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근대화를 추구하면서도 그 중국다움을 잃지 않기 바라는 지도자들은 문화의 문제가 과제의 핵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문화란 어느 언어에서나 어려운 단어인데 중국어에서 특히 까다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의 의미를 토론해 왔어도 애매한 점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옛사람들이 오래된 유산을 늘 포괄적인 것으로 보아 왔다는 데는 대다수 학자가 의견을 함께하면서 문화를 전일적(全一的)인 개념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근대 서양과 마주치면서 다른 관점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서양의 철학자들은 과학혁명을 계기로 사회현상의 연구에 과학적 연구방법을 적용하게 되어 경제학, 정치학, 지리학, 사회학, 심리학 등 사회과학 부문들이 발전했습니다. 새 세대의 학자들은 사회가 전일적 관점으로 연구하기에 너무 복잡하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전일주의 전통이 아직도 얼마나 중국인의 생각을 이끌고 있는지, 그리고 중국인이 미래의 문화를 창출하는 데 어떤 역할을 맡을지, 흥미로운 일입니다. 중국인들은 자기네 유산이 19세기에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20세기 중에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왕조국가가 쇠퇴하고 청나라가 민국으로 바뀌면서 시작된 일입니다. 20년 동안 군벌들 사이, 그리고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분열과 내전을 겪으면서 중국은 더욱 약해졌습니다. 여기에 유혹받은 일본이 침략해서 근대적 경제건설을 위한 그때까지의 성과를 모두 파괴했습니다.
그 결과 사회 전체가 혼란 상태에 빠지고 혁명의 새 세대는 전통문화를 통째로 내버릴 태세가 되었습니다. 문화를 철학, 종교와 문학, 예술에서 경제와 정치구조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일적인 것으로 이해하던 중국인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파괴한다면 무엇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A Unitary Chinese Civilisation 중화문명의 전일성
중화문명이라 하면 안정된 농업경제의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기반으로 한 긴 세월에 걸친 지속적 성장의 연속적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질서를 주도하는 것이 유가 사상에 입각한 예법과 윤리의 원리들이고 넓은 범위의 불교와 도가 사상이 여기 보태졌습니다. 이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가치체계를 대다수 중국인이 받아들이며 자기네가 하나의 전일적 문명에 속한다고 느꼈습니다.
이 가치체계는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이래 서양에서 자라난 분석적 전통과 상극이었습니다. 서양문화에서는 새로운 방법론에 따르는 새로운 지식의 분야들이 만들어졌고, 그를 통해 정확한 결과를 얻고 우주의 성격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유럽문명에 접한 중국 학자들은 지식에의 그 접근방법이 근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먼 옛날 지중해세계의 고대철학으로부터 발원한 것임을 이해했습니다. 그 후로 다른 모든 곳의 사람들은 대개 전에 하던 대로 가족과 부족의 신앙과 관습을 지켜나갔습니다. 자신을 더 큰 전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기네 독특한 지역문화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은 사람들이 단 하나의 세상을 인식하는 전일주의 전통 속에서 자라난 나라였습니다. 그 세상은 천명을 받은 나라로서 중국인이 사는 곳이었고 그곳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극히 적었습니다. 단 하나의 세상이라는 인식에 중국의 특성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중국은 이 인식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과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풍성한 문명을 키웠습니다. 그들 중에는 원래는 중국인이 아니었다가 중국 영토 내에 살며 중국인이 되거나 중국 밖에 살며 중국과 오랫동안 접촉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과 싸우거나 중국을 침략한 사람들 중에도 중국에 끌려 중국인이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3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하나라는 인식은 표의문자의 공유로 강화되었습니다. 한자는 구어(口語)가 서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합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독해력을 가진 모든 사람이 한자로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를 뺀) 유럽보다 더 큰 강역의 여러 민족집단이 유일한 천자의 권위를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20세기 초에 이르자 중국 지식인들은 위대한 옛 문명이 파괴되었고 새로운 문명의 건설을 위해 큰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힘든 과업이 분명했습니다. 다른 문화를 그저 베껴오는 것으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문화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이해하고 체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자기 문명의 쇠퇴와 몰락이라는 서글픈 상황에 마주친 지식인들은 자기네 문화를 재생, 복원, 재발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접촉하게 된 근대적 문화들로부터 전혀 새로운 문화를 도출할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접촉 대상은 당연히 중국 전통의 기초를 위협하고 있던 유럽문화였습니다. 그 세대 지식인들은 중국인이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전통의 잔해 중에서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재활용품을 건져내야 했습니다. 그들은 서양문화의 엉성한 모조품이 아니라 중국의 특색인 전일성을 지켜내는 새 문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국가의 생존 자체를 위해 그 전일성의 보존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안전과 성장을 보장하고, 나아가 중국문명이 존중받게 해주는 그 위엄을 지켜줄 국가를 독자적 문화 없이 어떻게 건설할 수 있겠습니까?
쉽게 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고 힘을 키우는 데 필요한 사상과 기술을 비롯해 서양에서 들여올 수 있는 것을 들여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벅찬 일이었습니다. 외부의 적과는 물론, 자기들끼리도 싸워야 했습니다. 외부의 적은 해안과 내륙 조계지역의 기업들을 통제하며 중국 경제를 그 자본주의 회사들에게 종속시켰습니다. 군벌과 혁명세력은 내부의 적이 되어 서로 싸웠고, 그중에는 이익을 노리는 외부세력의 자금 지원을 받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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