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간 지속된 냉전체제가 1990년을 전후해 갑자기 해소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냉전체제 아래 태어나고 자라난 내 세대와 아래 세대 사람들에게 냉전체제를 벗어난 세계체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과연 냉전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데 반해 학문적 준비는 별로 되어 있지 않은 과제였다.

게다가 20세기가, 그리고 제2 천년기가 끝나 가고 있을 때였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는 예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종래의 학술적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하나의 유사과학pseudo-science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학이 세상을 휩쓸었다.

그런 가운데 냉전 이후 세계질서의 구조가 사회과학계에서도 논쟁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기선을 제압한 것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이란 도발적 표현으로 제시한 자본주의 일원론이었다. 1989<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 지에 발표한 논문을 확장한 1992년의 책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의 '불가역적' 승리로 인류의 사회문화적 진화가 종착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를 문명의 최종적 형태로 보는 후쿠야마의 일원론은 세계질서의 구조를 놓고는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론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미국의 지도력이 충분치 않으므로 누군가가 소련을 대신해서 미국에 대한 대항세력의 구심점을 형성하리라는 양극체제론이 사회과학계에서는 우세했다. 그러나 헤겔과 하이데거 같은 대 철학자들을 배경에 둔 역사의 종말관념이 일반인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후쿠야마의 단극체제론이 빈약한 실증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일세(라기보다는 일시一時?)를 풍미한 것은 당시 유일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위세 때문이었다. 이에 맞서는 강력한 담론으로 나온 것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었다. 후쿠야마의 책이 나온 이듬해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지에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논문을 올린 것은 역사의 종말에 대한 반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논문이 1996년의 책 <문명의 충돌과 세계질서의 재구성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으로 이어졌다.

헌팅턴은 이 책에 실린 자신의 전망이 사회과학의 연구 성과가 아닌, 현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고 말했다. 엄밀한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들의 생각에 도움을 주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당시 사회과학계의 상황에 비춰 합당한 태도였고, 헌팅턴의 전망에 부분적 오류가 있더라도 전체적인 참고 가치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 한 공자 말씀에 부합하는 태도다.

 

1997년의 이 책 번역 초판에 실었던 추천사의 이런 대목은 지금도 남겨두고 싶다.

과연 냉전의 종식은 가치관의 통일로 이어질 것인가?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노동과 재화(財貨)의 가치를 보는 시각에 중심을 둔 것이었다. 공산권의 붕괴가 과연 공산주의 가치관의 소멸을 뜻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문제는 지금까지 부각되지 않고 있던 경제외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 대신 세계를 움직여 가는 화두(話頭)가 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탐구한 것이 헌팅턴의문명의 충돌이다. 이데올로기 대립에 억눌려 역사 흐름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던 문명 간의 갈등이 이제부터 수면 위로 터져 나올 것이라고 헌팅턴은 전망한다. 억누르는 힘이 강하고 억눌려 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 분출도 힘찰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당시의 사회과학이 헌팅턴의 전망을 뒷받침해 줄 수 없었던 큰 까닭 하나가 여기에 있다. 사회과학은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경제외적 가치의 탐구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가 근년에야 비중을 키우기 시작했다. 1990년대 상황에서는 세계질서의 재편 전망 같은 포괄적 주제를 경제외적 가치에 입각해서 고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주장은 학술적 연구의 결과인 이론이 아니라 새로운 연구 영역의 개척을 제안하는 하나의 가설로 볼 것이다. 이 가설의 골자는 경제적 가치를 매체로 조직되어 온 기존의 세계질서와 달리 장래의 세계질서에는 경제외적 가치가 큰 몫을 맡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 제안의 바탕에는 지금까지의 세계질서가 경제적 가치에 매달려온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 인식은 지금까지의 사회과학이 경제적 가치만을 기준으로 삼아온 데 대한 반성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근대 사회과학의 가장 큰 병폐가 보이는 것에만 얽매이는 경향이었다.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바스티아의 1848년 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Ce qu'on voit et ce qu'on ne voit pas이 좋은 예다. 바스티아는 당시 유행하던 깨진 유리창우화(빵집 유리창이 깨져서 돈이 들어도 그 돈이 유리가게를 거쳐 돌고 돌며 경제 활성화에 공헌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는 손해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반박하면서 돈이 간 곳만 보고 돈이 가지 못한 곳을 보지 않기 때문에 착각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담론 내용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바스티아의 관점이 60여 년이 지난 1914년에야 기회비용이란 이름으로 경제학에서 채택되었다는 사실이다.

바스티아의 글이 나온(1848) 후 프리드리히 폰 비저가 기회비용 개념을 제시할(1914) 때까지 유럽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체제의 확장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소비가 미덕이던 시대였다.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라며 산업 진흥에 대한 전쟁의 공헌을 찬양하던 시대였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대차대조표에 넣어야 한다는 바스티아의 너무나 상식적인 주장이 이 시대의 경제학에서는 무시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를 주로 다루는 경제학이 20세기 내내 사회과학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인간의 동기를 이기심으로만 해석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주장이 시대를 풍미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집착을 공유했고, 그 사이의 대결 양상은 경제외적 가치에 대한 고려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양자 간의 대결이 세상을 뒤덮고 있던 냉전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경제외적 가치에 대한 학술계의 인식이 매우 빈약한 상태였다.

이 책이 나온 후 20년 동안 세계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그 변화 앞에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은 고개를 숙였다. 2004년 네오콘 싱크탱크인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이 연구소 이름을 흔히 미국기업연구소로 옮기는 것은 잘못이다.) 연례 만찬에서 딕 체니가 미국 헤게모니의 단극체제 출범을 선언했을 때 후쿠야마는 속으로 내 친구들 모두가 현실을 잃어버렸구나.All of my friends had taken leave of reality.생각했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얼마 전 <역사의 종말><문명의 충돌>을 다시 읽어보려고 꺼냈다가 후쿠야마의 책은 제1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후쿠야마는 진보의 완성이라는 이념에 집착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었다. 그 자신이 현실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헌팅턴의 책에서는 새로 음미할 만한 시사점을 아직도 찾을 수 있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난 20년 동안 세계질서의 구조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의 성장이다. 1996년의 중국은 아직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스스로 개발도상국위상에 매달려 있을 때였다. 19987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둘러싼 논란에서 당시 중국의 위상을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공화당 우파와 민주당 좌파가 이례적으로 손잡고 이 방문에 반대한 것이다. 장래 군사-경제면에서 미국의 도전자가 될 중국의 성장에 도움이 될 행동을 미국이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파의 주장이었고, 좌파의 주장은 미국사회가 요구하는 인권기준을 중국이 충족시키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우호적인 행동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클린턴의 방문 자체가 중국의 입지를 크게 좌우한다는 인식이 양쪽 주장 밑바닥에 깔려있었다. 중국이 양대 초강대국의 위치에 와있는 지금과는 천양지판의 상황이었다.

양대 초강대국이라면 20년 전의 양극체제론이 적중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의 양극체제론은 누군가가 소련 대신 미국과 총체적 대립관계를 복구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총체적 대립이 아닌 다각적 상호의존 관계다.

단극체제론과 양극체제론이 모두 빗나갔다면, 헌팅턴의 다극체제론이 맞나? 꼭 그렇지도 않다. 이슬람국가IS, 러시아를 비롯해서 미국 헤게모니에 대항하거나 엇나가는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지만, 모두 미국의 작용에 대한 수동적 반작용의 차원일 뿐이다.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전면적 대안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중국 하나뿐이다.

단극, 양극, 다극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 자체가 제국주의체제, 냉전체제 등 하향식 세계질서의 경험에 묶인 것이다. 중국은 하드파워를 통한 하향식 질서가 아니라 소프트파워를 통한 상향식 내지 수평적 세계질서를 주장해 왔다. 하드파워를 아직 못 가진 상태에서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로 일대일로一帶一路나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DB 사업에서 보여주는 조직원리는 분명히 종래 서양 중심 패권체제와 다른 것이다.

나는 미-중 양대 초강대국의 병립竝立 상황을 신구新舊간의 교착 양상으로 본다. 어느 쪽이 이고 어느 쪽이 인지도 엇갈린다. 당장의 진행 구도는 미국 중심의 구세력에 대한 중국 중심 신세력의 도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넓고 길게 본다면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가치만을 기준으로 구축되어 온 근대적 세계질서()에 중국이 앞장서서 몰고 오는 변화는 근대 이전의 다양하고 복잡한 가치체계()를 복원하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신구간의 관계는 단순한 대결이 아니라 경쟁과 절충을 통해 제3의 길을 빚어가는 변증법적 과정으로 보인다.

문명의 충돌에 기반을 둔 다극체제론에는 세계질서의 성격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의 독점지배가 풀려 다양한 경제외적 가치가 되살아날 가능성을 짚은 것은 헌팅턴의 뛰어난 통찰이다. 20년 전에는 이 통찰이 21세기를 내다보는 창문이었지만, 21세기에 들어온 이제는 20세기 사회과학의 성격과 성과를 되돌아보는 창문이 되었다.

 

21세기 들어서는, 특히 2008년의 금융공황으로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불안감을 드러낸 후로는, 후쿠야마와 헌팅턴의 담론이 세계를 휩쓸던 1990년대와 다른 방향,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미국 명문대에 거점을 둔 종래 석학들과 다른 새로운 유형의 중국 학자들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변화가 정치-경제-군사 관계만이 아니라 학술방법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동서교섭사를 공부해 온 내게는 서세동점西勢東漸현상의 해소로 보인다. 19세기 중엽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체제 구축으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룬 서양세력이 동양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 서세동점이다. 동양인들은 처음에 서양의 우월한 무기만을 들여와 약점을 보강하려 했으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차츰 서양의 산업, 제도, 학술, 사상을 전수받게 된다. 20세기 들어와 동양의 전통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 서세동점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에 아시아적 가치Asiatic value이야기가 일각에서 나온 것이 서세동점의 해소를 바라보는 미약한 표현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훨씬 더 힘찬 주장이 중국에서 나오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양의 담론을 부각시키는 이 전환점에 이르는 길을 서양 사회과학으로부터 이어준 것이 세계체제World System이다. 1970년대 세계경제의 위기를 자본주의체제의 위기로 해석한 세계체제론은 1990년대에 공산권 붕괴를 자본주의체제의 위기 대응으로 해석하면서 영향력을 확장했다. 자본주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 근대 세계체제의 한계를 논하는 이 흐름으로부터 대안 체제의 가능성을 동양에서 찾는 시각이 2007년 조반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in Beijing>로 이어져 나왔다.

아리기의 흥미로운 논점 하나가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이다. 스기하라 가오루가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에 빗대 메이지시대 일본의 근대화를 설명하는 데 쓴 이 말은 서양식 자본집약적 근대화와 다른 노동집약적 근대화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 아리기는 이 개념을 장기간에 걸친 중국 발전에 확장 적용하면서 21세기 세계에 중국의 주도로 도입될 새로운 조직원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중국 철학자 자오팅양趙汀陽2005<천하체계天下體系>에서 중국식 정치철학을 제안했다. ‘국가의 틀을 벗어나 전 세계를 정치-경제적 이익의 분석 단위로 삼을 필요에 지금 인류가 직면해 있으며, 과거 중국의 천하제국원리가 중요한 참고가 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발전시켜 온 정치-경제학의 틀을 훌렁 뒤집자는 제안이다.

자오팅양의 관점은 잘 알려져 있는 <맹자孟子>의 한 대목에도 나타나 있는 것이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선생께서 천리를 머다 않고 오셨으니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지신 것이겠지요.” 할 때 맹자가 임금께서는 왜 꼭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어질음[]과 옳음[]이 있을 따름입니다.” 대답했다는 장면이다.

다른 대목에는 맹자에게 스승 자사子思가 정치의 궁극적 목적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있으며 어질음과 옳음은 그 수단이라고 일러주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도 맹자가 양혜왕에게는 왜 이로움을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양혜왕이 말한 이익이 천하의 이익이 아닌 위나라의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사익私益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공익公益을 해칠 수 있다. 맹자는 위나라의 국익國益도 사익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 것이다.

중국 학자들의 새로운 담론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나로서도 다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지금도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는 동양현대사 연구자 이병한 박사의 중국의 참여파 학자 후안강胡鞍鋼 칭화대학교 교수 인터뷰가 몇 회에 걸쳐 실리고 있는데, 눈여겨볼 점이 많다. 최근의 게재에는 중국의 발전이 환경을 고려하는 녹색 발전이어야 할 이유와 중국의 치수治水전통이 중요한 참고가 된다는 주장이 보인다. 서양식 발전 이론과 다른 방향이 총론을 넘어 각론 차원까지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과학 연구의 목적과 방법을 통째로 바꾸는 변화가 중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 해서 종래의 연구가 바로 폐기될 수는 없다. 종래의 연구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해야 새로운 연구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이 재해석을 위한 창문으로 헌팅턴의 20년 전 통찰이 가치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담론을 섭렵하기 바쁜 중에도 <문명의 충돌>을 다시 꺼내 읽어보고 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