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31. 16:24

인생의 퇴각로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퇴각일기"를 시작하면서 그 동안 해온 일을 되돌아봅니다. 공부를 더 키우고 새 일을 찾기보다 쌓아놓은 공부를 잘 정리하고 해놓은 일을 잘 다듬는 데 힘쓸 생각을 합니다.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던 작업 <해방일기>를 다시 훑어보고 있습니다. 읽기 좋게 만들 여지가 있다는 사실은 책으로 만들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일 욕심에 쫓겨서 돌아보 수 없었지요. 그 일을 이제부터 틈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원래의 글 중에는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큰 자료도 담고 길게 설명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 글보다 제 생각을 담는 데 주력한 글만 뽑아서 읽더라도 상황의 흐름에 대한 제 견해는 충분히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흐름만 읽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고, 상황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은 대목에 마주치면 그 언저리의 원래 일기를 찾아 읽을 수 있겠죠.

그렇게 축약을 하더라도 남길 만한 글을 뽑아 차례대로 다시 올리려 합니다. 통독할 생각이 있어도 분량이 너무 많아서 엄두를 못 내던 분들, 함께 훑어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20%가량을 뽑아보려 하는데 어찌 될지는 해봐야 알겠죠.

 

 

<해방일기>를 시작합니다. 65년 전의 ‘오늘’을 제 마음속에 되살리는 작업입니다. 1945년 8월 1일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나, 그 일의 역사적 의미는 어떤 것인가를 오늘 생각합니다. ‘일기’라기보다 ‘일지’가 더 정확한 이름이겠지만, 저는 조금이라도 일기의 주관적 특성에 접근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기’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오늘은 인사만 드리고 1945년 8월 1일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습니다만 내일은 포츠담 회담이 마무리된 이야기를 하게 되겠죠. 며칠 후에는 일본 어느 도시에 원자폭탄 떨어진 이야기를. 그리고 다시 며칠 후에는 일본이 항복한 이야기. 역사학도의 마음속에서 65년 전의 상황을 하루하루 진행시키려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께서는 바로 제 아버님을 떠올리시겠죠. 그렇습니다. 이 작업에는 아버님의 전쟁일기를 흉내 내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전쟁이란 상황에 마주쳤을 때 한 역사학도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형편 닿는 대로 모색하신 것이 그 일기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역시 통상적인 서술 방법으로 한계를 느끼는 주제 앞에서 제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으로 <해방일기>에 착수합니다.


2년 전부터 <망국 100년> 작업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지난 8개월 동안 그 작업에 집중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그 주제를 반년 남짓의 작업으로 충분히 소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제 구상은 100년 전에 잃어버린 ‘국가’를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오늘의 이 사회에 파생된 문제들을 설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의 작업으로는 “어떻게 망했나?” 하는 설명에 바쁘고, “망해서 어떻게 됐나?” 하는 문제까지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두어 달 전부터 <망국 100년> 시즌2를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민지시대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해방 후의 한국에 남긴 흔적을 더듬는 방법을 대략 생각했습니다. 2010년 한 해를 이 주제에 바치고 넘어가려는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일기’ 생각이 났습니다. 6월 30일 밤이었습니다. 20세기 민족사 최대의 갈림길이었던 ‘해방공간’에 초점을 놓으면 어떨까? 반년 작업해서 책 한 권 만드는 것보다 내 인생의 일부라도 더 적극적으로 투자할 만한 주제가 아닌가?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 하는데, 나는 이 주제를 “과거와 현재의 씨름”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요약한 ‘대화록’을 내놓기보다 경기 진행을 ‘생방송’하는 게 어떨까?


잘 될 경우 제 여생을 바치게 되기 쉬운 이 거창한 작업, 참고할 포맷도 없는 이 막막한 작업에 구상이 떠오른 지 불과 한 달 만에 착수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어리둥절합니다. 가만 생각하면 바로 이런 성격의 작업을 위해 지금까지의 제 인생이 배치되어 온 것이 아닌가, 운명적인 생각까지 듭니다. 마구잡이로 쌓아 온 제 지식, 그때그때 이런저런 필요에 따라 익혀 온 글쓰기, 그리고 마침 적절한 매체인 <프레시안>과의 인연까지.


하나의 여행으로 생각합니다. ‘산책’의 의미도 있고 ‘대장정’의 의미도 있는 길이 되기 바랍니다. 오랫동안 먼 길 걸을 욕심으로 쓸데없는 힘을 뺍니다. <프레시안>을 통해 저랑 낯을 익힌 여러분께 길동무로 나서 주시기를 청합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