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1492)은 세계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꼽혀 왔다. 새로운 대륙을 인류문명에 끌어들여 문명발전의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5백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이 발견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콜럼버스 이전에도 아메리카에는 인류문명이 있었으며, 콜럼버스 이후의 변화는 유럽문명의 타 문명 정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문명이 아니면 문명이 아니고, 문명을 가지지 않았으면 짐승이나 마찬가지라는 관념이 오랫동안 유럽인의 의식을 지배했다. 이 관념은 유럽문명에 정복당한 지역에도 주입되었다. 이 관념에 따르면 아메리카 원주민은 개종의 대상 아니면 정복의 대상일 뿐이었다.

 

인디언은 이제 미국과 캐나다에서 본토 아메리카인(Native Americans)’으로 불린다. 그들을 소외시키던 편협한 문명관 대신 그들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인간관이 보편화된 덕분이다. 그들의 권리도 보호지역의 수용 대상이던 시절과는 다른 차원에서 인정되기 시작하고 있다.

 

41일부로 자치권이 발효한 캐나다의 새 준주(準州 Territory) ‘누나부트는 이누이트 말로 우리나라란 뜻이다. 캐나다 면적의 5분의 1, 한반도의 9배나 되는 광대한 지역이 23천의 이누이트인을 주축으로 하는 27천 주민의 자치에 맡겨졌다는 외신은 만우절 농담이 아니다.

 

이누이트 말로 생식자(生食者)’란 뜻의 에스키모대신 사람을 뜻하는 이누이트로 이름이 바뀐 것도 근년의 일이다.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보다 몽고인종의 특색을 분명히 보여주는 이누이트인은 비교적 근세에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워낙 고위도지역에 살기 때문에 다른 원주민들에 비해 정복자들과의 충돌도 적은 편이었다.

 

20여 년 전 이누이트 자치론이 처음 제기될 때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누이트인들이 십여 년간 길거리 시위 한 번 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여론 확산에 노력한 결과 누나부트 준주 자치법이 10억 달러 지원방침과 함께 93년 캐나다 의회를 통과했다.

 

누나부트의 첫 수상이 된 34세의 변호사 오칼리크는 준주 정부가 지역 주민 모두를 민주적으로 평등하게 대표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인구의 15%를 점하는 외래인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석의 의회에서 외래인은 4석을 가지고 있다. 관용을 바탕으로 한 자치권의 부여와 행사가 종족 간 갈등을 풀어 가는 모범적 사례로서 눈길을 끄는 곳이다. 1999. 4.

 

 

'미국인의 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物神 앞의 어린이들  (0) 2015.01.07
역사학의 危機  (0) 2014.12.25
自由냐, 人倫이냐?  (0) 2014.12.25
사오정의 시대  (0) 2014.12.20
고통분담의 마음  (0) 2014.12.20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