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5>

기사입력 2002-07-03 오전 11:00:07

  문학상이건 학술상이건 1억원의 상금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초대형 상금으로 통한다. 그러나 우리 월드컵 선수들에게 그보다 훨씬 더 큰 포상금이 돌아가게 된 것을 우리는 당연한 일로 여긴다. 유례없는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포상금을 모든 선수에게 고르게 나눠줘야 할지, 아니면 기여도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할지에 논란이 있었다. 좌파적 논리와 우파적 논리의 충돌이라고 할 수도 있다.
  
  팀 성적은 팀 전체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은 결과다. 많은 시간 뛰지 않은 선수, 심지어 경기에 전혀 투입되지 않은 선수라도 운동장을 누빈 선수들과 준비에 똑같은 수준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감독의 작전과 출장선수들의 플레이벤치를 지키는 선수들에 대한 믿음 위에서 펼쳐졌다. 고르게 나누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는 편차가 있다. 월드컵 팀에 참여하고 싶어 한 선수는 23명 외에도 많았다. 23명은 다른 선수들보다 능력과 노력이 뛰어나 선발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선수들이 출장할 기회를 더 많이 가지고 팀 성적에도 더 많은 직접적 공헌을 했다. 이렇게 보면 차등지급이 당연한 것 같다.
  
  금전은 일원적 가치체계다. 홍명보의 지도력, 안정환의 천재성, 박지성의 침착성, 송종국의 성실성, 김태영의 투혼, 이천수의 대담성, 이운재의 신뢰성 등 다양한 가치들이 그라운드 위에 펼쳐졌다. 이 다양한 가치를 일원적 체계로 묶어낸다는 데 애초에 한계가 있다. 비슷한 문제를 뉴욕 9.11테러 희생자 보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작년 9월 뉴욕테러 때 희생자의 대부분은 붕괴된 건물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투입됐던 약 4백명의 소방대원과 경찰관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시민들을 돕기 위해 참혹한 재난현장에 뛰어든 이들의 책임감과 용기는 ꡐ영웅ꡑ이라는 찬사도 과분한 것이 아니다.
  
  이 영웅들을 잃은 유족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이 당연히 벌어졌다. 그런데 몇 달 지나자 이 모금의 성과가 너무 좋아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50개 이상의 단체가 구조요원 유족을 돕기 위한 모금에 나서 석 달 동안 4억 달러 가량을 모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 집 평균 1백만 달러의 성금이 확보된 것이다. 금액이 너무 커지다 보니 그 몇 분의 1밖에 보상을 받지 못하는 민간인 희생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일어나게 되었다.
  
  어느 유족 모임에서 한 순직 경관의 아내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다가 순직한 사람들이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가 다른 유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같은 재난에 함께 희생된 인명은 모두 똑같은 추모의 대상이며, 민간인 중에도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애쓰다가 변을 당한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은 성금이나 보상금의 차이보다 사회의 추모 태도에 차별이 있다는 데 비애를 느낀다고 했다. 추모행사에도 공직자 유족이 더 많이 초대되어 더 좋은 자리를 배정받고, 언론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는 현실을 말한 것이다. 실제로 모금운동이 예상 외의 성공을 거둔 제일 중요한 이유는 언론이 띄워준 데 있었다.
  
  '추모의 불평등' 문제가 알려지자 공직자 유족 모금에 호응했던 시민들도 당혹감을 표했다. 수백만 달러를 쾌척한 한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ꡒ성금을 내려는 결정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내린 것이며, 내 가슴을 움직인 것은 소방대원들의 헌신적인 모습이었다.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불평등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액 포상금에 국민 대다수가 흔쾌히 동의하는 것도 일단 머리보다 가슴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머리도 쓸 만큼 써야 뒤끝이 좋게 될 것이다.
  
  축구협회는 포상금 차등지급을 결정했다. 구체적 시행방법은 회장단에게 맡겨져 있지만, 네티즌 여론조사에서 대다수가 균등지급을 지지한 여론을 등진 방향이므로 더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나는 우리 월드컵 팀의 이번 쾌거가 노력과 행운이 결합된 결과라고 본다. 그렇다, '행운'이라고 했다. 행운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행운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오더라도 준비된 자만이 이것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돼' 하는 엽전의식은 바로 행운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아닐까? 이것을 극복한 것이 이번 월드컵 최대의 성과라 할 것이다.
  
  축구협회는 성공의 요인 중 노력의 측면에 책임을 가진 기관이다. 협회는 기술적 기준에 따라 각 선수의 공헌을 평가할 방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은 잠재적 태극전사들까지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발시킬 수 있도록 전술-전략적 고려를 바탕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정부의 포상금은 균등지급이 맞겠다. 국민 대다수는 어느 선수가 더하고 어느 선수가 덜할 것 없이 '코레아팀' 전체의 성적에서 기쁨을 얻었다. 다른 선수들보다 기량이 떨어지면서 운 좋게 엔트리에 들어가 벤치라도 지키고 있다가 과분한 포상을 받는 선수가 설령 있더라도 그 또한 괜찮은 일이다. 팀 자체가 행운의 팀 아닌가!
  
  문제는 두 측면의 균형이다. 여론이 균등지급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행운을 축하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부 포상금보다 축구협회 포상금이 더 크기 때문에 이 방향으로 축구협회의 배려가 바람직하다. 차등지급을 하더라도 그 편차를 작게 한다면 적절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축구에서든, 다른 어떤 분야에서든, 2002년 코레아팀과 같은 행운을 언제 어디서든 만난다면 당당히 거머쥘 수 있는 준비에 매진할 의욕, 이것만은 축제의 거품에 휩쓸려 씻겨버리지 않도록 지켜야겠다. 행운을 만나지 못할 때라도 최대한의 역량을 늘 키우고 발휘하는 성실한 노력 또한 버릴 수 없다. 노력을 뒷받침해 주는 측면과 행운을 빛내 주는 측면이 조화를 이룰 때 포상금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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