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를 통해 외조부모님 다음으로 우리를 가까이서 살펴봐 주신 분들이 고종 형님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위로 누님이 네 분 계셨고, 나이 터울도 큰 편이어서 큰 고모님이 시집 가실 때 아버지가 태어나셨다니까 맨 위의 형님들은 아버지에게 불과 몇 살 아래였고 어머니보다 연장인 분도 두 분 계셨죠.

정씨 댁에 시집 가신 큰 고모님과 박씨 댁에 시집 가신 둘째 고모님 슬하의 형님들이 특히 가까웠습니다. 큰 고모님은 장수하셔서(1900년 직전 출생이실 텐데 85년경 세상 떠나셨음) 어린 우리 형제들을 너무나 끔찍이 위해주셔서, 어린 마음에도 "왜 고모님은 친손자들보다도 우리를 더 아쎠주시나?" 의아한 생각이 이따금 들기까지 했죠.

아버지가 금융조합 간부, 서울대 교수 되신 것이 개천에서 용 난 격이었던 모양이라, 주변사람들이 모두 그분을 쳐다보고 의지하는 분위기였던가 봅니다. 또 그분께서도 사람 아끼는 마음이 많으셨던 듯, 가르쳐줄 만한 것이 있으면 가르쳐주고 기회를 열어줄 만한 것이 있으면 열어주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잘 모으셨던가 봅니다. <역사 앞에서>에 붙은 회고문 중 큰 고모님네 셋째 형님 정기돈 교수가 쓴 글에 잘 나타나 있죠. 아버지 생전에 장성해 있던 위쪽 두 분 고모님네 형님들이 그런 기회들을 많이 가졌습니다.

몇 분을 금융조합 서기로 넣어주셨죠. 정씨 댁 큰형님과 박씨 댁 큰형님(이 분은 결국 농협 중앙회 이사까지 지내셨죠.), 그리고 6촌동생 한 분이(제게 7촌인 '경희 아저씨'는 씨가 귀한 친가에서 제일 가까운 촌수였는데, 고종 형님들과 내내 가까이 지내셨기 때문에 그분들 중 한 분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금융조합-농협에 들어갔습니다.

둘째 고모님네 박씨 댁은 형제들 중 여럿이 6-25 때 고모님을 모시고 북쪽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접할 수 있는 것이 대규 형님과 영규 형님, 두 분뿐이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을 제일 든든히 둘러싸고 있던 건 큰 고모님네 형님들이었죠. 4남1녀 중 위쪽 세 분 형님은 우리에게 숙부님 같은 역할을 해주셨고, 고모님은 할머니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맨 위의 영돈 형님은 대구에서 사셨기 때문에 비교적 접촉이 적었고 그 밑의 세돈 형님과 기돈 형님 역할이 컸습니다. 어렸을 때는 기돈 형님이 가까이 있으면서 제일 앞장서서 우리 집을 돌봐 주셨죠. 우리가 명륜동과 혜화동에 사는 동안 삼선동에 사시면서 동성학교 교사, 숙대 교수를 지내다가 우리가 다 큰 뒤에 충남대학으로 옮기셨죠. 형님들 중 학술-교육 분야에 진출한 분이 이 분뿐이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도 가장 요긴한 의논 상대였습니다.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역사 공부를 하게 된 분이니 그분에겐 아버지가 외삼촌일 뿐 아니라 스승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둘째인 세돈 형님도 대구에 살았기 때문에 어릴 때는 많이 못 보고 지냈지만, 제가 대학 다닐 때 서울에 몇 해 와 사셔서 많이 접할 기회를 가지고 보니, 아버지께서 가장 사람됨을 아끼고 가장 가까이 거느렸던 분이라서 아버지에 대한 향념이 다른 형님들과도 다른 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30대에 계명대 교수로 있을 때가지도 가까이 모시면서 많은 것을 배웠죠. 세돈 형님은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위의 영돈 형님은 맏이라서 어떻게든 중등학교에 보냈고, 밑의 기돈 형님은 아버지가 도와줄 수 있었는데) 일제 말기에 징용 나갔다가 해방 후 돌아온 것을 아버지께서 곁에 데리고 있다가 돌아가셨던 겁니다. 이분 말씀을 어머니도 제일 무겁게 여기셨죠.

경희 아저씨, 대규 형님, 기돈 형님 세 분이 제가 혜화동-명륜동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시절을 지내는 동안 삼선동, 성북동에 살면서 우리 집의 친척 역할에 앞장서신 분들입니다. 친척 얘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외가로 돌아가보면 외조부모님 밑에 외삼촌과 이모가 계셨죠. 어머니보다 열 살 아래(왜 터울이 그리 큰지는 외조부모님 얘기에서 알아볼 수 있죠?) 외삼촌은 제가 정릉리에서 살 때 결혼했는데, 성질이 급하면서도 쾌활한 분이라 우리 주변에서 가장 칼러풀한 분이었고, 그보다 세 살 아래의 이모님은 늦게 결혼하시고 자식 없이 혼자 되셔서, 저희 형제라도 좀 살펴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여의치가 않군요. 어머니를 이천에 모신 후 한 번 여주 깊은 산속의 실버타운에 가서 이모님을 모셔다가 어머니 면회를 시켜드렸더니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어머니 뵈러 가는 김에 시간을 맞출 수 있으면 또 한 번 모셔다드리고 싶은데 아직 그런 기회를 다시 만들지 못했군요.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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