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30>

기사입력 2003-09-29 오전 10:11:47

  근대 이전 유럽에서 유대인의 이미지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로크, 월터 스코트의 “십자군의 기사”에 나오는 아이자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돈밖에 모르는 파렴치한 인종으로 통상 인식되었던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서부와 중부 유럽에서는 많은 유대인이 새로운 학문을 앞장서서 익히고 새로운 여러 전문분야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다. 이를 질투하는 마음이 종래의 경멸감을 바탕으로 유럽사회에 널리 퍼졌는데, 19세기 후반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이 반(反) 유대 정서가 정치에까지 반영되어 반 유대주의 문제를 일으킨다. 드레퓌스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유대인의 시오니즘은 반 유대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존중받는 민족으로 유대인을 만들자는 것이 시오니즘의 골자다. 이를 위해 유대인의 국가를 만들려는 노력이 곡절 끝에 2차대전 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건국 전망이 세워지지 않은 시절에 반 유대주의가 없는 신천지 미국으로 건너간 유대인이 많다. 그래서 미국은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이며, 인구에 비해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를 세우는 것과 함께 존중받을 만한 민족성을 함양하는 것이 시온주의자들의 과제였다. 샤일로크와 아이자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에 와서도 우수한 유대인이 전문직종에 집중해 나약한 민족으로 인식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근로자’와 ‘전사(戰士)’의 이미지를 키우는 데 힘을 쏟게 된다. 흔히 ‘노동당’으로 번역되는 제1 야당은 근로자의 이미지를 찾는 노력에 뿌리를 둔 정당이므로 ‘근로당’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한편 집권당인 리쿠드당은 전사의 이미지를 추구하던 군사조직에서 뻗어나온 정당이다.
  
  노동당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온건하고 리쿠드당이 강경한 데도 이 전통이 작용한다. 근로자로서 유대인은 아랍인과 어깨를 나란히 사이좋게 일하고 싶어한다. 반면 전사로서 유대인은 아랍인을 굴복시켜 저항을 없앰으로써 평화와 번영을 얻으려 한다.
  
  시오니즘은 제국주의 시대 유럽에서 태어났다. 온건한 근로 시오니즘은 배타적이고 탐욕스러운 제국주의 분위기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펼쳐진 데 반해 호전적인 전사 시오니즘은 제국주의 원리를 그대로 본받아 유럽에서 제국주의 시대가 막을 내린 뒤까지도 그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영국이 제국주의 패권을 누리고 있던 시절에 이스라엘의 건국 방침을 세워준 데는 아랍세계 가운데 유럽인의 국가를 만들어 제국주의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뜻이 있었다. 2차대전 후 영국이 패권을 잃자 새로운 패권자 미국이 이스라엘의 후견인 역할을 넘겨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지렛대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랍인의 바다 속에 섬처럼 떠 있는 이스라엘은 원초적으로 갈등의 핵이다. 그래도 건국 후 50여 년을 지내면서 갈등을 아주 없애지는 못할망정 갈등을 포용하고 살아갈 만한 지혜가 쌓여 와서 노동당의 주도하에 “땅 대신 평화(Land for Peace)” 정책이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리쿠드당이 집권하면 다시 호전적 정책으로 돌아가는 일이 십여년째 반복되고 있다.
  
  긴장상태 때문에 미국의 원조를 필요로 하고, 또 미국의 원조를 계속 받기 위해 긴장상태를 필요로 하는 이스라엘의 모순은 끝날 때가 되었다. 빼어난 전투력보다 뛰어난 생산력에 의지해 지구촌의 건설적인 구성원이 되려는 국민의 염원이 자라났기 때문에 노동당의 평화정책도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샤론 정부의 강경책이 호전적 시오니즘의 마지막 발버둥으로 끝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공군 조종사들의 민간인지역 폭격 거부 움직임이 좋은 징조로 보인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