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모순덩어리 이스라엘

기사입력 2009-02-09 오전 11:09:28

근로자와 戰士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큰 정당이 있다. 리쿠드당과 노동당이다.

몇 해 전 라빈의 노동당 정권은 "땅을 주고 평화를 얻는(Land for Peace)" 평화 정책의 길을 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최초의 대 아랍 유화 정책으로, 중동 평화를 바라는 세계인의 마음에 희망을 심어주었으나 이스라엘 내에서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라빈의 암살과 작년 총선의 노동당 패배로 이어졌다.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리쿠드당의 네타냐후 정권은 노골적으로 노동당의 평화 공존 정책을 뒤집어놓고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영토로 예정되어 있는 서안 지구에 '정착촌'이라는 이름의 식민 활동을 강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아랍인 구역에 이스라엘인 아파트단지를 짓는 등 도발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두 정당의 대 아랍 정책 차이는 뿌리 깊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건국 준비 과정에서 지도자들은 유태인의 민족성을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반호>의 아이작,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처럼 나약하고 음흉한 전통적 유태인상을 깨뜨리려는 노력에 두 정당의 연원이 있다.

하나의 방향은 유태인이 훌륭한 '근로자'가 되는 것이었다. 유럽 유태인 사회는 뛰어난 예술가, 학자, 법조인, 사업가를 배출했다. 그러나 유태인이 훌륭한 농부와 직공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땀의 소중함을 새로운 세대에 일깨워주는 근로시오니즘 운동에서 출발한 노동당은 같은 근로자인 아랍인에 대한 도발을 최소화하려는 전통을 가져 왔다.

한편, 리쿠드당은 또 하나의 방향, '전사(戰士)'의 모습을 추구하는 노력에서 유래한다. 영화 <엑소더스>에도 소개된 테러 조직 하가나와 이르군이 리쿠드당의 선구다. 투쟁시오니즘 운동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건국이 유태인이 유럽인으로서 아랍인을 정복하러 가는 길이며, 거기에는 도덕성보다 힘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1910년대 이래 시오니즘의 양대 줄기가 된 두 노선 가운데 처음에는 진보적 유태인들의 지지를 받은 근로 노선이 우세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나치 박해를 피해 난민들이 밀려들면서 차츰 투쟁 노선이 득세했다.

이스라엘인은 근로자로서도, 전사로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오니즘의 두 계열이 모두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러나 아랍인과의 관계에서 두 계열은 아직도 치열한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 가자 지구 동부, 이스라엘 접경 지대인 알-투파 마을은 이스라엘군의 거듭된 공격으로 마을 전체가 철저히 파괴됐다. 파괴된 집에 사람은 없고 팔레스타인 깃발만 홀로 나부낀다. 70년 전 유대인 게토의 참상을 떠올리는 이 풍경이 바로 시오니즘의 만행으로 빚어진 것이라니, 역사의 비참한 아이러니다. 피해자였던 유대인이 가해자가 되었다 해서 보상의 행복을 얻는 것인가? 힘을 숭상하는 근대 정신이 인간을 어떻게 비참한 존재로 만드는지,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역사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프레시안

  1997년 봄 이 글을 쓸 당시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던 큰 변화를 아직 내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산권 붕괴에 따른 동유럽 출신 유대인의 대규모 이주를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단일민족국가로 흔히 인식하지만, 사실은 크게 다르다. 팔레스타인인을 비롯한 비 유대인 인구를 가리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대인' 자체가 하나의 민족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이다.

민족은 혈통보다 언어와 문화로 규정되는 존재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의 유대인은 유대교 및 그와 관련된 문화를 지키고 있었지만, 거주 지역에 따라 그 종교와 문화에도 큰 편차가 있었고, 쓰는 언어도 달랐다. 유대인의 정체성은 동아시아 문명을 공유하는 여러 민족들의 집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유럽 각국에 민족주의가 일어나자 마이너리티의 입장에 몰린 여러 나라 유대인들이 새로운 유대감을 키워 근대 시오니즘을 일으켰다.

선진국 유대인 사회의 엘리트 계층은 소속한 나라에의 동화를 바라며 시오니즘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었다. 19세기 말 시오니즘의 폭발적 발전은 선진국 민족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격화되는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 전형적인 계기였다.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의 국가'를 세울 땅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에게 얻고자 했다. 영국은 아프리카의 동남쪽 한 귀퉁이 우간다 부근을 검토했다. 원주민과 갈등을 적게 일으킬 만한 곳을 고르려 한 것이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으로 터키 제국이 와해되자 영국은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을 내놓았다. 아랍 세계를 적극적으로 경영할 필요가 떠오른 단계에서 유대인을 식민 집단으로 활용할 구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주선에 따른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이 이주는 식민국가 국민들의 식민지 이주 틀 속에 들어 있는 현상이었다. 영국 시민이 주축이 된 유대인 집단이 식민 당국의 후원 하에 식민지에 정착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을 배경으로 이스라엘의 건국 여건이 촉진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영국이 아랍 세계 경영에 앞장설 힘을 잃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후원국 역할을 영국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 미국이었다.

20세기 초반 동안 극심한 반유대주의를 피해 유럽을 벗어난 유대인들이 제일 많이 향한 곳이 미국과 팔레스타인이었다. 팔레스타인보다도 더 많은 유대인이 미국에 자리 잡고 미국 사회에 (인구 비율에 비해 대단히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서 미국의 이스라엘 후원 정책을 뒷받침해 주었다. 지금 미국의 유대인 중에는 종족주의를 벗어나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지만, 네오콘 그룹 속의 유대인 인맥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스라엘과의 특수 관계에 집착하는 전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이상과 같은 그림을 1997년에 나는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5년 동안 수십만 명의 유대인이 동구권, 특히 러시아로부터 이주하여 이스라엘 인구의 10% 이상을 점하게 되면서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고르바초프 정권이 국경을 개방하자 많은 러시아 유대인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1990년 초까지 약 20만 명의 소련 출신 유대인을 받아들인 뒤 미국이 더 이상의 이민을 막으면서(이스라엘의 로비 결과로 알려진 조치다.) 이민 물결이 이스라엘로 쏠리게 됐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유대인의 이주를 환영하는 정도가 아니라 줄곧 독려해 왔다. '유대인'의 자격은 2대 조상, 즉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네 사람 중 하나만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인정해 주는 너그러운 것이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인구 증가 정책은 1990년대 초반에 사상 최대의 성공을 거뒀다. 5년 동안 약 70만 명의 이민이 구소련으로부터 넘어왔다. 그런데 이 성공에는 예상외로 큰 부작용이 따라왔다.

이스라엘의 공용어는 히브리어아랍어다. 모든 유대인은 (노인들과 아랍권 출신의 소수 유대인을 제외하고) 이스라엘에 오면 히브리어를 쓰게 되어 있다.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 출신 유대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기 위해 히브리어 정책은 매우 중시되어 왔다.

그런데 수많은 이민이 구소련에서 쏟아져 들어와 자기네끼리 '러시아타운'을 이루게 되자 러시아어가 제3의 비공식 공용어가 되었다. 미국의 이민 정책 변경이 아니었다면 아마 대부분 미국으로 향했을 그들은 단기간에 거대한 이익집단을 만들었다. 국가 의식은 강하면서 민족의식은 약한 집단이다. 이 집단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이스라엘에의 문화적 동화를 거부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1990년대 후반 동안 러시아어 신문과 방송이 속속 생겨났다. 그들의 정당도 생겨나 의회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지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이 정당들은 퇴조했지만, 그 배경 집단의 정치적 비중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독자 정당보다 극우파 정당을 통해 자기네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러시아계 이민 집단은 이스라엘이 더 많은 땅을 가지기를 바라고, 따라서 아랍권과의 대결 격화를 원한다. 서안 지구와 골란 고원 등 점령 지역의 정착민 가운데는 그들의 비중이 대단히 높다. 이츠하크 라빈이 추진했던 "땅 대신 평화" 정책을 그들은 매국 정책으로 본다. 라빈의 정책을 지지하던 에후드 바라크 현 국방장관이 가자 공격에 앞장선 것은 임박한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관측되고 있다. 어떤 양보도 일체 용납 못하는 극단적 강경파 유권자가 지난 15년 사이에 10% 넘게 늘어나 있기 때문이다.

인구 730만 명의 이스라엘보다 더 복잡한 인구 구조를 가진 나라가 이 세상에 별로 없다. 20년 전에도 이스라엘은 평화로운 국가가 되기에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의 나라였다. 지금은 그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이 더 복잡하게 되어 있다. 아랍권과의 갈등 이전에 내부 모순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스라엘을 데려다준 것이 미국의 힘이다. 오바마의 미국이 진정한 변화를 위해 처리해야 할 뚜렷한 과제의 하나가 이스라엘 문제다.

Posted by 문천