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4. 23:32




 


수요일에 아내와 함께 가려다가 때아닌 폭설 때문에 며칠 늦춰 혼자 가게 됐다. 그러고 보니 달랑 혼자 가 뵙는 것은 꽤 오랫만인데, 그럴싸하게 봐서 그런지 어머니도 덤덤하신 편 같다. 텔레비전 열심히 보고 계신 앞에 가서 얼굴을 보여드리니 "어, 너 왔구나." 당연히 올 놈 왔다는 듯이 도로 화면에 시선을 돌리신다. 가만히 옆에 서 있었더니 1분쯤 지난 후 생각났다는 듯이 옆 자리 할머니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씀하신다. "이놈이 내 아들이라우."

무슨 퀴즈 프로그램인데 한참 보다가 이번엔 내게 고개를 돌리고 "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연예인들이 아이들 데리고 나와서 노는 건데, 내가 봐도 취향에 안 맞으시다. 좀 더 보시라고 권해도 흥미가 잘 붙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텔레비전보다 불경이 더 좋으시죠?" 했더니 고개를 마구 끄덕이신다.

창가의 전용석으로 모시고 와 반야심경부터 외웠다. 근래에는 독경도 노랫가락에 실으시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늘은 예전 낭송하시던 대로 담담한 방식이었다. 금강경을 읽기 위해 독경집을 가져올까 여쭈니 "아까 읽었다. 오늘은 얘기나 하자꾸나."

마침 원장님이 오니까 또 "이놈이 내 아들이라우." 몇째냐고 원장님이 물으니까 나를 돌아보며 "너 몇째냐?" 농담과 진담이 천연덕스럽게 어울려 판별하기 힘들다. 지금처럼 뻔히 아시는 질문도 아는 척 모르는 척 허허실실 수법이 몸에 배셨다. 내가 짐짓 고지식하게 손가락 셋까지 펼쳐보이며 "어머니, 제가 셋째입니다." 하니까 원장님을 돌아보며 "셋째래요." 내가 받은 질문을 대신 대답해 주시는 것처럼.

원장님이 "어제 오신 아드님은 몇째예요?" 하니까 정말 어리둥절해서 "어제 누가 왔나?" 하신다. 작은형이 왔던 모양인데, 이런 기억은 안 되시나보다. "둘째 아드님이 오셨잖아요. 둘째 아드님 이름이 뭐죠?" 원장님이 다시 묻는데, 얼른 생각이 안 나시는 듯, "나 몰라요." 셋째 아드님은 이름이 뭐예요?" 하니까 "이놈 이름은 알죠. 김기협. 너 김기협 맞지?"

이거 참... 어쩌다 이렇게 되셨나? 가까운 분들 중에는 작은형에 대한 어머니 편애가 지나쳐 문제가 될 지경이라고 걱정해 주는 분들까지 있었다. 내가 봐도 두 분 코드가 정말 잘 맞는다. 그런데 작은형 이름은 생각이 안 나고 내이름은 척척? 표정으로 보아 일부러 내게 아첨하시는 것도 아니다. 서양 속담이 맞나?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 보여야 마음에도 보인다.)"?

가만 생각해 보면 보호자로서 내 역할을 인식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식들 직접 대하시는 데는 이름이 필요없다. 그런데 제3자에게 내 보호자가 누구다, 밝히기 위해서는 이름 석 자를 댈 필요가 있다. 3년 가까이 어머니의 대외관계를 내가 맡아 드리는 상황을 은연중에 인식하고 계시기 때문에 "김기협" 석 자가 머리에 박혀 있으신 것 아닐지? 그렇다. 아까도 "기협이"라 하지 않고 "김기협"이라고 하셨다.

아무튼 잠깐 마주치는 틈에도 기억력에 자극을 주려 애쓰는 원장님, 참 철저한 분이다. 간간이 어머니 모습을 담은 사진을 메일로 보내주기도 하는데, 노인들을 잘 모시는 것 못지않게 가족들에게 요긴한 서비스다. 이따금 가서 몇 시간 모시고 있으면서 파악하기 힘든 생활 내용과 분위기를 알아보며 잘 지내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장님이 물러간 후 순옥이 내외와 전화 통화를 시켜 드렸다. 먼저 기훈이부터 통했는데, 아무리 설명해 드려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되시는 듯 거듭 물으신다. "누구라구?" 그러나 막상 기훈이 목소리가 들리니까 그냥 직접 와 닿는 것 같다. 애매한 것을 얼렁뚱땅하시는 기색도 약간은 있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는 더할 수 없이 분명하시다. 뒤이어 순옥이랑 통화도 마찬가지였다. 친자식들 못지않게 정이 깊고 어머니를 잘 모셔 온 이들인데, 어머니가 자기네를 제대로 알아들으시는 말씀을 듣고 기뻐 어쩔 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기훈이가 병원으로 와 뵌 것이 1년이 되었고, 순옥이는 더 오래 되었다. 진즉 통화를 시켜드릴 걸.

순옥이를 수양딸 삼으신 것이 벌써 30년 되어 가는 것 같다. 어느 절에서 만나셨다던가? 퇴직 전 몇 해 동안 자식들 다 떠난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지내다가 어머니의 조카(이종매의 아들) 기훈이랑 결혼했으니 수양딸이자 조카며느리인 셈. 기훈이는 조카이자 수양사위. 제주도에서 젖소 키우며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난 듯이 사는 이들 내외에게 어머니뿐만 아니라 나도 의지해서 지낸 세월이 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연전부터 순옥이가 육지에 나와 사느라고 둘이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안타깝다.

통화를 하시고 나니 그 사람들 생각이 떠오르시는지 한참 망연히 앉아 계시다가 불쑥 한 마디 하신다. "참 힘들다." 오래 앉아 계셔서 피곤하시다는 것으로 알아듣고 "어머니, 방에 들어가 누우시는 것이 좋겠어요?" 묻는데 이 여사가 마침 곁에 있다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오늘 아드님 오신다는 말씀 듣고 아까까지 가급적 많이 누워 계시도록 했는데요?"

말하는 동안 어머니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이 여사를 쳐다보신다. 가히 뇌쇄적인 미소다. 이 여사가 어머니를 각별히 따른다고 원장님이 메일에서 이야기한 일이 있는데, 저런 미소 풍겨주는 할머니가 있다면 나라도 뿅갈 거다. 다른 간병인들도 어머니 살펴드리느라 수고 많으시다고 인사하면 박사 할머니 때문에 재미있다, 일하기가 즐겁다, 자연스러운 반응이 비슷하게 나온다. 평생 처세술 갖고 한 몫 하신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완전히 처세술의 달인이시다.

이 여사가 잠시 후 물러갈 때까지 빙긋이 웃음만 띄고 말씀이 없다가 불쑥 또 한 마디 하신다. "산다는 게 힘들어." 표정까지 처연해지신다. 몇 주일 전에도 이런 말씀을 한 번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옛날 기억을 더듬다가 그러셨던 것 같다. 순옥이 내외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하신 것이 괴롭게 느껴지신 것일까?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나보다. "어머니, 바람이라도 한 바퀴 쐬시겠어요?" 뜻밖의 대답이 나오신다. "걷지도 못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기실 줄 알았는데, 이것도 마음에 걸리시나보다. "어머니, 아들은 뒀다 뭐에 씁니까? 제가 밀어 드릴께요." 그러자 얼굴에 환한 웃음을 피우며 "그래? 그럼 호강 한 번 해볼까? 밀어다고!"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꺾어 쭉 가면 복도 끝 전면이 유리창이고, 정원과 건너편 숲이 내다보인다. 거기서 내다보는 것을 좋아하셔서 모셔가면 오랫동안 앉아 계실 때도 있다. 오늘도 좋아하시는 것이, 피어오르는 봄빛이 느껴지시는 것 같다.

"어머니, 풀잎도 나뭇잎도 다시 살아나고 있네요." 하니까 같은 것을 생각하고 계셨던 듯이 바로 말씀하신다. "그래, 살았던 것은 죽고, 죽었던 것은..." 좀 가라앉기는 했어도 편안한 기분이 느껴진다.

"어머니, 떠나실 일이 걱정되시는 거예요?"

"아니, 걱정된달 것은 아니고..."

"어머니, 요즘 마음이 늘 편안해 보이세요."

건너편 숲을 바라보던 눈길을 내게 돌리고 말씀하신다. "그래, 고맙다. 네 덕분이다."

응대할 말씀이 생각나지 않아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노랫가락 화법을 많이 쓰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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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