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5. 00:46

2007년 6월 말에 쓰러지신 후 4년 반 동안 보호자 노릇을 해왔지만, 그 노릇이 한결같은 것은 아니었다. 여기 올린 글을 통해 우리 모자관계를 살펴본 분들은 그 글에 나타난 것과 같은 관계를 당연히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글을 열심히 쓸 때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야박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관계를 바라본다는 것도 그를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길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통로를 이용해 왔고, 어머니와의 관계는 그런 통로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보호자 노릇을 한 기간 중 2008년 말 회복이 빨라지실 때부터 작년 봄 수술에 회복하실 때까지는 특수관계의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내 사유의 구심점 노릇을 했고, 찾아뵙지 않을 때도 그 관계를 수시로 마음속에 떠올리고 되새김질 했다.

그 기간을 통해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1년쯤 지나 책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뚜렷한 목적을 세울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는 <역사 앞에서>가 세상에 알려주었는데,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알려주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어머니가 한 세상 살고 가시는 보람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 목적 때문에 글쓰기 작업에 별도의 노력이 크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쓰여진 책이다.

글쓰기를 계속하라고 권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며칠 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를 겪으시고 큰 수술 받으시는 동안 나는 전처럼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너무 힘들었다.

다시 건강을 찾으시고 일산의 요양원에 보셔 자주 찾아뵙게 되면서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은 늘 들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키지가 않았다. 형제간의 곡절을 전처럼 마음놓고 드러낼 수 없게 된 것도 하나의 부담이고, 어머니의 건강 전망도 낙관할 수 없는 상태가 여러 달 이어졌다. 건강도 마음놓을만하고 마음도 아주 편안해지신 것은 지난 10월경부터다.

그렇게 반년 너머 글을 다시 쓰나 마나 생각을 뒤척이다 보니, 결국 내가 글쓰기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점, 부담스러운 점을 소화해 내기가 벅차게 된 것이다. 2년의 글쓰기 동안 나는 아들 노릇, 보호자 노릇을 넘어 매우 특별한 역할을 어머니 인생에서 맡았다. 그 역할을 통해 나 자신도 변화를 겪었다. 이제 변화된 모습은 그대로 지키더라도, 특별한 역할을 꼭 더 계속해야겠다는 강박은 벗어나야겠다.

지난 여름부터 아내가 나보다 더 자주 어머니를 가뵙기 시작했고, 가을로 접어들면서는 내가 완전히 뒷전이 되었다. 아내는 내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려고 애초에는 나선 것인데, 갈수록 재미도 들고 정도 들었다. 이제 어머니께 특별한 역할이라면 그 사람이 맡아드리고 있다.

나는 1주일에 두 번 정도 가뵙다가 11월에 목디스크가 도지고는 한 달에 두 번이 되었다. 지난 주부터 겨우 주 2회로 돌아왔다. 자주 뵙지 못하니 전처럼 알아보시지 못한다.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 하다가 둘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시고, 간병인에게 "이 사람이 내 동생이야." 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이름과 관계 없이 편안한 존재임은 분명한 것을 내 얼굴이 눈에 들어올 때의 표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시고 있는 동안에도 전처럼 재미있게 해드리려 애쓰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해드리는 데 중점을 둔다. 말없이 앉아있을 때도 많다. 혼자 생각에 한참 잠기셨을 때 나지막하게 노래가락을 꺼내보곤 한다. 웃음을 떠올리고 손을 토닥거리시면 흥겨워하시는 대로 몇 곡 불러드린다. 반야심경은 꼭 외워드리지만 천수경과 금강경은 읽어드린지 꽤 되었다.

오늘은 나도 통증이 별로 없어서 모처럼 하염없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텔레비전 쪽으로 고개를 향하고 기대 누워 계시지만 방송 내용과 관계없이 생각에 잠기실 때가 많다. 오늘도 그렇게 누워 계시다가 문득 내게로 고개를 돌리고 재미있어 하는 표정으로 싱긋 웃으신다. 그러고는 불쑥 말씀하신다. "네가 나는 미덥다."

글쓰기는 아무래도 포기해야겠다. 그런 뜻깊은 말씀이 맥락도 없이 불쑥 나오시다니, 도대체 스토리 구성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소통하는 데 어머니도 만족하시고 나도 만족하면 됐다. 다른 분들까지 살펴봐 달라고 애를 쓰기가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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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