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6>

기사입력 2002-12-02 오전 10:28:35 

 운전병이 먼저지? 관제병이 먼저라고? 그럼 관제병 들어오라고 해요.
  자네가 관제병인가? 자네가 탄 궤도차량에 한국 애들이 깔려죽었다고 하는데,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졌지? 혹시 자네 책임은 아닌가? 돌발사태가 벌어지면 운전병한테 알려서 위험을 피하게 하는 게 관제병 책임이잖아?
  
  뭐라고? 잘 안 들려. 좀 큰 소리로 말해 주게. 아니, 그렇다고 소리까지 지를 건 없고. 알았어. 50미터 전방, 20미터 전방에서 두 차례나 운전병한테 경고를 보냈다는 거지? 지금 하는 것처럼 씩씩한 목소리로 말해준 거지? 그렇다면 자네는 당연히 무죄지. 누가 자네를 재판받으라고 이리 보냈는가? 할 일도 없는 걸.
  
  아, 검사, 자네가 보냈다고? 이 친구가 운전병한테 경고를 보냈다는 증거가 없다고? 그럼 경고를 안 보냈다는 증거가 있는가? 이봐, 자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풍토병에라도 걸린 게 아닌지 진찰 좀 받아보게. 유죄를 주장하려면 입증할 증거를 검사가 내놔야지, 피고한테 무죄 입증 증거를 내놓으라는 거야? 우리가 지금 마녀재판하고 있는 줄 아는가? 운전병이 경고를 안 받았다고 그랬다고? 아니 이보게, 운전병 말만 믿고 우리가 전도유망한 이 피고인의 장래를 망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본인은 경고를 보냈다고 하잖아?
  
  배심원 여러분, 잘 들으셨죠? 피고인은 사고에 앞서 운전병에게 적절한 경고를 보냈다고 자신있는 어조로 확고한 진술을 해주었습니다. 검사는 경고를 못 들었다는 운전병의 말만을 근거로 피고인의 진술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만, 운전병은 피고인과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의 증언은 신빙성을 가질 수 없으므로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과연 이 전도유망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난 이 청년이 문제된 사고에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는지 여러분께서 잘 판단해 주시기를 믿습니다. 평결 부탁합니다.
  
  평결 결과 잘 받았습니다.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피고인의 무죄를 평결했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 자리에서 피고인의 석방을 명합니다. 아울러 아무런 잘못도 없이 사고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의심을 받아 피고인의 신분으로 이 법정에까지 끌려오게 된 고초에 대해 재판장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표합니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도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최선의 협조를 베풀어준 데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재판을 이만 마칩니다. 누구시죠? 프레시안 기자라고요? 짤막하게 물어봐 주세요. 내일 또 재판이 있어서 준비에 바쁩니다.
  
  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에게 저도 개인적으로 깊은 애도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미국인들은 한국에 손님으로 와 있으면서 주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죠. 그래서 저도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사건의 엄정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이 재판에 임하고 있습니다.
  
  네? 관제병의 무죄판결이 엄정한 처리냐고요? 기자님, 그런 질문을 하시기 전에 미국의 법체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미국은 1류 중의 1류 국가입니다. 어떤 3류 국가처럼 여론재판이 판치는 나라가 아닙니다. 시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미국에서는 죄지은 사람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는 일이 없도록 법체계를 운용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처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잖습니까? 내일 재판을 지켜봐 주십시오. 아마 미국 법체계의 엄정한 운용에 혀를 내두르시게 될 겁니다. 그럼 이만 실례...
  
  자, 오늘은 운전병 차례지? 들어오라고 해요.
  자네가 운전병인가? 자네가 몰던 궤도차량에 한국 애들이 깔려죽었다며? 자네에게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관제병이 경고를 보냈다고 하던데 왜 멈추지 않았지?
  뭐라고? 아무 경고가 없었다고? 자네는 운전수칙에 따라 차를 몰았고, 자네의 시야에는 길 옆의 애들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항력이었다는 거지? 그렇다면 자네의 과실치사 혐의는 근거가 없는 거구만. 과실이 없다면 죄가 될 수가 없지. 그런데 죄도 없는 자네를 누가 여기 보냈지?
  
  아, 검사, 자네가 보냈다고? 이 친구가 관제병한테 경고를 안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그럼 경고를 받았다는 증거가 있는가? 이봐, 자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풍토병에라도 걸린 게 아닌지 진찰 좀 받아보게. 유죄를 주장하려면 입증할 증거를 검사가 내놔야지, 피고한테 무죄 입증 증거를 내놓으라는 거야? 우리가 지금 마녀재판하고 있는 줄 아는가? 관제병이 경고를 보냈다고 그랬다고? 아니 이보게, 관제병 말만 믿고 우리가 전도유망한 이 피고인의 장래를 망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본인은 경고를 안 받았다고 하잖아?
  
  배심원 여러분, 잘 들으셨죠? 피고인은 사고에 앞서 관제병에게 아무 경고도 받지 않았다고 자신있는 어조로 확고한 진술을 해주었습니다. 검사는 경고를 보냈다는 관제병의 말만을 근거로 피고인의 진술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만, 관제병은 피고인과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의 증언은 신빙성을 가질 수 없으므로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과연 이 전도유망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난 이 청년이 문제된 사고에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는지 여러분께서 잘 판단해 주시기를 믿습니다. 평결 부탁합니다.
  
  평결 결과 잘 받았습니다.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피고인의 무죄를 평결했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 자리에서 피고인의 석방을 명합니다. 아울러 아무런 잘못도 없이 사고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의심을 받아 피고인의 신분으로 이 법정에까지 끌려오게 된 고초에 대해 재판장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표합니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도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최선의 협조를 베풀어준 데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재판을 이만 마칩니다. 누구시죠? 성조지 기자라고요? 잘 왔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내 방으로 갑시다.
  
  아, 묻지 않아도 뭐가 궁금한지 압니다. 한국인들 뚜껑 열리겠죠. 하지만 우리가 어느 나라 군인이고 어느 나라 기잡니까? 미군 사기 앙양하는 것이 우리 임무죠. 한국인들 달래는 거야 다른 부서에 전문가가 있고 담당자가 있지 않습니까? 워낙 냄비라서 뚜껑이 잘 열리기도 하지만 마침 선거판이 진진하게 돌아가니까 금방 잊어버릴 겁니다. 아무튼 기사 잘 부탁합니다. 한국인들이 혹시 읽으면 돌아버릴 정도로 뻔뻔스럽게 긁어 주세요. 그래야 우리 애들이 시원해 할 겁니다. 이런 재판을 맡은 나 같은 행운아도 미군의 영웅으로 뜰 거고요.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