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공자가 본 한국 : 현명한 신하와 어리석은 주군

기사입력 오전 10:20:08

현명한 신하와 어리석은 주군

계평자는 마침내 임금 소공을 못 견디게 하는 짓을 저질렀다. 소공의 돌아가신 아버지 양공을 모시는 행사가 있는 날 계평자가 자기 조상들을 위한 비슷한 행사를 벌였다. 그가 임금보다 권세가 더 컸기 때문에 사람들이 만(萬) 춤을 추러 계손씨 저택에 밀려들었는데, 궁중의 행사에는 단 두 명이 춤을 췄다. 그래서 계평자의 숙부가 꾸민 계평자 타도 계획이 소공에게 전해지자 소공은 그에 끌리는 마음이 들었다.

소공은 계손씨 가문 내의 균열을 이용해 임금의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후씨 가문과 장씨 가문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소공의 측근 신하 자가자는 다른 의견이었다. 계평자 타도 계획에 나서는 사람들이 모두 계평자에게 개인적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크게 믿을 수 없다고 소공에게 주의를 주었다.

"마음이 좁은 그 사람들은 임금께서 운이 좋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부담은 임금 한 분에게 돌아옵니다. 백성을 버린 지 여러 세대가 지난 이제 되돌리고자 하시는데, 일이 꼭 잘 될지 장담할 길이 없습니다."

소공은 자가자의 주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친위대를 이끌고 계손씨 저택으로 쳐들어가 대문을 지키던 계평자의 동생을 죽였다. 계평자는 대 위에 올라가 임금에게 자신을 그 자리에서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청을 올렸다.

처음에는 자신을 처형하기 전에 정식 재판을 열어 달라고, 자신은 기수 강가에서 반성하며 재판 결과를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을 비 성곽에 가둬 달라고 했다. 이것도 받아들이지 않자 수레 다섯을 붙여 추방해 달라고 했다.

이것마저 소공이 받아들이지 않자 자가자가 다급하게 "받아들이세요!" 하고 이어 말했다.

"그가 정치를 맡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에게 생계를 의지했기 때문에 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해가 들어간 뒤에 은밀히 이뤄지는 일들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쌓이게 하면 안됩니다. 쌓이는 분노를 처리하지 못하면 분노가 진해집니다. 분노가 쌓이고 진해지면 불온한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불온한 마음이 일어나면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이 합치게 됩니다. 임금께서 필히 후회하실 일입니다."

자가자는 현명한 신하로서 주군에게 상황을 잘 고려하도록 간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가 들어간 뒤 은밀히 이뤄지는 일들"을 감안해서 유리한 상황에 있을 때 타협을 꾀하도록 간청한 것이다. 이번에도 소공은 자가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동안 숙손씨 사람들이 관망하고 있다가 의논을 시작했다. 결론은 계평자가 아무리 밉더라도 계손씨가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숙손씨를 위해 낫다는 것이었다. "계손씨가 없으면 숙손씨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손씨 저택에서 임금의 친위대를 몰아낼 지원 병력을 투입했다. 맹손씨도 여기에 합류했다. 소공은 복수와 복권의 꿈을 품에 안은 채 외톨이가 되었다.

친위대가 격파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을 때 자가자가 마지막 건의를 올렸다.

"여러 신하들이 거짓으로 임금을 겁박해 저지른 일이니 그들에게 죄를 주어 쫓아내십시오. 임금께서는 움직이지 마십시오. (계평자도) 그대로 임금을 모실 것이며, 행동을 감히 고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공은 그 치욕을 차마 견딜 수 없어서 국경을 넘어 제나라로 향했다. 이렇게 해서 노나라 제후는 개인적 이유 때문에 조상들의 영혼과 후손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 나라를 버렸다.

자가자는 소공을 따라 제나라로 가서 보호자 노릇을 계속했다. 그가 보호한 것은 소공 한 사람만이 아니라 얼마간이라도 남아 있는 노나라의 주권과 자부심이기도 했다. 제나라 제후가 소공에게 1000개의 마을이 있는 땅을 주겠다고 했을 때 자가자가 이것을 받지 말라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은혜를 두 번 내리지 않습니다. 하늘이 임금께 너그러우시다면 주공께 내려주신 것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노나라로 충분합니다. 노나라를 잃고 1000개 마을을 가진 신하 노릇을 한다면 누가 임금을 임금으로 받들겠습니까?"

한편, 소공의 다른 지지자들 가운데 "목적을 분명히 하고 죄 있는 자와 죄 없는 자를 가리기 위해" 서약을 맺자는 제안이 나왔다. 서약 중에는 "지금 노나라 정치를 맡고 있는 자들과 어떤 관계도 맺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들이 자가자에게도 참여를 요구했을 때 자가자는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라 여러분과 생각이 다릅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최근 사태에 대해) 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뿐 아니라 임금님이 처해 있는 곤경에서 어서 벗어나시도록 하기 위해 국내에서 정치를 맡고 있는 이들과 얘기를 나눌 필요도 있습니다."

노나라 정부 안에서도 숙손소자가 자가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사로운 은혜에 얽매여 공공의 이익을 외면하는 대신 당당하고 정확한 행동을 했다고 공자가 칭찬한 일이 있는 인물이다. 계평자에게 반성의 기색이 있는 것을 본 소자는 임금을 도로 모셔오고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계평자 대신 자기가 제나라에 가서 소공의 귀환 조건을 협의하겠다고 자청했다.

계평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소자가 협의를 끝내고 돌아오기 전에 마음을 바꿨다. 그 해 겨울 10월 초4일에 소자는 "침실에 들어가 곡기를 끊고 조상들에게 죽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11일에 죽었다."

노나라 제후는 끝내 귀국하지 못했다. 자가자 역시 노나라로 돌아오지 않았다. 소공이 죽은 후 대신들이 소공의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고 자가자에게 국정을 함께 맡자고 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는 자취를 감췄고, 노나라 역사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자가자나 숙손소자 같은 신하들은 헛고생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이 모신 주군은 존경심도 신뢰감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위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얼마간의 자기 개혁을 시도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입받은 상식의 하나가 민주공화제는 문명되고 좋은 제도이며 전제군주제는 미개하고 나쁜 제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물정을 알게 되면서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적 상황에 민주공화제가 더 적합한 면이 많다는 기술적 차이 정도지, 근본적인 가치의 차이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어느 제도에서나 주권자가 완벽한 존재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군주제의 임금 중에도 폭군에서 성군까지 여러 층이 있었는데, 아무리 성군이라 하더라도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어떤 의식을 가지느냐에 따라 훌륭한 정치를 이루는 수준 차이가 있지만, 완벽한 주권 의식이란 것은 개념부터 성립될 것 같지 않다. 

기술적 차이의 가장 큰 것이 "완벽한 정치" 관념의 존재 여부 아닐까 싶다. 군주제에서는 성군에 의한 "태평성대"의 꿈이 있었지만 민주공화제에는 그런 절대적 완벽성의 꿈이 없다. 중세 이전에 비해 대중의 사회참여 수준이 높은 근현대 상황에 민주공화제가 적합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중의 의식이 옛날처럼 쉽게 조작되지 않기 때문에 현실이 불완전한 책임을 대중 자신에게 맡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 속에는 "완벽한 정치"의 꿈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 그래서 상당히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국민소득, 국내총생산, 수출액, 경상수지, 종합주가지수 등 중요한 경제지표에서 훌륭한 실적을 올렸는데도 "경제를 망쳤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을 이 정부 관계자들은 억울해 한다. 완벽성을 바라기 때문에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국민 의식이 이 오해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만족할 줄 모르는 국민 의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 압박에도 이용되었다. 과거의 비도덕적 관행을 그만큼 척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독재시대 어느 실력자의 "떡고물"과도 비교가 안 되는 액수, 그나마 해먹으려고 달려든 것이 아니라 관행 척결이 조금 미흡했던 일을 가지고 온 사회를 선동했다. 선동자들의 동기와 행태보다도 그런 선동이 먹혀드는 국민 의식이 더 큰 문제다.

"제왕적 대통령"은 흔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리키는 말인데, 우리 국민 의식은 겉으로 이것을 배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것을 바라는 측면이 있다. 지도자에게 완벽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맡기고 싶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해소시키는 데 큰 힘을 쏟았는데도 제왕적 대통령의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과거의 "제왕"들은 과연 "제왕적"이었을까? 동아시아 전제군주제의 이념적 기반을 마련한 공자는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지도자에게 완벽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공자가 최고의 성인으로 떠받든 인물은 주공이었다. 주공은 왕이 아니면서 왕의 역할을 수행했고, 거기에 흠이 없었다는 것이 공자의 숭앙을 받은 이유였다. 왕이 너무 어려 왕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신하 신분인 주공이 섭정을 맡았던 기간이 공자가 보기에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였던 것이다.

훌륭한 정치가 무엇인가 누가 물었을 때 공자는 "왕이 왕 노릇 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 하고 아비가 아비 노릇 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왕 혼자 잘해서 좋은 정치 되는 것이 아니고 신하도 잘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역사를 깊이 공부한 공자가 왕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했을 리 없다. 요순 같은 성인들이 왕 노릇 잘해서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기존의 전승을 그가 정면으로 내치지는 않았지만, 주공을 더 알뜰히 받듦으로써 그 비중을 떨어뜨린 셈이다. 그는 훌륭한 정치를 위해 왕보다도 신하의 역할을 더 중시했다.

공자의 가르침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발휘한 큰 힘은 그 현실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순의 이상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현실과의 갈등 속에서 분투노력한 주공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상을 부각시키되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 위에서 주공의 시대보다 더 타락한, 그래서 갈등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자기 시대의 현실을 끌어안았다. 그 후 여러 시대의 고매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공자가 자기 현실을 받아들인 자세를 보며 각자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힘을 얻었기 때문에 공자의 가르침이 널리 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순 같은 성군의 덕만으로 세상이 편안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공자는 현실로 받아들였다. 주공처럼 신하도 신하 노릇 잘해야 좋은 정치가 된다는 데까지 물러섰지만, 공자 자신의 시대는 주공 시대의 여건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신하들이 주공의 자세를 본받으려 애쓰는 것이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의 길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노나라 소공이 망명길에 오른 것이 기원전 517년, 공자가 35세 때 일이었으니 자가자는 공자보다 한 세대 위의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가서 제나라의 봉읍을 사양한 것 외에 소공은 자가자의 건의를 모두 묵살했다. 어리석은 임금이었다. 그러나 소공을 올바른 길로 이끌려는 자가자의 노력이 헛고생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저자가 보는 것은 공자의 관점을 따르려는 것이다.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좋은 노력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이다.

공자는 신하의 역할을 중시했는데, 오늘날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정치인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이다. 올바른 길을 찾아 임금에게 권하라는 공자의 "신하 노릇" 대신 주권자를 더욱 우매한 길로 몰아넣으면서 사사로운 이익만 취하려는 간신배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공자의 가르침이 옳으니까 무조건 따르라는 게 아니다. 내가 속한 사회가 아주 망가지는 꼴을 보지 않기 위해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역할을 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논어의 이런 귀절도 생각난다.

군자를 모시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기쁘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정도에서 벗어난 짓을 하면 그는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쓸 때 사람들의 능력 범위 안에서만 그들을 쓴다. 반면 소인을 모시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기쁘게 하기는 쉽다.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어긋난 일을 하더라도 그는 기뻐한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쓸 때 모든 면에서의 완벽을 요구한다. [논어 권13 子曰 君子 易事而難說也 說之不以道 不說也 及其使人也 器之 小人 難事而易說也 說之雖不以道 說也 及其使人也 求備焉]

우리 국민은 비위를 맞춰주기만 하면 신하들이 어긋난 일을 하더라도 기뻐하고, 신하들의 능력 범위를 생각지 않고 모든 면에서의 완벽을 요구하는 소인이 아닐까? 그렇다면 충신이 모시기 힘들고 간신이 속여먹기 좋은 주권자일 것이다.


(11년 전의 글 생각나서 다시 올려놓습니다.)

Posted by 문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02.21 21:15

    글 말미의 질문에 대해. 국민 일반은 당연히 소인입니다.

  2. 2010.02.22 00:01

    난 소인 하기 싫구요.

    마음만은 하래도 안 합니다.

  3. 2010.02.22 10:46 신고

    흐~ 냠냠님 열받으셨나봐요~ 오래된 글에 굳이 댓글 다신 것 보니. 그런데 "당연히" 소인이어야 할까요? 통계적으로는 소인의 숫자가 많더라도 '국민 집단'의 태도가 소인의 자세에서 얼마만큼이라도 벗어날 길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소인스러운 것이라서 개선의 여지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4. 2010.03.21 23:06

    프레시안 갔다가 우연히 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요즘 제가 역사책을 읽고 있어서 님의 글들이 눈에 띄었나봅니다. 가끔 놀러와서 읽고 가겠습니다. 마지막 문장에 공감 100배입니다....

  5. 2020.12.14 23:45

    대한민국 경제성적표는 권력이 만드는 게 아니라 재벌이 만듭니다.이 건 엄연한 현실입니다.
    권력은 도와주지는 못해도 망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을 물가상승 정도가 매우 낮은 디플레 상황이라고 하는데,.대부분의 미혼 1인가구의 경우 월세가 너무 올라서,
    초안플레이션 까지는 아니지만 부담이 단기간 내에 크게 올라서 사실상 인플레 상황보다 더 안좋습니다.
    일자리 문제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최악입니다.
    당장은 코로나 핑계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애시당초 일자리 창출에 청와대가 앞장서겠다고 상황판 만들고,일자리수석이라는 자리도 만들고 하더니 지금은 일언반구 말이 없습니다.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도 사라진지 오랩니다.)
    사악한 야바위질은 국민이 하고있는 게 아니라 문재인을 비롯한 권력집단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혹시 선생님은 지금 윤석열을 비난하시는 건가요?

  6. 2020.12.24 13:54 신고

    "민주적 통제". 소공이 내세운 "군주적 통제"와 같은 틀입니다. 명분은 당당하죠. 그러나 "영을 거역"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단순-무식-명쾌한 방식만으로는 '정치'가 안 됩니다. 숙손씨가 왜 경쟁자인 계손씨를 편들고 나섰겠습니까? 계손씨를 처단하는 소공의 방식이 한 번 통하면, 같은 방식의 처단이 자기네에게도 닥칠 것을 꿰뚫어본 것이죠. 한두 차례 선거 결과로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얻은 것처럼 가리는 것 없고 꺼리는 것 없이 휘두르는 바람에 중도적 민심이 정권을 등지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모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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