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오늘날 이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정치의 원리와 사물의 성질은 물론 민족이나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서 생활방식, 성품, 관습, 교파  학파 등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오늘날의 상황에 대해서도 모든 방면에 걸쳐 포괄적인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는 현재와 과거의 상황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해야만 하며, 그래서 어떤 경우에 유사성이 나타나고 어떤 경우에 차이점이 보이는지 그 원인을 알아내어야만 한다. (...) 그리고 난 뒤에 자신이 알고 있는 기본적인 원칙에 근거하여 전승되어온 보고의 내용을 검토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 보고가 요구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것은 건전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역사가는 그것을 엉터리로 간주하여 폐기하여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고대인들이 역사학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고, 앗 타바리나 알 부하라 혹은 그들보다 전에 살았던 이븐 이스학을 비롯한 종교학자들이 역사학을 선택하고 헌신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역하학의 비밀인 이 점을 망각해버렸고, 그 결과 이제 역사학은 우둔한 학문이 되고 말았다. (48쪽)

 

오늘날, 가르치는 것은 하나의 직업이고 생계수단일 뿐 연대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사들은 약하고 가난하며 뿌리를 가지지 못한다. (...) 그들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처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단지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직업인이요, 기술자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이슬람의 초기, 즉 우마이야 왕조와 압바스 왕조의 시대에는 교사라는 것이 무언가 달랐다는 점을 알 리가 없다. 그 시대에 학문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술이 아니었다. 학문이란 사람들에게 종교법을 제시한 분의 진술을 전달하는 것이었고, 미지의 종교적 문제를 구전의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었다. 고귀한 계보를 지닌 사람들, 그리고 연대의식을 공유하고 이슬람의 업무를 감독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전과 예언자의 종교법을 가르쳤으며, 학문은 그러한 것들을 전승해주는 것이지 결코 직업적인 교육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 이는 예언자가 자신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사절단과 함께 아랍인들에게 보내, 자기가 도입한 이슬람의 규범과 종교적인 법률을 가르치도록 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51쪽)

 

14세기 후반에 나온 책에서 역사학과 학문의 '타락'에 관한 생각이 지금 사람의 생각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 만사 제쳐놓고 며칠간은 <역사서설>에 파묻혀 지내야겠다. 김호동의 번역도 매우 훌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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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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