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테고리를 만들어놓은 덕분에 강연 맡아 온 자취를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다. 강연 할 일이 새로 있어도 전에 한 강연보다 발전시킬 길을 여기 모아놓은 글들 보며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주 유용한 카테고리다.

 

재작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몇 차례 강연과 발표가 있은 후로 오랫동안 입을 쓰지 않고 지냈다. 1년 반 동안 국토해양부 강연 한 차례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강연 열심히 할 생각을 하려니 이 카테고리를 많이 쓰게 되겠다.

 

어제 강연은 편안하고 만족스러웠다. 강연장 크기와 청중 수가 적당히 어울렸고, 행사팀 세 분의 이해심도 깊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곳 시민강좌에 비해 연령층이 젊었다. 준비한 원고를 그대로 쓰지 않고 청중 반응에 따라 적당한 표현반응을 찾아나가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로서는 모처럼의 '열강'이 가능했다. 초청을 또 받고 싶다는 눈치를 주최측에게 잔뜩 뿌려놓았는데 잘하면 여름 전에 한 번 더 갈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에서 7-8월 중 갖고자 하는 8회 강연 준비에도 자신감이 붙는다. 어제 강연 준비의 네 배 정도 내용을 정리해 놓으면 함량 확보는 되겠고, 프리젠테이션 방법 궁리에 노력을 충분히 쏟을 수 있겠다. 그 강연 준비가 되면 해방일기를 주제로 한 강연은 조자룡 헌 창 쓰듯 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 특히 한국현대사 관계자들 앞에서 짤막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이 하나 들어왔다. 6월 10일 서중석 선생 고별강연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참석할 뜻을 밝혀 놨는데, 그 자리에서 한 마디씩 할 지인들 틈에 끼어달라는 것이다. 서 선생과의 연분을 생각해도 의미있는 일이거니와, 현대사에 데뷔하는 입장에서 현대사 관계자들의 모임이 처음이니 무슨 얘기를 할지 궁리를 좀 해놔야겠다.

 

뭔 얘기를 하나? 내가 종북주의자 아닌 종서(從徐)주의자라고 넉살을 떨까?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추천사에 박인규 대표가 내가 서 선생의 '현하지변'에 넘어가 사학과 전과를 결심했다는 소문을 적었다.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사학도가 되는 과정에서 서 선생과의 대화는, 내용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중요한 입력 내용의 하나였다. 그런데 우리 또래 퇴직할 무렵이 되어 서 선생이 길을 연 한국현대사 분야로 쫓아들어오고 있으니 종서주의자를 자인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또 하나 중요한 고비에 서 선생이 끼어든 일이 있다. 아버지 일기를 입력한 후 서 선생께 검토를 부탁한 일이다. 그분의 검토가 <역사 앞에서> 출판 계기의 일부가 되었고, 그 책 출판이 그 후 내 진로에 은연중 큰 작용을 계속했던 것이다. 자주 만나며 지낸 것도 아닌데 그렇게 중요한 고비에서 역할을 맡아준 일을 생각하면 그분과의 인연이 각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기는 한데, 생각이 더 필요한 일이다. 대면한 자리에서나 없는 자리에서나 단 1년 선배인 서 선생을 '형님'이라 하지 않고 꼭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내 유별난 버릇이 언제 시작된 것이었나 가물가물하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석연한 설명이 떠오르면 그 얘기도 하고 싶은데, 하게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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