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曹操)20년간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였으나 스스로 황제의 자리를 빼앗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한()나라에 충성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가 죽은 지 몇 달도 안 돼 그 아들 비()가 황제자리에 올라 위()나라를 연 것은 이미 모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었다.

 

조조가 한나라를 핍박한 업보는 3대도 안가 그대로 돌아왔다. 그의 증손자 방()이 황제일 때 권신 사마사(司馬師)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그 후 십여 년간 사마 씨는 허수아비 황제를 멋대로 갈아치우며 권력을 농단하다가 결국 진()나라를 세웠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황제를 바꾸려고 사마 씨가 심복을 보내 퇴위를 권할 때 황제가 부덕한 증거로 일식(日食)이 거푸 일어난 일을 들먹였다. 청년 황제는 반박하기를, 일식은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니 부덕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합리적 주장으로 황제자리를 지킬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자연현상의 법칙성이 잘 밝혀지지 않았던 시절의 사람들은 특이한 자연현상이 인간세상의 큰 변화와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대낮에 해가 가려지는 일은 천자의 권위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3세기 초의 중국에서는 해의 궤도 황도(黃道)와 달의 궤도 백도(白道)가 겹칠 때 달이 해를 가려 일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었다.

 

많은 자연현상의 법칙성이 밝혀진 뒤에도 그 정치적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식의 법칙성이 알려진 후 근 2천년 뒤까지 조선왕조실록 편찬자들은 일식을 충실히 기록했다. 천문학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사건과 관련성을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19992000이나 아무 의미 없는 숫자일 뿐이다. 기원으로 삼는 예수 탄생시점에도 이설(異說)이 분분할 뿐 아니라 십진법이라는 특정한 기수법(記數法)을 쓰기 때문에 그런 눈에 잘 띄는 숫자가 지금 닥쳐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새로운 백년, 새로운 천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긴장감을 느끼는 것은 역시 숫자의 상징성 때문이라고 이해할 일이다.

 

어떠한 이변도 합리적으로 풀이하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백년만의 홍수도 50년만의 가뭄도 엘니뇨, 라니냐로 설명해 치우니 아무도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근래 심해진 기상이변이 온실가스 등 인간 행위의 결과인지는 과학도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인류 전체의 부덕 때문은 아닐까, 불합리한 상징성이라도 떠올려본다.  199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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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