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9. 13:40

당분간 점심때와 저녁때는 식사를 거들러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입맛이 어떻게 돌아오시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고, 떠먹여드리는 일이 더해진 것이 간병인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다. 그이들이야 돈 받고 하는 일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인간관계의 한 측면일 뿐이다. 보호자도 보일 만큼 성의를 보여 놓아야 그이들도 자기네 하는 일이 돈 때문에 마지 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을 잘해 주는 일이라는 자긍심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몇 달 동안 상황을 보면 여사님들에게 어머니를 '뺏길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어머니 뺏어가서 즈들이 끝까지 책임질 거라면 기꺼이 뺏겨 주겠지만, 조만간 자기 자리로 돌아갈 사람들이 아닌가.

어제는 점심 때 다녀왔다가 저녁 때 퇴근한 아내와 함께 다시 갔다. 연시 하나 속을 긁어서 가져갔다. 드려도 괜찮다는 것을 간호사에게 확인한 후 아내가 한 숟갈 넣어드리니 입에 무신 채로 온갖 오묘한 표정이 얼굴 위에 춤을 춘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근 1년 만에 '향락용' 음식을 입에 무셨으니. 충격적인 즐거움 속에 천천히 삼키신 후 입을 떼신다. "야, 너무 달다."

"안 드시는 것이 좋겠어요, 어머님?" 하고 여쭈니 대꾸가 절창이시다. "그렇다고 안 먹을 까닭까지야 없지." 두어 숟갈 잡수셨을 때 주 여사가 응원하러 저쪽에서 건너오는데, 발치까지 왔을 때 어머니가 주 여사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며 일갈하신다. "너 이거 뺏어먹으러 오는 거지!" 주 여사가 웃으며 "네, 저도 좀 주세요." 하니까 장난스럽게 "안 줄 거야." 하신다.

절정의 즐거움 속에 기분이 최고로 고양되신 듯, 아내에게, 내게, 간병인에게, 틈만 나면 장난을 거신다. 주책과 수다에 인생의 가치를 둔다면 완전히 전성기를 되찾으실 기세다. 향긋하고 달콤한 첫 숟갈을 입에 무신 그 순간이 그분의 인생에서 손 꼽히는 '찬란한 순간'의 하나가 아닐지.

잠시 뒤에 나온 미음 식사는 상대적으로 맥이 빠지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안티클라이맥스까지 가지는 않았다. 점심 때까지 한 숟갈 한 숟갈에 보이시던 열정은 가셨지만, 착실히 받아 드시고, 3분의 1쯤 남았을 때 "그만 드시겠어요?" 하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고양 상태가 꽤 지속된 결과인 듯, 식사 후에는 곧 노곤한 기색을 보이신다. 앞으로는 활동과 휴식의 구분이 뚜렷해지실 것 같은데, 활동 욕구를 어떻게 소화시켜 드릴 지가 큰 과제가 되겠다.

박 여사가 다시 떠났다. 차비라도 드리라고 아내에게 눈치를 줬다. 아내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인데도 이런 일에는 나랑 감각에 차이가 있다. 나는 돌아설 때 잘해주는 것이 정말 효과 있는 투자라 생각한다. 김 여사가 같이 지내던 사람들과 통화할 때 내가 부평까지 태워다 드린 것을 얼마나 감격스럽게 선전했는지, 얼굴만 알 듯하게 지나치던 다른 방 간병인들이 나랑 마주치자 대단히 치사를 한다. 그런데 아내는 같은 조선족 입장으로 느껴져 그런지 '명분 없이' 주고받는 것이 흔쾌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줘서 보내고 나서는 자기 기분에도 괜찮은 눈치다. "어머님 회복을 그이들이 도와드린 걸 생각하면 아까운 생각이 안 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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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