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뉴라이트 비판> 작업 중 <망국 100년>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식민지 경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을 확충할 필요를 느껴서였다. 뉴라이트에서 황당한 역사관을 들고 나오는데, 그것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소극적 대응일 뿐이며, 21세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보다 의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적극적 대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금년 상반기 중에 집필해서 국치 100주년 전에 책을 내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다. 그런데 작업이 궤도에 오를 무렵부터 깨닫게 되었다. 원래 계획한 작업 규모로는 이 주제에 관한 내 생각을 충분히 담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시즌2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망국에 이르는 과정의 서술에 그치고 망국의 상황 자체를 시즌2에서 다루겠다고.

시즌2는 1910년에서 2010년 사이에 한국 사회가 겪은 일을 다루는 것이다. 역사보다는 시사 쪽 의미가 더 클 것으로 생각하는데, 시사의 의미를 차분하게 제시하기 위해 역사를 앞세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10년에서 1945년 사이를 연대기적으로 훑어내리면서 1945년 이후의 일을 그 위에 비쳐보이는 방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서술 구조에 아쉬운 점도 있을 듯하지만, 어차피 엄청나게 큰 주제인 만큼 어떤 구조로 가든 상당한 제약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젯밤 송건호, <역사에 민족의 길을 묻다>를 읽다가 새로운 구상이 떠올랐다. 김구, 여운형, 안재홍 등 아까운 지도자들의 흔적을 송건호님의 감동적 서술 속에서 더듬다 보니 인물에 더 바짝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그 아까운 지도력을 지금의 사회에 보다 절실한 모습으로 전달해주는 역할에서 내 몫을 찾을 수 있지 않을지.

8-15에서 6-25에 이르는 소위 '해방공간'. 식민지시대보다 이 시기에 초점을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해방에서 전쟁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다가 필요에 따라 그 이전의 일, 이후의 일, 그리고 바깥 사정을 곁들여 설명하는 식으로. 제대로 된 국가를 가지지 못한 20세기 역사를 개관하는 데는 역시 그 중심부에 초점을 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방향을 떠올리다가 기발난 생각이 이어졌다. 일기를 쓰면 어떨까! 2010년 8월 15일에 첫 회를 쓰자. 그리고 2015년 6월 24일까지 계속해서 '65년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65년 전의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써 나가면... 아버지의 전쟁일기와 내 시병일기로 (어머니 육아일기는 실종 상태지만) 우리 집안 일기 전통만큼은 확고하지 않은가.

이 방향으로 나선다면 진짜 큰일이다. 지난 반년간의 긴장된 작업을 5년간 계속할 각오를 해야 한다. 못난 놈 보인다고 흉볼 틈도 없고, 나쁜 놈 보인다고 욕할 틈도 없이 이 일 하나에 매달려야 한다. 5년 동안... 다른 글은 쓸 생각 접어놓아야 한다. 엄두가 잘 안 난다.

그러나 제대로 해내기만 한다면... 일생의 보람을 느낄 일이다. 지금까지 공부해 온 밑천을 이 작업으로 풀어낸다면 5년 동안 상당수 독자들에게 우리 사회의 성격과 문제점을 보다 더 진지하게 살펴볼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5년 후면 학교에 있었을 경우 정년퇴직할 나이다. 지금까지 사회의 요구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공부를 해 왔으니 5년 정도는 봉사활동에 바쳐도 괜찮지 않을까? 글쎄... 5년? 아무래도 너무 긴 거 같은데...

그래도 해야 할 것 같다. 편안하게 살아온 결과 나는 국민연금 월 40만원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몸이 되지 않았는가. 5년 동안 짭짤한 글을 꾸준히 쓰면 10여 권 책이 될 거고, 한 질 정가 20만원으로 보면 한 달에 50질만 팔려도 100만원 인세 수입이 된다. 품위있는 노후까지는 못돼도 처참하지 않은 노후를 위해 분발할 필요가 있다.

그래, 알아봐야겠다. 내가 의지를 세우더라도 5년의 작업을 밀고 나가려면 최소한의 여건이 필요하니까. <프레시안>이건 돌베개건 수익성 하나만 생각해서는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주기 힘들 것이고... 이 작업이 언론과 출판 사업에 대단히 귀중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꼬셔야 할 텐데... 뭐라고 꼬시나?


(7월 3일 돌베개에 보낸 메일)

저 자신 막 떠오른 구상을 충분히 정리하지 않은 채 급히 검토를 부탁해서 여러분께서 다소 어리둥절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 구상이 매우 강력한 함의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모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저지르는 쪽으로 갈 공산이 크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서둘러 검토 부탁드린 겁니다.

며칠 동안 이 일의 의미 생각한 것을 만나기 전에 설명드리죠.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고, 자기도취로 보여도 상관없다는 배짱으로 제 생각 그대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는 교수직을 떠난 후 최대의 베팅 찬스로 보고 올인 비슷한 베팅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평생 무엇을 위해 학문을 한답시고 했느냐는 물음에 늠름하게 대답할 수 있는 입장을 바라보는 것이죠.

하나의 강좌를 5년(또는 그 이상이라도) 동안 끌고 나가려는 겁니다. 독자들을 학생처럼 여기며 정기적으로 (주 2회 내지 매일) 읽을거리를 통해 한국 사회와 역사에 관한 생각을 촉구하는 강좌입니다.

지금까지 제 글쓰기는 단행본 출판을 주 목적으로 하고 <프레시안> 연재는 보조수단으로 여겨 왔는데, 이번 작업은 강좌 의미를 가진 연재에 치중합니다. 출판은 강좌의 의미를 정리하는 마무리 작업으로 생각하고요.

따라서 작업 진행 중 생계도 출판사보다 연재 매체에 의지할 생각입니다. 책은 4개월 또는 6개월에 하나씩 내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적어도 2천 부 이상은 유지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장기간의 작업인 만큼 작업의 밀도는 지금까지의 <망국 100년>보다 낮춰 잡고, 스토리텔링 서술방식을 많이 활용하려 합니다. 컨텐츠 확보의 노동량을 줄이는 대신 발표방법의 효과성에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고요. 연재 외에 강의실 강의도 병행할 길을 알아볼 겁니다.

강좌에서 다룰 이야기 범위는 1910~2010년간의 한국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실패의 역사로 보면서 실패의 이유를 반성하되 실패의 과정 속에서라도 가치있는 노력을 부각시키고자 합니다.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그 시점의 여건 때문에 현실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노력이라도 그 기본 정신이 가치있는 것이라면 지금 시점에서 그 가치를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지요. 나쁜 놈들 욕하기보다는 좋은 노력을 부각시키고, 그 좋은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분노보다 슬픔을 이끌어내는 멜로드라마 수법을 생각합니다.

비슷한 범위를 다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와 이런 차이점이 있기 바랍니다.
(1) 일기 형태의 연속성을 통해 다루는 주제와 소재들 사이의 연관성을 강하게 제시한다.
(2) 자유와 평등 등 근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접어놓음으로써 주제를 향한 접근로를 넓힌다.
(3) 화자의 도덕적 권위의 바탕을 '정의'의 하드웨어가 아닌 '온정'의 소프트웨어에 둔다.
 

이 작업의 가장 큰 모험성은 저 자신이 도덕적-사상적 지도자의 위치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좁은 범위라도 수강생들에게 지도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건네려는 거니까요. 기능적인 교사가 아니라 포괄적 의미의 스승이 되려는 겁니다. 지도자의 길에 많은 위험이 따른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상식적인 사실이지요. 그런데 저는 그런 모험이 꽤 필요한 입장이기도 하고, 또 위험을 견뎌낼 만한 조건도 꽤 갖춘 편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우선 제 아버님의 배경이 있습니다. 저는 가급적 사명감 없이 인생을 살아오려 애쓴 사람이지만 아버님의 유업을 이어받으려는 의지는 분명히 있고, 이런 사명감은 꽤 넓은 범위의 독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작업의 정신과 기준을 <역사 앞에서>의 연장선 위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생활 자세에 대해 저 스스로 마음을 놓고 있습니다. 무척 빈한한 생활을 이어 오면서 재물 때문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 정도입니다. 이만하면 세상을 편하게 대해도 될 만큼 욕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어머니와 아내를 비롯한 인간관계에서 밝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세를 꾸준히 지켜온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합니다. 분노와 슬픔을 느끼더라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의미를 조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을 갖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좌의 전체 내용을 단편적 지식과 관점의 집합체가 아닌 총체적 인간관으로 묶어낼 엄두를 낼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이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끝으로 지난 2년간의 글쓰기가 이 작업에 임하는 내 자격에 대한 신뢰를 상당 범위의 독자들에게 심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헛발질만 하지 않는다면 상당수 독자가 좋은 기대감을 가지고 강좌에 임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이 작업을 통해 독자층이 크게 늘어날 희망도 가지고 있지만, 일단 집토끼 지키는 것을 당면한 지상 과제로 생각하면서 묶어서 내는 책도 2천 부 이상은 지켜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힘의 원천이 '유머리스트'의 면모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쓴 일이 있지요. 제 아버님 글의 가장 좋은 점도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근년의 글쓰기에서 유머리즘에 치중해 온 셈인데, 이번 작업에서는 그 방향으로 더 집중하려 합니다.
 

(7월 6일 <프레시안>에 보낸 메일)

목적:
 
<망국 100년>을 바탕으로 망국 후의 한국을 개관하는 작업이다. 한국의 국가 기능이 망국 이후 지금까지 회복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시대 변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응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둔다.
 
"국가 실패"의 원인을 개인들의 악의보다 최대한 구조적 문제로 해명하면서, 여러 시점 여러 위치에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이 이뤄진 사실을 밝히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노력들이 당시의 제반 조건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을 밝힘으로써 조건이 바뀐 상황에서 그 기본 가치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방법:
 
<프레시안>에 매일(주 5회 또는 6회) 10~15매 분량을 연재함으로써 지속적인 독자를 끌어들인다.
 
망국 후 한국 사회 진로의 가장 큰 기로였던 해방공간(1945. 8. 15 ~ 1950. 6. 25)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2010년 8월 초순부터 2015년 6월까지 65년 전 같은 날자에 있었던 일을 적시하면서 그 일의 배경, 상황, 여파 등을 덧붙여 기록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서술 내용의 여러 영역은 대략 이런 비율을 점할 것으로 전망한다.
해방공간의 사건 30%
식민지시대 역사 25%
전쟁 이후 역사 20%
국제적 상황 15%
한국사회의 현재 상황 10%
 
관점을 세움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근대적 가치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더 보편적인 인간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도록 한다. 예컨대 산업화나 경제성장보다 "기아의 억제"를, 자유나 평등보다 "인간다운 대접"을, 민족의 존엄성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앞세우는 것이다.
 
서술방법에 있어서는 높은 담론 수준이나 기발한 관점으로 독자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이기보다 독자의 '신뢰'를 장기간에 걸쳐 키우고 지키는 데 역점을 두고 가급적 재미있고 부담 없는 '읽을거리' 가 되도록 노력한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