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신문>도 <동아일보>도 1946년 9월 1일자 제1면의 절반 이상을 하지 사령관의 담화문 “조선 민중에게 보내는 말”로 채웠다. <동아일보> 기사에는 “하지 중장이 발표한 지금까지의 성명 중 가장 중대한 성명”이라 했고 <자유신문>에는 “이 발표에 있어 취사감수(取捨監修)를 불허함과 X제도 지정한 것은 극히 지목되고 있다”고 하였다. 부임 1년을 맞아 단단히 마음먹고 준비한 담화문이다.


<동아일보>에는 또 “특히 주목되는 바는 민주주의적 자유의 역용(逆用)을 일삼고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조선민족을 해방한 우방 미국에 대한 모략적 악선전과 애국적 지도자의 성의에 대하여 허위의 진술을 하는 일부 소수정당에 대한 구증적인 실례를 열거하여 경고한 점”이라 했다. 실제로 담화문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나는 최근 남조선에 있는 어떤 정당의 구두, 신문, 소책자, 벽신문 등을 통하여 연출(連出)하는 악질의 선전을 흥미있게 보고 있다. 특히 그들의 선전 ‘노선’의 목적은 북미합중국과 남조선 주둔 미군 대표자와 미국 지도 하에 운영되고 있는 미군정이다. 그 이면에는 잘 조직된 선전조작소가 있어 전력을 다하여 조선 재건을 원조하는 미군의 노력을 불신임케 하자는 목적이 명백히 있다.”


원고지 30매도 넘어 보이는 이 담화문을 다 옮겨놓을 수는 없고,(이 중요한 담화문이 <자료 대한민국사>에 빠져 있는 것도 너무 길어서 입력하기 힘들었던 탓일까?) 도중에 경찰과 관련된 부분만 소개한다.


“또 한 가지의 중대 선전 재료는 모당의 경찰에 대한 대성훤소(大聲喧騷)의 공격이다. 원래 범법자로 정예 경찰에 대한 증오심이나 악평은 경찰제도가 생기면서부터 있는 일이다. 반경찰 선전은 물론 경찰의 기백과 훈련을 좌절하며 인민의 생명과 재산과 치안을 유지하는 흔히는 불쾌한 업무라도 충실히 이행하는 경찰에게 공포심을 넣어주어 배전의 문란을 범법자들이 노리는 것이다. (...) 극소수 경관이 부정직하거나 직권을 이용하여 정치운동을 이용하는 자가 발견되면 즉시 파면했다. 민중에 대한 경찰의 봉사정신도 계속 함양중에 있다.”


담화문은 표적을 분명히 하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여러분은 참된 조선인의 단결과 참된 조선인의 힘을 합쳐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생활향상에 일층 더 이바지하자는 지도자를 따르시도록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폭력주의, 난폭한 혁명 계급투쟁, 계급 증오심을 주장 실천하며 무상으로 큰 것을 약속하는 그런 유의 지도자를 경계하여야 한다.” (이상 <자유신문> 1946년 9월 1일자)


9월 3일 제1관구 경찰청장 장택상의 성명서는 좌익 책동을 분쇄하겠다는 하지의 뜻을 받든 것으로 이해된다.


“거금 8개월 동안 근기지방의 치안과 질서는 거의 확보되었다. 경찰관의 노력도 있지만 사회유지의 협력이 다대하다. 그런데 나는 대개 경찰행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외부적이요 다른 하나는 내부적이다. 외부적은 행동으로 나타난 범죄행위 즉 강도 살인 불법침입 등이요 내부적인 것은 즉 음모로 나타난 궤계 모략 비방 등으로 현실을 부인하고 임심을 동요시켜 조직된 정권을 파멸하며 경제, 재정, 상공업 등 생산에 필요한 시설을 마비시켜 자파의 사리를 확대하려고 계획하는 것이다.

경찰은 외부적 범죄행위도 다소간 감퇴됨에 따라 내부적 범죄행위의 박멸을 위한 방침을 9월 중부터 실시하기로 확립하였다. 이제로부터 경찰의 이목이 될 기구를 총동원시켜 지하공작적 음모로 남조선 정권과 민중 사이를 이반시키려고 힘쓰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다면 경찰은 총력을 집중하여 그 타도에 노력하겠다. 이 타도 정책에는 경찰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사직당국의 호의적 양해와 후원이 절대한 조건이다.” (<자유신문>, <조선일보> 1946년 9월 4일자)


“내부적” 범죄행위? 지금까지 몇 차례 소개로 장택상의 파시스트 면모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독자라도 이 성명서로는 충분하리라 믿는다. 경찰의 이목이 될 기구까지 동원하겠다는 것을 공언한다. 우익청년단체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장택상은 식민지시대보다 더 확실한 경찰국가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사직당국의 호의적 양해와 후원”까지 요구한다.


사직당국에 대한 이 요구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 하나를 1947년 2월 18일자 <동아일보>에서 찾았다.


“경찰의 법원에의 항의는 판결에 대한 불만 아니다.”

지난 8일 고문을 하였다는 것으로 공판에 회부된 김동순 경위에 대하여 심동구 심판관으로부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한 바 있었는데 11일에는 시내 경찰서장이 대법원장 김용무 씨를 방문한 데 대하여 17일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총감은 기자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판의 신성은 평민이나 관리나 누구를 물론하고 간섭치 못함은 근대법률에 비추어 상식화되어 있다. 금번 수도청 직원이 김 대법원장에게 항의한 것은 판결 자체에 대한 항의가 아니고 김 대법원장 자신이 간섭하였다는 것이 이유의 원인이다. 판결에 대한 불복이 있다면 인민들로서 상고함이 당연하지 항의라는 것은 천만부당하다. 김 대법원장은 자기자신이 간섭하였다는 것을 경찰이 마치 판결 자체에 항의한 것 같이 세간에 유포케 함은 내 자신으로는 판단키 어려울 만큼 경찰의 태도를 비곡하여 세간에 유포케 하였다. 판결의 신성성은 누구보다 경찰이 잘 지킨다. 이 점에 대하여서 김 대법원장이 경찰을 의심함은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


고문 사건 재판에 대법원장이 간섭했다니, 도대체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부당한 간섭이 있다면 고발을 해야지, 왜 경찰서장이 찾아가? 요즘 검찰의 안하무인적 언론플레이도 장택상에게 배운 것이 아닌지.


9월 5일자 <자유신문>에는 “하지 성명 반향”이란 제목으로 몇 개 정당-단체의 반응이 소개되었다. 기사 모두에는 “일찍이 예를 보지 못한 신랄한 표현”이라고 하지의 담화문을 설명했다.


<민전> 8월 31일 하지 장군의 발표 성명은 너무나 엄청난 모순이 있다. 조선 민중은 어떠한 선진국가를 물론하고 진실하게 원조하여 준다면 그는 언제든지 고맙게 받을 것이다.


<한독당> 우리 민족을 해방하여 준 연합국에 감사하는 바이며 미군 장병에 대하여도 감사를 마지않는 바다. 금반 하지 장군의 간곡한 성명에 그 고충과 성의에 거듭 사의를 표한다. 그러나 미군정의 모처럼 선의에서 출발한 시책이 실제 운영에서는 우리 실정과 매우 거리가 멀고 모순된 결과가 되는 사실도 있는 것을 잘 양찰하기 바란다.


<한민당> 하지 중장의 성명은 당연하였다. 미군이 조선에 진주한 지 1년. 그 동안 미군정은 우리에게 언론 집회 결사 출판의 자유를 주는 동시에 조선의 완전 자주독립을 위하여 많은 원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해방자인 미군정에 대하여 일부에서 이것을 반대하는 것은 연합국에 대하는 우리의 정상한 태도가 아니며 또한 조선 독립을 지연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당은 이 성명에 만강의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민혁당> 하지 중장은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이용하여 악질적 선전을 하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사실상 남조선에서는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가 없는 것이다. 악질적 선전 운운 하는 각 좌익 정당 단체는 인민의 요구를 정당하게 발표할 따름이지 하등 악질적 선전을 한 적은 없다. 조선 인민들은 지능과 판단력이 날마다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하지 장군에게 조선 인민이 목전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조사하여 잘 선처하여 주기 바란다.


<신민당> 우리는 우리를 해방하여 준 연합국과 및 미국민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려 왔다. 그러나 해방 후 우리 인민에게는 실업과 기아가 더욱 심하여질 뿐이니 이러한 원인을 규명하고 그 해결책을 요구하고 우리가 당연히 주장할 바를 주장하는 것을 악질 선동이며 기만적 모략이라 하니 우리는 이해하기 심히 곤란한 바이다.


9월 6일 인민보, 현대일보, 중앙신문, 3개 신문이 정간 조치를 당하고 일부 직원들이 체포당한 데 이어 9월 7일에는 박헌영을 위시한 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체포 명령이 떨어졌다. 제1관구 경찰청은 서울 시내 검문-검색을 포함한 대대적인 체포망을 구축했다. 공산당 서울시당 비서 김삼룡, 서기국장 이주하, 민전 부의장 홍남표 등이 속속 체포되었고, 수십 명 좌익 인사의 집이 수색당했다. 그러나 장택상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나에게 묻지 말아주오. 나에게도 함구령이 내리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경찰에서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부명령으로 경찰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좌익단체 간부를 전부 체포하는 것은 아니고 경찰이 지명수배인물만 수사하는 것이다.” (<동아일보> 1946년 9월 10일자)


그것은 사실이었다. 군정청 공보부에서도 기자단에게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이는 군정청에서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하지중장 사령부에서 직접 관여 취급하는 때문이라 한다. 검거하려는 이유는 맥아더원수 포고 제2호 위반일 뿐 군정청 발포의 법령이나 규정위반에 의하여 취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이들 간부들이 포고 제2호에 저촉되는 기사를 방금 정간 중인 3신문사에 제공하였다면 이와도 관련은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별개로 취급될 것이고 8일 발표의 하지중장 성명서를 보면 체포하려는 의도는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동아일보> 1946년 9월 12일자)


9월 15일자 <서울신문>의 “정간된 3신문의 사원 일부 석방” 기사에도 이들이 CIC에게 검거되어 인천의 미군형무소에 구금되었다고 한다. 공산당에 대한 정면 공격은 하지의 결단에 의해 군정청도 거치지 않고 미 육군 제24군단이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군정청과 경찰이 하지의 뜻을 거스를 염려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군정청’보다도 위에 군림하는 ‘미군’의 절대적 존재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군정청 부하들의 개입조차 원치 않는 은밀한 뜻이 하지에게 있었던 것일까? 앞으로 사태의 진전을 살펴보며 되씹어볼 문제로 남겨둔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