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9>

기사입력 2002-08-24 오전 9:18:57

  청해(靑海)라... 썩 괜찮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제교류가 많지 않던 개항 이전에는 같은 바다를 놓고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무 상관 없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힘센 나라가 우기는 이름이 통했다. 그런데 이제 국제간 협력이 경쟁 못지않게 중요한 세계화시대를 맞아서는 바다 이름 하나라도 의논성 있게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만이 아니라 극동러시아도 이 바다를 면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 바다에 오랜 연고가 없어 그 이름에도 큰 집착이 없다. 한국과 일본이 문제인데, '동해'나 '일본해'나 일방적 관점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상대방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바다 자체의 모습을 그리는 ‘청해’ 같은 이름이라면 양쪽 다 겸허하고도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닐까? (서쪽의 ‘황해’와 짝을 이루기 때문에 한국 쪽에 사실 더 좋다는 점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
  
  근대국가는 배타적 주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영토에 대해서도, 국민에 대해서도, 경제활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세계화시대에 국가의 배타적 주권이 약화되는 현상은 먼저 경제활동에 나타났고, 이어 시민권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영토의 배타성은 아직도 끄떡없다.
  
  세계화 이전의 시대에도 바다는 영토의 엄밀성을 적용시키기 어려운 곳이었다. 바다 위에 줄을 그어 봤자 추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분쟁이 바다에서 일어났다.
  
  바다의 유동성은 섬에서도 나타난다. 저쪽 건너편 육지에 있는 나라에 속하는가, 이쪽 건너편 육지의 나라에 속하는가, 섬 자체의 모양과 위치가 확연히 말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문제가 독도 문제인데, 일본에는 독도 문제만이 아니다. 북쪽으로 북방사도(北方四島) 문제가 있고 남쪽으로 조어도(釣魚島) 문제가 있다.
  
  일본의 도서분쟁 이슈는 실익보다 상징성이 강하다. 패전 이후의 평화헌법 체제를 ‘패배주의’ 체제라 부르며 ‘국권회복’을 외치는 사람들이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에서 우리조차 “대마도는 일본땅”이라고 불러주는 쯔시마가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조짐이 보이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다. 한국 영토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제주도가 일본인의 관광지와 투자대상이 되어 온 것처럼 쯔시마가 한국인의 관광지와 투자대상이 되어 갈 징조가 보이는 것이다.
  
  쯔시마의 위치에서는 자연스러운 발전방향이다. 일본에서는 오지 중의 오지로 낙후된 이 지역이 한국인, 특히 부산지역의 수백만 인구에게는 훌륭한 관광지, 휴양지로서 잠재적 가치를 가진 곳이다.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국과의 관계 속에 이 섬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던 역사의 흐름에도 맞는 방향이다.
  
  3년 전 부산 직항로 개설을 앞두고 일본에서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한국인이 많이 드나들게 되면 한국에 먹히는 것 아니냐, 깨끗한 섬을 한국 관광객들이 망쳐놓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었다고 한다. 제주도를 일본 관광객들에게 열어줄 때 우리 사회의 걱정과 비슷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섬 주민들은 대개 이런 걱정보다 지역 발전 가능성에 더 기대를 보인다고 한다. 지금 여섯 개의 기초자치단체로 되어 있는 것을 묶어 섬 전체를 하나의 자치단체로 통합하는 움직임이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쯔시마의 진로를 주체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제도적 조건이 마련되면 한국에 대한 개방의 촉진이 기대된다.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화에 상응하는 변화가 이곳에서 일어난다면 부분적이나마 한국인의 활동무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쯔시마의 장래는 쯔시마 주민들이 일차적으로 결정하되 일본과 한국은 주민들의 의지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쯔시마를 활용하고, 또 그에 상응한 공헌을 쯔시마에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쯔시마를 자위대 기지로 활용한다면 그만큼 쯔시마를 어떤 방법으로든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고, 한국인이 그곳을 관광지로 활용한다면 그만큼 그곳의 산업과 재정에 보탬을 주어야 할 것이다.
  
  제주도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원리다. 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상황 속에서 섬 주민들은 오랫동안 많은 피해를 입어 왔다. 닥쳐오는 개방과 유동성의 시대에는 섬을 국가의 부속물로 삼아 끌고다니려 하기보다 섬을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길잡이로 삼아 따라다니는 편이 국가를 위해서도 새 시대에 더 잘 적응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제주도에는 일본인, 중국인이 많이 와서 놀게 하고 투자의 길도 열어 주자. 그리고 쯔시마와 산둥에는 우리가 많이 가서 놀고 투자의 길도 열자. 이런 곳들에서 두 나라 사이에 활발한 접촉면이 생긴다면 그곳 주민들에게도, 두 나라에게도 모두 이득이 될 것이다.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세계화, 바다와 섬을 통해 그 충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독도? 당연히 우리 땅이다. 다만 영해나 경제수역을 결정하는 근거로 독도를 이용할 생각일랑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국인의 생활범위는 울릉도까지고 일본인의 생활범위는 오키(沖) 군도까지다. 경계선을 긋는다면 울릉도와 오키 군도의 중간이면 되고, 독도는 그 안에 들어온다.
  
  아무리 우리 섬이라 하더라도 바다에서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섬에 부담스럽도록 큰 선착장을 만들고 수비대를 주둔시키면서 이웃나라의 일부 성질 급한 사람들 자극하는 일은 그만두었으면 한다.
  
  끝으로 광운대 일본학과의 이향철 교수와 임영준군 등 쯔시마 답사단이 참여를 허락해 주고 8월 15일에서 17일까지 답사기간중 많은 도움을 준 데 감사한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