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의 이사를 전후해서 꼬박 한 달 동안 '책과의 씨름'을 한 결과 아직 정리가 안 된 채로 있지만, 그래도 길은 겨우 보이게 되었다.

 

'책과의 씨름'. 평생 회피해 온 일이다. 30대 초 교수직에 막 부임했을 때는 소장 도서의 목록을 유지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몇 달 안 돼 포기하고 말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한편으로는 영인-복사 사업의 번성 때문에 도서 공급이 많아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월급이 빵빵해서 도서 구입비를 넉넉히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공에도 이유가 있었다. 역사학도에게는 책이 '읽는' 대상이 아니라 '보는' 대상이다. 쭉 읽어나가는 책보다 한 구절을 찾아서 확인하는 자료가 많이 필요한 것이다. 10년 후 교수직을 떠날 때 서가 길이가 120미터에 달했다. 지금 주로 쓰고 있는 70센티 넓이 5단 서가라면 30개가 필요한 분량이었다.

 

요즘 같으면 학교 도서관에 넣을 자료도 개인이 구비해야 하는 환경이라서 구해 놓았던 대형 자료를 처분해서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를 지금까지 끌고 다녔다. 거처가 좁을 때는 친한 출판사에 부탁해서 창고에 일부 쌓아놓기도 했다. 이번에 떠난 대화동 집은 서재가 어벙하게 넓어서 책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는 않는 식으로 10년 넘게 지냈다. 학교 있던 시절에 비해 전공서나 자료보다 교양서, 단행본이 주로 늘어났다. 그러다 어머니가 쓰러지실 때 어머니 소장 도서도 몽땅 내 서재로 끌고 왔다.

 

이사를 앞두고 책을 둘러보니 서재 30개 분량으로 도로 늘어나 있다. 다니는 연구소 두 곳에 기증할 무거운 책들부터 뽑아냈다. <조선왕조실록>, <25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clopedia Britannica> 등등 책장 대여섯 개 분량이 빠졌다. 다음에는 내가 꼭 지킬 필요가 없는 책을 쌓아놓고 고서점 이 선생을 불렀다. 책장 두 개 분량을 뽑아갔다. 남은 책 중에서 차마 폐지로 바로 보낼 수는 없는 책을 도로 불러들이고 책장 세 개 분량을 버렸다. 그래서 새 집으로 데려온 책은 책장 20개 분량 가량이다.

 

새 집의 안방을 서재로 쓰는데, 책장 9개를 들여왔다. "서재 밖에서는 책이란 물건을 보고 싶지 않다"고 진저리를 치는 아내를 설득해 현관 어구에 3개를 놓았다. 지금 상황에서 책장 7-8개 분량이 과포화 상태로 쌓여 있다.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여기 올리는 방법을 몰라서 나중으로 미뤄둔다.

 

이사온 후 제일 힘을 들인 일이 어머니 책 정리다. 가져온 이래 어떤 책이 있는지도 들여다본 적 없이 쌓아놓고만 있었다. 모르는 채로 버릴 수도 없어서 그대로 가져왔다. 이제 정리해 보니 책장 너댓 개 분량이다. 국어학 책은 얼마 되지 않고 불교 서적이 대부분. 그리고 영성에 관한 책이 꽤 있다. 불교기관 중에는 반갑게 받아줄 곳도 있을 것 같은데, 더 정리해 놓고 보낼 만한 곳을 알아보려 한다.

 

또 하나 보낼 길을 생각하는 것은 고서점에 보낼 책 더 뽑는 것. 아버지께 물려받은 책 등 고서점에서 좋아할 만한 것을 전번에는 아까워서 제외한 것이 좀 있는데, 한 차례 보내놓고 더 생각하니 좋다고 받아주는 데가 있으면 아낄 것 없이 보내야겠다. 고서점 이 선생의 태도가 탐탁해서 보낼 마음이 더 든다. 서가 하나 분량쯤 될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꼭 보내지 않아도 되지만 좋은 길 있으면 보내고 싶은 책이 또 서가 하나쯤 되는 것이 있다. 영문 소설. 영문 읽기가 힘들지 않게 된 고교 시절 이래 소설을 주로 영문으로 읽게 되었다. 초년에 읽은 것은 다 없어졌는데, 교수직을 떠난 후 읽은 책과 구해놓은 책은 그대로 쌓여있다. SF, 미스테리, 스릴러, 판타지 등 장르 영역에 좀 마음먹고 모아둔 것이 있고, Kurt Vonnegut, Robertson Davies 두 작가의 작품은 철저하게 구해놓았다.

 

고서점에는 아무때나 보낼 수 있고 어머니 불교서적은 2월까지 보낼 곳을 알아보려 한다. 그런데 영문 소설 보낼 곳이 불쑥 나타났다. 며칠 전 "사는 꼴"에 올려놓은 푸념을 보고 어느 분이 연락을 해온 것이다. 관심과 취향이 나랑 많이 겹치는 것 같아서 책들이 좋은 임자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이 세 군데로 보낼 책 보내고 나면 누워있는 책들을 일으켜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길이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평생을 통해 내 '소유' 대상으로 가장 큰 의미를 가진 존재가 책이었다. 내가 원하는 책을 내가 구해서 갖기 시작한 것은 고딩 때부터였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대학생 때였다. 교수직에 있을 때는 장서의 규모와 범위가 교수 자격의 한 척도로 보이기도 했다. 대학을 떠나 번역과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은 후에도 쌓여있는 책이 내 '밑천'으로 인식되었다.

 

이번 이사를 계기로 책에 대한 태도를 크게 바꾸게 되었다. '소유'에 관한 생각을 근래 많이 해온 것이 변화를 위한 기반조건이 된 것도 같다. 어머니 책들과의 관계에서 제일 절실하게 느낀다. 어머니의 소유권을 '상속' 했기 때문에 지키고 있었을 뿐, 그 책들과 나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키우지 못했다. 그럴 바에는 더 필요로 할 만한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 어머니에 대해서도 도리일 것이다. 고서적도 소설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키고 있는 충성이 그 책들이 세상에 나온 보람을 가로막는 집착에 그쳐서는 안 되겠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