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오늘 오전 장덕수 살해사건의 판결이 군정재판에서 나왔습니다. 3월 2일의 첫 공판 후 꼭 한 달 만이군요.

실행범 박광옥, 배희범과 김석황, 조상항, 신일준, 손정수, 김중목, 최중하 6인의 교사범, 모두 8인이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밖에 조엽과 박정덕 두 사람은 10년형이고요.

 

한 사람을 죽인 책임으로 여덟 사람의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이 법리에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군사재판이라 하더라도 나름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갖지 않는다면 사법제도로서 신뢰를 얻을 수 없죠. 군정재판에 대한 민심이 어떻습니까?

 

안재홍: 군정재판에 대한 민심은 기본적으로 미군정에 대한 민심과 통하는 거죠. 해방 후 첫 겨울의 식량사태에는 미군정의 책임이 컸고, 그때 인민의 신뢰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1946년 7월말 정판사사건 재판정 소요사건 때 체포된 50명 중 44명에게 1주일도 안 되어 3년 이상의 징역형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엿장수 재판’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경범죄 정도의 사안을 놓고 그런 중형 판결을 무더기로 내놓다니...

 

힘을 가진 자는 힘없는 자의 질시를 받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힘의 활용에는 절제가 필요한 것인데 미군 군정재판은 그런 절제의 기색을 보인 일이 없습니다. 사법제도의 원리에 깊은 이해를 갖지 않은 일반인들도 미군의 횡포가 일본인보다 못하지 않다는 비판을 하게 된 바탕에는 힘없는 자의 피해의식도 깔려 있는 것이죠.

 

한편 식자들 간에는 재판관할권의 혼란이 걱정거리입니다. 똑같은 사안을 조선인 사법부에 맡기느냐, 군정재판에 회부하느냐 결정이 군정사령관 마음대로예요. ‘포고령 위반’은 군정재판 소관이라고 하는데, 그 포고령이라는 게 걸리지 않는 게 없는 거잖아요? 법령이 미비한 진주 초기에 쓰라는 것이 포고령이었는데, 필요도 없게 된 그 포고령을 생각날 때마다 도깨비방망이처럼 꺼내서 휘두르니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가 자리 잡을 길이 없죠.

 

김기협: 하지만 최근 대한민청 사건으로 군정재판의 인기가 좀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작년 4월 김두한 일당이 좌익 운동원 십여 명을 납치해 마음껏 고문-학대하다가 그중 한 명을 죽이기에 이른 것은 단순 살인사건과 차원이 다른 끔찍한 범죄였죠. 제가 형법에 관해 잘 모르지만 지금도 조직폭력은 단순폭력과 다른 차원의 중죄로 취급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조선인 사법부에서는 이 사건에 상해치사죄 등을 적용해서 직접 살해자에게 7년형을, 그리고 두목인 김두한에게는 “벌금 2만 원 또는 160일간 육체노동”을 판결해서 세간의 조소와 분노를 불러일으켰죠. 김두한이 무법천지로 날뛰는 배경이 경찰총수 조병옥과 장택상임을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이제 사법부마저 흉악무도한 범인을 풀어주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울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상고 단계에 있을 때 군정재판으로 이관되었습니다. 결국 지난 2월 중순 판결이 나온 것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3월 15일 하지 사령관의 형량 조절을 거쳐 발표되었죠. 재판에서는 14명에 사형, 2명에 종신형의 판결을 내렸는데 하지가 김두한 한 명의 사형만 확정하고 나머지 15명은 한두 등급씩 감형한 결과였습니다.

 

하지가 너무 깎아준 것 아니냐는 불만은 있어도, 조선인 사법부에서 처리했던 결과에 비하면 제대로 처리한 셈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만족했죠. 그래서 군정재판이란 것이 쓸 만한 데도 없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고요.

 

안재홍: 나는 대한민청 사건 이관이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 결과만 놓고 보면 사법 정의가 살아난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사법제도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입니다. 새로운 혐의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이미 조선인 사법부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을 사령관의 결단으로 이관한다는 것은 조선인 사법부의 권위를 여지없이 짓밟은 짓입니다.

 

1심 판결은 물론 형편없이 잘못된 것이었죠. 죄질이 나쁠 뿐 아니라 법질서를 정면으로 유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범죄에 ‘상해치사죄’라고? 우발적인 싸움에서 죽음이란 결과가 우발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백주 대낮에 수십 명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십여 명을 납치해서 저항도 못하는 상대를 죽이고 병신 만든 극악한 사건의 수괴에게 벌금형이라니, 이거야 바로 ‘살인면허’ 아닙니까. 일반 백성은 어떻게 숨 쉬고 살라는 말입니까. 조선인에게 사법권이라고 쥐어준 것을 이런 식으로 행사하다니,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인은 안 돼.” 하던 게 이 사건의 검사와 판사 같은 조선인들 대문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데도 길을 가려야 합니다. 왜 1심 같은 잘못된 판결이 나왔는가? 사법권을 주되 올바른 사람에게 제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병로 사법부장과 이인 검찰총장은 훌륭한 인격자들이지만 그분들에게는 재판과정을 관리할 충분한 권한이 없고, 그 밖의 사법부 간부들 중에는 자질이 부족하고 편파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좌익 법관들을 추방할 때 양심적이고 중립적인 인물들이 많이 쓸려나갔어요. 김병로 부장과 이인 총장으로서는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대한민청 1심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2심에서는 올바른 판결이 나오도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사법부가 사법부 노릇 제대로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타당한 이유도 없이 사건 하나만을 쏙 빼서 이관한다면 그러지 않아도 바보이던 조선인 사법부를 완전히 병신 만드는 거죠. 하지 사령관이 사안의 본질을 살필 줄 모른다는 것이 늘 문제인데, 대한민청 사건 이관은 그중에도 심한 일이었습니다.

 

김기협: 그렇습니다. 하지가 모처럼 올바른 생각을 하긴 했는데 방법이 엉망이었네요. 사건 하나 제대로 처리하겠다고 사법부 얼굴에 먹칠을 했으니 “빈대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 할지요.

 

장덕수 살해사건으로 돌아와서, 사건의 본질은 정치적 암살인데 사형 8인이라는 건 아무리 군사재판이라도 심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청 경우 14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가 사령관 조정을 통해 한 명 사형으로 줄였지만, 그때는 판결 내용을 조정 전에 공개하지 않았죠. 대폭 조정이 예정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판결 내용을 그대로 공개한 것으로 보아 사령관 조정에서도 큰 감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교사범으로 사형 판결을 받은 6인이 김구 선생의 가까운 추종자들이고 그분 자신의 연루 소문까지 떠돌았습니다. 그분이 원래 하지 사령관과 사이가 안 좋은데다가 최근 총선거 반대로 적대관계가 심해진 상황이 이 재판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죠.

 

안재홍: 판결 자체는 미군정재판의 틀을 벗어난 게 아닙니다. 문제는 사령관 조정에 있으니까 두고 봐야죠. 그런데 2월의 대한민청 경우와 달리 이번에 판결 내용을 바로 공개했다는 점에서는 미군정이 김구 선생을 대하는 태도가 비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령관 조정에는 당신 태도가 감안될 것이다.” 하고 압박을 가하는 느낌이 들어요.

 

김구 선생이 증인으로 두 차례 출정한 것을 놓고도 그분 주변에서는 그분에 대한 음해의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그렇게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을 증인으로 요청한 것은 변호인단이었어요. 그분의 수하로 자타가 공인하는 피고들이 그분의 연루를 주장하고 있었으니 그분의 출정은 해명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작년 6월 23일의 반탁시위 때 미군정 인사들이 김구 선생이 선동에 나섰다며 의법처리를 주장할 때 내가 끝끝내 막았습니다. 그분이 간접적 작용은 했을지 몰라도 현장에는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두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번은 시위사건이 아니라 살인사건이고, 피의자들이 선생의 연루를 주장하고 있는 판입니다. 위신 따질 일이 아니죠.

 

김기협: 그 재판 얘기는 그 정도로 하고... 요즘 모든 조선인의 관심이 총선거와 남북협상에 쏠려 있습니다. 선생님이 1년 남짓 맡아 온 민정장관직의 사의를 표한 것도 거기에 관계가 있는 것이겠죠? <민세 안재홍 선집 2>(지식산업사 펴냄) 252-253쪽에 수록되어 있는 “하지 사령관에게 보낸 공한”을 옮겨놓습니다.

 

나의 민정장관 취임은, 행정권 이양의 취의에 따라, 남조선 미군정에 협력하면서 조선인 자신에 의한 정치의 민주주의적 쇄신과 민생문제의 해결을 위한 산업경제 재건 건설 등 적극 추진으로, 미국과 외타 연합국의 원조에 관한 남북통일과 진정한 민주주의 독립국가의 완성을 조속 실현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남조선 미주둔군사령관 존 R. 하지 장군의 추천을 수락함으로써 된 바이다.

 

이래 1년이 넘는 동안, 미소 협조는 파열되었고, 본인의 정치노선의 일 주요부분을 구성한 좌우합작도 실패되었고, 정치적 혼란과 민생문제의 곤란도 가중한 현상으로써, 최초 소기한 목적이 성취되기 어려운 사태인 위에 ‘가능한 지역의 총선거’ 단행으로 된 현 단계에 있어서는, 평일 그 정치노선이 본 단계성과 합치되는 인물로서 민정 최고책임을 부하케 함이, 정치도덕상 지당한 조처이고, 공인의 출처로서도 의당한 태도임이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덕망-역량 및 신임이 아울러 적합한 인물에게 이 직무가 이동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이에 남조선과도정부 민정장관의 임을 사퇴합니다.

 

또 본관 재직의 중에 거듭하여 상당한 정치적 도의적 비방을 받았사오나, 본인으로서는 그 점에는 관심 아무런 애체(碍滯)되는 바 없는 사실이오며, 주둔군샤령관-군정장관 등 줄곧 나에게 대한 근본적인 신뢰는 변치 않으신 점을 감하(感荷)합니다.

 

또 정국 다난한 즈음, 홀로 현직을 떠나는 의리상 결함되는 점 있지 않을까 숙려하였사오나 역량 있는 인물을 당무케 함이 더욱 큰 책무라고 판단하옵기 여차 사임을 단행키로 한 바이오니, 이상의 사정 심량(深諒)하시고 취허(就許)하심을 근기(謹冀)합니다.

 

‘가능한 지역의 총선거’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 총선거를 관리하는 민정장관 직에 머무를 수 없다는 뜻을 둘째 문단에서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평소 태도로 본다면 아무리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총선거라도 그 선거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을 하실 것 같은데, 아예 관여하지 않으려 하시는 것이 뜻밖입니다. 후임자가 누가 될지는 차치하고, 선생님이 빠진 후 과도정부의 다른 간부들이 공정하지 못한 태도로 임할 것이 걱정되지 않습니까?

 

안재홍: 그렇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기왕 앉아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러나 1년 남짓 이 자리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더 이상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온갖 욕설과 협박을 들으면서도, 그래도 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않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보면 이뤄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취임할 때 김구 선생께서 “금후 그대는 도로무공(徒勞無功)일 것이고, 결국 득담(得談)만 많이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되었을까, 혼자 앉아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결기가 부족한 샌님 기질을 스스로 탓하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꼭 세상이 알아주는 영웅이 아니더라도 영웅다운 기개 없이는 지금 조선이 처한 난세에서 조그만 성취라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시국에서 성실한 노력만으로 내 입장을 떳떳이 한다는 것이 소인배의 자기기만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이제 나도 더 결연한 태도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김기협: 위 편지에서는 생각하신 것을 다 적지 못하셨죠. 그런데 끝내 자리에서 물러나신 후 7월에 “민정장관을 사임하고-기로에 선 조선민족”이란 긴 글을 발표하셨습니다.(<민세 안재홍 선집 2> 258-284쪽) 해방 후 겪어온 일에 비추어 시국의 변화를 서술한 글입니다. 아직 쓰지는 않았어도 지금 마음속에 있는 내용이겠죠. 그중 민정장관 직에 관련된 내용에 지금 말씀하신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옮겨놓습니다.

 

민정장관 재임의 전말은 후회함은 없다. 다만 그를 통하여 민족운동 상의 득실을 일별하건대, 제일로 미군정 개시 당시 ‘인공’ 방지의 때문에 보수적 세력과 결련하게 된 이유는 증설(曾說) 있고, 다음에 김규식 박사를 의장으로 입의를 열고 나를 민정 수반에 들어 정부 각계에 애국자를 더 많이 등장케 하여, 써 인심을 일신한다고 서둘렀으나, 무위로 마칠 수밖에 없이 된 것이 제2차적 단계요, 이리하여 김-안의 등장이 중도반단으로 무위일밖에 없이 된 때 공포되었던 행정권 이양은 결국 조선인의 무능 또는 불공명(不公明)과 건과(愆過)가 조건과 같이 되어 전연 취소 말살됨과 같은 결과로 된 것은 또 제3단계라고 하겠다.

 

요컨대 조선인은 자체 상호의 취송배제(聚訟排除)에서 민족적 총력을 자신 말살하였고, 미국인은 1차의 전폭적 신임을 조선인에게 표현치 못한 채로 3주년을 지나, 지금 바야흐로 가능지역의 총선거에서 조선인의 독립정부를 산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독립정부 됨에 대하여 그 거대한 기여 있기를 기원치 아니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조선에서는 예상하였던 인민공화국 선포 준비의 비보(飛報) 왔다. 오호. 기로는 의연 기로이구나.

 

미국인의 조선인 불신, 그리고 조선인의 무능, 공명치 못함과 잘못된 행동이 민족을 위기로 몰고 온 원인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군정재판 문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구조적 문제지요. 그런데 미국인과 조선인 양측의 문제를 나란히 지적하는 데 그쳐서는 애매한 양비론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문제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려면 초점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겠습니까?

 

안재홍: 힘을 가진 쪽의 문제를 먼저 봐야겠죠. 조선인의 문제라 함은 일부 조선인의 문제입니다. 극좌와 극우의 문제죠. 그런데 미국인이 극우 조선인에게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에 좌우 대립이 극심해지고 양심적 조선인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겁니다.

 

미국인의 문제도 엄밀히 따지면 일부 미국인의 문제죠. 그런데 바로 그 일부 미국인이 조선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열쇠를 쥐고 있단 말입니다. 과거 일본인도 양심적인 사람이 많았지만 조선 문제를 좌지우지한 것은 침략주의적 일본인이었죠. ‘해방’이라고 하지만, 제국주의적 외세에 민족의 휴척이 걸려 있는 상황에는 근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먼저 봐야 할 문제는 외세의 문제이지만, 궁극적으로 중요시할 문제는 조선인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세계대전을 몇 차례 더 겪는다 해도 민족의 힘이 충분치 못하면 외세의 힘에 민족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해방을 계기로 우리는 큰 희망을 일으켰지만, 이제 굳어져 가고 있는 분단건국이 지금 상황에서 우리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 단계에는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 운명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