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 모시기로 하고 생각하니, 허구한 날 만나면 얻어먹기만 하던 분들에게 모처럼 내가 대접하는 자리를 가진다는 사실이 엄청 대견하구먼. 그 생각을 하니, 혹시 자네도 형편이 맞는다면 가근하게 여길 분들과 자리를 함께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따라 드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대놓고 얻어먹던 세 분께 한꺼번에 답례하는 '1타 3피'의 자리가 될 텐데... 이런 자리 놓치면 내게 밥 한 끼 얻어먹을 기회를 다시 찾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시게. 꽤 특색있는 "한반도 평화의 밤"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며칠 전 홍석현 회장에게 보낸 메일의 한 대목이다. 윤여준 선생과 조광 선생을 청하는 자리를 만들어놓고 보니 홍 회장 생각이 났던 것이다. 두 분은 내 공부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쓰일 길을 권해주신 분들인데 마침 홍 회장과도 두어 달 전 그의 <한반도 평화 만들기>가 나온 이래 그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눠 오던 터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에 두 분 선생님 모시는 자리는 문자대로 표현한다면 내가 '二父之子' 되는 자리다. 지난 겨울 입교 생각을 떠올리고 천주교인 지인 중 대부님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얻을 만한 분으로 윤 선생을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계씨인 여익을 통해 응락의 뜻을 받아놓았다. 그러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입교를 연기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생각을 들은 조 선생이 "일단 입교해 놓고 보세요." 강경하게 권하는 바람에 그분을 대부님으로 모시고 바로 입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달 견진 준비를 시작하면서 견진대부를 세례대부와 별도로 모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견진대부로는 윤 선생님을 모시면 어떨까 조 선생께 의논을 드리니, 크게 기뻐하신다. 대자 교육에 어려움을 느끼고 계셨던 게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다.

 

그래서 윤 선생께 부탁을 드리게 되었는데 부탁 드리는 자세를 한껏 정중하게 하고 싶었다. 댁으로 찾아뵙는 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요새 풍속으로는 부담만 드리는 일 같다. 그래서 근사한 식사 대접이라도 한 차례 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런 작정을 하고 보니 큰 대부님 모시는 자리에 작은 대부님도 함께 하면 두 분 다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분께 타진해 보니 과연, 서로 만날 일을 너무나 반가워하는 바람에 바쁜 분들인데도 일정이 쉽게 잡혔다. 그리고 나서는 홍 회장까지 욕심이 났는데, 그까지 맞출 수는 없었다. 위의 메일 보내고 바로 답장이 와서 "무척 땡기는 자리이긴 하지만 그 날 다른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두 분께 경의를 전해 달라며 자기가 나중에 자리를 한 번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 자리는 내 "1타 3피" 자리가 되지 않을 거다. 나는 돈 쓰는 일에 한 차례 넘어 시도할 생각이 없다.

 

윤여준 선생. 통할 만한 이들과 얘기 중에도 그분이 등장하면 "책사"로 고정된 이미지에 마주친다. 나 자신 그분과 교류하기 전에는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지내면서 내 마음속의 그분 모습은 반대편으로 옮겨갔다. 그분의 능력보다 그분의 성실성을 더 크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에서 그 성실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는데도 그런 표현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그 연설에 나타난 성심조차 재주로 꾸며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윤 선생을 "성심의 인간"으로 보는 것은 다른 것 볼 것 없이 나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내게 잘해줘서 그분에게 개인적으로 득될 것이 꼬물도 없다. 그분이 간절하게 바라는 "민족사회의 더 나은 장래"에 내가 공헌할 밑천이 있다고 봐서 내게 '플랫폼'을 만들어주려고 공을 들인 것이다. 그분과의 접촉을 통해 내가 그분의 헌신성을 전수받지는 못했지만, 그 성심을 아낄 줄 아는 감화는 받았다.

 

그리고 조광 선생. 지난 겨울 그분을 찾아간 것은 연구활동 복귀를 위한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마침 그때 품기 시작하고 있던 입교 생각이 그분의 열렬한 호응을 받아 대부님으로 모시게 되었고, 입교 후에는 민족화해 사업 참여를 열성적으로 권해주고 있다. 그분도 윤 선생과 마찬가지로 내 공부가 민족 문제 해결에 공헌할 잠재적 가치를 크게 봐주는 것이다. 두 분이 공유하는 뜻이 크기 때문에 이번 주 만남을 기뻐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홍 회장. "한반도 평화"에 관한 그와의 대화가 자꾸 종교, 영성 쪽으로 흘러간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다. 나는 근년에 이르러서야 문명의 흐름이 종교를 되찾는 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고, 입교의 마음도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빚어진 것이다. 그런데 홍 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장래 종교의 역할에 대한 내 생각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뜻밖의 일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럴싸한 일이기도 하지만.

 

두 분 대부님, 참 배울 게 많은 분들이다. 지식보다 심성에서. 그런 곁에서 모습을 새로 드러내고 있는 홍 회장에게도 날이 갈수록 배우고 싶은 마음이 늘어난다. 우리 사회를 아끼는 마음을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잘 키워온 분들이고 그 뜻이 잘 표현되도록 돕는 일에 마음이 끌린다. '1타 3피'의 꿈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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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