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생 글 늘 좋아하지만 오늘 글은 각별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네요.
어휘 선택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을 받은 곳이 많았습니다.
급하게 정리한 게 아니라 생각을 떠올려 놓고도 뜸을 푹~ 들인 느낌.
나는 그런 노력이 매우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편이 박수 칠, 당연하게 받아들일 내용이 아니라,
편과 관계없이 생각을 더 일으키게 도와주는 글을 쓰려면,
표현의 힘과 아름다움이 만들어주는 효과를 크게 봐야 한다는 생각이죠.
근래 원고에 쫓겨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또 "바담 풍!"이겠지만요.
 
'교언영색'과는 다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없는 뜻을 지어 만드는 게 아니라,
생각의 원래 결을 제대로 살려내는 거니까요.
<공자 평전> 번역하면서 '文'과 '質'에 관한 논의가 나 자신 매우 흥미로웠는데,
그 사이의 관계를 잘 펼쳐내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에서도 우리가 함께 관심 가진 영역이 많이 나왔네요.
과학사로 공부 시작한 나로서 한 가지 보태고 싶은 점이 있다면,
유교와 근대의 불화를 설명함에 있어서 세계관의 차이를 제기하는 겁니다.
유기론적 세계관과 원자론적 세계관.
오늘 글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까지 제안하고 나서려면,
민주주의 못지않게 중요한 근대의 요소인 산업화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좋고,
그런 넓은 범주를 포괄하려면 세계관, 인간관 같은 근원적 지표가 유용하겠지요.
 
그리고 '국가'를 비롯한 '제도'의 의미에 관해 이 선생과 얘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문명을 통해 '발전'의 길로 접어들었지요.
그런데 발전이라는 것은 개체 간의 차이를 넓히는 속성을 가진 것 아닙니까?
그러니 무절제한 발전은 격차의 심화로 인해 사회 붕괴에 이르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보다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는 온갖 제도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중에서 국가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기능은 양면성을 갖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한 면으로는 사회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무절제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자연스러운 문명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 내의 격차(불평등)를 지키는 것.
성장 극대화를 위해 불평등을 방치, 조장하는 것도 정상적 국가 기능을 벗어나는 일이지만,
관념적 평등을 위해 발전 필요를 무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절제한 발전을 가장 화끈하게 뒷받침한 근대적 제도가 '사적 소유권'이죠.
공산주의가 사적 소유권을 부정한 것은 근대의 폐단에 대한 지나친 반발 아니었을까요?
지속가능성을 가진 현실적 대안은 소유권의 의미를 조정하는 사회주의적 접근이겠지요.
소유권 의미 조정의 힘을 가진 제도적 수단으로도 국가가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국가가 그런 조정 기능을 발휘한 실적이 가장 뛰어난 것이 유교국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유교국가의 의미는 전통의 가치 중에도 쉽게 주목받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얘기가 한없이 길어질 것 같은데, 오늘은 이 정도에서 접어놓을게요.
오늘 올리신 글도 이 메일과 함께 블로그에 올려놓을게요. 괜찮죠?
 
김기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