요한 과제는 독립과 근대화였다.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근대화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 관점이다. 그 근대화가 종속적 구조를 가진 것이어서 본국과 식민지 사이, 그리고 식민지의 사회계층 사이에 불평등과 억압이 유발되는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 약육강식의 원리만을, 그것도 아주 좁은 범위에서만 생각할 뿐, 인간의 존엄성이나 민족주의적 가치를 완전히 배제하는 관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간디가 제창한 저항 운동에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간디가 영국인에 대한 저항보다 인도인 내부의 억압체제를 해소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에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인도인을 독립의 자격을 갖춘 도덕적 주체로 키워내기 위해 간디가 이끈 실천운동에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 청와대에 앉아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위 칼럼에 나온 아이의 어머니를 보자. 그는 간디가 자기 아이에게 훈계 베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수고를 무릅쓰고 보름 후에 아이를 다시 데려왔다. 우리 국민 중에 그런 훈계 하나를 위해 그런 수고를 무릅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일화는 간디가 전국적 명성을 얻기 전의 일이다.) 그 아이가 버릇을 고쳤다면 그것은 간디의 정성만이 아니라 그 어머니의 정성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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