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사고'인가, '범죄'인가?

기사입력 2009-01-27 오전 11:37:46

왜 '사고 공화국'인가?

잠수함의 선실은 스릴러의 인기무대다. 유사시에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은 비행기도 마찬가지지만, 잠수함은 더 폐쇄된 공간인데다가 거의 군사적 용도에만 쓰이기 때문에 위험한 느낌을 저절로 떠올려준다. 그런데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미국의 핵잠수함이 인간의 작업장 가운데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사실을 통계 자료로 제시한다. 가장 위험하게 보이는 곳에 가장 사고가 적은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드러커는 핵잠수함의 운영 원칙에서 '사고'의 개념이 엄격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통상 사고라 하면 '인명이나 재산에 손실이 생긴 일'을 말하는 데 반해 핵잠수함에서는 '안전 규칙이 지켜지지 않은 모든 일'을 사고로 본다는 것이다. '사고 공화국' 국민으로서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는 지적이다.

사고의 대형화는 현대 문명의 어쩔 수 없는 추세다. 열차가 충돌하거나 비행기가 추락하면 한꺼번에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다. 그렇다고 열차와 비행기가 없던 옛날이 꼭 안전했던 것은 아니다. 맹수와 강도 등에게 위협받던 옛날 여행에 비하면 오늘날이 더 안전한 편이다. 다만 한 번 사고를 당하면 옴치고 뛸 여지가 없다. 타이타닉 호 사고는 아직 인간성이 그 속에서 작용할 여지가 있었다는 점에서 '비극'이었지만 이제는 '참극' 뿐이다.

본인의 잘못 없이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길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현대인을 비참하게 만든다. 자동차 사고는 너무 일상화돼서 '달리는 흉기'라는 이름이 굳어져 있거니와 우리는 '날아다니는 흉기'에도 꽤 당해 왔고, 심지어 백화점, 교량까지도 흉기로 겪어봤다.

지하철 침수 사건은 천행으로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만일 당시 그 구간에 열차가 운행하고 있었다면 삼풍에 버금가는 참화가 됐을 것이다. 10여 년 전의 홍수라면 고작 전답 유실이나 가옥 침수가 피해였지만 이제 걸핏하면 도시 기능이 위협받고 대규모 인명 피해까지 가능한 세상이 됐다. 물막이 시설이 불편하다고 멋대로 줄여놓은 것이 사고의 직접 원인이라 한다. 그런 무책임한 '설마'주의가 어찌 중랑천뿐이겠는가.

경제 사고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회사 하나 넘어져도 예전과는 충격의 수준이 다른데, 나라살림까지 설마설마 하면서 적당히 주무르다가 온 백성이 옴치고 뛸 길 없이 거덜 내고 말았다. 드러커의 충고에 따라 매사에 핵잠수함 탄 것처럼 사고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겠다.

▲ 불에서 시작해 불로 끝난 무자년. 핵잠수함 안에서는 '안전 규칙이 지켜지지 않은 모든 일'을 '사고'로 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찰은 안전 규칙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떠밀리고 있다. 유모차 부대가 '아동 학대범'이라 우기던 자들이 이제 막판에 몰린 철거민을 '도시 테러범'으로 몰아붙이며 이 사회의 모든 안전망을 무너뜨리고 있다. ⓒ뉴시스

김영삼 시대의 '사고 공화국'을 지금 돌이켜보면 과도기의 특성이란 면을 생각하게 된다. 군사 독재 시절에는 앞만 보고 달리며 안전 시스템 확보를 무시했고, 사고 통제는 억압 기제에만 의존했다. 독재가 끝나 억압 기제의 힘이 대폭 줄어들었는데도 안전 시스템을 계속 소홀히 함으로써 다양하고 엽기적인 사고들을 겪게 된 것이었다.

사고 중에도 큰 사고가 IMF 사태였다. 강만수, 윤증현을 포함해 당시 경제 관료들은 위기가 닥쳐오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그들의 '무능'을 탓할망정 그들의 '악의'를 따질 여지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군사 독재 아래 경제 관료들은 '성장'만을 생각하도록 길들여져 있었다. IMF 사태 같은 상황은 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사의였을 것이다. 그래서 IMF 사태는 하나의 '사고'로 생각하는 것이다. 위기의 막바지에 정략적 의도로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부수적인 것으로 본다.

그런데 지금의 경제 위기는 다르게 보인다. 경험도 있고 경고도 있었다. (나 같은 경제 문외한까지도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계가 임박했다는 의견을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 밝힌 바 있다.) 분배냐, 성장이냐 등 경제 정책의 선택 범위에 관한 논의도 적지 않게 쌓여 있었다.

그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 내용이 현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미네르바 구속을 통해 정부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이명박도 강만수도 아닌 일개 시민이 입을 (손가락인가?) 잘못 놀린다 해서 수조 원을 날릴 위험을 안은 경제 운용을 누가 현명하다 할 것인가? 미네르바 같은 사람이 10명만 있었으면 나라가 떠내려갔겠다. 흐루시초프가 돌대가리라고 욕하다가 '국가 기밀 누설죄'에 걸렸다는 어느 시절의 소련 백성이 생각난다.

범죄 냄새가 난다. 그것도 과실범이 아닌 악질적 범죄. 무엇보다 범행 동기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2%를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2%가 입을 손해를 막아주기 위해 국민 세금과 공적 자금을 퍼 넣고, 국가 지출 확대의 필요성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2%의 세금을 줄여주는 일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다.

10년 만에 되풀이되는 위기요, 공황이지만 국가 경제의 위축 자체가 참극은 아니다. 더 자주 겪는다 해서 50년 전의 절대빈곤으로 돌아갈 염려는 없다. 참극을 만드는 요인은 위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 '사회 안전망'의 의미가 무엇인가? 공사장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큰 인명 사고가 되지 않도록 헬멧 하나씩이라도 씌워주는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안전 수칙을 시행한다. 사회 안전망을 더 늘릴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최저 임금을 낮추는 등 거꾸로 가는 것은 사고 난 공사장에서 인부들 헬멧을 벗기는 꼴이다.

경제 위기 자체는 이번에도 하나의 '사고'일 수 있다. 그런데 국가의 위기를 소수 가진 자들의 기회로 전환시키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거대한 참극을 불러올 '범죄'다.

내 머릿속에 또 하나의 범죄에 대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음을 독자들은 눈치 채셨을 것이다. 너무나 닮은꼴이다. 범행 동기부터 똑같다. 조합과 건설사 등 가진 자들의 이익을 지켜주려는 것이다. 범행 방법에 있어서도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 장치를 제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20여 년 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폭력 국가가 아직도 이 땅에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온 국민에게 알려주는 일이 벌어졌다. 희생자들을 '테러범'으로 몰아붙이는 자들,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던 자들이 살아 돌아온 것인가?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황제의 꿈

기사입력 2009-01-23 오전 8:28:01

새로운 연재 '10년 전으로'를 시작하며…

"보수주의자의 한국 근·현대사" 연재를 연초에 마친 후 '페리스코프'를 그 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들께 또 무슨 밑천을 보여드릴 것이 있을지 고심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보수주의의 흐름을 짚어보는 일을 지금까지 작업의 연장선 위에서 구상하고 있으나, 독자 여러 분께 보여드릴 만한 틀을 짜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좀 색다른 방식의 칼럼을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7년 봄에서 2000년 봄까지 3년간 매주 두어 개씩 짤막한 칼럼을 쓰며 지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칼럼들을 묶어 2003년에 <미국인의 짐>(아이필드 펴냄)이란 제목으로 책을 냈었는데, 다시 들춰보니 1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원래의 칼럼과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나란히 올려서 여러 가지 주제의 앞뒤를 비쳐보는 데도 나름의 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인터넷 기반의 언론이라서 가능한 방식이겠지요. 여러분과 함께 그 묘미를 살려보도록 애쓰겠습니다.

황제의 꿈 : 人治와 法治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루고 천하통일에 이르는 데는 법가(法家)의 법치주의가 큰 몫을 맡았다. 제민(齊民)의 원칙 아래 귀족의 세력을 억눌러 절대왕권을 세우고 엄정한 상벌로 효과적 국민동원을 기했던 것이다.

통일을 이룬 뒤 시황제(始皇帝)는 법치주의를 천하에 확장하려 했다. 황제의 호칭을 시황제로부터 2세 황제, 3세 황제로 나아가도록 한 것도 황제의 인격을 배제하고 철저한 법치를 내세우려는 상징적 조치였다.

몇 해 전 프랑스의 젊은 중국사학자 장 레비가 시황제를 소재로 <황제의 꿈>이라는 소설을 써 공쿠르상(역사 소설 부문)을 받은 바 있다. 이 소설에서 시황제는 인간의 불확실성을 싫어해 자신을 중심으로 기계와 로봇의 세계를 쌓아나가는 편집광적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의 극단적 법치를 풍자한 것이다.

시황제가 구축한 정교한 통치체제는 그가 죽자마자 파탄을 드러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일화로 악명 높은 환관 조고(趙高)가 황제의 죽음을 숨긴 채 황제의 뜻을 가장해 황제의 작은 아들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며 자신에게 대항할 만한 인물을 몰살시킨 것이다. 얼마 후 통일 이전의 전통을 회복하려는 봉기가 각지에서 일어나자 지도력을 잃은 제국은 삽시간에 와해되어 버렸다.

조고의 발호는 극단적 법치의 폐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통치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형식화돼 있었기 때문에 황제 측근에서 정보를 장악하고 있던 일개 환관이 권력의 공백기를 틈타 천하를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이다. 태자 부소(扶蘇)가 조작된 자결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던 것이 시황제가 만든 통치체제의 성격이었다.

시황제는 통일의 위업을 완벽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영원히 유지될 체제를 만들려 했다. 불로장생의 선약(仙藥)을 찾은 것과 같은 욕망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바로 체제의 파탄으로 이어진 사실은 그 체제가 법치의 원칙 못지않게 그의 개인적 지도력에 의존해 왔음을 반증해 준다.

권력 운용의 난맥상이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인치(人治)가 법치(法治)로 바뀌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물론 유린돼 온 법치의 원칙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법치의 원칙은 훌륭한 정치를 보장하는 만병통치의 선약(仙藥)이 아니다. 법치 원칙 회복과 함께 지도력 육성과 도덕성 강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을 우리 사회는 필요로 한다.

  1997년 봄 위 글을 쓴 것은 당시 법치의 강조가 도를 넘는 풍조를 걱정한 때문이었다. 오랜 독재시대를 통해 국가 운영이 통치자의 자의에 맡겨지던 폐습에 대한 반발로 인해 인치로부터 법치로 옮겨가는 것이 사회 발전의 진로라고 널리 인식되고 있을 때였다. 그런 분위기에 맹목적 법률 만능주의가 끼어들어 새로운 형태의 억압 기제로 나타나고 있었다.

20일 아침 용산 참사에 대해 청와대에서 맨 처음 나타난 반응은 "과격 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는 부대변인의 논평이었고, 한승수는 총리로서 '유감의 뜻'을 표하는 자리에서 '불법 시위'란 말을 거듭 써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시위가 과격하고 불법한 것이었다면 진압 방법의 잘못이 정당화된다고들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러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한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이유로 죽고 다친 일을 놓고 '과격'과 '불법'을 따지는 사람들, 공직자의 책임은 차치하고 인간으로서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존재들이다.

현 집권 세력의 법률 만능주의는 소위 '입법 전쟁'에서 드러난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을 힘겹게 이겨낸 이명박 측은 대통령 선거를 가뿐하게 치른 다음 한나라당의 국회 세력을 자기네 정략적 목적에 이용하려 해 왔다. 대통령의 힘을 지렛대로 한나라당을 농락, 자기들이 원하는 정책을 무더기로 법제화하려는 것이다.

정책의 법제화는 의회정치의 원리에 맞는 것이며, 그 자체로 아무 문제없는 일이다.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입법 전쟁에 쏟아낸 법안 중에 정책 법안이 아닌, 위헌 가능성 높은 권력 강화용 공안 법안이 잔뜩 들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나라당 차원과 국회 차원의 논의가 청와대의 강압 때문에 모두 부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음현금으로 바꾸듯 대선과 총선의 승리를 권력으로 환전하는 수단으로 법률을 이용하려는 것이고, 이 수단의 효과를 담보하기 위해 법률 만능주의를 내세우는 것이다. 이런 법률 만능주의가 진정한 의미의 '법치'가 되지 못하는 것은 헌법 정신, 나아가 명문 헌법의 효과까지도 권력과 법률의 장벽으로 차단하기 때문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법률을 도입하고 그 운용을 대통령이 지휘하는 권력기관들에게 맡긴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조항과 헌법 정신은 국민들에게서 모습을 감출 것이다.

▲ 인간의 불확실성을 싫어해 다양성을 말살하려던 진 시황은 온 세상 전체주의자들이 우러러볼 선구자였다. 수천 년 뒤의 추종자들에게까지 남겨진 그의 가르침은 법률 절대주의였다. 사진은 지난 6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적, 폭력적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명박 대통령. ⓒ프레시안
 
나라꼴이 갈수록 이상해지는 것을 놓고 사람들은 지금 국회보다 청와대를, 한나라당보다 이명박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하면 국회와 한나라당의 문제가 더 크다. 한 개인이나 하나의 집단이 권력에 눈이 멀어 이상한 짓 하려 드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있는 일이다. 제대로 된 제도라면 그런 요소가 나타나더라도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히는 일이 없도록 억제를 해줘야 한다. 국회는 가장 중요한 국가 제도이고, 한나라당도 '공당'으로 자타가 공인할 규모의 정당이라면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로서 면모를 보여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집단이 일으키는 문제를 억제는커녕 증폭시키기만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국회와 한나라당의 문제를 내가 크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을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로 보기 때문이고, 청와대와 이명박의 문제를 작게 생각하는 것은 없어도 괜찮은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 제도는 없애도 되지만 국회가 없는 세상을 나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명박은 없어도 괜찮지만 한나라당은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다. 이명박은 폐쇄적 소수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인물일 뿐이지만 한나라당은 이 사회 상당한 범위의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연재한 <뉴라이트 비판>을 읽고서 어떻게 진짜로 '비판'만 하면서 '비난'은 그만큼 자제할 수 있냐고 신기해하는 분들이 있었다. 비결은 간단하다. 그들의 생각을 바꿔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지금 휘두르고 있는 힘에 현혹되어 제 할 일을 잊고 있는 한나라당 사람들에겐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을라!"

이 사회에 법치 원칙 회복 못지않게 지도력 육성과 도덕성 강화가 요긴하다고 10년 전 썼던 글을 다시 꺼내 보며 마음이 착잡하다. 미국처럼 구성이 복잡한 나라에서도 도덕적 쇄신의 필요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도력의 발전을 보고 있는데, 이 나라 정치 도덕의 추락에는 바닥이 없는 것인가.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보수주의자의 한국 근·현대사 ⑩

기사입력 2009-01-02 오전 10:19:16

<밖에서 본 한국사>의 맺음말에 "다시 동아시아로"란 제목을 달았다. 21세기 한국의 움직임을 동아시아 속에 다시 자리 잡는 방향으로 보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의미가 겹쳐진 '회귀'다. 작게 보면 태평양 건너 미국의 우산 밑에 들어가 같은 지역의 이웃 대부분과 등지고 지내던 냉전체제로부터의 회귀다. 냉전이 끝난 지는 20년이 되어 간다. 그러나 한국에는 냉전체제에 아직도 마음이 묶여 있는 사람들이 큰 세력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지금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의지해 온 미국의 네오콘이 세력을 잃음에 따라 이제야 냉전의 진정한 해소를 한국에서도 바라보게 되었다.

넓게 본다면 개항기 이래 휩쓸려 온 서구 중심 세계관과 가치관으로부터의 회귀라는 의미가 있다. 개항기 선현들은 '동도서기(東道西器)'란 구호로 주체성을 드러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서양의 힘은 한국인을 꼼짝 못하게 압도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친 일본인을 부러워하며 그 뒤를 쫓아다니는 데 100년 넘는 세월을 지냈다. 오랫동안 서양의 힘을 대표해 온 미국이 여러 방면에서 한계와 결함을 드러내는 것을 근래 보면서야 서양의 힘에 대한 신앙이 거둬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 회귀가 물론 개항기 이전 전통시대로의 복귀는 아니다. 제국주의와 냉전이라는 폭력적 상황이 해소됨에 따라 역사적·지리적 조건에 맞는 자연스러운 위치와 자세를 새로 찾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폭력적 상황이 가로막고 파괴했던 지역 내 질서의 상당 수준 회복이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것이다. 남북 관계, 한중 관계, 한일 관계의 전환과 발전 등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향한 변화들이 한국을 둘러싸고 일어날 것이다.

21세기 중에도 한국과 한국인은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고, 그 변화에 대한 전망은 여러 방향에서 나올 수 있다. 역사 공부로부터 내가 내놓는 전망은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형성이다. 그 질서가 어떤 모습의 것일지 지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대외 관계에서 지역 질서의 중요성이 20세기 동안에 비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지역 질서의 중요성 부각은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지역에서 예상되는 추세다. 산업혁명 이래 급속한 기술 발전에 따른 자원 공급의 폭발적 확장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한계가 의문의 여지없이 확인된 지 30여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인류가 적절한 대응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해 온 반동적 신자유주의 노선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를 왜 반동 노선이라 하는가?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물질적 풍요 속에서 민주주의와 복지의 이념이 자라 왔다. 환경과 자원의 벽이 풍요의 시대를 가로막고 나선 현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복지 이념을 포기하고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자는 노선이다. 이 노선에 궁극적으로 동의할 사람은 어느 사회에서나 극소수일 뿐인데, 대다수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틈을 타 기승을 부려온 것이다.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는 "선진화의 과제"로 끝을 맺는다. (북한에 관한 '보론'을 빼고.) 그들이 말하는 선진화란 곧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집착이다. 세계 평균 성장률의 1.5배 고성장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선진화의 길이라고 안병직은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에서 밝혔다.

고성장의 계속이 바람직한 일일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냐 하는 더 명백한 문제만 따져보자. 안병직은 캐치업 이론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한다고 한다. 그러나 캐치업 이론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상황, 즉 중국, 인도 등 거대한 후발국가들이 고성장에 나선 반면 한국 같은 중상위권 국가는 그에 밀려 세계 평균도 따라가기 힘든 상황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한국을 '기적의 나라'로 지목해 주는 이론이 아니다.

절대빈곤 상황을 탈출하는 과정의 한국인에게 경제 성장은 '절대선'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더 잘 나눠 가지는 것이 사회의 건강을 위해 더 중요한 상황에 와 있다. 굶어죽을 지경의 사람은 무슨 음식이든 입에 넣고 보지만, 정상적 상태의 사람은 건강을 위해 음식을 가려가며 적당량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이 성장의 부족 때문인지 분배의 문제 때문인지 냉철히 생각해야 할 때다. 그런 시점에서 성장의 당위성으로 분배 문제를 가리려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위해 한국 근현대사를 성장 지상주의로 덮어씌운 것이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다.

▲ "인류는 언어를 가지게 된 이래 주먹으로 할 일을 말로 대신하는 기술과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자연 상태가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복닥대고 살면서 그럭저럭 버텨온 것은 그 덕분이다. 말로서 문제를 풀어가는 곳인 '의회'에서 말이 막혀 버릴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21세기 한국에서 예상하기 힘들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 :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상정 추진을 저지하는 민주당 의원·당직자를 상대로 국회 경위들이 소화기를 분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동아시아로

  기원전 3세기 초반에는 전국7웅의 각축 속에서 소양왕(전307~전251) 치하의 진나라가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상대적 우세였을 뿐, 천하통일을 가져올 절대적 우세를 틀어쥔 단계는 아니었다. 기원전 260년경 범수(范睢)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구사하면서 통일을 향한 진나라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범수의 원교근공책은 단순한 외교 정책이 아니었다. 중앙집권 강화가 그 기본 목적이었다. 진나라만이 아니라 당시의 어느 나라도 확고한 중앙집권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제나라 맹상군, 조나라 평원군 등 이름 높은 전국4군자는 각국에 있던 '나라 안의 나라' 중 두드러진 예였다. 소양왕의 진나라에도 양후(穰侯), 화양군(華陽君) 등 왕권과 맞먹는 권위를 가진 실력자들이 즐비했다.

이 실력자들은 가까운 나라보다 멀리 있는 나라와 전쟁 벌이기를 즐겨했다. 가까운 나라를 정복하면 그 이익이 왕과 국가로 돌아가지만 먼 나라를 정복하면 그 이득을 자기네가 챙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범수가 이 문제를 소양왕에게 지적하고 원교근공책을 추진하자 왕권이 차츰 강화되어 실력자들을 굴복시키고 중앙집권을 이루게 되었다.

진나라의 원교근공책은 경쟁국들에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 당장 공격을 당하지 않고 있는 나라들이 진나라의 눈치를 살피며 정면대결을 회피하는 동안 인접한 나라들이 하나씩 무너져갔다. 수십 년 전 장의(張儀)가 펼친 연횡책(連衡策)을 한층 더 치밀하게 발전시킨 것이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신뢰심이 중요한 자원 노릇을 한다"

  냉전시대는 원교근공의 시대였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끼리 동맹을 맺으면서 이웃나라와 적대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남북으로 쪼개져 서로를 적대시한 한국은 그중 심한 경우의 하나였다. 냉전에 앞선 제국주의 시대도 유럽 열강들 사이의 각축이라는 점에서 원교근공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근교원공의 분위기로 돌아선 지역이 많이 있다. 유럽이 두드러진 예다. 동서로 갈라져 맞서던 나라들이 이제 하나의 연합 안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힘을 합쳐 외부를 상대로 경쟁하게 되었다. 이슬람권에도 연대 분위기가 자라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이야기했다. 이질적인 문명권들 사이의 갈등이 냉전의 압력에 눌려 있다가 이 압력이 사라짐에 따라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명의 충돌이 세계의 분열로 낙착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20세기를 지내는 동안 문명권들은 많은 상호접촉을 통해 자기 모습도 바꿔 왔고 다른 문명권을 대하는 태도도 다듬어 왔다. 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원리주의는 어느 문명권에서도 소수파가 되어 있다. 같은 문명권에 대한 친밀감도, 다른 문명권에 대한 경계심도, 한 세기 전에 비해 흔적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대립과 연합의 기준 노릇을 하던 정치 이념이 물러서고 다른 뚜렷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문명권에 대한 소속감이 어느 정도 작용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신뢰심이 중요한 자원 노릇을 한다. 시장실패(market failure) 상황에서 내부거래가 거래비용을 절약해 주는 것처럼 문명권 내의 거래관계가 문명권 간의 거래관계에 비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21세기의 지역 블록이 냉전시대의 동서 블록처럼 강고한 진영으로 자리 잡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속되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지역 블록의 복류(伏流)가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때에 따라서는 결정적인 균형추 역할도 할 것이 예상된다. 근교원공이 중요한 추세로 전망되는 것이다.

"원교근공은 불합리하고 낭비적인 정책이다"

  기원전 3세기의 중국, 그리고 19~20세기의 세계에서 원교근공책이 위세를 떨친 데는 어떤 조건이 작용한 것이었을까? 플러스섬게임의 상황이었다는 공통점이 우선 눈에 띈다. 새로운 기술체계가 광대한 영역으로 확산되어 나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자원 공급이 무제한으로 보일 만큼 순조롭게 늘어나고 있었다. 늘어나는 자원의 적정한 소비를 위해서도 장기간의 대규모 전쟁이나 군비 확장이 바람직한 상황이었다.

원교근공의 세상은 매우 역동적이면서 위험한 세상이었다. 전체 시스템의 기준으로 볼 때 원교근공은 불합리하고 낭비적인 정책이다. 가까운 상대와의 싸움은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것이 되기 쉽다. 규모가 팽창 중인 세계가 아니라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정책이다.

문명 초기에 잉여생산 증대가 정치 조직대형화를 몰고 온 추세를 생각해보자. 조직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비용이 많이 드는 투쟁을 겪어야 했고, 조직이 커지면 생산 활동에서 이탈하는 계층의 비중이 늘기 때문에 체제의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들었다. 따라서 정치 조직의 규모는 잉여생산이 허용해주는 범위에서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원전 3세기의 진나라는 자원 팽창의 길목을 장악하고 무한경쟁을 통해 상대방들을 쓰러트려 천하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드는 전국 규모 전제통치를 장기간 계속하기에는 당시 중국의 생산력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국이 와해되고 보다 절충적인 성격의 한나라 체제가 그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미국도 무한경쟁을 통해 상대방을 쓰러트렸다. 그러나 무한경쟁의 원리였던 시장만능주의를 철저히 적용시키는 세계제국이 세워질 수 없다는 사실은 자원의 한계로 보아 분명하다. 자원의 한계를 의식할 수 없던 19세기에 시장 기능을 강조한 자유주의는 하나의 이념이었다. 그러나 자원의 한계가 분명해진 21세기에 시장만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일부 세력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략일 뿐이다.

"긴축에 따르는 고통과 불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 불렀다. 번영과 몰락, 건설과 파괴, 쾌락과 고통 등 인간 세상의 모든 현상이 아무 절제 없이 펼쳐진 시대, 문명의 기준이 무너진 시대로 본 것이다. 이런 시대가 인간의 방종한 성품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었겠는가? 20세기 인류의 무절제는 자원 획득의 새로운 조건이 허락해준 것이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이래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자원 획득의 길을 끝없이 넓혀줄 것으로 보였다. 이 믿음은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때까지 계속되었다. 지구의 환경이 엉망이 되고 자원이 고갈되더라도 무한한 우주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후 40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인류의 방종을 계속해서 뒷받침해 줄 만한 자원을 지구 밖에서 얻을 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길들어 있던 낭비의 습관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해 있다. 냉·난방을 갖춘 널찍한 주거와 자가용 승용차 등 선진국 중산층의 생활양식이 세계 인구 대다수에게 확산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확산의 추세가 관성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제동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파국의 충격이 클 것이다.

남한 중산층이 이런 생활양식에 접근해 온 것은 최근 30년간의 일이다. 그보다 몇 배 긴 기간 동안 누려온 선진국 사람들도 있고, 이제 겨우 접근이 시작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오래 누려온 사람들은 바꾸기가 힘들고, 이제부터 누리려던 사람들은 억울하다.

긴축에 따르는 고통과 불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세계화에 경제 통합만이 아니라 정치 통합의 측면이 필요한 것이 이 때문이다. 자유방임은 강자의 기회를 극대화시켜 주는 정책이며, 팽창의 시대에는 상당한 범위에서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긴축의 시대에는 허용되는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세계 정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환경과 자원에 대한 태도의 변화방향을 모색하는 측면"

  세계적 정치통합은 어떤 형태로 이뤄질 것인가? 근대적 국민국가와 비슷한 형태의 세계정부가 나타나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세계정부가 궁극적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면, 오랜 모색과 실험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형태의 정치 조직이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유럽연합이 가장 앞선 실험의 현장으로 보인다.

유럽 국가들, 특히 선진국들은 대단한 수준의 민족 자존심과 상호 적대감을 쌓아 왔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족 감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 그런 민족감정을 딛고 지금과 같은 통합의 움직임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두 가지 방향에서 유럽연합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 콘텐츠 측면에서는 유럽연합 정책의 장기적 지향성을 살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유럽연합 정책에도 구성원들의 배타적 이익을 지키고 키우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환경과 자원에 대한 태도의 변화방향을 모색하는 측면이다. 이 측면은 지금의 현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지만 날이 갈수록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지역 공동체의 의미를 심화시키는 노력을 살펴야 한다. 유럽 문명의 출발점을 그리스 고전시대에서 찾느냐, 샤를마뉴의 기독교 세계 확립에서 찾느냐 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논쟁은 '유럽인'의 공동 정체성 확충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같은 지역에 속할 뿐 아니라 같은 문명에 속한다는 연대의식이 유럽연합의 기능 확장과 그 정책의 실행력 증대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같은 지역에 속하는 사회들 사이에는 당장의 이해관계에서 공통점을 찾아낼 여지가 많다. 그리고 같은 문명에 속하는 사회들 사이에는 공통의 가치 기준을 빚어내기가 쉽다. 유럽연합은 이 두 가지 조건을 결합해서 구성원들의 단기적 이해관계도 충족시켜 주면서 동시에 전 세계적 문제에 대한 장기적 대응을 위해 유럽의 정치 통합을 모색해 가는 것이다.

"국민국가의 벌거벗은 이기심을 지역 차원에서 정제, 순화"

  세계는 지금 근교원공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경쟁은 계속 확장될 것이다. 그러나 투쟁적 경쟁보다 협력의 경쟁이 더 부각될 것이다. 가까운 사이의 싸움일수록 모든 것을 거는 전면전이 되기 쉽다. 이웃과의 협력을 통해 멀리 떨어진 상대들에 대한 집단적 우위를 바라보는 완만한 노력이 팽창의 한계에 이른 세계에서는 성공열쇠가 될 것이다.

문명권이나 지역 블록이 냉전시대의 진영처럼 세계를 쪼개는 강고한 울타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국민국가에서 세계정부로 나아가는 길은 지역 블록을 거쳐 가지 않을 수 없다. 국민국가의 물리적 조합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정치 통합의 한계는 지금의 유엔이 보여주고 있다. 국민국가의 벌거벗은 이기심을 지역 차원에서 정제, 순화하지 않고는 세계 차원에서 효과적 화합을 바라볼 수 없다.

완만하게라도 세계적 정치 통합이 이뤄져 가리라는 전망이 지나치게 순진한 낙관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흔히 지적되는 문제가 '죄수의 딜레마'다. 연결되어 있는 혐의자들에게 자백의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해 집단의 큰 손해를 자초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딜레마의 초점은 죄수들 사이의 상호 불신에 있다. 자기 동료가 인센티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동료와 자신이 합쳐진 집단의 이익보다 자신만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다. 유대감이 약한 집단에서는 개인 차원의 '합리적' 선택으로 집단 전체의 손해를 초래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팽창의 시대에는 이웃 간의 유대감과 신뢰가 그리 큰 자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교근공의 풍조가 유행했다. 죄수의 딜레마로 인해 입는 손해보다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더 큰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성장의 기회가 원천적 제한을 가지는 세상에서는 유대감과 신뢰의 부족으로 겪는 손해를 만회할 길이 따로 없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회에서 유대감 증진을 위한 노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양한 가치관이 병행하는 '화이부동'이 인류의 존속을 보장하는 길"

  무한한 것으로 보이는 자원을 향해 각개약진에 나섰던 팽창의 시대를 인류는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팽창의 시대에 익숙해진 무한경쟁의 원리가 아직도 관성의 힘을 가지고 있다. 21세기의 인류는 20세기에 비해 상호 유대감을 더 키우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다. 그러지 않으면 한 종(種)으로서의 생존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감의 배양은 각 문명권 안에서 시작된다. 근대 국민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설 동력을 문명의 전통으로부터 얼마만큼이라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 유대감을 잘 확보하는 문명권일수록 새로운 세계질서에 더 큰 공헌을 하고 또 그로부터 더 큰 혜택을 얻게 된다. 이 변화에 뒤진 사회들은 뒤늦게 대세에 끌려가며 많은 손해와 고통을 겪을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19세기 이전에 위대한 문명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린 후 200년 동안 이 전통이 자산으로서 가치를 잘 발휘하지 못했다. 유대감의 근거로서 전통이 요긴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팽창의 시대는 앞만 보고 달리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시대였다.

세계의 경제 통합은 힘의 통합이요, 양적인 통합이다. 정치 통합은 지혜의 통합이요, 질적인 통합이다. 균일한 가치의 획득을 위해 만인이 경쟁하는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세계는 자원의 벽 앞에서 파국을 면할 수 없다. 다양한 가치관이 병행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인류의 존속을 보장하는 길이다. 모든 문명권의 모든 전통이 새로운 각광을 받을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이 하나의 문명권으로 통합되던 과정도 본질적으로 지금의 세계화와 같은 성격의 변화였다. 한민족은 그 과정에서 화이부동의 자세로 안정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또 한 차례 변화의 고비에서 그 경험이 가치를 발휘하기 바란다. 세계 통합에 앞서서 민족 통합의 과제를 가지고 있는 것 역시 통합의 자세를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동안의 고통을 보상받고도 남는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