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까지 "capitalist"는 "자본의 소유자"란 뜻으로, "capitalism"은 "자본의 소유"란 뜻으로 쓰여 왔을 뿐, 특정한 경제체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1850년 루이 블랑이, 1861년 프루동이 "capitalism"을 "자본주의"에 가까운 뜻으로 처음 썼다고 한다.
<자본론>(1867, 85, 94)에서도 "capitalist"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 등의 표현으로 수천 번 쓰이지만 "capitalism"이 쓰인 것은 총 10회도 되지 않는다. 1904년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나올 때까지도 "capitalism"이란 말은 그리 널리 쓰이지 않고 있었다. [이상 Wikipedia, "Capitalism"에서]
근세 유럽에서 발전을 시작해 지금까지 전 세계를 석권해 온 경제체제를 "자본주의"라 널리 부르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었다. 경쟁자로 나선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비되는 시각에서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엄밀한 의미는 아직도 합의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란 넓은 의미로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의미를 좁히는 것은 역사적 경험에 입각한 관점이다. 자유시장이라 함은 경제 현상이 국가의 통제 없이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 원리에 따라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
과연 시장 원리가 완벽한 자기충족성을 가지고 안정된 질서를 형성-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담 스미스 시절 이후 비관적 견해가 늘어나 왔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통제가 강하던 17세기 상황에서는 시장의 자율성 증대가 바람직한 발전 방향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그 후 국가의 역할이 줄어드는 상황을 겪으면서 시장 원리의 한계성이 점차 심각하게 인식되어 온 것이다.
역사적 경험 속의 자본주의는 시장 원리에 대한 과신 경향을 보여 왔다. 중세체제를 벗어나는 사회 발전 방향이 시장 원리를 전보다 더 존중하는 쪽으로 펼쳐진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는 일이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일어난 자본주의는 시장 원리에 대한 과신 때문에 성장에 집착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산업혁명의 토양이 되었다.
성장에 대한 이 집착이 유럽식 근대성의 첫 번째 특징이 되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의 길을 걷게 되어 있었다. 다만, 성장을 하나의 미덕처럼 받든 것은 특이한 현상이었다. 12세기 이후의 중국에서는 경제성장의 길을 걷기는 걸으면서도 성장을 부담스럽고 바람직하지 못한 일로 부득이한 한도 내에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지켜졌다.
성장 지상주의 근대화 방식이 다른 완만한 근대화 방식을 이긴 것은 암세포가 건강한 세포를 이기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생산력 경쟁에서든 군사력 경쟁에서든 성장에 맹목적으로 몰두한 사회가 다른 사회들을 이기게 되니까 다른 사회에서도 부러워서든 두려워서든 성장 지상주의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차츰차츰 성장 지상주의 풍조에 말려들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생각난다. 양자역학 원리는 나도 이해가 깊지 못하니 불확정성에 대한 하나의 비유 정도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역사의 전개과정을 생각함에는 매우 요긴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1935년 에르빈 슈뢰딩거가 제기한 이 가상 실험(thought experiment)은 당시 양자역학의 핵심 이론으로 제기된 양자의 중첩(superposition) 현상을 겨냥한 것이다. 중첩 현상이란 소립자의 상태가 어느 특정한 상태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상태의 조합(중첩) 형태에 머물러 있다가 외부로부터의 관측이 있을 때 한 특정한 상태로 붕괴된다는 것이다. 관측이 없는 상황에서는 두 가지 이상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슈뢰딩거의 제안은 소립자의 상태를 증폭시켜 그 상태에 따라 밀폐된 공간 속의 고양이의 생사가 결정되도록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그 공간을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의 중첩 상태가 되지 않느냐는 모순 제기였다.
이 모순을 풀기 위해 제안된 한 가지 이론이 '복수우주론(multiple universe)'이다. 고양이가 죽는 경우와 살아남는 경우가 제각기 펼쳐지는 별개의 우주가 갈라져 나온다는 설명이다. 고양이의 생사만이 아니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모든 일에서 별개의 우주가 갈라져 나가게 되어 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는 우주들이 갈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상과학과 역사소설을 결합한 '다른 역사(alternate history)'라는 소장르도 이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역사는 서로 다른 우주에서 서로 다르게 진행된 수없이 많은 역사의 한 갈래일 뿐이며, 다른 우주에서는 다른 역사가 진행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한나라 군대가 로마를 석권한 경우,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이긴 경우,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패퇴한 경우를 상정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역사에는 'if'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황금율에 억눌려 있던 창작 욕구가 터져나올 틈새를 찾은 것이다.
적어도 12세기 이후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여러 사회에서 중세체제를 넘어설 필요가 나타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대응책이 수백 년간 나란히 시도되고 있었다. 성장의 압박을 수용하는 것이 대응의 초점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비교적 미개한 한 지역으로부터 성장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전략이 나타나고 산업혁명을 그 무기로 갖추면서 다른 대응책을 모두 무색하게 만들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를 여는 순간이었다.
산업화를 통한 성장 지상주의 근대화는 18세기 후반 서유럽 한 모퉁이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온 세계를 휩쓸어 왔다. 이 글에서는 이것을 편의상 "산업형 근대화"라 부르겠다.
산업형 근대화가 세계를 석권했다고 하지만, 다른 형태의 근대화가 모두 완전히 절멸한 것은 아니다. 산업형 근대화가 거의 모든 사회에서 채택되었지만, 각 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추구하던 근대화 노선과 결합된 것이다. 성장 지상주의와 배치되거나 무관한 요소들이 어느 사회의 근대화에도 어느 정도 존재해 왔다.
각 사회의 고유한 그런 요소들을 "전통"이라고 흔히 불러 왔는데, 전통을 굳어진 과거가 아니라 그 사회의 고유한 흐름이라는 역동적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맞는 말이다. 중세체제를 넘어서는 방향에도 각 사회의 문화적 역사적 조건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어느 사회나 자기 조건에 맞는 "전통적 근대화"를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경쟁의 압박 때문에 부득이하게 산업형 근대화를 채택하면서도 각자 형편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는 전통적 근대화를 병행했던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산업화를 먼저 겪은 나라들이 문화적 정체성을 후발국들보다 잘 지켜온 상황을 이 조건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기회를 선점한 이점 덕분에 여유 있는 입장에서 전통적 근대화의 비중을 크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산업형 근대화에 따르는 "전통의 단절"이란 부담을 식민지에 떠넘김으로써 자기 부담을 줄일 수도 있었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산업화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서는 전통적 근대화의 의미를 살릴 여유가 적었지만, 주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많았다. 그리고 침략과 점령을 통해 산업형 근대화의 부담을 한국, 타이완, 만주 등 다른 지역에 많이 떠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지금 이 지역에서 전통이 제일 많이 살아남은 나라가 되어 있다.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산업화에 착수한 러시아와 미국은 방대한 자원에 비해 전통이 빈약한 나라들이었고, 그래서 20세기를 통해 산업형 근대화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 냉전시대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두 나라 중 러시아(소련)가 먼저 무너졌지만, 이것을 미국의 승리라고만 볼 수 없다. 전통적 근대화의 견제 없는 일방적 산업형 근대화는 단기간의 경쟁에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 구조적 결함을 면할 수 없고, 미국도 소련보다 더 버텼다 뿐이지, 이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세계적 산업화의 초기에는 산업형 근대화의 진도에 따라 경쟁의 승패가 정해졌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와서는 전통적 근대화의 요소를 얼마만큼 살리는가에 비중이 옮겨가고 있다. 전에는 비인간적 기계의 특성을 따라가는 것이 성공의 조건이었는데, 지금은 인간의 특성을 잘 살리는 것이 성공의 길이다. 최근의 경제 위기 속에 유럽이 미국보다 안정된 자세를 보이는 것도 전통적 근대화의 요소가 더 많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은 사실은 많은 후유증을 남겼지만, 그중 가장 큰 문제가 "전통의 단절"이다. 우리 사회 고유의 가치를 찾을 길을 모르기 때문에 보편적, 물질적 가치밖에 추구할 길이 없다. 80년대에 일본이 "일본식 경영"으로 세계를 풍미한 것은 일본이 지켜 온 전통적 근대화의 성과 중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서 한물간 수법을 물려받기에 바쁘다.
성장 지상주의는 물질적 가치에 사회를 매몰시켜 다른 가치를 찾지 못하게 한다. 유럽 국가들은 제국주의 시대에도 식민지 지역을 성장 지상주의로 몰아넣으면서 자기네 전통적 가치를 최대한 지켰고, 후기 산업화 시대에 와서는 그 전통적 가치를 밑천으로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길을 잘 찾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식민지시대의 성장 지상주의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성장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은 식민지배를 겪은 사회들의 공통된 문제다. 그런데 한국은 식민지 출신의 다른 사회들에 비해 원래 크고 강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정신상태를 해방 60년 뒤까지 지키고 있다는 것은 그 저력을 충분히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태다.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까지 한국의 전통적 근대화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바짝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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