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란드와 러시아 국경 위에 한 마을이 있었다. 아직 '국가' 개념이 엄밀하지 않던 시절, 이 마을이 어느 나라에 속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채로 긴 세월을 지냈다. 어느 날 두 나라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고 정확한 국경을 획정하기 위해 측량기사들이 파견되었다. 작업을 하고 있는 기사들에게 마을사람들이 다가가 물었다.

"우리 마을이 어느 나란가요?"

"국경에서 폴란드 쪽으로 백 미터쯤 들어와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마을사람들이 기뻐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기사들이 물었다.

"폴란드 쪽이 된 것이 어째서 그렇게 좋은가요?"

"아니, 몰라서 물어요? 이제 그 지긋지긋한 러시아 겨울을 겪지 않게 되었잖아요?"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2020)가 <빚, 5천 년의 역사>(2011)에 폴란드 유대인 출신인 어머니에게 들은 우스개라고 적은 이야기다. 나는 '운동가'를 좀 미심쩍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2011)의 주역으로 꼽히는 그의 책에 손이 잘 가지 않았는데, 유작인 <The Dawn of Everything> (2021, 데이비드 웽그로우와 공저)을 보고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참신한 관점을 탄탄하게 서술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고, 유머감각도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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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